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색즉시공2’에서 트랜스젠더로 출연했던 이시연이 성전환 수술을 하고 진짜 여자로 돌아왔다. 끝없는 번민,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 친구들의 외면…. 그녀가 여자의 인생을 선택하는 대신 잃어야 했던 것, 혼자 감당하기에는 못내 무거웠던 아픔들을 털어놓았다.
취재_민은실 기자 사진_이진하(studio lamp)
지난 1999년, 여성스러운 외모로 안티미스코리아에 출전했고, 영화‘색즉시공1’에서는 남자,‘ 색즉시공2’에서는 여자로 출연해 화제가 됐던 이시연(본명 이대학.30). 단지 곱상한 ‘훈남’이미지로 각인됐던 그녀가 성전환 수술을 해 또 한 번 관심을 끌어 모았다.‘ 제2의 하리수’라는 수식어와 함께 그녀의 변신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 것. 그러나 그녀는 세상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수술을 한 뒤 1년 동안 외부 출입을 삼간 것도 그런이유.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수술을 하고 나니까 비아냥거리고, 무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너
무 힘들더라고요.”
시대 의식이 쿨해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트랜스젠더를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깊은 생채기가 생긴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이 지옥 같은 시간도 이젠 값어치 있는 대가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수술도 해냈는데 이런 것쯤 못 이겨내겠어요. 순간순간 상처받고 소심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성숙해진 것 같아요(웃음).”
차분히 이어가는 말투와 웃을 때마다 살포시 손으로 입을 가리는 그녀는 영락없는 여자였다. 대인기피증과 자살시도, 그리고 운명에 대한도전. 남자로 태어난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 결코 쉬운 결심은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때까지만해도 자각하지 못했던 성 정체성을 뒤늦게 깨닫고 난 뒤 혼란스러운 나날이 시작됐다.
“대학교 때 패션학을 전공했는데, 자유롭게 생활을 하며 조금씩 느끼게 됐어요. 메이크업
하고, 치마를 입고, 액세서리를 하는 게 좋더라고요. 그 무렵에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고 자
유가 없어지면서 힘들어졌죠. 연기를 할 때도 여자 캐릭터가 욕심이 났고, 이성의 감정을 느끼는 오빠한테‘형’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괴로웠어요.”
구속된 환경 속에서 남자의 역할을 강요받았던 것이 못내 괴로웠다는 그녀. 시간이 흐를수
록 존재감에 대한 고민은 깊어져 갔다. 장남으로 살았던 내가 ‘여자’임을 알게 된 순간의 갈등과 고통, 상처 많았던 나의 내면 고백.
“처음에는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조차 생각하지 못했어요. 내가 어떻게 여자가 돼? 먼 나라
얘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고민을 시작하면서부터 곧 사형 날짜를 받아 놓은 것처럼 숨이
막히더라고요. 여자로 살아 볼까, 그럼 일도 포기해야 하고, 가족들한테는 어떻게 얘기하
지, 수술비는? 하루에 수백 번을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녀는 수면제와 술 없이는 하루도 편하게 잠들 수 없었다. 대인기피증으로 인해 외부 출입
도 삼갔다. 해결점을 찾을 수 없는 고민 때문에 자살 충동을 느낀 적도 수두룩하다.
“답이 안 나오니까 죽자고 결심했죠. 마지막으로 엄마가 보고 싶어서 전화를 했어요. 그
때 남동생이 엄마랑 같이 있었는데, 동생한테‘나 없어도 엄마 잘 지켜줄 수 있지?’그
랬죠. 그때 남동생이‘난 네가 있으면 더 잘 모실 것 같은데….’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
고 정말 많이 울었고 이후에 수면제를 한 통 먹고 병원에 실려 갔어요.”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으로 그녀는 점점 지쳐갔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피폐해진 얼굴을
보다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있다.
“어느 순간 제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걱정만 했지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해봤거든요. ‘이렇게 죽을 바에는 한 번 해보자, 그때 가서도 불행하다면 그때 죽자’라고 생각하고 수술을 결심했어요.”
1년 정도 고민을 했지만, 결심한 이후에는 속전속결로 일이 진행됐다. 아담에서 이브로 재
탄생하는 큰 수술이었지만 오히려 담담했다. 7~8차례의 성전환 수술로 몸이 지쳐갔지만 새
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남자가 여자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마취 풀리고 나면 너무 아파서 종일 울기만 했
죠. 그래도 제가 선택한 일이니까. 그저 이 모든 과정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밖에는 안 들었어요.”
수술 뒤 50대 여성에게나 오는 갱년기 증상이 찾아왔다. 온몸에 열이 오르다가 갑자기 한기
가 느껴지고, 팔다리가 마비가 되는 것처럼 저리기까지 했다. 그때마다 곁에서 건강을 챙겨
준 어머니. 그녀는 두 달 내내 사골 국을 끓여 주었던 어머니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엄마한테 너무 고맙고 미안해요. 예전에는 제가 여자 옷이나 액세서리를 사오면 보자마
자 버렸어요. 그리고 몇 달 뒤에는‘이것 말고 저게 예쁘다’고 했고, 몇 달 지나고 나서는 나중에 입으라며 여자 속옷을 사다 줬어요. 이시연이라는 이름도 엄마가 지어 줬어요.”
누구보다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주며 든든한 지원자가 돼 주었던 어머니.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까지 그녀의 성전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전환 수술 후 1년 동안 아버지를 한 번
도뵌적이없다는그녀.
“제가 2남 중 장남이었거든요. 아버지가 워낙 보수적인데다가 제가 장남이라 기대가 크셨
을 거예요. 어려서부터 여자 아이 같은 짓 한다고 꾸지람을 많이 들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
로 갈등이 극대화된 거죠. 아버지께 생각할 시간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가족들이 받았을 충격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저릿하다는 그녀. 그러나 누구보다 그녀
를 사랑하기에 시간이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그라지게 할 거라고 믿는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사랑, 이제 여자로서 로맨스를 꿈꾸다.
그녀가 수술 전 가장 힘들었던 건 동성에게 느끼는 애틋한 마음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에
게 고백 한 마디 해볼 수 없고, 형 동생으로 지내야 하는 상황이 그녀를 매번 슬럼프에
빠지게 했다.
“내가 여자라는 걸 깨닫고 나서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서글펐어요. 흔한 고백조차도 할 수 없었죠. 혹여라도 선후배 관계나 친구 관계마저도 깨질까 싶어서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었어요.”
외롭게 가슴앓이 하는 동안 그는 몇 번의 사랑을 보내야 했다. 그럴 때마다 곁에 있어 주었
던 특별한 친구가 있었다. 그녀가 성 정체성을 의심하기 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 7년 전, 한때 남자친구였던 그녀가 여자로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누구보다 충격을 받았지만 끝
까지 곁을 지켜 주었다.
“한때 연인이었고, 수술하기 전에도 좋아한다고 했던 여자였어요. 수술을 결심하고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깜짝 놀라더라고요. 황당하기도 하고 배신감도 느껴 그 친구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친구가 저를 이해하게 됐고, 지금은 가장 친한 친구가됐어요. 이제는사우나도같이가요(웃음).”
둘의 깊은 사랑이 진한 우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제 안정을 다소 찾은 그녀는 평범한 연
애를 꿈꾼다. 손잡고 길거리를 거닐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영화도 보고 싶다고 한다. 한때는 그것이 신기루 같은 망상이었지만 이제는 가능한 현실이 됐다.
“엄마가 사주를 봤는데 삼십대 중반에 결혼운이 있대요. 처음에는 헛웃음을 쳤는데 생각
할수록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시연이 트랜스젠더인 걸 다 아는데 누가 나랑 연애할까, 누
가 나랑 결혼을 할까, 아직 상상이 안 되요.”
보통 여자들이 꿈꾸듯 그녀도 결혼 생활에 대한 밑그림을그리고있다. 대상도 없는 막연한 미래지만 이만큼 즐거운 상상도 없다. 안타까운 것은 자신을 꼭 빼닮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
“며칠 전에 엄마 친구 분이 막둥이를 데리고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어요. 말투며 표정이 너
무 사랑스러운 아이였어요. 제가 아이를 낳아도 저렇게 예쁠 텐데…라고 생각하니까 서글
프더라고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입양해야죠. 그런데 사실 지금은 연애가 더 급한
것 같아요(웃음).”
그녀는 호적정정신청을 했고 2월말 쯤 절차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법적으로도 진정한 여자가 되는것. 법적인 승인을 통해 그녀는 좀 더 당당해지고, 떳떳하게 결혼도 하게 될 것이다.
트랜스젠더의삶, 또다른시작
그녀는 요즘,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세상이 새로워 보인다. 반평생을 남자로 살았고,
앞으로 여생을 여자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행
복하기 위해서 선택한 삶, 그녀는 외모와 내면이 아름다운 여자가 되기 위해 분주하게 하루
를 보내고 있다.
“성전환 수술 하면서 성형 수술도 했는데 그건 예뻐지기 위한 수술이 아니라 남성적인 부
분들을 여성화하는 수술이었어요. 가령 가슴수술의 경우, 모양을 예쁘게 하려는 것보다는
여자가 되기 위한 일련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외모보다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운
동을 꾸준히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연기 공부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여자로 돌아온 그녀에게 줄곧‘제2의 하리수’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그러나 그녀
는 성전환 수술을 하고 나서 연예계에 데뷔한 하리수와 달리 연예계 활동을 하던 중에
수술을 결심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
다는 불안함이 있기도 했다.
“주로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을 했기 때문에 존재감 있는 배우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수술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난 뒤로 안티 팬이 부쩍 늘어났어요. 제가 연기를 못하거나, 노래를 못해서 지적을 받는 건 상관없는데 단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는 건 힘들더라고요.”
그녀는 인터넷 기사에 달린 악플을 쭉 훑어보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더욱 그녀
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건 친구들의 냉담한 반응이었다.
“수술을 하고 나서 친구들 반을 잃었어요. 친한 친구들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이해해 달라
고 부탁을 했죠. 알고 봤더니 어떤 친구들은 저를 화젯거리나 단순 재밋거리로 얘기하고
다니고, 어떤 친구들은 왠지 모르게 서먹하게 대하더라고요. 그렇게 친구 절반 정도를 잃고 나니까 네티즌들의 악플을 보는 것보다 참담하더라고요.”
녹록지 않은 트랜스젠더의 삶을 계획하는 그녀에게 친한 친구는 미국에서 당당하게 살라
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성 역할을 구분 짓거나 성 정체성을 두고 왈가왈부하지 않는 외
국에서 자유로운 삶을 꿈꿔 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현실의 벽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마음을 활짝 열고 난 뒤에 자유를 선택하고 싶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음지로 모이게 되는 성적 소수자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일단은 여자로 살아갈 때 정말 행복할 것인지 확신을 가져야 해요. 그리고 수술을 한 뒤
에는 위축되지 말고 스스로 당당하게 트랜스젠더임을 인정해야 하죠. 스스로 편해야 받아
들이는 사람도 편하거든요.”
그건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는 방법이기도 했다. 일도 사랑도 행복하게 디자인하고 싶다는
욕심 많은 그녀는 당당하게 여자의 삶을 즐기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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