초등학교 교과서와 베스트셀러 동화를 통해 ‘까만 나라 노란 추장’으로 어린 세대에 더 잘 알려진 세계적인 식물육종 유전학자. 서울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잡초를 학문적으로 연구했다. 미국 미시건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안락한 서울대 조교수 자리와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소 초빙을 뿌리치고, 38세 되던 1971년 검은 대륙으로 날아가 나이지리아 국제열대농학연구소(IITA)에서 구근작물과 바나나와 같은 식용 작물의 품질을 개량하고 수확량을 늘리는 데 청춘을 바쳤다.
무려 50명 가까운 아프리카 농학도들이 석·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고, 12명에게 포스닥 과정에서 수련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이외에도 단기 과정을 통해 각국에서 온 700여 명의 농업 지도자들을 훈련시켜, 각국에서 1만여 명의 현지 지도자들을 배출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지은이는 그들의 손에 병충해에 강하고 소출이 많은 신품종들을 들려 보내, 아프리카 전역에 증식 보급하도록 했다. 그 덕분에 한 박사팀이 개량한 카사바 품종은 현재 41개 아프리카 국가에 보급돼 있고, 고구마 품종은 66개, 얌 품종은 21개, 식용 바나나 품종은 8개 국가에서 재배되어 굶주림을 해소해 주고 있다.
아프리카가 워크샵과 트레이닝 과정을 통해 국가적 차원에서 식량 자급의 기틀을 마련한 ‘조용한 혁명(Quite Revolution)’뒤에는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에 식용작물 연구와 농업 교육의 씨를 처음 뿌림으로써 ‘한국에서 온 아프리카 성자’라고 불린 한상기 박사가 있었다.
자신의 학문적 탐구에도 열정을 다해 160편의 논문을 세계 과학지에 발표했으며, 스웨덴 국제과학재단 자문위원 · 미국 코넬대 명예교수 · 국제구근작물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영국 기네스 과학공로상, 영국 생물학회 펠로우상, 미국 작물학회 펠로우상, 서울대 개교 50주년 기념 자랑스런 서울대인상 등을 받았고, 세계식량상(The World Food Prize)과 일본상(The Japan Prize) 후보로 연거푸 추천됐다.
나이지리아 이키레읍 추장으로 추대되어 대관식을 치른 적도 있다. 현재는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로 봉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