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이의 외계어남발을 피해 2층 태균이 자는 공간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일찍 내려왔습니다. 미국 창고와 톡도 주고 받아야 하고, 습관상 새벽에 이것저것 하는지라 아이들 깨울까봐 살짝 빠져나왔는데요.
좀있다 위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태균이가 등장했습니다. 새벽 5시입니다. 오늘 배타러 간다고 어제 알려주고, 시키는대로 보충제 요일별로 담아놓고 다 했으니 태균이 머리 속은 새벽 5시 떠나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을겁니다. 늘 완도행 아침 7시 20분 배타고 가곤 했기에 새벽 5시 즈음 출발하곤 했으니까요.
씻겠다고 하고 보충제 어디에 넣을까 묻기도 하고 계속 잠자려는 엄마를 재촉해댑니다. 오늘은 완도가 아니라 여수행이다, 출발시간도 아침이 아니라 오후 4시다 등등 다 확인해 주었더니 알겠다는 반응으로 다시 밖으로 나가 2층 올라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설명을 하면 알아듣는 융통성이 많이 좋아지긴 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듣고 이해한 사항에 대한 강박은 여전합니다. 어제도 성읍 민속마을에서 걸음수 늘리려고 관람할 수 있는 집들은 모두 들어가서 들여다보곤 하는데, 한 집이 삥 돌아서 걸음수를 보태야 볼 수 있습니다. 거기도 보자고 하며 아이들 끌고 가는데, 태균이 안가고 싶어하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그래서 가려다가 포기하고 돌아나오는데, '가서 보자'라는 엄마의 말은 꼭 지켜야 하는 필수사항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돌아나오는데 혼자 씩씩대고 보려고 했던 집으로 막 걸어가는 태균이. 이런 일이 꽤 자주 있어서 한마디 한마디 태균이에게 건네는 말은 신중해야 합니다. 배타러 가는 날이라고 알려주면서 원래 알던 그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깜빡했으니 엄마의 잘못이긴 합니다.
혼자 엄마가 제안한대로 걸어가다 우리가 그 곳으로 안가고 나오니 또 왜 안가냐고 반문하고 서있는 모습입니다.
어제 하도 해안가에서도 진이 울퉁불퉁 너럭바위 걷기 시키느라 제가 앞서서 이리저리 막 돌아다녔더니 유심히 동선을 보고는 그대로 따라합니다. 준이는 마음내키지 않으면 멀찌감치 지켜보고 마음내키면 즉시 따라하는 반면, 태균이는 즉각 하지는 않으나 반드시 수행하려는 강박적 의무가 행동 전반을 상당히 지배합니다. 뒤늦게 움직이지만 반드시 수행한다 태도입니다.
엄마나 주변사람들이 모델역할을 잘 해야하는 단계의 딱 그 수준이라 특히 엄마의 행동거지나 지시사항이 중요합니다. 그게 태균이가 살아가는 방식이자 세상에 대처하는 지혜이기에 한시라도 어긋난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께 중문 대포해안 주상절리 산책길에서처럼 예측이 가능한 동선에서는 꾀도 살짝 부리기도 하고, 어제도 하도 별방진 담길, 등대가 있는 항구 방파제길도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길이라서 몫좋은 곳에 진치고 앉아서 기다리기도 하면서, 암튼 세상을 듣고 보고 읽는 수가 고지식한 듯 다양해지긴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독한 난제였던 '알아듣기'가 나아지면서 강박적으로 들었던 말들이 자신의 행동에 반영하려 하지만, 설명을 해주면 강박에서 바로 벗어나는 것도 큰 발전은 발전입니다. 새벽 5시는 출발 배시간은 꼭 그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를 잘 받아들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강박의 정체라는 것이 결국 편향이라는 것, 편향된 감각의 세계에서 나름 세상대처하기 방식으로 발달시켜 간다는 점에서 저는 긍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실제로 외부세상에 대한 감정정보 자체를 받아들이고 다루는 뇌의 영역은 측두엽이고, 감정정보를 가공하고 정제하며 인간방식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전두엽이기에 이 두 개의 긴밀한 소통의 네트웍이 충분하지 못할 때 강박이 생긴다는것을 깨닫게 됩니다.
두 영역의 소통망이 더 튼튼해지길 바라면서 이 정도의 희미한 세상보기라면 향후 발전 가능성이 아주 커질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이 소통망이 약하면 약할수록 원초적 감정문제에 계속 시달릴 것이라서 뜬금없는 감정폭발이나 무조건적 부정 반응이 행동 전반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준이도 강박이 좀 생기길 바래봅니다. 강박이란 것이 뭘 의미하는지 태균이를 통해 많이 배웠기에, 강박이라도 있어야 인간적인 성숙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강박 중에는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스스로 힘들어지는 것'을 피하려는 사회적 통증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우습지만 어제, 옛집들의 아궁이를 설명해주면서, '아궁이에 불을 때야 방이 따뜻해져서 코~~하고 편하게 잘 수 있단다'라는 설명과 함께 편하게 자는 모습을 표현했더니 태균이의 모방이 저를 웃겼네요...
이번에 진이가 직접 찍어놓은 태균이 사진들... 진이가 원하는 표정을 잘 잡아낸 듯 합니다.
첫댓글 태균씨가 엄마 말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듯, 저도 하늘의 뜻에 순명하는 자세를 새롭게 해 봅니다. 진이로 인해 세명 청년의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세 친구의 건강과 발전을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