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제 방태산으로 향하는 느림보 경보병 여단의 전체 인원이 물경 80 여명 이라고 한다.
매너 좋은 신사분들과 정숙하고 능력있는 숙녀분들의 차원 높은 산행 활동이 장안에 널리 회자된,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귀결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미산리에서 양가집 규수의 고쟁이처럼 손때 묻지 않은 하니동 계곡을 경유하여 깃대봉으로 오르는 태초의
원시림은 젖냄새 술술 풍기는 어머님의 속적삼같은 아련함을 한껏 안겨 주었다.
군대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치고 부대 배치를 앞둘 무렵 교관들로 부터 귀에 못이 백힐 정도로 많이 듣는
오분 드라마가 다름 아닌 인제 원통에서 벌어진 일들 이다.
사람들을 접하기 가장 어려운 최전방 오지인 인제는 늘상 군대 경험이 부족한 신병들에겐 공포의 대상이 되는
곳으로 인제 원통으로 자대 배치를 받고 보충대에서 군용 트럭을 타고 털털 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 하던
말들이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몬 살겠다란 말이다.
대부분의 숫넘들이 어려운 군대생활이라고 하면 공수부대나 해병대 혹은 육군의 탱크부대를 거론하며 믿기 힘든
무용담으로 술좌석을 압도하기 마련인데 훈련 자체가 녹록치 않다 보니 당연히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들 하지만
실상 가장 어려운 군대 생활은 완전군장으로 천리 행군을 하는 것도, 까마득한 창공에서 패러슈트 울러 매고 졈프를
하는 것도, 거친 바다를 헤치며 아이비에스 고무 보트를 타고 상륙훈련을 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불끈 거리는 이팔 청춘에 일년 내내 분 냄새 한번, 스커트 밑에 슬쩍 비치는 연분홍 삼각팬티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는 최전방 철책선에서 보초 근무 서는 군바리가 가장 고달푸고 피 보는 군대 생활이다.
깃대봉을 살큼 내려 오니 넓다란 안부에서 먼저 도착하신 여러 분의 느림보님들이 이미 점심상을 펼쳐 두셨다.
얼깃 빈자리가 보이길래 대충 접의자를 펼치고 앉아 잠시 주위를 둘러 보는 순간 난 진중치 못한 내 자신이 몹시도
원망스러워 지며 오늘 하루 재수 옴 붙은 날이란 생각만 뭉실 뭉실 피어 오른다.
느림보에서 그 악명이 너무도 자자한 두 닭살 부부 틈바구니에 어쩌다가 이 못난 인간이 보리알 처럼 끼어 든 것이다.
옆에 계시는 분들이 손꾸락이 없는 것도 발꾸락이 없는 것도 아닌데 여보야 자기야 당신이야를 양 옆에서 오초 간격으로
쌍나발 처럼 울리면서 젓가락이 연신 공중으로 난무하며 더 먹어라 덜 먹어라를 밑도 끝도 없이 외쳐 댄다.
우려가 현실로 바뀌는가 하더니 급기야는 한참을 눈독을 들이던 제 밥과 반찬이 발써 반이상이 거덜날 즈음에서야
옆좌석에서 비통스런 표정으로 아무런 말씀없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은 제 몰골을 지켜 보시던 자비의 화신
곰순님께서 복분자를 포함해서 남자들 거스기에 좋다는 서너 가지 약재를 넣어 만든 껄쭉한 진액을 종이컵에 그득 따루어
건네 주셨는데 물론 그너무 종이컵 제 주둥이 근처에도 오질 몬 했습니더.
나중에 곰순님께서 건네 주시는 빈병을 꺼꾸로 세우고 갠신히 혓바닥으로 간 정도는 겨우 보긴 했습니다만
일순 감사한 마음에 콧잔등이 찡하더만요.
부부가 함께 등산을 하며 늘상 애정어린 그윽한 눈빛으로 마주 보는 이런 분들을 흔히 상생의 팔자라고들 하는데
구럼 상극의 팔자로 함께 붙어 사는 희얀한 모습 오늘 함 보실래요?
집안 사정이 어려워 일찌거니 학업을 포기하고 동대문시장에서 포목업으로 자수성가한 친구가 뜬금없이 불러 내어
나간 곳이 청계천에 있는 돼지껍띠기 구워 파는 곳인데 친구 옆자리를 보니 엎어 놓은 된장사발이 한분 계셨다.
요즘 말로 소갯팅이란 것인데 된장사발이다 보니 아래 위를 죄 훑어 볼 필요가 물론 없었다.
그 자리에서 눈길 한번 준 적도 없는 된장사발과 무신 전생의 악연이 깊고도 깊은지 어찌 어찌 하다가 장차의 장인
어른되실 분과 상면을 하던 그날이 바로 지옥문을 두드리는 순간이 될 줄은 정녕코 모를 일 이었습니더.
집안 어른과 상면을 하는 자리라면 구래도 분위기 잔잔히 깔리는 카페트 바닥이 있는 레스토랑 정도가 당근일텐데
그날은 삼겹살 꿉는 집으로 기억됩니다.
장인 어른은 일제로 부터 해방될 무렵까지 만주에서 소장수를 하시다가 고국으로 돌아 오셔서 지끔껏 불뚝농군으로
집안을 돌보셨는데 최근엔 연세도 있고 하여 논밭에서 나오는 땅콩이나 팔아서 겨우 목구녕에 풀칠을 한다시면서
하나 밖에 딸아이를 넘들 처럼 많이 가르치지도 몬했고 모지방 또한 여느 아이들 처럼 반반하지는 몬하지만
인간 구제한다는 심정으로 아니 이번 생은 없었던 셈으로 치고 한번만 거두어 달라시며 제 손을 꽉 부여 잡으시더만요.
흘깃 옆을 돌아 보니 상추에 돼지고기를 세 점이나 올린 쌈을 한 입에 쑤셔 넣고 있는 된장사발 뒷편으로 천사의 날개인지
불보살의 광배인지 구분이 잘 가질 않는 야릇한 광경이 희뿌연 고기 연기 속에서 아물거리고 있지 멉니껴?
저를 밀치고 투박한 농군 손으로 바지 주머니에서 지전 몇장 꺼내서 계산을 마친 장인 어른과 함께 길을 건너는
된장사발의 뒷모습을 우연찮게 지켜 보던 내게 갑자기 어디에선가 줏어 들은 싯구절이 한절 문득 떠 오른다.
시몽! 너의 흰목덜미는 눈처럼 아름답구나.
안부에서 방태산 주억봉으로 이어 지는 죽음의 능선길 산행 이야기는 아무래도 며칠 뒤 하편으로 올려야 겠습니다.
습기 많은 날씨에 쉽지 않은 방태산 산행으로 땀 꽤나 흘리신 우리 느림보님들! 오늘 하루 편히 쉬셨으면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탄천변에서 돌삐 올립니다.
첨언 ; 세계 해전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신 성웅 이 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어 보면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요즘 우리 고국의 현실처럼 떠 오른다.
본인의 지휘하에 있는 관내를 쉴 틈없이 순시를 하시며 예하 수령과 방백들을 독려하여 엄청난 전쟁 준비를 하시는
모습이다.
지휘 명령이 제대로 하달되지 않는 여러 장수들을 심할 경우엔 불러다 놓고 곤장을 치는 경우도 볼 수가 있는데
앞날을 내다 보는 이러한 뛰어난 혜안이 조선의 수군과 어줍잖은 선조 대왕을 살렸다고 할 수가 있다.
장군께서 마지막 전투인 노량 해전에서 남기신 자신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던 말씀은 언제나 우리네
가슴 속 깊이 그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남아 있는데 ...
학창 시절 역사 시험을 보는데 문제가 이 순신 장군께서 전사하신 곳은? 이었다.
공부를 워낙이 즐겨 하지 않았던 지라 대가리만 긁적이고 있는데 앞에서 컨닝 페이퍼가 넘어 온다.
공부 꽤나 한다는 넘이 적었다고 하는데 정답 : 바다에서.
몬가 찜찜해서 한참을 궁리타가 제가 쓴 정답 : 배 위에서.
첫댓글 방태산 때묻지 않은 깊은 계곡...
파란 이끼 소복하던 그 길을 양가집 규수 속고쟁이로 표현하셨군요.ㅎㅎ..
표현의 발상이 아주 재미 있습니다.
습기 많아 미끄러웠던 그 산길과...
초원에 핀 야생화 무리...
낮게 드리운 하늘 아래 장중한 능선과
우뚝한 산들만이 사방으로 가득했던 하루..
그래도 그 하루가 그리워 질 날들이 있을것입니다.
아니지요~~ 갑판 위에서~~~ㅎㅎ
그래요. 돌삐님 제가 죽일년이구먼유......~~~~ 집에서는 못먹여본 거시기에 ...좋다는 복분자를 제가 얻어먹였구먼유.돌삐님 술안주하려던 달걀 두알 깨끗이 해치웠구먼유.....!!!...
...~~!! 남편사랑 듬뿍 받았답니다...남편 청솔과 함께 돌삐님 글을 읽으며 배꼽잡고 오랜만에 크게 웃어보았답니다..~~....곰순씨 돌삐님 이제야 느림보가 정이들고 매주 화요일이 기다려진답니다.
어렵다는 지리산종주까지포함해서 칠월달처음으로 개근을했답니다. 느림보님들 모두 행복하시길....~~~~~..ㅎㅎㅎㅎㅎ. 닭살부부네와애교쟁이부부네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