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대지가 근원으로 돌아갈 채비를 서두르는 11월은 첼로의 저음처럼 아름다운 계절이다. 하루에 백 리씩 남하한다는 단풍 길을 따라 한반도의 끝자락 해남 땅, 아름다운 절 집 미황사를 찾아간다.
▲ 마을마다 곱게 물들어가는 동구 앞 느티나무
ⓒ2003 장권호
광주에서 나주와 영암을 거쳐 해남으로 이어지는 13번 국도가 최근 해남까지 4차선으로 말끔히 단장돼, 쾌적한 속도감을 즐기며 남도의 그림 같은 가을 들판을 만끽할 수 있다. 추수 끝난 빈 들판 여기저기서 볏짚 태우는 연기가 오르고,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가을빛으로 곱게 물들어 가는 느티나무의 자태가 너무도 고운 남도의 늦가을 풍광은 지금이 절정이다.
남도 땅을 가로지르는 호남정맥의 한 줄기가 서남쪽으로 훌쩍 뛰어 영암의 월출산을 거쳐 해남의 두륜산과 달마산으로 흐르다 땅끝 사자봉으로 치달아 바다로 빠져 들어간다. 남으로 3000리를 달려온 백두의 산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반도의 끝자락 해남 땅에 온 힘을 모아 명산 달마산을 토해놓으니 호사가들은 일찍이 호남의 금강이라 일컬어 왔다. 바로 그 한반도의 남쪽 끝자락 달마산 품속에 슬픈 전설처럼 곱게 늙어 가는 절집 미황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 달마산과 전경이 기막힌 미황사 절집 마당
ⓒ2003 장권호
20세기 말에 실현된 중창불사의 꿈
미황사는 749년 신라 경덕왕 8년에 창건된 이래 조선 전기까지 꾸준히 사세를 유지해 오다 정유재란 때 건물과 기록들이 모두 소실되어 버린다. 임란 이후 몇 차례 중창을 거쳐 대둔사와 함께 호남불교의 맥을 이어오던 미황사는 150여 년 전 주지 혼허(渾墟) 스님이 미황사 중창불사를 위해 대규모 군고단(軍鼓團)을 이끌고 완도와 청산도를 향하다 40여 스님들과 함께 조난을 당하면서 사세가 급속히 쇠락하게 된다.
이후 미황사는 거의 버려지다시피 황폐화되는데, 1989년 지운스님과 현공스님, 금강스님이 주인 없는 미황사에 찾아든다. 물거품으로 사라질뻔 했던 중창불사의 꿈이 150여 년이 지난 20세기 말에야 세 분 스님의 인연으로 비로소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 차 향기 은은한 세심당 금강스님 서재
ⓒ2003 장권호
세상을 향해 열린 절집
마을 주민들과 함께 스님이 지게를 지고 포크레인을 직접 운전해 가면서 흔적만 남아 있던 명부전, 만하당, 달마전, 세심당, 안심료 등의 전각들을 복원하고, '작은 음악회''한문학당''템플 스테이''노을맞이 해맞이 기원법회'등의 다양한 문화체험 행사와 열린 사찰 운영으로 그 이름이 알려지면서 미황사는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으로 태어나게 된다.
예불 시간만 빼곤 하루 종일 지게 지고 잡초 뽑는 금강 스님을 마을 사람들은 지게 스님이라고 부른다. 금강스님은 미황사 홈페이지를 전국 사찰 중에서 가장 알찬 정보로 채워 직접 관리하는 멋진 스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