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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2월 22일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서울 용산 청사가 불을 밝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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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다. 최근 몇 달 사이 대한민국은 퇴행을 거듭한 끝에 '야만 사회'로 전락해버린 인상이다. 무려 159명이나 되는 생때 같은 청춘들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스러졌는데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고, 통곡하는 유가족을 버젓이 조롱하는 데도 그대로 방치한다. 그런가 하면 별의별 핑계로 시작부터 만신창이였던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헌법상 권리인 노동조합 활동을 북한의 도발에 비유하고, 장애인도 동등한 시민이라는 절박한 외침을 보듬긴커녕 공권력을 동원해 짓밟았다. 무인기의 영공 침범 등 북한의 무모한 도발에 연일 '압도적 대응'이라 큰소리를 치면서 지금껏 쌓아 올린 평화의 공든 탑을 일거에 허무려고 한다. 이젠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여겨지던 '9.19군사합의'마저 효력정지를 운운하고 있다.
급기야 정부의 '칼'은 미래세대를 향해서 날을 세우고 있다. 역사교육의 준거인 교육과정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대놓고 지워버렸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어떻게든 끊어내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지금껏 교육과정이 개정되면서, 민주화운동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산업화와 더불어 어엿한 현대사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의 힘으로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을 축출하고, 서슬퍼런 유신 독재정권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유신 잔당 신군부의 만행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경외의 대상일 뿐, 한낱 정치인들의 흥정거리일 수 없다.
그렇게 '4대 민주화운동'이라는 범주가 교과서에 수록됐고, 아이들의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대한민국 민주화운동 역사의 효시라는 4.19 혁명과 유신 독재정권의 붕괴를 가져온 부마 민주항쟁, 이른바 '절대 공동체'의 원형을 보여준 5.18과 지금의 헌정 질서를 세운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그것이다. 어느 것 하나 몽니 부리거나 시비 걸 수 없는 가슴 벅찬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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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개정 사회과 교육과정. 직전 교육과정의 “4?19 혁명”과 “6월 민주 항쟁” 사이에 존재하던 “5?18 민주화 운동”이란 용어를 솎아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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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벅찬 역사이건만
그중에도 5.18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5.18에 빚졌다'고 평가할 만큼 민주화운동의 역사에서 변곡점이 됐다. 갑작스러운 유신 정권의 몰락은 집권 세력의 공백을 가져왔고, 이를 기회로 여긴 전두환의 신군부는 12.12쿠데타를 감행해 권력을 찬탈하게 된다. 이듬해 봄, 신군부의 폭력에 대학생들이 주춤한 사이 장삼이사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들고 일어선 사건이다.
5.18 당시 신군부의 만행은 평범한 시민을 민주 투사로 변모시켰다. 무고한 이웃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앞에 분노했고, 수만 명이 광장에 모여 슬픔을 나눴고 연대를 다짐했다. 중고생은 물론, 초등학생에게까지 총부리를 겨눈 그들에 맞서 10대의 앳된 아이들까지 마지막 항쟁지인 전남도청에 의연히 걸어 들어가 기꺼이 죽음을 맞이했다.
이웃의 고통에 대한 연민과 불의에 맞선 저항이 곧 민주주의와 인권의 고갱이(핵심)라는 점을 시민들은 스스로 체득했고, 희생자와 가해자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5.18 사적지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금언을 새겨놓은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 5.18 추념식 뒤 방명록에 적었듯, '민주와 인권의 오월 정신을 반듯이 세우겠다'고 밝힌 터다.
계엄군이 도시 외곽으로 물러난 뒤 전남도청이 그들의 손에 진압될 때까지 닷새 동안 광주는 우리가 그토록 염원해온 공동체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어떤 이는 80년 광주에서 '오래된 미래'를 봤다고 표현했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경찰과 행정 공무원 등이 모두 손을 놓은 치안 부재 상태였음에도 강력 사건은커녕 그 흔한 절도 사건 하나 발생하지 않았다. 1980년 광주가 사회학자들로부터 '절대 공동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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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금남로에서 광주시민들과 계엄군이 대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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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5.18이 '갑툭튀'였을 리는 없다. 역사는 시공간 속 인과관계로 엮이기 마련이다. 5.18 역시 이전에 벌어진 사건의 결과이며, 다음에 전개된 사건의 원인일 수밖에 없다. 특히 불의한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역사에서 전철을 밟는 건 필연이다. 4.19 혁명의 기치와 정신이 5.18과 6월 민주항쟁, 나아가 촛불 혁명의 그것과 다를 리 없다.
지금 5.18 유족과 관계자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부마 민주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긷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직접적 희생자 수로만 민주화운동의 비중과 가치를 평가하는 건 온당치 않으며, 인과관계 속에서 재해석돼야 함을 줄기차게 부르짖고 있다. 부마 민주항쟁과 5.18을 잇는 것이야말로 5.18의 정신을 구현하는 일임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5.18이 부마 민주항쟁의 결과였다면, 7년 뒤에 일어난 6월 민주항쟁의 원인이기도 했다. 당시 광장에서 울려 퍼진 '호헌 철폐, 독재 타도'라는 구호 속에 '5.18 진상규명'이라는 외침이 줄곧 이어졌다. 항쟁은 '5공 청문회'라는 열매를 맺었고, 몇 해 뒤 광주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과 노태우를 나란히 법정에 세웠다. 기실 1980년대의 숱한 민주화운동은 '5.18 알리기'였다.
언젠가 한 아이는 민주화운동이라는 교과목을 따로 만들어 배워도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을 피력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을 아무리 밟아도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 대지를 덮는 잡초에 비유하면서, 대한민국의 '대표 상품'이라고 표현했다. 민주화 항쟁이 계속되고 있는 미얀마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우리나라를 민주화를 이룬 모범 국가로 손꼽고 있다는 거다.
맥 끊기 시도
아이들도 자랑스러워하는 민주화운동을 흠집 내지 못해 안달하는 정부의 모습이 당황스럽다 못해 황당하다. 그중 5.18을 문제 삼는 건, 4.19 혁명으로부터 6월 민중항쟁을 지나 촛불 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의 맥을 어떻게든 끊어보려는 심산이다. 더욱이 대법원의 판결까지 난 사안인데도 여전히 '북한군 침투설' 등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현실을 활용해보려는 거다.
5.18을 반란이라고 규정하며 왜곡과 폄훼를 일삼아온 자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된 상황에서 교육부의 '교육과정 5.18민주화운동 삭제' 조치는 당연한 수순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진실화해위원장과 교육부장관이 '오월 정신을 반듯이 세우겠다'는 대통령에 맞서 항명한 모양새가 됐다.
더욱 참담한 건, 언론에 보도되자마자 '의도적 삭제'가 아니라고 발뺌하더니, "'교과용도서 편찬 준거'에 '5.18 민주화 운동'과 함께 주요 역사적 사건을 반영해 교과서에 기술될 수 있도록 하겠다"(이주호 교육부장관)고 밝힌 교육부의 뻔뻔한 행태다. 끊임없이 5.18을 욕보이려는 극우 세력들을 통제하고 단죄하기는커녕 인면수심의 그들에게 정부가 되레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됐다. 여론을 떠보며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전형적인 갈라치기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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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압봉으로 광주 시민 폭행하는 계엄군 1980년 5월 19일 금남로에서 계엄군이 한 시민을 진압봉으로 폭행하고 있다. 사진은 당시 전남매일 나경택 기자가 촬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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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비유일지언정, 정부의 행태는 3.1운동 직후 우리 민족의 단결된 힘을 절감한 일제가 독립운동 세력을 분열시키고자 했던 문화통치의 방식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교묘하게 검열을 일삼았고, 역사와 전통을 존중한다면서 매판 지식인들을 매수해 민중의 저항과 단결을 무력화시켰다.
정부가 간과한 게 있다. 4.19 혁명과 부마 민주항쟁, 5.18과 6월 민주항쟁, 촛불 혁명은 민주주의의 정신이 면면히 계승된 우리 현대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다. 5.18을 폄훼하는 건 4.19 혁명을 조롱하고 6월 민주항쟁과 촛불 혁명을 부정한다는 뜻이다. 교육과정에서 5.18을 삭제한다는 건 대한민국 민주화운동 전체를 삭제하겠다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5년짜리에 불과한 정부가, 짧게 잡아도 수십 년 동안 시민들의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제 입맛대로 가위질하려는 모습이, 대선후보 시절 윤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같잖다'. 목불인견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참으로 비참하고 절망적인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