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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창세기 41:41-45
제목: 사브낫바네아
일시: 2018. 9. 23
장소: 라이프찌히 한인교회
I. 지난 여름은 기록적으로 더웠고 불과 몇일 전에도 꽤 더웠다. 하지만 오늘은 최고 날씨가 13도라고 하고 다음 주는 4도까지 온도가 내려가게 된다. 우리는 날씨에 민감하고 또한 그 날씨변화를 느낄 수 있는 센서가 우리 몸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온도와 관련해서 두 가지 종류의 센서기계가 있다. 하나는 온도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온도조절기다. 온도계는 단순하게 바깥 날씨의 온도가 높은지 낮은지를 측정할 뿐이다. 그러나 온도조절기는 바깥 온도를 감지하고 그에 따라 플렉서블하게 맞추어 나가는 기계이다. 우리가 사는 삶의 환경도 급변하는 날씨와도 같다. 어떨 때는 꽃피는 봄일 수도 있고 어떨 때는 무더운 여름과도 같고 어떨 때는 결실이 풍성한 가을과도 같지만 어떨 때는 꽁꽁 얼어붙은 겨울과도 같다. 이와 같은 삶의 환경에 대해 그저 온도만 재는 온도계와 같은 사람이 있고 삶의 온도에 따라서 스스로 대처하는 온도조절기와 같은 사람이 있다. 나는 온도계와 같은 사람인가 온도조절기와 같은 사람인가?
II. 오늘 본문의 성경인물은 요셉이다. 정작 당사자인 요셉은 두 번 다시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를 보는 우리는 아주 재미난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요셉만큼 오르락 내리락 한 인생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참으로 드라마틱한 삶을 산 사람이다. 요셉의 인생을 크게 4등분해서 볼 수 있다. 이 4가지 인생조각은 주변 환경의 온도가 변하면서 구분되는데 그때마다 요셉은 옷을 바꾸어 입는다. 날씨가 변할 때 가장 먼저 입게 되는 것이 옷이다. 그 옷은 사람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이요 필수적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기본권을 말할 때 “의식주”문제 라고 말한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동산의 온도가 달라졌을 때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옷이었다. 스스로 무화과 나무잎으로 옷을 만들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가죽 옷을 만들어 주셨다. 여기서 옷의 기능들이 나온다. 인류가 처음 입었던 옷은 부끄러움을 가리는 것이었다. 또한 추위에서 몸을 보호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명품 브랜드와 같이 패션을 위한 것이다. 예의와 의식을 차릴 때나 신분을 드러낼 때도 옷을 입는다. "옷 벗는다"는 말은 직책을 그만둔다는 의미로 장성들이 군 생활 그만 둘 때 옷을 벗는다고 하고 직장을 그만 둔다는 의미로 쓰기도 한다. 요셉이 환경이 변할 때마다 옷을 바꾸어 입었다.
요셉이 입었던 첫 번째 옷은 무엇인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가정에서 아비의 사랑을 받고 17세가 될 때까지 입었던 채색 옷이었다. 야곱과 라헬의 아들로서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에 11번째 아들이었으며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아들이었다. 아비 야곱이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에게만 색동저고리와 같이 화려한 채색옷을 입혔던 것이다. 그 17년의 세월은 행복한 시간들이었고 인생의 봄이었다. 새싹이 나고 꽃이 피는 이 온화한 날씨에 그는 채색옷을 입고 있었다.
채색옷을 입고 있던 요셉이 어느 날 꿈이야기를 하면서 형들은 그를 시기하게 된다. 결국 요셉은 자신의 친형제들의 손에 의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게 된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게 된다. 10년 정도를 그렇게 노예의 옷을 입고 종의 신분으로 살게 된다. 그가 입고 있던 채색옷은 이미 수염소의 피로 얼룩이 졌다. 형들이 아비 야곱에게 요셉의 실종 사실을 보고할 때 야생동물이 그를 잡아먹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겨우 그 피 묻은 채색옷을 가져왔다고 증언했던 것이다. 요셉은 채색옷을 벗고 종의 옷을 입은 것이다. 그 옷은 시련의 옷이다. 불행한 시절의 옷이다. 찬바람이 부는 인생의 겨울이 온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요셉은 바닥을 치지 않았다.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극한 추위로 들어가게 된다. 깊어진 겨울이 더욱 혹독한 추위로 내려가게 된다. 채색옷을 입다가 그 옷을 벗고 종의 옷을 입고 노예가 된 것도 억울한데 죄인으로 낙인찍혀서 죄수의 생활을 하게 된다. 애굽에서의 첫 주인 보디발의 집에서 충성스럽게 일한 댓가가 겨우 감옥에 갇히는 죄수의 신세였다. 3년 정도를 그렇게 살았다. 채색옷을 입었던 요셉은 종의 옷을 입었다가 이제 그보다 더욱 형편없는 죄수의 옷으로 갈아입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입게 되는 옷이 총리의 옷이다. 13년이라는 긴 시련과 절망의 시기를 지나 나이 30에 총리가 되어 바로의 신임 받는 총리로 살아간다. 이후 그렇게 80년을 살게 된다. 요셉이 감옥 생활을 마치고 바로가 그를 총리로 세울 때 "세마포 옷"(창41:42)을 입혔다. 세마포 옷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마로 만든 옷인데 귀족들이 입고 제사장들이 입는 귀한 옷이었다. 고귀하고 높은 신분을 말한다. 그의 신분이 바뀌었다. 왕의 인장도 받게 된다. 인장반지의 의미는 무엇인가? 권한을 의미한다. 금 사슬을 목에 맨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금목걸이인데 명예를 의미한다. 버금수레를 태운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왕의 수레 바로 뒤따르는 수레로 2인자임을 말하는 것이다. 버금간다는 말이다. 요셉은 완전히 옷을 바꾸어 입었다. 채색옷에서 노예의 옷으로 다시 죄수의 옷으로 다시 세마포 옷으로 입고 있다.
요셉의 삶의 날씨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여정도 바로 그러하다. 그 정도로 급변하지 않을지 몰라도 여전히 삶의 기후는 예측할 수 없다. 최고의 장비 슈퍼컴퓨터를 가지고도 날씨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 날른지 알지 못한다. 안개와 같다. 내일 일이 풀리는 봄이 올 것인지 일이 꼬여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올른지 알지 못한다.
III. 요셉의 인생은 독일의 4월 날씨와 같다. 1년 동안 각 계절에 있을 날씨가 4월 안에 다 들어 있다. 해가 났다가 비가 왔다가 눈발이 날리다가 다시 화창해지는 날씨이다. 오르락 내리락 거리면서 사람을 정신없게 만들고 멀미나게 하는 그러한 인생의 날씨에서 요셉은 “온도계”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온도조절기”와 같은 사람으로 살았다.
만일 그가 온도계와 같은 사람이라면 억울한 일이 있었을 때 원수를 갚겠노라고 이를 갈았을 것이다. 형들이 채색옷을 벗길 때도 억울했다(물론 아비가 위화감을 조성하지 말았어야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해 놓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요셉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울 때도 억울했다. 죄수의 옷을 입고 감옥살이를 할 때도 억울했다. 바로의 잔을 맡은 술관원이 복직이 되면 요셉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던 말에 희망을 걸고 있었는데, 2년이나 자신을 기억하지 않는 술관원장이 원망스러웠다. 온도계와 같은 사람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추우면 춥다고 더우면 덥다고 호들갑을 떨게 된다. 그러한 인생의 온도를 느낄 때 이빨을 가는 소리가 들렸을 수 있고, 좀 소극적이라면 주변 환경의 상황에 따라 절망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 모른다. 요셉이 온도계와 같은 사람이었다면 애굽의 총리가 되어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그동안 억울하게 당하였던 앙갚음을 다 해 주었을 것이다. 일단 가나안까지 가서 형들을 다 잡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감옥에 가게 한 보디발의 아내를 당장 잡아 불러서 따끔하게 혼을 내 주었을 수도 있다. 술맡은 관원을 조용히 불러서 그럴 수 있냐고 얘기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온도계와 같은 사람은 바로 주변 환경의 온도에 따라서 행동한다. 바르르 끓기도 하고 금방 식어 버리기도 한다. 그런 사람은 일이 조금 어렵게 되고 시련이 닥치면 불평과 원망을 하고 죽겠다고 호들갑을 떤다. 조금 일이 잘되고 칭찬을 받으면 가볍게 헤헤거리고 교만해져서 있는 위치에서 꼴값을 할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온도조절계와 같은 사람이었다. 어떠한 순간에도 중심을 잃지 않았다. 그는 채색옷을 입었을 때도, 종의 옷을 입었을 때도, 죄수의 옷을 입었을 때도, 총리의 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도 옷만 바뀌었을 뿐이지 그 사람 “요셉”은 거기에 있었다. 요셉은 처음부터 “비젼”Vision을 본 사람이었다. 물론 그 비젼으로 인해서 “꿈꾸는 자”라는 비아냥거리는 형들의 조롱을 당했고 시기 질투를 받기는 했지만 말이다. 곡식단의 비젼을 보았다. 요셉이 꾼 꿈에서 형들의 곡식단이 자신의 곡식단에게 절을 하는 것이다. 다시 꿈을 꾸었을 때는 “해와 달과 11별이 내게 절하더이다”라고 자신이 꾼 꿈을 말한다. 그것은 보통 꿈이 아니라 장래 일어날 비젼이었다. 형들조차 그 꿈 이야기를 듣고 즉각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라게 되겠느냐?”고 시기하고 질책한다. 그리고 요셉의 아비 야곱은 비록 철없이 이야기한 것처럼 여겼어도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고 성경은 말한다. 처음 비젼을 가지고 있었던 요셉은 주변 환경과 상황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옷 색갈이 변해도 그의 속사람은 변하지 않았다. 보통 옷 색갈에 따라 좌절도 하고 비굴도 해지고 교만도 해질 수 있다. 그러나 속사람으로 가득 차 있던 요셉은 종의 옷을 입어도 좌절하지 않고 죄수의 옷을 입어도 절망하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과 동행했다. 또한 모든 권력을 가진 총리의 옷을 입어도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교만하지 아니하고 원수를 갚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로 모든 것을 해석했다. 이런 사람은 신뢰할 만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어떠한 날씨에도 여전히 변치 않게 일할 사람이다. 변화하는 날씨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마음이 굳건하여 늘 콘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예)깊은 물과 개울물의 소리를 들어보라. 깊은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저 무서울 만큼 조용히 흐른다. 그러나 계곡에 흐르는 물이나 시냇가에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들어보라. 돌부리, 바닥을 치는 소리 등으로 졸졸졸 재잘재잘거린다. 깊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깊이가 없는 시냇물이 졸졸흐르고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나 깊은 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빈수레가 소리가 요란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가득 찬 사람은 요란하지 않다. 속이 얕은 사람이 소리가 난다.
온도계와 같은 사람은 상황의 변화와 바깥 온도에 따라서 금방 마음이 바뀐다. 진득하게 참지 못하고 곧 좌절과 회의에 빠지게 된다. “내가 이러려고 진리를 지켰는가?” 조금만 더 기다려 보면 좋겠는데, 금방 바르르 거리면서 “내가 이려려고”라는 말을 쓴다. 후회도 빠르다. 종종 진리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성실하게 살았는데도 억울한 일을 당하고 일이 꼬일 때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환경에 따라 사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철학도 바꾸게 되고 회의에 빠져 살게 된다. 온도계와 같은 사람은 언제나 폭탄을 안고 있는 사람이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온도조절기와 같은 사람은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온도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 아니라 맞춰놓은 온도를 조절하는 사람이다. 상황에 따라 나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진리를 가지고 상황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를 팔아넘겼던 형들을 만나는 극적인 장면에서 울면서 소리 질러 오히려 그들을 위로한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45:5).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45:8) 온도 조절기와 같은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IV. 요셉의 옷 색갈은 바뀌었다. 채색옷에서 종의 옷으로 종의 옷에서 죄수의 옷으로 그리고 다시 죄수의 옷에서 총리의 옷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요셉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과 동행했으며 그는 그 자리에 변치 아니하고 있었다. 아비 집에 있을 때나 보디발의 집 종으로 있을 때나 감옥에 있을 때나 이후 총리가 되었을 때나 그는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환경에 따라 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을 맞추는 사람이었다. 요셉은 애급의 바로로부터 “세상의 구원자, 비밀의 계시자’라는 의미의 ‘사브낫바네아’라는 새 이름을 받는다(요셉의 이름이 그렇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요셉은 요셉이었다. 요셉은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인생의 날씨환경에 대해 온도계의 사람이 아니라 온도조절기로 살았던 사람이다.
나는 온도계와 같은 사람인가? 혹은 온도조절기와 같은 사람인가? 2018-2019년도 이제 새로운 리더쉽들이 함께 교회를 이끌어 나간다. 타이틀이 달라지고 여러 다채로운 색깔의 옷을 입어도 언제나 “요셉이 요셉으로” 남아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맡겨져 있는 일들을 잘 감당해 나가기 바란다. 이제 계속 펼쳐질 우리 인생의 기상도를 다 알지 못하고 날씨가 어떻게 될른지 알지 못해도 온도조절기와 같이 플렉서블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아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