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베드로후서 3장 1-9절
제목: 생각하고 알아라(1)
서언: 지난주에 베드로후서 2장 9절부터 22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씻겨 진 자란?”에 대하여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씻겨 진 자”란 “깨끗해진 자가 아니다”는 것은 말씀을 통하여 잘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불의한 자로서 규정하시는 것으로 보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씻겨 진 자란 다시 씻어야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물 없는 우물에서 우물은 우물인데 물이 없는 자요 폭풍에 밀려다니는 구름으로 표현되었으니 비가
없는 곧 말씀이 없는 자요 폭풍에 그저 밀려다니는 사람이니 어찌 깨달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더하여
캄캄한 안개라고 언급되어 앞을 볼 수 없으니 그 씻겨 진 자는 누구이겠습니까? 오늘은 베드로후서 3장 1
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생각하고 알아라(1)”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듣고 깨달은 말씀들을 많이 생각하라(stir up)(벧후 3: 1)
순수한 마음이란 어떤 마음입니까?
단순히 순수하다는 마음은 일반적으로 무엇일까요?
성경에서는 어떠한 마음이 순수한 마음일까요?
이는 마태복음 13장 23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좋은 밭”과 같은 마음으로 ”듣고 개달은 마음“
입니다.
본문은 듣고 깨달은 마음을 일깨우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는 것입니까?
형제들이 전에 거룩한 대언자들 곧 예언자들이 전한 말씀들과 예수님의 사도에게서 받은 명령
들입니다.
그러한 말씀들을 듣고 깨달은 순수한 마음을 일깨우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일깨운다는 단어의 뜻은 무엇입니까?
어떤 방법으로 순수한 마음을 일깨웁니까?
1절에서 ”너희의 기억을 되살려“ 순수한 마음을 일깨운다고 말씀합니다.
기억을 되살린다는 것은 기억의 방법으로 순수한 마음을 일깨운다고 말씀입니다.
순수한 마음을 일깨우는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대언자들의 말씀들과 사도들의 명령들을 명심하게 하려(mindful) 함입니다.(벧후 3: 2)
”명심한다“ 곧 ”mindful“ 이란 그 말씀들을 많이 생각하게 하려 함입니다
2. 아는 자가 되라 곧 무지한 자가 되지 말라(벧후 3: 8)
a. 마지막 날에 비웃는 자들이 온다는 것을 알아라(벧후 3: 3)
마지막 날에 비웃는 자들이 온다는 것을 알라고 하시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정욕을 따라 걷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비웃는 자들은 그들의 정욕대로 걸으니 그렇지 않은 자들을 향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하는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그 약속은 없다는 것으로 말하는 게 아닙니까?
그들의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상들이 잠든 이후 모든 것들이 창조 이후에 있던 것같이
그대로 계속된다“라고 덧붙여 말할 것임을 알아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그 말은 세상에 별다른 현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에서 두 단어를 주목해 보면 비웃는 자들이 누구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잔다“와 ”창조“입니다.
조상들이 죽었다고 하지 아니하고 ”잔다“라고 말한 것과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말한 것을
보면 그들은 종교인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이 ‘죽었다’고 하지 아니하고 ”잔다“고 한 것을 보면 부활을 언급한 게 아닙니까?
그러나 ‘세상이 그대로 있는데 무슨 재림이 있는 가?’라는 비웃음입니다.
그들은 또 창조는 아나 창조의 하나님은 모릅니다.
창조를 깨달아 알았다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한 게 아닙니까?
곧 재림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재림이 없으니 자신들의 정욕에 따라 걸어간 게 아닙니까?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그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부러 알려 하지 않으려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그들이 일부러 알려 하지 않으려 하였다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는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임“을 그들이 일부러 알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땅이 물에서 나와 물 가운데 서 있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임“을
일부러 알려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비웃는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노아 당시)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이로 말미암아“란 무엇으로 말미암아 입니까?
노아 당시의 사람들의 ”그 비웃음“을 가리킵니다.
그들의 비웃움으로...
그러나 앞으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주께서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사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기 위하여 예비해 두셨느니라“(벧후 3: 7)
b. 아버지 하나님과 구주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하여”무지하지 말라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벧후 3: 8) 이 사실에 대하여 무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slackness)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디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벧후 3: 9)
사람들은 예수님의 약속에 대하여 특히 비웃는 종교인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나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신 것”(벧후 3: 9)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더딘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우리구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오래 참으심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한 오래 참으심입니까?
“우리”를 위한 오래 참으심입니다.
무엇을 위한 오래 참으심 입니까?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는”(벧후 3: 9) 오래 참으심입니다.
여기서 회개란 무엇입니까?
첫댓글 베드로후서 3장 1-9절 (생각하고 알아라) - https://youtube.com/watch?v=_mmlL8VtSaY&si=Z9ypFfjP3wqOKFX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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