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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러므로 - 이는 본장에서부터 전장들의 내용에 대한 결론이 시작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근거한 권면으로 이끌기 위해 자연스럽게 꺼내어진 이 단어는 이스라엘의 유기와 장래의 구원에 관한 기록인 9-11장을 받는 것이 확실하지만, 넓게는 자비하신 하나님에 관계된 진술 전체 즉 1-11장에 이르는 교리적 내용을 이어받는다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한편 '그러므로'를 사용해서 설명과 권면을 이끌어내는 표현은 바울 서신에 자주 나타난다 형제들아 - 이는 수신자들에 대한 사랑의 감정 어린 표현이다. 이 단어를 수신자에게 적용시킬 때마다 사도는 깊이 감동되어 있음을 주목하라.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 이는 바울의 권고의 근거가 되는 문구이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얼마나 덧입고 사는 가를 깨닫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행할 수 없다.
'모든 자비하심'에 해당되는 헬라어 '오이크티르몬'은 '자비' 혹은 '불쌍히 여김'으로 번역되는 단어로서 복수형태이다. 이는 '큰 자비'나 '동정'의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라하밈'이라는 복수 형태를 따른 것이다. 이는 복수를 취하여 강조하는 '강의의 복수'이다. 따라서 '모든 자비하심'으로 번역되었다.
권하노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칼로'는 쓰임이 다양하나 여기에서는 명령과 간청의 양면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호소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단어를 '간절히 원하다', '청하다' 또는 '애원하다'로 번역한 것은 사도 바울이 사도적 권위로 권했다는 것을 배제한 일방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단어는 본절의 성격을 지시하면서 나머지 다섯 장의 성격도 권면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너희 몸을 - 이 문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6:11-13의 문맥에 비추어서 단어 자체가 가진 단순한 의미만을 뜻하지 않는다. 혹자는 '몸'에 대해 말하길,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육신을 가진 인간의 존재라 했고, 또한 혹자는 삶의 구체적인 실재속에 있는 개인적 제사의 체현이라 하였다.
또한 2절의 '마음' 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몸은 몸과 마음, 즉 온 인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봄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너희 몸'은 '너희 자신'을 뜻하며, 우리의 인격 전체를 형성하는 모든 요소를 포함한다. 세상과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구체적인 삶으로 표현되는 삶의 양태까지 포함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란 하나님께 전 인격적으로 우리의 몸을, 생애 전체를 드리는 것이다. 즉 우리의 생애를 통해 계속적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에 힘쓰는 것이다. 그리고 '거룩한'이란 말은 흠이 없이 순전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제사란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아 그가 주신 새 생명으로 그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산 제사'의 '산'에 해당하는 헬라어 '조산'은 현재 분사로 '지금 살아있는'이란 뜻을 포함한다. 이 말은 구약적인 제사, 즉 짐승을 죽여 피를 흘림으로써 드리는 제사와 대조된다. 또한 당시에 이교 사회에서 성행했던, 몸을 부정(不淨)한 일에 악용했던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즉 '산 제사'는 구약 시대의 동물 제사처럼 다른 존재로써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살아있는 자기 자신을 드리라는 것이며 또한 지역이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제사로서 살아 움직이며 생활하는 자체로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다.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것이다(약 2:22).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 이 부분은 앞에 나온 권면을 설명하고 확증하는 의미에서 쓰여졌다.
'영적 예배'의 '영적'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형용사 '로기켄'인데 '로기코스'에서 유래되어 '합당한', '합리적인'의 뜻을 가졌다. '영적'인 것을 확실히 표현하는 헬라어 '프뉴마티켄'을 사용하지 않고 '로기켄'을 사용한 것은 이방인들의 미신적인 행동들을 염두에 두었거나(Calvin), 하나님이 요청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 즉 하나님께 가장 합당한 예배를 강하게 표현하려는 의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혹자는 이를 '합당한'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따라서 이를 이스라엘 성전 예배의 외형적 의식과 대조하여 '영적' 예배라고 번역하는 것도 좋은 번역이다. '예배'에 해당하는 헬라어 '라트레이아'는 구약의 제사를 지칭하기도 했는데, 본절에서는 단순히 제사 행위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삶으로서의 예배를 의미한다. 즉, 삶의 모든 가치와 의미를 주께 두고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므로 이를 '섬김'으로 번역한 번역본도 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 - '세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온'은 '세계', '세상'을 의미하는 '코스모스'와 비슷한 의미를 가졌는데, 일반적으로 '코스모스'가 공간적이고 현상적인 세상을 의미하는데 반해 '아이온'은 시간적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의미한다. '이 세대'란 용어는 바울이 여러 차례에 걸쳐 사용했다. 유대교 종말론에서는 시간을 '현 세대'와 '올 세대로 구분하는데 바울도 이와 같이 종말을 기점으로 크게 둘로 나누어 사용하였고
바울이 사용한 '이 세대'라는 말 속에는 대부분 이러한 유대교적 종말론의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 세대'가 시대 구분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신' 혹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다스리는 '악한 세대'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세대는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적대 세력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이 세대'의 삶의 방식과 가치 기준 등 시대 정신도 포괄한다. 본받지 말고 - '
본받다'의 헬라어 '쉬스케마티조'는 '스케마''품행', '행동', '외형', '모양'에서 파생된 것으로 고전 7:31에 나오는 '이 세상의 형적'의 형적(形跡)에 해당하는 말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표면적이고 흘러가는 이 세상 풍습을 받아들이거나 순응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이는 우리의 생각과 이해가 새롭게 계속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 아나카이노세이 투 노오스'는 '마음의 새로움으로써'라고 번역할 수 있다(표준 신약 전서) 여기서 '마음'이란 도덕적 활동과 관련된 이해력이나 사고력 등을 말한다.변화를 받아'의 헬라어 '메타모르푸스데'는 현재 수동태 명령형이다. 곧 이 말은 자신이 아닌 타자(他者)에 의해서 변화하며 일시적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꼭 그렇게 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즉 우리의 인격 내부에 변화를 일으키는 세력인 성령에 의해 마음이 새롭게 계속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 선하시고 - 헬라어 '아가도스'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특별하게 주신 말씀을 기준으로 규정되는 '선'이라기 보다는 모든 사람이 일반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의 '선'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선'의 개념을 교회 안에서, 사회 속에서 그리고 국가에 대한 관계 속에서) 사용하였다. 다만 본절에서 바울은 '선'의 기준을 하나님께 두고 있다. 기뻐하시고 -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이 이뤄지거나, 그의 뜻과 일치될 때 기뻐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기쁨을 위해 뜻을 가지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뜻에 합당하게 생을 영위하거나, 피조 세계가 원래 목적대로 진행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온전하신 - 인간의 뜻은 타락한 욕심이 작용하기에 그 어떤 뜻도 온전할 수 없다. 하지만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뛰어난 특성은 그 자체가 온전한 것이다. 신앙과 행위의 충분한 규범으로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것이다.
이는 그 뜻을 가지신 하나님 자신이 온전한 분이기 때문이다(마 5:48). 분별하도록 하라 - '분별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 '도키마조'는 '입증하다', '시험하다', '인정하다'라는 뜻을 가졌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다는 말은 판단하거나 시험한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신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알아야 하며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야한다.
[롬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헬라어 본문에는 나오는 접속사 '가르' '왜냐하면'는 본절이 앞절과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 '주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데이세스'는 수동태 과거 분사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이미 받았음을 의미한다. '은혜'는 바울의 사도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더 나아가서 사도 직분 외에 그가 받은 모든 은혜와 은사를 포함한다고도 한다.
사도직을 은혜와 관련시키는 이유는 자신의 만용이 아닌 소명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내게 주신 은혜'라는 말은 바울이 자주 사용하곤 했는데 위임받은 은혜의 역동성을 표현한다. 너희 중 각 사람에게 - 이를 나타내는 헬라어 표현은 '판티 토 온티 엔 휘민'인데 이는 '너희 모든'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헬라어 표현 '파신 휘민'에 비해 훨씬 강조된 표현이다. 이는 로마에 있는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주의를 집중시키려는 것이다.
또한 이는 로마교인들뿐 아니라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나 직분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말하노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고'는 1절에 나오는 '내가 권하노니'라는 표현보다 더욱 권위적이다. 이는 명령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로써 권위를 상기시켜 경고하는 말투이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 본절 중 이부분 이하에서 사용된 헬라어 기본 동사는 '프로네오'인데 문장 중에서 '휘페르프로네인'-'프로네인'-'프로네인'-'소프로네인'의 구조로 사용되었다. 이는 헬라 문학에서 종종 나타나는 문학적 기교이다. '생각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네인'은 '의견을 가지고 생각하다'의 뜻으로 어떤 사실에 대한 평가나 견해를 말할 때 쓰인다.
신약성경에서는 거의 바울 서신에만 나타나며. 특히 '높은 마음을 품다'의 헬라어 '휴셀라 프로네인'이 쓰인 문장에서 나온다. '마땅히 생각할 바를 생각한다'함은 '자기 자신의 처지나 조건에 맞는 생각을 한다'는 말이다. '그 이상'이라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파라'는 필요한 것 '이상'을 나타내며 '휘페르프로네인'과 같이 쓰여 '휘페르' 위에'를 강조한다
신약성경에서 본절에만 나오는 '휘페르프로네오'는 '분에 넘치는 생각을 하다', '부풀은 생각을 하다',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하다'라는 뜻을 가졌다. 칼빈은 '휘페르프로네오'를 '지혜의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 휘페르프로네인 파라'는 그 뜻을 밝혀 번역하자면 '그 이상의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품지 말고 생각의 한계를 가지라'는 것이 된다.
여기서 분에 넘치는 생각이란 다음에 나오는 구절이 설명하는 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을 뛰어넘는 생각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자신의 능력과 소명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스스로 짊어지는 것을 금하고 있다.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 '오직'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라'는 '...을 하지 말고, 오직...을 하라'는 표현에 나오는 강조어로서 '그 이상의 생각을 품는 것'과 '지혜롭게 생각함'을 대조한 것이다.
본 구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카스토 호스 호 데오스 에메리센'은 '각 사람에게'를 나타내는 '헤카스토'가 앞에 나와서 도치된 강조 형태이다. 그리고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것은 모든 산자들에게 빠짐없이 주신 것을 말하며 각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다는 뜻이다. 믿음의 분량 - 이 표현은 믿음이 물질처럼 측정되는 양적인 것이라기보다 교회안에는 다양한 기능들이 있어 각자 주어진 직분과 은사의 한계와 특성에 따라 다르다는 뜻이다.
그리고 '믿음'이란 그 안에서 훈련되어진다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런 믿음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것으로 객관적이라기보다 주관적이다. 혹자는 본문에 나온 '믿음'을 일반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 즉 '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머레이나 해리슨등이 주장한 바 본문의 '믿음'은 구원의 수단인 진리를 믿는다는 말이 아닌, '자신이 받은 영적 은사의 성격을 알고 은사를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브루스는 이를 '영적 능력'이라고 했다. 지혜롭게 생각하라 - '지혜롭게'의 헬라어 '소프로네인'은 '건전하며 겸손하게'의 뜻이다.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분에 넘치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건전하고 겸손한 생각을 가지라'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와 관계되어 사용된 말로서 지혜롭게 생각할 그 기준으로서 '믿음의 분량'을 제시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분량대로 은사를 주었다는 것은 각자의 직분과 역할이 다르다는 뜻이며 동시에 자신이 받지 아니한 직분의 영역은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제한을 의식하고 그가 교회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에 관한 그의 열망을 규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