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직전 말기 환자들의 마지막 길 편안하게 도와
모현 호스피스 운영, 가정 방문 호스피스 등 활동
두려움 갖는 환자들에게 죽음 너머 희망을 갖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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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스피스 환자와 웃으며 대화하는 '모현 호스피스' 김은배 수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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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가 호스피스 가정을 방문해 환자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
"오늘 임종하는 사람들, 내일이면 너무 늦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Little Company of Mary, 관구장 장귀옥 수녀) '모현 호스피스' 담당
김은배(스텔라) 수녀는 매일 환자 가정 방문을 준비할 때마다 설립자 메리 포터(Mary Potter, 1847~1913)
수녀의 이 한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간호사인 김 수녀가 오늘 방문할 환자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사는 폐암 말기인 장 마리아(79) 할머니.
2004년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지금은 병원에서도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손을 놓은 상태다.
지난 주 환자 가족 요청을 받고 첫 방문이라 김 수녀도 마음이 설렌다.
"안녕하세요. 몸은 좀 어떠세요?"
"기침이 심해 밤에 잠을 잘 수가 없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요."
환자가 자신의 몸 상태를 늘어놓자 동행한 호스피스 전문의 정극규(포천 모현의료센터 진료원장) 박사가
청진기를 꺼내 검진에 들어간다.
그 사이에 김 수녀는 환자를 심리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해 어린아이 달래듯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간다.
죽음을 앞에 둔 말기 환자를 아주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는 느낌이다.
근심으로 가득 차 있던 환자 얼굴에 조금씩 희미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빨리 저 세상으로 가면 좋겠어요."
"할머니, 답답해도 자꾸 움직이시면 숨이 더 가빠져요. 분심이 들면 묵주기도를 하세요,
고통 없이 임종을 맞게 해 달라고. 저도 할머니를 위해 매일 기도할게요."
김 수녀의 소임은 임종 직전 말기 환자가 편안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가정 방문 호스피스 활동이다.
지금도 15~20명 남짓한 환자를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정기적으로 방문해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대화를 나누며 하소연을 들어준다.
심신이 나약해진 환자는 스스로 죽음이 다가온다고 느낄 때 고독과 두려움, 기도조차 할 수
없는 극심한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더욱이 말기 환자들은 말 한마디 하는 것, 숨 쉬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호스피스는 통증조절(완화의료)을 통해 고통을 덜어주며, 가족과 화해하고 여생을 잘 정리해
마지막 순간을 평화롭게 맞이할 수 있게 도와준다.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그 너머에 있는 세계에 두려움을 갖습니다.
환자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 즉 하느님 나라로 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죽음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잘 받아들이고 평화로운 임종을 맞는 분을 만날 때 가장 보람됩니다."
환자들의 닫힌 마음을 여는 비법을 물어보니, 김 수녀는 "그냥 함께 놀다 온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환자가 노래를 해달라고 하면 노래를 해주고 고스톱을 치자면 함께 하지요."
밝고 건강한 목소리로 조금은 능청스럽게 말하는 김 수녀 모습을 보면서 말기 암환자라도 웃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수녀는 "호스피스는 포기가 아니라 희망"이라며 "자신이 살던 가정에서 삶의 마지막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며 임종을 준비하는 게 가장 이상적 호스피스"라고 강조했다.
환자 방문을 마치고 수녀회 영성과 역사를 들으러 서울 용산구 후암동 수녀원을 방문했다.
"어서 오세요. 제가 안나 수녀입니다." 먼저 이렇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면 수녀인지 못 알아볼 뻔했다.
김갑경(안나, 메리포터 호스피스 영성연구소 연구팀장) 수녀는 종신서원 때 특별히 수도복을
입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수도복에 대한 거부감이 유별나거나 수도자를 대하기 어려워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우리 수도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수도복에 대한 규정이 없어졌어요. 전교지역인 한국과
일부 국가에서만 아직 수도복을 입는데, 수도복이 신뢰를 주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사복을 입는
것이 오히려 환자들을 편안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거든요."
▨ 수도회 영성과 역사
임종자 보살핌으로 예수 치유 현존 드러내
사람은 죽음 앞에 섰을 때 자신의 한계를 가장 뼈저리게 체험한다.
죽음을 맞는 순간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독한 순간이기에 예수님조차 피하고 싶어 하셨다.
이렇게 죽음 앞에 무기력해진 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주고 삶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봐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일까.
"십자가의 고통이 아드님 예수를 짓누르고 있을 때,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 순간에 어머니 마리아는
그 곁에 서 계셨어요. 우리 수도회가 지닌 특별한 영성은 바로 '갈바리아 십자가 아래 서 계시는
마리아의 마음'과 하나 되어 하느님 자비를 구하고, 임종자들을 어머니의 모성으로 보살핌으로써
세상에 '예수님의 치유 현존'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이런 소명은 메리 포터<사진> 수녀가 겪었던 뼈저린 고통에서 비롯됐다.
그는 1869년 자비의 수녀회(Sister of Mercy)에 입회했으나 건강이 급속히 악화돼 수도회를
퇴회해야 했다. 그 후 그는 한 번도 건강한 적이 없었고 여러 차례 수술을 받는 등 거의 죽음에
직면하는 고통을 맛보았다.
그에게 이런 고독과 공포, 무기력의 체험은 인간의 죽음이 또 하나의 '골고타 사건'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1874년 11월의 첫 금요일 통증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묵주기도를
드리다가 병자와 임종자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에 참여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꼈고,
1877년 7월 2일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를 설립했다.
그는 골고타 언덕에서 예수 죽음을 지켜본 마리아 역할을 자신의 소명으로 깨달았고 죽어가는
이들, 특히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게 기도하고 봉사하는 것을 사도직의 목표로 삼았다.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은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할 때 그 고통을
함께 짊어지며 천국으로 인도하는 동반자의 길을 걸어왔다.
1963년 11월 춘천교구장 구 토마(T. Quinlan) 주교 초청으로 한국에 진출, 강릉에 갈바리의원을
설립한 수녀회는 1965년 3월 15일부터 임종환자 간호를 시작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호스피스 시초다.
1987년 11월에는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서 가정간호 호스피스를 시작했는데 1990년 도봉구
미아리로 옮기면서 '모현 호스피스'로 부르게 됐고, 1998년 5월 후암동으로 이전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또 2005년 6월에는 포천에 국내 최초 독립형 호스피스 병동인 '모현 의료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갈바리아(골고타) 언덕에서 예수 그리스도 임종을 끝까지 지켰던 성모 마리아의 마음을 닮자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 '모현'(母峴, 성모의 언덕)이다.
이 밖에 무의탁 어르신을 위한 '평화의 모친' 요양원(포천)과 갈바리 재가노인복지센터(강릉)를
운영하고 있다. 또 강릉 현대아산병원과 춘천 한림대병원에 원목수녀를, 춘천교구 포천본당에
전교수녀를 파견하고 있다. 1999년 성모승천관구로 승격됐다.
국내 회원 수는 양성기 수녀를 포함해 약 40명. 50년 가까운 세월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는 숫자다.
죽음을 앞둔 임종자를 돌보는 특별한 사도직과 죽음에 대한 언급조차 꺼리는 사회 분위기 때문일까?
할 일은 많은데 일손이 부족하다.
'임종자의 벗' 메리 포터 수녀는 1988년 2월 8일 가경자로 선포됐으며, 그가 뿌린 씨앗은
오늘날 미국ㆍ영국ㆍ아일랜드ㆍ뉴질랜드ㆍ짐바브웨ㆍ통가ㆍ호주ㆍ한국ㆍ필리핀 등에 진출한
400여 명 회원들이 싹을 틔우고 있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 성소모임
매월 둘째 주일 오후 2시~5시 서울 성북동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청원소
담당 : 김예랑 리오바 수녀 02-764-7732, 011-9799-8790, lcmgil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