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를 맞으며
경주에서 포항으로 퇴근하는 밤.
국도 위의 트레일러 꽁무니에 피어나는 물안개는
전조등 불빛을 조명 삼아
관객 없는 무대를 펼쳐 보인다.
나른한 생의 일탈을 꿈꾸면서도
한번도 제대로 행동하지 못한 양심의 그늘
가슴 깊은 곳, 캄캄한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裸身의 舞姬는
꿈꾸는 자의 가슴을 베는
황홀한 劍舞를 추며
이젠 벗어날 수 없는 내 삶의
영혼마저 앞서 이끌어가고 있다.
쏟아지는 빗줄기
곳곳에 함정처럼 고여있는 물구덩이 속에는
나일 악어의 거대한 이빨이
安逸에 길들여진 내 발을 물고
깊은 물 속으로 잡아당긴다.
휘청거리는 몸
놀란 정신이 비명을 지르고
핸들을 거머쥔 팔뚝이 부풀어오른다.
이미 닳아 버린 윈도우 브러쉬는
낡은 심장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작은 빗방울도 쓸어내기엔 힘이 벅찬가
갑자기 시야가 좁아지며
희미하던 중앙선 마저 보이지 않고
가쁜 숨이 차 오른다.
머릿속 비상등이 깜박이며
속도를 줄인다.
점점 깊어지는 위험 수위 속에
라디오 소리,
빗방울소리,
파도치는 소리,
귓전을 흔드는 온갖 소리의 천지 속에
빗줄기를 뚫고 들어온
맞은편 차량의 전조등 불빛이
"Red Sun"으로 상징되는 기억의 저편으로
내 의식의 시계 바늘을 돌려놓고
무의식 속의 의식을
들여다본다.
2. 터미네이터
아침에 일어나서 무얼 했더라.
자명종 시계가 여섯 시를 알릴 때 기상,
흐린 하늘이지만 비는 오지 않으므로
애완견을 데리고 뒷산 등산에 나섰다.
등산과 샤워를 끝내고 약 삼십분 정도 운전하여
출근과 동시에 컴퓨터를 켜고,
팜 이천(약국관리 프로그램)을 열어놓고
커피 마시며 신문을 펼쳐 든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상
사실 반복되는 이 하루하루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완전 의약분업 이후
휴일 없이 근무하는 의원 옆으로 옮긴이래
터미네이터처럼 근무해온 나날들로
내 몸이 점점 자동화 기계로 변신 하고있다는 믿음이
현실로 진행되어가고 있다.
획기적인 진보 없는 정치, 경제로
볼 것 없는 신문을 뒤적이다가
접수된 처방전을 바라보며 조제, 투약을 하고
열시 반 전 후에 담배 한 대를 피운다.
그 날 아침 마신 커피의 농담에 따라
담배 피는 시간까지 달라지는걸 느낀다.
3. 본인부담금
하필이면 바쁜 근무시간대에
"왜 올 때마다 본인 부담금이 달라지냐?"고
"지난 한 달간 감기 때문에 몇 번이나 처방전을 받아 약을 지어갔는데
왜 올 때마다 약값이 다르냐"고
막무가내로 거칠게 나오는 사람이 있다.
"다 같은 삼일 분 감기약 이라도 처방 약품에 따라
본인부담금이 달라진다"고 말씀 드려도
"내가 보기엔 다 같은 약인데
약사 마음대로 돈을 받는다"고 고함을 치며 시비다.
조제를 기다리는 다른 손님보기가 민망하다.
지난 한 달간 내방한 처방전을 복사해 주며
어느 약국이든 마음에 드는 약국에 가서
계산해 보라고 내 민다.
그러다가 결국
나도 맞받아 치고 만다.
돌아서서 후회할 일을
또 다시 반복하고만 것이다.
4. 표준소매가격
여태 까지 이십오년 정도 약국을 경영하면서
싸움이라면 표준 소매가격 제도로 싸운 일이 많았다.
오래 전 이년간의 약사회 총무 일을 할 때
동료이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외계인처럼 낯설기만 한 몇 몇 사람들 때문에
떨어진 꽃잎 같은 우리 위상이 부끄러워
끈질기게 싸워도 보았다.
내 딴엔 제도와 맞선
불의와 싸운다고 버티다가
진이 다 빠진 뒤에야
임기를 마칠 수 있었고
그들만의 생존의 법칙을 뜯어고치진 못했지만
할만큼은 했다.
짐을 벗어날 수 있다는 마음에
씁쓸한 퇴장이라도 홀가분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지독한 이기주의로 굳게 닫힌
양심의 문 앞에
패기로 덤벼들었던 내 젊은 날들
지금은 아깝기만 한 그 날들도 지나간지 오래
그 동안 세기도 바뀌고 대통령도 바뀌고
세상이 바뀌어 가는데
또 다시 본인 부담금을 깎아 준다는
세기말적인 동종의 사례가 있다는 뉴스가 있으니
그렇지 않아도 스물스물 피어나던
종례의 위기감 때문인가
끝까지 참지 못하고 맞받아 친
내 자신이 화가 나서 또 피운다.
하지만 남들은 다 끊어버린
담배를 피우며 생각하다보니
내가 싸움꾼인가?
두렵다.
5. 취미생활
완전 의약분업이 시작되기 전 까지
그런 싸움의 와중에 쌓여 가는 스트레스는
산악회 회원들과 같이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산 위에 올라가 날려버렸지만
분업 이후 거의 쉼 없는 나날이 계속되니
일박이일 등산은 꿈도 꾸지 못하고
새벽이나 일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뒷산을 오르내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던 중 지난 삼월의 마지막 일요일
인근 의원이 모처럼 하루 쉰다고 할 때,
때마침 산악회의 일박이일 산행 연락을 받고
모처럼 따라 나서기로 했다.
토요일 저녁 근무를 마치고 암벽 장비를 챙겨 넣으면서도
즐거운 마음이 앞서서
등반 후에 닥칠 고통은 생각지도 못했다.
경험해본 분들은 알겠지만
지속적인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이 암벽등반을 하면
전신의 근육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를---
그러나 경남 가지산 옆에 예쁘게 자리잡은
백운산 코끼리 바위로 출발하는 마음은
내내 즐겁기만 했다.
6. 라스베가스
가지산 석남사 입구를 지날 때
난 보았네
수려하던 계곡이
사막처럼 변해버린 것을
휘황한 네온사인 불빛 아래
불꽃처럼 박제된 나무
망부석 된 바위 아래로
슬픈 노래는 어둡게 깔리는데
모처럼 길떠난 나그네는
이미 파괴되어 흘러간
옛 길을 생각하면서
그대 그리운 마음을 숨길 수 없구나.
"코드" 맞는 나방들이
시공간의 제약도 없이
그들만의 라스베가스로 찾아가듯이
깊은 어둠에 잠긴 산
휘파람 소리 닮은
호랑지빠귀 새의 슬픈 울음소리와
그리운 친구 그리운 날들을 찾아
떠나는 산 길
맑은 별 아래
작은 가스랜턴 불빛 하나로도
서로의 마음이 훈훈하게 데워지는
산 깊은 야영장
그곳이 바로 나의 라스베가스가 아닐까?
7. 야영장
파괴된 땅의 어두운 그림자를 밟고
우울한 현실을 외면한 채
백운산 코끼리 바위로 줄달음 친다.
구절 양장같이 굽이친 산길을 허위허위 올라
'석남터널'을 지나고
늦은 밤 백운산 코끼리 바위아래
후배들과 함께 텐트를 친다.
모처럼 산을 찾아온 내게
어느 외진 계곡을 맴돌던 바람이
뒤늦은 인사로 텐트를 흔들며 반겨주는데
모처럼의 해후로 반갑긴 하지만
아직은 너를 반겨 느긋하게 쉬기엔
산중의 밤이 차구나
늦은 밤에도 등반을 위해 찾아오는 팀들로
갑자기 소란스러워 지는 야영장
대학 산악부 새내기들이
선배 여학생의 구령 한마디에
특공대원처럼 대답하며 움직이는
규율 잡힌 행동이
웃음 짓게 하는 산중의 활기
이게 얼마만의 즐거움인지----.
8. 회고
몇 년 전까지, 겨울 휴가 때는
해마다 설악산이나 덕유산, 지리산 등지에서
동계훈련을 했다.
설악산을 향해 차를 몰고 올라갈 때
빙판 길 위에서의 접촉사고로
차량이 파손 되어가며 오르내린 기억,
저항령 입구 야영장에서 마등령, 공룡능선을 넘어
밤늦게 도착한 희운각에서 눈밭 위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던 추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 산장에서 숙박을 한다는데
그 당시는 원정훈련 목적에 맞게 야영을 선호했고
계획대로 훈련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는
산행중의 고통보다 큰 기쁨을 맛보았다.
봄부터 가을 사이에 갖는 야영은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야영지에서 비박(노숙)을 할 때
숱한 산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 속에
어렴풋이 새벽잠이 깼을 때
천상의 화원에 누워있는 듯
황홀했던 경험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같이 캠프에 들어와 야영을 하던 신부님이
"이른 새벽에 잠을 깨어 숲 속을 거닐 때
나무들이 수액을 빨아올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생명의 소리
숱한 야영에서도 "나무 속을 타고 올라가는 수액의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어 들어볼 수도 없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듣게 되겠지.
9. 등반 전야
내 생의 짧은 삶 속에서
한 때 사랑했던 산과 사람들이
완전 분업 속으로 함몰되어 버렸다.
다시 찾기 힘든 그리움 속에
머나먼 아프리카 대륙의 북서부 해안
카나리아제도로 떠나신 정성해 신부님을 생각하면서
밤하늘 가득 펼쳐진
검은 별에 잠긴 소주를 마신다.
힘든 일을 회피하는 젊은이들의 사고방식 때문에
신입회원들을 받기가 힘들다고
산악회의 앞날을 염려하다가
옆 텐트에서 들려오는 청아한 단소 소리에
아늑한 고향집 뒷마당,
평상 위에 누워
맑은 별을 바라보며 노래하던 어린 시절로
잊혀진 추억은 되돌아간다.
그러나
모처럼 산중에서 맞는 즐거운 하룻밤 속에서도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처럼
줄기차게 한 길로만 달려온 인생은
습관처럼 출근걱정을 한다.
내일은 분명 쉬는 날인데도---
다음날의 기대와 걱정 그리고
후배들만의 자리를 생각하며
오랜만의 해후도 접어 넣고
먼저 텐트 속으로 들어간다.
한 겨울 눈밭 위에서도
소주 몇 잔과 더불어 침낭 속으로 들어가면
쉬 잠들었는데
모처럼 야영이라서 그런가
늦은 밤에도 잠이 오지 않는다.
10. 암벽등반
다음 날 아침 일찍 등반에 나섰다.
"코끼리바위 左壁이 야영장에서 바라볼 때 느낌보다는 누웠네"
"아이고 형님요, 누워 보이지요,
그기 아입니데이. 이따가 한 번 붙어 보이소"
평소와 다름없이 바위를 안았다.
그러나 막상 바위를 안고 오르기 시작하니
바위가 점점 일어서질 않는가
한 발 디디고 올라서면 한 발 미끄러지고,
다시 일어서면 또 다시 미끄러지고,
그러다 순간적인 추락으로 자일에 매달리기까지----.
추락하는 순간 자일파트너에게 부르짖는
"앙카!" 소리의 살 떨림 속에서도
그래 이 맛이야!
풀어진 나사가 조여들 때의 긴박감
무한 공간 속을 舟遊하며
먹이를 찾아 자유 낙하하는 수리매의 자유
내 몸 한 구석에 오랫동안 숨어있던 野性이
굳게 다문 이빨사이를 뚫고
환희의 찬가로 흘러나왔다.
그러나 가빠지는 호흡,
손가락에 스며 나오는 땀으로
반복되는 추락은 죽을 맛이었으나
할 수 있다.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소리쳐가며
오토바이처럼 떨려오는 발가락과 종아리에
전신의 힘을 모아 올라가야만 했다.
특히 다른 산악회 친구들과 합동 등반을 하는 마당에
비록 현역을 떠난 지 몇 해 되었지만
제일 고참인 내가 쉬 포기하고 내려올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길이었는지 몰라도
지금의 내겐 힘들고 어렵지만
못 오를 것도 없는 길이었다.
그러나 콩알만한 크기의 디딤돌 위에서
떨려오는 무릎을 진정시키기 위해선
추락을 겁내지 않는 과감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며 결국 해내었다.
그 바윗길의 꼭지점에 안전하게 확보한 다음
"안착"이라고 소리쳤다.
잠시 휴식하는 시간
담배를 한 대 물고 바라본
계곡 건너편 산줄기 위로
내 마음 같은 솜털 구름이 둥실 떠 있다.
11. 등반후기
그날 각기 다른 어려운 길 두 곳과
약간 쉬운 길 두 곳을 번갈아 오르내리며
언제 다친지도 모른 채
손가락 하나에 훈장처럼 엉켜 붙은 핏자국과 함께
돌아왔지만
다음날부터 포진으로 부풀어 오른 입술과
전신의 근육통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마음은 행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분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휴일과는 거의 관계없이 근무했으므로
집안이나 이웃의 경조사에도 거의 참석하지 못한 채
축의금이나 부조금만으로 인사를 대신한 게 미안할 뿐이다.
하긴 병, 의원 옆에서 홀로 약국을 경영하시는
다른 약사님도 사정은 비슷하리라.
완전 의약분업이 시작된 후
지난 하루하루가
마치 내가 전신으로 몸부림치며 올라가던
험한 바윗길 마냥 힘들었으나
긴 하산 후의 큰 기쁨처럼
아픔 속에서도 보람이 없지 않았다.
12. 에필로그(퇴근길 2)
1972년 대학 이 학년부터
졸업 때까지 거의 삼 년간
실험실에서 숙식하며 지낸 시절
수업을 마치고 모두들 돌아가고 나면
홀로 사는 거대한 내 집(약대) 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