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임자 인절미
민문자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 몸을 이루어 놓는다. 이제 까지 셀 수도 없는 여러 가지 음식의 종류와 그 양이 나의 몸을 형성해 놓은 것이다. 음식에는 주식과 간식이 있는데 누구나 맛 좋은 음식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나는 떡을 좋아한다. 그리고 인절미를 좋아한다. 인절미 중에 흑임자 인절미를 좋아한다.
어머니는 우리가 자랄 때 간식으로 인절미를 자주 해주시곤 했다. 술 고두밥을 찔 때 찹쌀을 위에 얹어 미리 준비해 두었던 콩고물에 묻혀서 쉽게 인절미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께서 여든다섯에 돌아가실 때까지 술을 좋아하셔서 어머니는 가양주를 늘 끊이지 않고 빚어드렸다.
또 조상님의 기일이나 우리들의 생일이면 공들여 색색의 고물을 입혀 인절미를 만들어 주셨다. 맏딸인 나는 찹쌀을 물에 씻어 불리고 고물을 장만할 때부터 고두밥 찔 때 불 지피는 일, 절구에 찌어 인절미를 고물에 묻히는 일등 어머니를 많이 도와드렸다. 콩을 볶아 가루 낸 노란 콩고물부터 동부를 기피 낸 하얀 인절미와 팥고물 그리고 흑임자 고물을 입힌 검정색 등 여러 색깔의 인절미를 만들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어머니는 검정깨가 값이 비싸서인지 희금재 인절미라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흑임자 인절미는 자주 못해주셨다.
그런데 어느 해 송년모임에서 그 귀한 흑임자 인절미를 한 상자 선물로 받았는데 그렇게 맛있게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떡집을 찾아가서 몇 상자 구입하여 어머니께도 가져다 드리고 존경하는 분들과 아주버님 팔순 상에도 올려드렸다.
오늘은 5월 셋째 일요일이다. 어제 택배로 주문한 따끈따끈한 흑임자 인절미 다섯 상자가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한 상자를 얼른 열었다. 아침식사 대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매달 셋째 일요일이면 팔순을 훌쩍 넘긴 형님 내외와 사촌 시누이와 우리 부부가 맛있는 점심을 같이하는 날이므로, 서둘러 시간에 맞추어 명동의 유명 중국 요릿집으로 나가야 했다.
아침부터 비가 계속 내렸다. 흑임자 인절미 세 상자를 잘 싸서 둘러메고 우산을 받쳐 들고 마을버스 타고 개봉역에서 1호선 양주행 전철로 갈아탔다. 서울역에서 4호선으로 다시 갈아타고 젊은이들만의 삶의 현장인 듯한 명동 거리를 지나쳐 한편에 자리한 약속 장소를 찾았다. 다섯 명이 둘러앉아 인사를 마치자마자 형님께 먼저 흑임자 인절미 한 상자를, 그리고 사촌 시누이한테도 한 상자를 건네 놓고 집에 가서 먹어보라고 하였다.
여러 가지 해물 잡탕밥으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끝내고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형님 내외는 동두천으로 시누이는 노량진으로 각각 전철 타는 것을 전송하고 우리 부부는 명동거리를 걸었다. 거리 상인들의 상품이 대부분 먹을거리 일색이다. 우중에도 리어카에 비닐장막을 치면서 커피, 과일, 주스, 여러 종류의 튀김 요리, 도넛, 계란빵 등, 손님맞이를 하는 모습들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는 잘 생긴 젊은이들의 치열한 열정이라 생각되어 가슴이 뭉클했다.
‘인생은 역시 우리 몸을 지탱해 주는 먹거리 전쟁이구나.’
우리 부부는 십여 년 전부터 존경하는 문인화가 선생님과 소설가 사모님이 입원해 계신다는 김포신도시의 요양병원을 찾아가기 위해서 2호선 을지로 입구역에서 승차하고 합정역에서 하차하여 버스정류장에서 김포신도시 구래역 환승센터 근방에 있는 요양병원을 찾아갔다.
처음 찾아든 김포 신도시는 서울보다 더 서울 같은 신도시로 태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개통되지 않은 전철역마다 점검 중이라는데 주변 거리에는 많은 인파가 출렁였다. 사십 분 만에 도착한 구래역 버스 환승센터에서 물어물어 요양병원에 도착하고 보니 생각보다 입원해 계시는 두 분 선생님은 양호한 편이었다. 사위가 병원장이고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씩 들려준다고 사위 자랑을 하시니 안심이 되었다. 두 분께 나머지 흑임자 인절미 한 상자를 내놓으니 맛있게 드셔서 기분이 참 좋았다. 저녁식사를 함께하자고 식당에 예약을 하신 것을 취소시키고 약간의 위로금을 드리고 귀가하려고 버스정류장을 찾아 나왔다. 그런데 그 두 분이 지름길로 먼저 나와 계시는 것이 아닌가. 입원해 계시는 팔순의 노쇠한 환자가 약 700미터나 되는 거리를 달려 나오게 한 힘은 어디에 있던가. 말로 표현을 안 해도 소통이 잘 이루어진 관계라는 기쁨을 표현하신 것 같다. 좋은 인연이라는 것은 서로 간 머리로 마음으로 잘 통 할 때 이루어진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부모 형제는 물론 스승과 친구와 배우자 그리고 자식이 있으며 그냥 스치는 인연도 있다. 그중에 인격적으로 존경스러운 분이나 잊지 못할 정도로 내게 잘해 준 너무도 고마운 사람과는 오래도록 좋은 인연으로 남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김포에서 송내역 가는 버스를 타고 송내역에서 용산행 급행전철을 타고 개봉역에서 내려 다시 마을버스로 집에 도착하니 2시간이나 걸렸다. 우리 부부가 집에서 11시에 나가 7시까지 8시간이나 지나서 귀가했으니 만성신부전증 환자인 남편에게는 상당히 무리한 하루였다. 그래도 그의 핏줄을 만나고 우리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존경하는 두 분을 한 번이라도 함께 찾아뵐 수 있던 것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귀가 도중에 형님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었다.
‘떡이 아주 맛있네, 고마워!’
시누이도 전화를 걸어왔다.
“언니, 인절미 아주 맛있네, 저녁으로 먹어도 좋겠어요.”
오늘은 흑임자 인절미가 소통 역할을 잘 한 날인 것 같다. <한국수필 2019년 7월호>
첫댓글 민문자 선생님의 따스한 성품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이 좋은 세상,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이 안타깝습니다.
흑임자 인절미가 여러 분을 즐겁게 해 드렸군요.
여러분들이 좋아해서 자주 이용합니다.
시우여러분이
종강파티에서 맛나게 들던 그 흑임자 인절미로군요
입속에 고소하고 진득함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전통음식 중의 하나이며 저에게는
오래도록 2019년 덕성시원의 추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