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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2부 상 5
네흘류도프는 어른들을 상대하기보다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편이 훨씬 마음 편했다. 그는 아이들과 같이 걸어가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밋빛 셔츠를 입은 조그만 놈은 웃음을 그치고 큰 놈처럼 영리하게 차근차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너희 마을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은 누구지?"하고 네흘류도프가 물었다.
"누가 제일 가난하냐고요? 미하일라죠, 그리고 세묜 마카로프도. 그렇지만 마르파가 더 가난해요."
"아니야, 아니시야가 더 가난해. 아니시야는 소도 없고 빌어먹고 있잖아"하고 조그만 페지카가 말했다.
"아니시야 집에는 소가 없지만 대신 세 식구뿐인데, 마르파는 다섯 식구나 되잖아"하고 큰 놈이 반대했다.
"그렇지만 아니시야는 과부가 아니냔 말이야"하고 장밋빛 셔츠는 아니시야 편을 고집했다.
"넌 아니시야가 과부라고 하지만, 마르파도 과부나 마찬가지지 뭐야!"하고 큰 녀석이 말을 이었다. "남편이 집에 없으니 과부지, 뭐."
"남편은 어디갔지?"하고 네흘류도프가 물었다.
"감옥에서 이를 기르고 있대요"하고 큰 녀석은 어른들이 말하듯이 이렇게 대답했다.
"작년 여름에 지주네 숲에서 자작나무 두 그루를 베어갔기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어요."
장밋빛 셔츠의 조그만 놈이 재빨리 말했다. "벌써 여섯 달이나 됐어요. 그래서 마르파는 동냥을 다녀요. 집에는 어린애가 셋이나 있고, 더구나 몸을 못 쓰는 할머니까지 있어요"하고 아이는 자세히 설명했다.
"그 여자 집은 어디냐?"하고 네흘류도프가 물었다.
"바로 이 집이에요."하고 소년은 집 한 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집 앞, 네흘류도프가 걸어가고 있는 길가에 머리가 흰 조그만 어린아이가 개 다리처럼 무릎이 굽은 다리로 비틀비틀 간신히 서 있었다.
"바시카, 어디로 도망가는 거냐, 저 말썽꾸러기가!"하고 재라도 뒤집어쓴 듯한 더러운 잿빛 옷을 입은 여자가 집에서 뛰쳐나오며 놀란 듯이 네흘류도프 앞까지 달려와서는 어린애를 끌어안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네흘류도프가 어린애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르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태도였다.
그 여자가 바로 네흘류도프의 숲에서 자작 나무를 베었다는 죄로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그 사나이의 아내였다.
"그건 그렇고, 마트료나도 역시 가난하니?"
그들 셋이 마트료나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네흘류도프는 이렇게 물었다.
"가난하긴 뭐가 가난해요, 술을 파고 있는데"하고 야왼 장밋빛 셔츠의 소년이 단호히 말했다. 마트료나의 집에 이르자 네흘류도프는 두 아이를 돌려보내고 입구의 복도를 거쳐 방 안으로 들어갔다. 마트료나 노파의 집은 두 칸 반도 못 되는 넓이였으므로, 큰 사람이면 난로 뒤에 놓여 있는 침대에서도 제대로 발을 뻗을 수 없을 정도였다. '바로 이 침대 위에서'하고 그는 생각했다. '카튜샤가 어린애를 낳고 병이 들어겠지.' 방 안은 베틀이 거의 점령하고 있었다. 네흘류도프가 얕은 문에 머리를 부딪히며 방으로 들어갔을 때, 마침 노파는 큰 손녀와 함께 베틀을 고치는 중이었다. 다른 두 손녀는 네흘류도프를 딸라 쏜살같이 달려 들어와서는 문기둥을 붙잡고 섰다.
"누굴 찾으시죠?"하고 노파는 화난 얼굴로 물었다. 베틀이 시원찮아 짜증이 나 있었고, 더욱이 밀주를 팔고 있는 관계로 낯선 사람만보면 언제나 두려움이 앞섰던 것이다.
"나는 지주인데, 당신에게 좀 물어볼 말이 있어서 왔소."
노파는 상대방을 찬찬히 쳐다보면서 한동안 말이 없더니 갑자기 낯빛이 바뀌었다.
"아이고, 주인 나리셨군요. 바보같이 알아뵙지도 못하고. 난 그저 지나가던 나그네인줄만 알았습죠."하고 노파는 아첨 어린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사람이 없는 데서 조용히 얘기 좀 하고 싶은데"하고 네흘류도프는 열린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에는 어린애들이 서 있고, 그 뒤로 말라빠진 여자가 갓난아이를 안고 서 있었다. 갓난아이는 넝마 조각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병 때문에 혈색이 좋지 않은 데다 피골이 상접하면서도 연신 벙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뭐 볼 게 있다고. 맛 좀 봐야겠니, 그 몽둥이 좀 이리 가져와!"하고 노파는 문에 서 있는 아이들에게 고함을 쳤다. "문을 닫지 못해!"
어린애들이 가버리자 갓난아이를 안은 여자가 문을 닫았다.
"난 또 누구시라고. 주인 나리신걸. 황금처럼 소중하고 훌륭하신 주인 나리를 몰라 뵈다니!"하고 노파는 말했다. "아유, 이렇게 누추한 곳을 다 찾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아, 다이아몬드처럼 귀중하신 나리님! 자, 어서 여기 앉으십시오. 이 의자에"하고 그녀는 앞치마로 의자를 훔치면서 말했다. "난 또 어떤 악마 녀석이 들어왔나 했더니 글쎄, 바로 나리님이실 줄이야. 훌륭하고 인자하시고 우리 생명의 은인이신 나리님을 다 몰라뵈다니. 제발 이 바보 같은 늙은이를 용서해주십시오, 벌써 눈이 멀었나 봐요."
네흘류도프가 앉자, 노파는 그의 앞에 서서 오른손으로 빰을 괴고 왼손으로 뾰족한 오른쪽 팔꿈치를 받치고는 노래라도 부르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리도 나이가 드셨군요. 물 오른 나무처럼 싱싱하시더니, 지금은 그렇지 못하시군요! 역시 걱정이 있으신가 보지요."
"실은 한 가지 물어볼 말이 있어서 왔는데 카튜샤 마슬로바를 기억하겠소?"
"카테리나 말씀입니까? 어떻게 생각이 안 나겠어요, 제 조카인데요. 그야 잊을 수 없지요, 그 애 때문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몰라요. 다 알고 있습니다, 나리. 하나님 앞에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또 임금님 앞에 잘못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젊을 때는 누구나 차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기 마련입죠. 그리고 일단 악마에 홀리고 나면 여간해서는 헤어나기 힘들답니다. 하는 수 없어요! 나리는 그 애를 버리셨지만, 백 루블을 주셨으니까 보상은 하신 셈이지요. 그러나 그 애의 꼬락서리라니. 미친 짓을 했죠. 내 말만 들었던들 버젓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그 애는 제 조카딸입니다마는, 솔직히 말씀드려서 철딱서니가 없는 계집애였어요. 그 뒤로 내가 좋은 자리에 들여보내주었는데 글쎄, 주인네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고 대들지 않았겠어요. 우리 주제에 감히 주인한테 욕을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쫓겨나고 말았지요. 그리고 또 한 번은 관리인 댁에 들어갔는데, 거기서도 싫다고 나와버렸어요."
"나는 어린아이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여기서 낳았다면서요? 그 애는 어디 있소?"
"어린것 말씀입니까, 나리님? 그때 저는 여간 많이 생각하지 않았습죠. 아이 어미는 산후에 몸이 좋지 않아서 일어날 것 같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갓난아이는 세례를 받게 한 다음 육아원으로 보냈습니다. 어미가 죽게 되었다고 해서 천사 같은 어린것을 괴롭힐 수야 있겠습니까. 세상에는 갓난아이에게 젖을 주지 않아서 말려 죽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좀 힘이 들더라도 육아원으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해, 그때 마침 돈도 있고 해서 데려다주었지요."
"번호를 받았었소?"
"번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애는 그만 곧 죽어버렸어요. 그 여자 말로는 도착하자마자 죽었다더군요."
"그 여자라니?"
"바로 그 스코로드노예에 살던 여자 말입니다. 그 여자는 그게 직업이었지요. 이름은 말라니야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 여자도 죽고 없습니다. 똑똑한 여자였어요. 정말이지 그렇게 일을 잘할 수가 없었어요! 갓난아이를 데려가면, 그 아이를 맡아 자기 집에서 기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수차 찰 때까지 자기 집에서 기르는 거죠, 나리. 그러는 동안 아이가 셋이나 넷쯤 모이면 곧 육아원으로 보내는 겁니다. 그 여자는 정말 머리가 좋더군요. 2인용 침대처럼 큰 요람을 만들어서는 적당히 그 속에 아이들을 넣는 거예요. 거기엔 손잡이도 달려 있었요. 거기다 네 아이를 서로 머리가 부딪치지 않도록, 그러니까 네 아이의 발이 한군데로 모이게 눕히는 겁니다. 이렇게 한꺼번에 네 아이를 돌보는 거예요. 젖꼭지만 물려주면 아이들은 울지 않고 얌전하거든요."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됐소?"
"그래서 카테리나의 아이도 그런 식으로 기른 거죠. 그럭저럭 두 주 동안 자기 집에서 길렀다는데, 벌써 그때부터 그 애는 쇠약해져 갔다더군요."
"아이는 어땠소?"하고 네흘류도프가 물었다.
"그야 훌륭한 아기였습지요. 어디 가서 찾아봐도 그런 아이는 없었을 겁니다. 꼭 나리를 닮았었지요"하고 노파는 주름 잡힌 한쪽 눈을 끔뻑이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왜 허약해졌을까? 아마 잘못 먹인 모양이군요?"
"먹는 거라야 뻔하죠, 뭐! 한 가지밖에 없었으니까요. 하긴 제 배 아파 낳은 애가 아니니 당연할 테죠. 어쨌든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만 살아 있으면 된다고 그 여자가 말하더군요. 그런데 모스크바로 가자마자 곧 죽었다는 거예요. 그녀는 빈틈없이 증명서까지 받아 왔더군요. 참 똑똑한 여자였어요."
네흘류도프가 자기 자식에 대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부활 2부 상 6
방문과 대문에 다시 한 번 머리를 부딪히면서 네흘류도프는 한길로 나왔다. 흰 셔츠, 잿빛 셔츠, 장밋빛 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밖에 또 다른 두서너 아이들이 그들과 같이 서 있었다. 젖먹이를 안은 아낙네들도 몇 있었는데, 그중에는 누더기로 모자를 만들어 쓴 핏기 없는 갓난아이를 한 손으로 가볍게 안은 아까 그 깡마른 여자의 모습도 보였다. 어린아이는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끊임없이 기묘한 웃음을 띠면서, 구부러진 엄지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네흘류도프는 그것이 고통의 미소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낙네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저 여자가 아까 말한 아니시야예요"하고 큰 아이가 대답했다.
네흘류도프는 아니시야에게 말을 건넸다.
"어떻게 지내고 있소?"하고 물었다. "뭘 먹고 사느냐 말이오."
"어떻게 사느냐고요? 얻어먹고 지내지요." 아니시야는 이렇게 말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피골이 상접한 어린아이는 지렁이처럼 가느다란 다리를 구부리면서 벙실벙실 웃고 있었다.
네흘류도프는 지갑을 꺼내 그 여자에게 10루블을 주었다. 그가 그곳에서 두 발짝도 나아가기 전에 갓난아이를 안은 또 다른 여자 하나가 쫓아왔다. 그 뒤에 노파, 그리고 또 다른 여자, 모두 자신들의 가난한 처지를 호소하며 도와달라고 했다. 네흘류도프는 지갑에 있던 잔돈 60루블을 몽땅 그들에게 털어주었다. 그러고는 어두운 우수를 느끼면서 관리인이 사는 별채로 돌아왔다. 관리인은 웃는 얼굴로 네흘류도프를 맞아들이면서 오늘 밤 노인들이 모인다고 보고했다. 네흘류도프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방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뜰로 나가, 하얀 사과꽃이 흩어져 있는 무성한 풀밭 길을 거닐면서 오늘 겪은 모든 일을 곰곰 되새겨보았다.
처음에는 별채 근처가 조용했으나, 네흘류도프는 곧 관리인의 방에서 성난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두 여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두 여자의 목소리에 섞여 이따금 언제나 웃음 짓고 있는 관리인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힘으로 더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데, 왜 남의 목에 달린 십자가까지 낚아채고 야단이야"하고 독살스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지나갔을 뿐인데 뭘 그래요."하고 다른 여자가 말했다. "돌려달라니까요.소도 굶기고 어린애까지 젖 없이 고생시킬 필요가 뭐냐 말이에요."
"그러니까 돈으로 갚든지, 일을 해서 갚으면 되잖아"하고 관리인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네흘류도프는 정원을 벗어나 현관 층계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두 여자가 서 있었는데, 한 여자는 해산이 임박한 불룩한 배를 내밀고 있었다. 현관 층계 위에는 관리인이 돛천으로 만든 외투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서 있었다. 주인 나리를 보자 여자들은 입을 다물고 흘러내린 머릿수건을 고쳐 쓰기 시작했고, 관리인은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싱글벙글 웃었다.
관리인의 말에 따르면, 농부들이 일부러 자기들의 송아지와 어미 소를 지주네 목장에다 들여보낸다고 했다. 오늘도 이 여자들의 암소 두 마리가 목장에 들어와 있기에 붙잡아서 가둬버렸다는 것이다. 관리인은 소 한 마리에 30코페이카씩 벌금을 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이틀 동안 배상 노동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첫째, 자기네 소들은 잠깐 들어갔을 뿐이고, 둘째, 그런 돈은 갖고 있지도 않으며, 셋째, 일을 하기로 약속할 테니까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고 뙤약볕 아래서 처량히 울고 있는 소만큼은 빨리 돌려달라는 말이었다.
"누누이 몇 번을 부탁했느냔 말이야." 벙글거리는 관리인은 마치 네흘류도프에게 증인이라도 되어달라는 듯이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점심때 소를 몰려면 잘 감시해야 한다고."
"잠깐 아이를 보러 간 사이에 소들이 나가 버린 거예요."
"소를 보는 사람이 그 곁을 떠나선 안 되잖아."
"그럼 어린것은 누가 젖을 먹이고요. 당신이 젖꼭지라도 물려주신다면 몰라도요."
"그것도 목장을 아주 못 쓰게 짓밟았다면 몰라도, 그저 잠깐 들어갔을 뿐인데 뭘 그래요"하고 또 한 여자가 말했다.
"목장을 온통 망쳐놨어요." 관리인은 네흘류도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단단히 혼을 내주지 않으면 마른 풀은 만져보지도 못합니다."
"그런 죄받을 소리는 하지도 마세요." 임신한 여자가 소리쳤다. "우리 소는 한 번도 붙들린 적이 없어요."
"그래, 이번엔 붙들렸으니까 벌금을 물든지 일을 하든지 하란 말이야."
"좋아요, 일을 할 테니 소를 내줘요. 소를 굶길 수는 없으니까요!" 그녀는 증오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정말이지 밤이고 낮이고 한 시간도 쉴 새가 없으니. 시어머니는 앓아누워 있지, 남편은 집에 붙어 있지를 않지,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걸 혼자 해야 하니, 이젠 정말 지쳐버렸어. 그런데도 저 사람은 날 잡아먹지 못해 일을 시키겠다니."
네흘류도프는 관리인에게 소를 돌려주라고 이르고는 다시 생각에 잠기기 위해 뜰로 나갔으나, 이미 생각할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너무나도 명백했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일목요연한 것이 왜 세상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자기 자신도 이토록 오랫동안 알지 못했는지 새삼스럽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농민은 죽어가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죽음의 생활에 익숙해져서 이미 그들 사이에는 거기에 알맞은 특수한 생활 방식이 형성되고 있다. 아이들의 죽음, 여자들의 막중한 노동, 일반 농민들, 특히 노인들이 겪는 식량 부족. 그러나 그들은 점점 이러한 상태에 익숙해져서 그들 자신도 스스로의 공포를 모르고, 또 그것을 호소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도 이러한 현상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당연한 것같이 믿고 있다.' 이제야말로 네흘류도프는 모든 것이 대낮처럼 명백했다. 농민들 스스로 의식하고 또 그들의 입으로 말하고 있듯이, 그들의 궁핍함은 호구지책이 되는 유일한 토지를 지주에게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어린이와 노인의 사망률이 높은 것은 우유가 부족하기 때문이며, 우유가 부족한 것은 가축을 기를 먹이나 건초를 만들어낼만한 땅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도 아주 명백한 사실이었다. 농민이 궁핍해진 전적인 원인, 아니 적어도 그 궁핍의 중요하고도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그들을 먹여 살리는 땅이 그들의 수중에 있지 않고, 토지에 대한 권리를 이용해 농민의 노동으로 사랑가는 사람들의 수중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지극히 명료한 사실이었다. 농민에게 없어서는 안 되고, 또 없으면 그들이 목숨을 부지해갈 수도 없는 그 토지 자체는 궁핍에 쪼들리는 농민의 손으로 경작되고 있으나, 그들이 거두어들인 곡물은 지주에 의해 외국으로 팔려가서 지주의 모자나 지팡이나 마차나 청동 따위로 바꾸어진다. 이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는 마치 울안에 갇힌 말이 발밑의 풀을 다 뜯어 먹었을 때 다른 먹이가 있는 당으로 보내주지 않는 한 점점 말라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완전히 명확한 사실이었다......무서운 일이었다. 결단코 있을 수 없고, 또한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이런 일이 없도록, 적어도 자기 자신은 이러한 일에 참여하지 않도록 적당한 수단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반드시 그것을 찾아내고야 말리라.' 그는 가까운 곳에 있는 자작나무 가로수 길을 오락가락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학회나 정부 기관이나 신문 지상에서 민중이 궁핍한 이유나 그 구제책을 논의해왔지만, 그들을 올바르게 구제하는 유일한 방법만은 말해오지 않았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들에게 꼭 있어야 하고 더욱이 그들에게서 빼앗아온 토지를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그는 헨리 조지의 근본이념을 생생하게 상기하고, 어째서 그런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는가에 대해서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토지는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물이나 공기나 햇빛같이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토지와, 토지가 인간에게 주는 모든 이익에 대해서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러자 그는 쿠즈민스코예에서 자신이 취한 조치를 왜 부끄럽게 생각했었는지 이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토지에 대한 특권을 가질 수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그 특권을 자인하고 그 일부분을 농민들에게 분배해주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자기에게 그런 권리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번만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고, 또 쿠즈민스코예에서 한 일도 곧 변경할 것이다. 여기서 그는 다음과 같은 계획을 생각해냈다. 즉 농민에게 토지를 빌려주기는 하지만, 그 지대를 농민의 공동재산으로 인정하고 그 돈을 세금 지불이나 마을의 공공사업에 쓰자는 것이었다. 단일세 제도는 아니었지만,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그 제도에 가장 가까웠다. 문제의 요점은 그가 토지 사유권 행사를 거절하는 데 있었다.
그가 집으로 돌아오자 관리인은 유별나게 싱글벙글 좋아하면서 그에게 식사를 권했다. 자기 아내가 귀에 술을 단 계집아이를 시켜서 만든 요리가 너무 삶아지거나 지나치게 구워지지나 않았을까 걱정이라도 되는 듯한 얼굴이었다.
식탁은 값싼 식탁보로 덮여 있었으며, 냅킨대신 수놓은 수건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식탁 위에는 손잡이가 떨어져나간 낡은 색슨식 사기 수프 접시에 감자 수프가 담겨 있었다. 그 속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꺼먼 두 발을 오므렸다. 폈다 하던 수탉이 토막토막 잘리고 또한 잘게 썰려서 군데군데 털이 남은 채로 들어 있었다. 수프 다음에는 그 똑같은 수탁의 고기를 털째 구운 것과, 버터와 설탕이 듬뿍 든 우유 과자가 나왔다. 하나도 맛있는 것이라곤 없었으나, 네흘류도프는 무엇을 먹는 줄도 모르고 먹었다. 그는 마을에서 돌아올 때의 그 우울한 심정을 단번에 해결해버린 자기 생각에 그토록 열중해 있었다.
관리인의 아내는 귀에 술을 단 계집아이가 겁에 질린 듯한 얼굴로 접시를 나를 때마다 목을 쑥 빼고 들여다보았으나, 남편인 관리인은 아내의 솜씨를 자랑이라도 하는 듯 히죽히죽 웃고만 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네흘류도프는 강제로 관리인을 옆에 앉힌 다음, 자기 생각을 확인하고 동시에 자기가 몰두하고 있는 일을 누구에겐가 말하고 싶은 심정에서, 농민에게 토지를 분배하려는 계획을 말하고 거기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관리인은 자기도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오늘 그런 말을 들으니 매우 기쁘다는 듯이 싱글벙글 웃었으나, 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네흘류도프의 생각이 애매했기 때문이 아니라, 남의 이익을 위해서 네흘류도프 자신의 이익을 거절하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이 관리인의 머릿속에는 모든 인간이 남의 이익을 희생시켜서라도 자기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는 진리가 뿌리 박혀 있었기 때문에, 수입 전부를 농민의 공동 기금으로 한다는 네흘류도프의 말을 들었을 때 자기 착각으로 잘못 들은 것이 아니가 하고 제 귀를 의심했다.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자금에서 이자를 받으시겠다는 말씀이죠?"하고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오. 토지는 어느 특정인의 사유물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알아야 하오."
"네, 옳은 말씀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모든 사람의 소유가 되는 거요."
"그렇게 되면 나리의 수입은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관리인은 웃음을 멈추고 이렇게 물었다.
"그렇소, 난 그걸 포기하는 거요."
관리인은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웃기 시작했다. 이제야 그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는 네흘류도프가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곧 잉크로 얼룩진 책상 앞에 앉아서 자기 계획을 종이에 쓰기 시작했다.
해는 이미 방금 싹트기 시작한 보리수나무 뒤로 저물었고, 모기는 떼를 지어 방안으로 몰려들어와 네흘류도프를 쏘기 시작했다. 그가 초안을 끝마치자 마을 쪽에서 가축들이 우는 소리며 문을 여닫는 소리, 집회에 모여드는 농부들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네흘류도프는 관리인에게 농부들을 사무실로 부를 필요 없이 자신이 직접 마을로 나가 그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네흘류도프는 관리인이 권하는 차를 황급히 들이마신 후에 곧 마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