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진 설악산 대청산장이 한때는 군대 막사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대청봉과 군인을 매칭시키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1960년대 초 등산객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어 그때를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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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2515B0335758DE9922)
*사진출처: 박물관 소장
그시절 사진을 보면 부러운 게 바로 모자 패션입니다.
지금은 햇Hat 아니면 캡cap입니다. 티롤 모자 등을 쓰면 뭔가 '체'를 한다거나, 어색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다섯 분은 모두 다른 스타일로 보입니다.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네요.
![](https://t1.daumcdn.net/cfile/cafe/2711E5335758DE9B25)
일병 또는 상병으로 보이는 군인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소총이 없다면 휴가나온 군인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차출되어 왔을 저 군인은 신입을 올때나 휴가 갈때 등등 아마도 오색코스로만 오르내렸을 겁니다.
다른 코스는 일없이 가 봤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내설악 외설악 모르는 곳이 없어서,
수많은 등산객들의 질문에 막힘없는^^ 답을 해 주었을 겁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1204335758DE9A24)
부대마크가 보일락말락 합니다.
백두산부대(21사단)같군요. 인근 양구가 홈구장인데, 여기까지 출장온 듯 싶고요( *맨 하단에 보충설명)
군인의 오른손에는 M1용 4발(8발?)들이 실탄이 있는 탄창이 들려 있습니다.
실제 상황이라는 거.
다른 사진들을 함께 검토해 보면, 오른쪽에 총을 들고 있는 이는 일행이라기보다는 포터인 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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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대청봉 정상에는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등산가 이효상이 쓴 '요산요수'가 세워지며,
공식적인 정상석의 시대를 엽니다.(內 더 읽을꺼리)
그렇다면 그 이전은?
아무래도 군인들이 심심파적(?)으로 돌탑에 대청봉이라는 표시를 했지 않았을까요?(관련 블로그)
*이채로운 글인데요.
1980년대 당시엔 군인들이 벙커를 지키며 커다른 태극기도 게양하고,
돌탑을 쌓고 작은 돌 위에 대청봉이라고 새겨 올랐다고 블로깅한 분도 계십니다.
(* 군인들이 있을 때는 당근 자기네 군대 선배가 쓴 돌탑의 글씨를 보호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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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군인이 상주했을까요?
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있기 쉬웠을 거고 아니었다고 한다면, 종전 후 곧바로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설악이 백두대간 통로=간첩들의 암약 루트이기도 하고....
아마 대청봉에서 보초섰던 대부분의 군인들은 설악의 풍경조차 지긋해 했을 겁니다.
언제 제대하나만 손꼽아 기다리고.
그곳을 올라로는 등산객들을 의아해 하고...
이제 뒤돌아 보면,
1950년대, 60년대 인적 드물던 설악을 찾았던 초창기 등산가들도 부럽고,
이들 역시 어쩌면 더 부럽습니다.
저렇게 빠른 1960년대에 일년 사시사철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백설이 분분한 설악, 안개 자욱한 설악, 꽃밭 설악, 비바람 몰아치고, 가을단풍 아름다운 설악을
본 이들은 그들 말고 또 있을까요?
그분들이 우리 주변에 한 분은 계실텐데, 등산잡지 등등을 유심히 보면 만날 수 있으려나 싶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와 사진이 보고 싶은 건 많은 이들의 소망일 겁니다.
피에스) 언제쯤 군인들이 대청봉 군대 막사를 떠나, 등산객을 위한 대청산장 또는 대청 대피소가 되었을까요?
아직 이에 관한 글은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대청봉 산장에 관해서 두장의 사진을 찾았는데, 대략 이런 모습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1BFE335758DE9C1F)
![](https://t1.daumcdn.net/cfile/cafe/25214D335758DE9B1C)
둘 중 어느 것이 먼저일까요?
가건물을 앞으로 많이 빼낸 걸 보면 두번째 사진이 나중의 모습이 아닐까 싶은데, 반대이기 쉽습니다.
대청대피소가 사라지기 전 14년동안은 거의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사진은 말끔하고 첫번째 사진은 참 난삽합니다.
1992년 7월 3일 한겨레신문과 매일경제신문 에서는
" 대청봉은 연간 2백 50만~300만명의 등산객이 다녀갈 뿐 아니라 야영이 늘어나면서.....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대청봉 대피소 겸 매점을 7월 3일 폐쇄하고,
야영객들은 1km 아래쪽에 있는 중청봉 대피소 일대에서 야영을 하도록 할 방침이라면서,
그동안 대피소로 이용되던 대청봉 정상의 군벙커도 야영지로의 이용을 통제하고
군 고유 목적으로만 이용키로 했다. 또 정상 주위의 샛길도 차단하고 안내 입간판을 세울기로 했다."
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기사에 적혀 있다시피 1992년 7월 3일부터도 대피소 역할을 그만두고 군 고유목적으로 계속해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 겨울 환경저해시설정비로 철거하였습니다.
지금은 생태복원을 하는 바람에 아마 흔적도 없어졌을 겁니다.
1992년 또는 2006년 관계기관에서는 사진이라도 찍어두었을까요?
우리네 추억은 조그마한 좁쌀만한 '꺼리'에서 싹틀 수 있는데... 못내 아쉽습니다.
* 그러고보니, 지리산도 해마다 특정한 때에 산자락의 동네^^ 방위들이 올라와 진지를 보수합니다.
천왕봉 근처에서 작업하는 걸 직접 본 적이 있고, 실제로 진지들이 있습니다.
* 큰 산에는 포터들이 있었습니다.
제 기억에도 1990년 정도에도 지리산 백무동에 있었습니다.
* 해봐서 알 일도 있겠지만, 안해본 사람이 더 잘하고, 안가본 사람이 더 잘 압니다.
예전 약국에 약사도 아닌 친구(화학의 '화'자도 몰라도)가 더 상담 잘하고 약도 잘 지었다는 게^^ 기억납니다.~~
*백두산가의 1절에 '설악'이 나옵니다. 이 설악이 그 설악인듯 싶습니다.
빛나는 동해바다 태양을 안고 눈보라 휘날리는 설악 위에서
멸공의 역군으로 굳굳히 뭉친 씩씩하다 백두산부대 21사단
첫댓글 오랫만에 설악에 대한 글 감명 깊게
잘 읽어 보았습니다
소중하고 멋진 설악 글 감사합니다 ~^^
와..귀중한 사진이네요 ㅎㅎ
글을 보다가 80년도에 올랐던 대청봉 사진한장 찾아 올립니다
다행이도 원문글의 대청봉ㆍ요산요수ㆍ태극기 다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