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빈약한 안주에 소주를 들이킨 탓인지 거칠어진 속을 달래줄 해장국 생각이 간절합니다. 관광객들이 몰릴만한 소문난 식당들을 제하고 나니 선뜻 떠오르는 해장국집이 없습니다. 마산이라면 남성식당의 복국 한 그릇이면 심폐소생이 될 텐데 당장 달려가기엔 너무 멉니다. 서면에 숙소를 정하며 염두에 두었던 원조 2대 돌고래할매복국집은 쉬는 날(일요일)인지 통 전화연결이 안 됩니다.
좌:남성식당(마산)의 참복국 / 우:할매국밥(부산)의 돼지국밥
궁리 끝에 서면에서 그리 멀리 않은 범일동 할매국밥을 떠올렸습니다. 돼지국밥이란 메뉴가 입이 짧은 마눌님을 만족시키리라는 확신은 안 섰지만 외식업 종사자로서 부산 할매국밥의 돼지국밥 정도는 먹어줘야 식견을 넓힐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을 감고 국물을 맛보면 절대 돼지육수란 걸 눈치 채지 못 할 정도로 시원한 맛이 일품입니다.
젠장! 휴가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픈 마눌님을 재촉해서 찾아간 할매국밥은 공교롭게도 여름휴가 중입니다. 2년 전 부산에 왔을 때도 벼르던 세정, 만수스시, 진해 원해루 등이 여름휴가 중이라 문전에서 발길을 되돌렸었는데 데자뷰인 것 같아 소름이 돋습니다. 어젯밤 숙소를 잡느라 고생을 한 것도 속상한데, 아침마저 이 모양이니 슬슬 부산이 미워집니다.
섬진강의 재첩국정식/광복로, 부산
차를 돌려 광복로에 있는 재첩국 전문점인 섬진강으로 왔습니다. 2년 전, 부산에 왔을 때 식구들은 늦잠을 자도록 재워두고 갑판장 혼자만 빠져나와 아침끼니를 해결했던 곳입니다. 재첩국, 고등어조림, 쌈야채 등이 두루 나오는 재첩국정식이 나름 먹을 만합니다.
나담/광복로, 부산
해장도 시급했지만 바로 옆집인 로스터리 카페 나담의 마담이 에프프레소마냥 진하게 내려주는 드립커피를 마눌님에게도 맛보이는 것도 중해서 광복로 까지 부러 온 것인데 이런 젠장! 섬진강은 열렸건만 바로 이웃인 나담의 문은 굳게 닫혔습니다. 역시나 휴가 중인가 봅니다. 하필 지금!
목적지를 잃은 여행자는 공황에 빠졌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여긴 어딘지? 난 누구인지? 옆 자리의 아지매는 왜 저리도 야단인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복잡한 구도심을 벗어나 영도로 향했습니다. 영도 어디쯤에는 아늑한 카페가 있어 우리를 품어주길 바랬습니다. 검색신공을 발휘해 그럴싸해 보이는 카페 몇 곳을 찾아내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또 번번이 불통입니다. ㅠ.,ㅠ
국립해양박물관/부산
피서철 극성수기의 부산은 무지 덥습니다. 한낮의 불볕더위는 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국립해양박물관입니다. 20년차 부부가 부산으로 여행 와서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습니다. 배우고 익히는 것은 언제나 옳으니까요. 그런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요? 주르륵~
여태 모닝커피는 커녕 에프터눈티도 못 마셨습니다. 해는 중천에서 서쪽으로 꺾였는데 말입니다. 분기탱천한 마눌님의 홧병을 달래줄 응급처방이 시급합니다. 한여름 땡볕에 태종대관람이나 유람선관광 따위는 더 큰 화를 부를 게 뻔합니다. 침착해야 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을 겁니다. 꼭 그래야 합니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지 않습니까.
흰여울마을/영도, 부산
엄지손가락의 지문이 닳아 없어질 때쯤 영도 흰여울마을이란 처방을 찾아냈습니다. 영화 변호사와 범죄와의 전쟁 등에서 배경으로 나왔었고, 광희가 빅재미를 안겨줬던 무한도전 부산 추격전에도 배경으로 나왔던 곳입니다. 흰여울마을은 영도 봉래산 남서쪽 절영로를 따라 가다보면 바다와 맞닿은 가파란 비탈에 빼곡이 들어선 달동네입니다. 마을 아래 해안가에는 산책로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카페 고미/흰여울마을, 부산
타는 듯한 무더위와 갈증을 해소코자 마을탕방에 앞서 카페부터 찾아 들어갔습니다. 원주민(?) 아지매가 운영하는 카페 고미는 절영로에 접해 있습니다. 커피 맛이 기똥차지는 않습니다만 휴식이 필요한 여행자에게 순순히 그루터기를 내주는 나무 같은 카페입니다. 원주민 아지매로 부터 듣는 마을의 세세한 이야기는 덤입니다.
흰여울마을/영도, 부산
삐까번쩍한 빌딩숲보다 (번잡해지기 전)서촌의 소박한 골목을 거닐 때 더 눈을 반짝이는 마눌님입니다. 서촌에서도 그러더니 흰여울마을에서도 집욕심을 냅니다. 진작에 사놨으면 모를까 이미 부동산 시세가 들썩였는데 말입니다. 하기사 이런 마을에 점빵 딸린 집 한 채 구해서 장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사는 것도 별나겠습니다. 친구들이 부산으로 놀러오면 한 번씩 들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남항시장 빙장횟집에 데려가서 술 받아주고, 다음 날 아침에 시락국이나 돼지국밥으로 속 풀어줄랍니다.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가고 싶다.
첫댓글 서면인줄 알았다면 부전동 교통부 돼지국밥을 가보셨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 저도 아직 못가본 할매국밥 아들네 집,,,
다음에 또 가면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