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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상흐름 큰공부 원문보기 글쓴이: 새마옹
입추도 처서도 지나고 나니 날씨는 여전히 덥다지만 무더운 여름이 어쩔 수 없이 물러간다는 느낌이 드는 동시에 “아, 가을인가” 한 마디 읊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박목월이 시를 쓰고 김성태가 곡을 붙여,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라고 시작하는 서글픈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가 3절에 가면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 두고 홀로 울리라”로 우리들의 가슴을 쓸쓸하게 만듭니다. 1절 부르고 2절 부르고 3절 부를 때마다 되풀이 하는 후렴은 기나긴 탄식으로 시작합니다. “아아, 아아”- 결론은 요 짧은 한 마디-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그래서 가을은 공연히 속절없이 눈물이 흐르는 서러운 계절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아 가을인가”- 이 가을을 맞이하는 심정이 어떻십니까. 청와대의 주인이 되고 이미 반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지난 2월 25일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큰 감격의 날이었는데 점점 우리들의 “사랑”도 저물어 가는 듯합니다. 영국 시인 토마스 그레이의 시에 “영광의 길 가다 보면 무덤 있을 뿐”이라는 유명한 한 마디가 있습니다.
권력을 즐길 생각 아예 마시고, 이 가을에 나라와 백성을 위해 누구도 하지 못할 비장한 결심을 하나 하세요. 공명심을 버리고, 정몽주 선생을 생각해 보세요. 안중근 의사를 생각해 보세요. 죽음을 결심해야 삶이 있습니다. 이미 가을입니다.
몇 일전에 시내의 한 한식집에서 <경제풍월>이라는 월간지의 창간 9주년을 기념하는 조촐한 모임이 있었습니다. 초대 받아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내 짐작에 한 50명쯤 되는 것 같았는데, 지나간 10년 동안 정권 교체를 열렬하게 부르짖던 논객⦁변사들의 얼굴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 모임의 사회는 이 잡지의 창업주인 배병휴 씨가 맡아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발언권을 주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한 마디씩 했는데 올해 87세인 <샘표식품>의 박승복 회장만이 건강에 관하여 몇 마디 했을 뿐, 일어서서 마이크를 잡는 사람마다 이명박 대통령을 “성토”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이명박 후보가 당선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한 사람인데”라고 말문을 연 뒤에는 오늘의 대통령을 여지없이 까는 겁니다. 어떤 이는 입에 거품을 물고 상기된 얼굴로 “우리를 이렇게 배신해도 되는 겁니까”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한 말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이명박은 의리가 없는 사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심하세요. 그 저녁 그 자리에 모였던 사람들의 한결같은 결론은 “이명박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밀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팔자가 아닌가”하는 것이었으니, 임기를 채우는 일은 어렵지 않겠다고 믿어집니다. 그러나 “의리가 없는 사나이”가 된다면 큰일입니다.
최근에 남파된 여자 간첩 원정화가 검거되었다는 소식에 많은 한국인들이 “쾌재”를 부르고 있습니다. 지나간 10년 동안 당국에 의해 붙잡힌 간첩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은 햇볕정책 때문에 북의 김정일이 간첩을 보내지 않는 줄 착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햇빛으로 생긴 어둠 속에서 무수한 간첩들이 넘나들며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고 온갖 흉계를 꾸몄겠지만 그 악한들은 한 놈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몰라서 못 잡은 겁니까, 알고도 안 잡은 겁니까.
지나간 10년 동안 목청을 돋구어가며 부르짖었습니다. 간첩을 잡지 않는 나라는 망한다고. 우리 짐작에도 남한 땅에는 북에서 파송된 간첩이나 이들에게 포섭된 친북 인사들 -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대한민국 타도를 위해 날마다 밤마다 뛰는 놈들이 와글와글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북경 올림픽에서 금메달 취득 순위로 당당히 7위에 올랐으니 대한민국이야말로 “기적의 나라”가 아닙니까.
남한 땅에서 암약하는 간첩은 한 놈도 그대로 두지 말고 다 잡으세요. “간첩의 천국”이라며 남들이 비웃던 대한민국이 아직도 살아있는 이 기적이 앞으로도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간첩을 잡지 않으면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38선을 넘어 본 경험이 없는 사람, 6‧25를 말로만 듣고 인민군의 행패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수많은 탈북자들의 심정을 헤아리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나도 탈북자 중 한 사람이지만, 물론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은 것이 사실이지만 근년에 탈북한 이들은 정말 천신만고 끝에 자유 대한의 품에 안겼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죽지 못해 살아남은 의지의 남녀라고 불러야 옳을 것입니다. 주로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에서 혹은 태국 땅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다가 김정일의 독재를 겨우 벗어났다가도 중국 공안당국에 붙잡혀 평양으로 반송되어 죽임을 당한 불행한 동포들도 부지기수이니 이북 5도청 강당에 모인 탈북자들이 운이 좋아서 자유의 땅에서 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용사들 700명을 모아놓고 내가 “자유”에 대해 1시간 10분 동안 강연을 하였습니다. 이분들이 따지고 보면 평화통일의 선구자들입니다.
이런 용감한 동포들이 목숨을 걸고 북을 탈출하여 서울까지 오는데 그 수가 10만, 100만 자꾸만 늘어나면 국토는 저절로 통일이 됩니다. 준비가 없어서 그들을 반길 수 없다고는 말하지 마세요. 그들이 쏟아져 너머 오면 그 때에는 국민이 나서서 그들을 돌보게 됩니다. 대통령께서는 황장엽 선생을 청와대에 모시고 그 분의 말을 듣고 나서 대북정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 발표된 <국방백서>에서 북의 인민군에 대하여 “주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도대체 품격을 갖춘 어떤 나라가 이웃에 있는 나라이건 멀리 있는 나라이건 이를 우리들의 “원수”라느니 “적”이라느니 하는 매우 험한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주적이 어느 나라입니까, 일본입니까, 미국입니까, 중국입니까, 북한입니까”- 이건 매우 잘못된 질문입니다. 그 질문 자체가 호전적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런 질문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됩니다. 이웃 나라들의 경제력이나 국방력, 생활수준이나 문화수준을 우리나라와 비교하여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도록 격려하고 자극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사방에 “적”을 찾아 혈안이 된 것 같은 매우 위험한 질문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믿습니다.
“인권이 가장 잘 보장된 나라는 동양 3국 중의 어느 나라입니까”- 이런 질문이 바람직합니다. “미국과 북한 두 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에 가서 살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이 “주적이 어느 나라입니까, 북의 인민공화국입니까, 북미합중국입니까”라는 질문보다 훨씬 개명한 질문이 되겠습니다. “주적”이란 말을 쓰건 안 쓰건,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가장 크게 위협하고 방해하는 정치집단이 가장 가까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나는 단 한 번도 이명박 정권이 불교를 탄압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마는 불교 당국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만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면 반성의 여지는 있다고 봅니다. 혹시 오이 밭을 가다가 신발을 고쳐 신은 적은 없는지. 또는 외얏나무 밑으로 가다가 갓을 고쳐 쓴 적은 없는지 되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세상에는 공연한 오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착시나 착각도 배제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 또한 충분히 고려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하고 긴박한 것은 불교의 승려들의 집단 시위에 배후세력이 있는지 없는지, 정보‧수사 당국은 만전을 기하여 사실을 사실대로 밝혀야 할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불교 성직자들의 뜻밖의 집단행동이 이 나라의 전통종교인 불교와 신흥종교인 기독교 사이의 유례없는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자들이라고 가만 앉아만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이 나라 역사에 전례가 없는 유혈 종교분쟁이 벌어지고,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는 적화통일론자들은 만세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제2의 원효, 제2의 의상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이것은 한국 불교 중흥의 계기가 될 수도 있고 한국 불교 쇠망의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건 불교 시위의 배후세력만은 반드시 규명돼야 할 것입니다.
불교와 기독교의 대립‧분쟁이 더 심화되기 전에 대통령께서는 반드시 손을 쓰셔야 합니다. 촛불시위도 시작한 그 날 밤으로 끌 수가 있었는데, 이런 저런 사연으로 끄지 않고 두었다가 석 달이나 계속되는 바람에 이명박 정권이 입은 타격도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국가적 손실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었습니다. 촛불일 때 끄기가 쉽지, 산불이 되면 소방대가 동원 되지 않고는 끌 수 없습니다. 소방대도 끌 수 없어 산 하나를 몽땅 태우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불교도들의 집단 항의는 촛불시위보다 몇 배나 심각한 시위입니다. “부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사람들은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낭만적인 젊다 못해 어린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스님들 중에는 이번 기회에 죽어도 좋다는 이들이 상당 수 나올 수가 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정권자체에 위기가 임할 수도 있습니다.
불교 신도만의 집단행동만 가지고는 태국이나 미얀마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지만, 기독교도들이 불교도들의 반정부운동에 불만을 품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들고 일어나면 그 때에는 누구도 수습하지 못할 것입니다. 두 종교의 대립과 분쟁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어떤 세력이 대한민국 안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혼란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집단은 적화통일을 시종일관 노리고 있는 북의 김정일 집단입니다. 이것은 결코 논리의 비약이 아니라 엄연한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내 말이 틀렸나 두고 보세요. 대통령께서는 북에서 남파된 간첩의 수가 몇이나 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10년 동안 새끼를 친 간첩들과 그자들에게 포섭된 대한민국 전복 음모자들의 숫자와 실상을 옳게 파악하지 않고는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이 나라를 이끌고 나갈 수가 없습니다. 민주세력을 대표하여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사실 때문에 김정일과 남북에 널려있는 그의 졸도들은 엄청난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기독교와 불교의 극한투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화합과 번영의 새 시대의 문을 열 수 있는 그런 큰 인물은 없습니까.
속담에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흥정을 붙이는 것은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일이고 싸움을 붙이는 것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일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갑과 을의 사이를 갈라놓고 싸움을 붙이려는 자들이 월등하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요새 사찰 승려들의 집단시위가 눈에 뜨이는데 일찍이 없던 일이므로 인터넷 홈페이지에 글을 하나 올리기를, 우리가 잘 모르는 당국의 불교에 대한 잘못이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하겠고, 모든 집단적 행동의 배후는 예외 없이 내사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라는 상식적인 의견을 피력한 바 있었습니다.
나는 한 평생 기독교 신자로서 이 땅의 신흥 종교라고도 할 수 있는 기독교인들은 천 수백 년의 전통을 가진 이 나라의 불교와 불교신도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역설해 왔는데 근자에 와서 악의에 찬 인간들이 나와 불교 사이에 싸움을 붙이고자 작심한 듯합니다.
나는 싸움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불가피한 경우에는 목숨을 걸고 싸울 결심이 언제나 확고한 사람입니다. 결코 비겁하게 살다가 비겁하게 죽지는 않을 겁니다. 노병은 죽지 않습니다. 뜻을 이루기까지는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달 동안 한국사회는 한 마디로 하자면 난장판입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백날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그 시위는 드디어 폭력화되어 쇠파이프가 등장하고 전경들의 전용버스가 더러는 박살이 나고, 심지어 폭력시위를 저지하려는 경찰의 옷을 벗기는 무법천지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경제가 입은 손실이 2조는 될 것이라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혼란한 국면이 다 가라앉기도 전에 불교신도들의 집단시위가 그 뒤를 이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시위도 한 번에 끝나지 않고 되풀이 된다면 이 나라의 혼란은 가중될 것이 뻔합니다. 기독교의 장로인 17대 대통령이 편견을 가지고 불교를 홀대한다는 불교 측의 주장은 그가 서울시장으로 있던 때에도 한 번 있었습니다. 어느 기관에서 만든 지도에 불교사찰은 하나도 기재하지 않고 온통 교회의 이름과 소재지만 밝혔다고 하는데 그건 그런 지도를 만든 사람이 어리석은 것이고 그 책임이 반드시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또 어떤 지체 높은 스님이 차를 타고 어떤 사찰을 벗어나려는 마당에 그 사찰에는 촛불시위의 난동 주모자들이 피신하고 있는 터이라 젊은 순경이 잘 모르고 그 지체 높은 스님 승용차를 멈추고 트렁크를 여는 무례한 짓을 했다고 들었지만 우리 짐작에 그 경찰관은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지 반드시 불교계의 지체 높은 분이기 때문에 그 분의 승용차를 뒤진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체포영장이 떨어져 마땅히 잡아야 할 그 불법 데모 지휘자가 혹시 그 차에 타고 있지나 않은가 의심스러워 그 짓을 한 젊은 경찰관을 목을 치거나 감옥에 쳐 넣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경찰청장의 목을 잘라야 한다면 목이 백 개가 있어도 모자랄 것입니다. 더욱 논리를 비약시켜, “이명박은 사과하라. 이명박은 물러나라”고 한다면 이건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까.
국회는 국회대로 저 야단이고, 경제는 경제대로 위기 앞에 허덕이는데, 그리고 북은 다시 핵시설을 복원하여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큰 소리 치는 이 마당에 국내가 이렇게 소란해서야 남한이 무너지기를 바라는 김정일이 북에서 춤을 추지 않겠느냐는 내 말이 어디가 잘못됐다는 겁니까. 적화통일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은 자손만대에 용서 못 받을 대죄라고 믿습니다.
북은 당명이야 무엇이었건 공산당 일당 독재의 체제가 소련군의 날개 밑에서 이미 완전무결하게 자리 잡은 것을 보고 나는 북을 탈출하여 38선을 넘어 월남하였습니다. 그 날부터 지금까지 고향 없는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 때 월남하고 보니 남한은 무법천지였습니다. 혼란에 혼란이 거듭되어 질서란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48년 북조선 인민위원회는 유엔 감시하의 남북총선거를 반대했습니다. 좌우합작이니 남북협상이니 하는 타협안을 들고 나와 남한에 대한민국 단독 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극력 반대한 인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독립투사였던 이승만 박사의 주장은 달랐습니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제주도에서만이라도 독립은 반드시 성취해야 한다는 이 박사의 결심, 이 박사의 고집이 있어서 난관을 극복하고 그 해 8‧15에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이 성립된 것이 아닙니까.
만일 북과 합작하자, 북과 협상하자는 사람들 때문에 끌고 또 끌었다면 지구상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탄생하지 못했고, 끌고 또 끌다가 마침내 한반도 자유도 인권도 전혀 누리지 못하는 김일성‧김정일의 독재 밑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아무 의미도 없는 생존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분명합니다. 협상과 합작에 시간과 정력을 소모하지 않고 독립을 강행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과연 위대한 겨레의 지도자였습니다.
일전에 어떤 방송국의 라디오 대담 프로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불교승려들의 대규모 집회에 관한 나의 의견이 나의 인터넷 홈페이지(www.kimdonggill.com)를 타고 전해진 뒤라 불교 측에서 어떤 대학교수가, 기독교계에서는 내가 그 프로에 출연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회를 맡은 어느 대학 여자교수가 “김 교수께서 불교계의 시위에는 어떤 배후세력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라고 하기에 내가 “사회자의 그 말이 잘못된 것이오. 나는 배후세력이 있다고 단정하지도 않았고 단정할 능력도 없소. 다만 배후세력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을 뿐이오”라고 단호하게 반박했고 그 문제는 그 이상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불교계의 진정한 지도자들은 내가 기독교인이지만 이 나라의 불교를 존중하고 <반야바라밀다심경>을 2백 번 정독한 사실을 안다면 나를 작살내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내 주장은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어떤 움직임도 대한민국의 헌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감시의 대상이 돼야 하고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영국에는 MI-5(Military Intelligence Section 5)가 있어서, 수상조차도 예외가 아니랍니다. 누구를 만나서 무슨 말을 했는지 정보기관은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첩들의 간첩침략으로 정부나 국가가 붕괴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엊그제 강남교회에서는 탈북자 천 명을 초청한 큰 집회가 있었습니다. 김성광 목사가 시무하는 이 교회는 “탈북자들을 교회가 돌봐야 한다”는 큰 뜻을 가지고 이들을 초청, 점심도 대접하고 공연도 있었습니다.
출석하기로 되어있던 황장엽 선생은 약속했던 대로 참석을 못했고, 부시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한 바 있는 조선일보의 탈북자 강철환 기자가 황 선생을 대신하여 인사를 하였습니다. 근자에 체포된 남파 여자 간첩이 황장엽 암살 지령을 받고 탈북자를 가장, 군에 침투했던 것이 드러난 마당에 황 선생의 경호는 더욱 어렵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날 그 교회에서는 평양샬론선교단의 노래와 춤과 단막극은 우리 모두를 눈물겹게 만들었습니다. 인민군 장교의 총부리에 얻어터지며 길거리에 떨어진 곡식 한 알을 주어 입에 넣으려고 헤매 이는 굶주린 여인들의 참상이 우리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빵과 자유를 찾아 김정일의 북을 탈출, 중국에서 동남아에서 죽을 고생을 하다 대한민국 품에 안긴 이들을 정부만이 아니라 이 땅의 교회가 나서서 도와야 할 것입니다.
평양샬롬선교단의 공연은 이 나라의 지도층 인사들에게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고 믿습니다. 탈북자들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선구자들이 아닙니까. 북한 동포 100만만 탈북하면 전쟁 안 하고 통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요새 신문마다 우리나라에 노인이 너무 많아 걱정이라고 야단들입니다. 나도 노인의 한 사람으로 민망하기 조차 합니다. 국민 10명중 1명은 65세 이상이라는데 아마 지금쯤 500만은 되었을 것이니 전체 인구의 10%는 넘었을 듯 합니다. 우리도 고령사회가 된 것이지요.
그리고 더 괴로운 소식은 노인 10명중 9명은 어떤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으니 노인은 밥만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도 다니고 약도 먹어야 하니 젊은 층의 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랍니다. 나는 이제 만 80이 되었는데 솔직한 말이 정말 오래 살고 싶지 않습니다.
노인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이런 사회에 더 오래 살아서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늙으면 죽어야 해”하던 옛날 노인들의 넋두리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럽이나 미국 같은 좋은 나라에서는 한국에서보다는 훨씬 노인이 일도 많이 하고 대접도 제대로 받는 것 같아서 다소는 열등감에 사로잡히게도 합니다.
노인들에게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무슨 좋은 정책이 없겠습니까. 젊은 놈들도 머지않아 늙을 터인데 늙었다고 우리를 괄시하는 것은 큰 잘못 아닙니까. 대통령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마는 하도 답답해서 한마디 하는 바입니다. 늙지 않는 약이라도 발명하시거나 아니면 제 때 죽을 수 있는 법이라도 마련해 주셔야지요.
일전에 TV에서 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두고 열렬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패널 토론인데 사회자를 가운데 놓고 좌우에 세 사람씩 나와서 똑 같은 문제를 가지고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어서 듣는 사람들은 어느 편이 옳은지 판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사회자의 왼쪽에 자리 잡은 토론자들은 시종여일 노무현 정권의 모든 경제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을 한 번도 굽히지 않았고 사회자의 오른쪽에 앉은 토론자들은 열정적으로 새 정권의 감세정책 등을 두둔하고, 양측이 모두 한 치의 양보도 없었으므로 시청자로서는 그런 토론에서 별로 얻는 것은 없고 머릿속만 혼란할 따름이었으니 아무런 유익이 없는 토론회였다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양쪽이 모두 준비가 잘돼 있어서 경제에 관한 통계숫자를 늘어놓는데 피장파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의견의 일치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내 생각에는, 노무현 정권 때의 정책이 실패해서 어쩔 수 없이 이명박 정권이 1천 3백만표라는 엄청난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옥신각신만 하다가는 나라가 망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조세와 부동산에 관한 모든 정책을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날 그 프로를 시청하면서 나와 의견이 같은 시청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을 것이라 믿습니다. 어서 밀고 나가세요.
교육에는 가정교육이 있고 학교교육이 있습니다. 그 중간쯤에 요새는 사회교육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교육은 학교교육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학교교육이라고 해도 초등‧중등교육은 아무런 비중도 차지하지 못합니다.
대학이 있을 뿐이고 유치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좋은 대학, 이른 바 일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일 뿐, 그 자체의 교육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합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일류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 이것이 교육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각급학교의 교육이 정상화되려면 우선 가정교육이 제대로 돼야 할 것입니다. 부모는 이제 가르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수학이나 영어는 못가르치더라도 사람 되는 교육은 우선 부모가 맡아서 해야 하는데 한국의 꿈은 부모에게 그런 꿈도 힘도 없습니다. 모두가 인생의 낙오자들입니다. 과다한 학원비, 과외비가 집집마다 가계를 위협합니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상반기 국민소득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가정에서 지출한 교육비는 사교육비‧공교육비를 합하여 15조 339억원이라니 GDP의 7.2%랍니다.
해결책은 하나뿐입니다. 한 10년, 일류대학의 문을 활짝 열어 신입생을 3배정도 받게 하세요. 낮에도 밤에도 강의실을 쓰게 하세요. 부질없는 대학입시 경쟁이 10년이면 자취를 감춥니다.
북의 독재자 김정일이 중병에 걸렸다는 말도 있고 죽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정보는 없습니다. 그가 북의 인민공화국 수립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심상치 않은 사건입니다. 행사도 축소시켰다 하고 또 한참 전부터 그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니 엉뚱한 억측이 나돌 수도 있을 겁니다.
그의 아버지 김일성이 죽은 것은 1994년 여름이었다는데 그보다 몇 년 전에 “김일성 사망”이라는 신문의 1면 톱기사가 등장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국민이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어서 서울 강남 한 음식점에는 “축 김일성 사망”이라는 플랙카드가 나붙어 민망스런 느낌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걸 내 눈으로 보고 이런 내용의 글 쓴 적이 있습니다. “그건 너무하다. 사람이 죽었다는데 <축>이 뭐냐, 그 자가 생전에 한 짓은 괘심하지만 이제 죽었다니 측은한 생각이 든다”라는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는가.
열쇠장사들처럼 가슴 가득히 훈장을 달고 식전에 나와 섰는 그 한심한 인간들을 보면서, 놈들의 또 한 번의 남침에 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대통령의 첫째 임무는 나라를 지키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김정일이 죽었을 경우에도 대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9‧11 테러의 현장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전 세계가 TV를 통해 뉴욕의 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두 대의 여객기의 폭탄 자살공격으로 무너지는 광경을 우리도 목격한 셈입니다. 짧은 시간의 그 야만행위로 목숨을 잃은 죄 없는 사람들이 무려 2751명- 끔찍한 숫자입니다. 이 많은 희생자들의 가족‧친지‧친구들을 포함하면 무척 많은 사람들의 삶에 엄청난 고통을 남겨준 매우 참혹한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신인 알라의 이름으로 감행되었건 그들의 예언자인 모하메드의 이름으로 감행되었건 인륜과 도덕으로는 용서 받지 못할 만행이었습니다. 무죄한 600만의 유태인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학살한 히틀러의 만행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그 일 있은 후 7년이 지난 오늘 점차 테러의 위협에 대해 일종의 불감증에 시달리고 있는 듯합니다. 70년이 지났어도 미친 놈 히틀러와 그의 졸도들을 하루도 용서하지 않는 유태인들과는 사뭇 대조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북의 독재집단의 만행을 수 없이 겪었으면서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아 걱정입니다.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KAL 폭파 사건 등을 다 잊어버리고 북을 상대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말은 안 해도 기억은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만행을 다시는 반복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여당이 제출했던 4조 2600억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이 통과됐다고 했다가 곧 통과돼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자세한 경위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국사 처리를 어떻게 이런 식으로 하는 겁니까. 그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돼지 않은 사실이 얼마나 많은 한국인의 삶에 얼마나 큰 불행과 파멸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일인데 도대체 “이게 뭡니까”
원내에 여당 의석수가 과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몰라도, 국민은 오히려 “다수의 횡포”가 벌어질까 염려했는데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일종의 작전입니까. 10년 집권에 나라를 황폐하게 만든 오늘의 야당의 본성이나 본색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작전일 수도 있겠지요. 오늘의 야당은 건건사사 여당을 물고 늘어지는 일만 되풀이하는 것은 국민의 눈에도 아니꼽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소극적 작전에 주력하여 세월을 낭비할 수는 없는 때입니다. 17대 대통령의 임기가 10년도 아니고 20년도 아닌데 어느 세월에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그 많은 일들을 해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번 일이 예기치 않았던 패배라고 한다면 이 굴욕을 무엇으로 씻을 수 있을 겁니까. 여당의 물갈이가 불가피합니다. 의원들의 재교육이 절실합니다. 아무리 좋게 봐 주려해도 봐 줄 수가 없는 일이 아닙니까.
여당이 제출했던 4조 2600억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이 통과됐다고 했다가 곧 통과돼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자세한 경위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국사 처리를 어떻게 이런 식으로 하는 겁니까. 그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돼지 않은 사실이 얼마나 많은 한국인의 삶에 얼마나 큰 불행과 파멸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일인데 도대체 “이게 뭡니까”
원내에 여당 의석수가 과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몰라도, 국민은 오히려 “다수의 횡포”가 벌어질까 염려했는데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일종의 작전입니까. 10년 집권에 나라를 황폐하게 만든 오늘의 야당의 본성이나 본색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작전일 수도 있겠지요. 오늘의 야당은 건건사사 여당을 물고 늘어지는 일만 되풀이하는 것은 국민의 눈에도 아니꼽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소극적 작전에 주력하여 세월을 낭비할 수는 없는 때입니다. 17대 대통령의 임기가 10년도 아니고 20년도 아닌데 어느 세월에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그 많은 일들을 해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번 일이 예기치 않았던 패배라고 한다면 이 굴욕을 무엇으로 씻을 수 있을 겁니까. 여당의 물갈이가 불가피합니다. 의원들의 재교육이 절실합니다. 아무리 좋게 봐 주려해도 봐 줄 수가 없는 일이 아닙니까.
그런 유행가가 있었습니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 추석 연휴가 올해에는 길지가 않지만 그래도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고속도로를 메우고 있다는 뉴스는 실향민의 가슴에 한 가닥 서러움의 그늘을 드리웁니다. 대동강, 능라도, 모란봉, 을밀대, 청류벽, 기자묘, 단군전 -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다시 가 보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마는 금강산 관광은 김정일의 호주머니에 용돈이나 집어주는 일이고, 남북 이산가족 만나기도 제 눈에는 “센티 멘탈 넌센스”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 해 전에 이 연극에 등장하여, 서울 살던 노모를 만났던 늙은 아들 - 김일성대학의 교수라던 그 사람은 엄마가 마련해 두었다가 목에 걸어준 금목걸이 걸고 늙은 어머니 뺨을 비비며 울다 헤어졌지요. 그 어머니와 그 아들, 다시는 서로 만나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만나지 않는 것보다도 훨씬 더 슬픈 그들의 만남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치란 뭘 하는 겁니까. 팔순 넘은 엄마와 회갑 지난 아들이 한반도의 어디에서라도 함께 살 수 있게 마련해 주는 것이 정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통일이 민족의 지상 명령입니다. 하루 빨리 자유민주주의로 한반도를 통일 하세요. 영구히 독재를 꿈꾸는 공산당의 앞잡이들이 우글거리는 대한민국을 이대로 두실 겁니까. 자유라는 가치 하나만을 사수하고 나머지를 다 잃더라도 통일을 위해 싸우세요. 겨레의 뜻을 하나로 묶어, 통일 전선의 야전군 사령관이 되세요.
태양광선을 그냥 받으면 뜨겁게는 느껴지지만 불은 붙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그마한 렌즈 하나를 가지고라도 초점을 맞추면 불이 납니다. 헝겊이나 종이를 태울 수 있습니다. 무서운 에너지를 목격하게 됩니다. 인생만사도 비슷한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꿈, 가장 위대한 가치를 하나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경제도 시급하고 국방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경제 강국이 되고 군사 대국이 돼야 할 까닭이 무엇입니까. 전쟁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한 치의 자유도 인권도 누리지 못하는 북의 2300만 동포를 해방하여, 적어도 대한민국의 국민이 다 누리는 그 정도의 번영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우리의 경제가 빈약하면, 견디다 못해 휴전선을 넘어오는 북의 동포들을 돌아 볼 힘이 없게 됩니다. 남쪽의 군사력이 북을 능가하지 못하면, 북의 독재들이 잘못 판단하고 우리를 향해 대포를 쏘며 달려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유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우리의 군비가 북에 비해 월등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통일의 꿈,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을 위한 국민교육이 가장 시급한 대한민국 정부의 과제라고 믿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모두, “자는 것도 통일을 위해, 먹는 것도 통일을 위해”라는 표어 밑에 뭉쳐야 합니다. 후보시절에 이미 관상을 보고, 이명박 후보가 당선이 되면 남북통일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내가 예언한 바 있습니다.
밤낮, 핏대를 올리고 목청을 돋구어가며 나는 왜 적화통일을 경계하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까. 김정일 세상이 되면 우선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아니면 김정일의 졸도들에게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나와 같은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땅에 부지기수라는 사실을 나는 압니다.
우리들만이 아닙니다. 오늘 남한 땅에서 추석이면 고향 찾아 성묘라도 하고, 백화점에 가서 세일에는 옷이라도 몇 가지 집어 오고, 가끔 좋은 식당에 가서 계절의 미각을 돋우는 맛 나는 식사라도 하고 결혼식 끝나면 해외로 신혼여행이라도 갈 수 있는 그런 모든 “사치”가 불가능하게 된다는 사실을 나는 압니다.
그런 사실들을 다 알면서도 적화통일을 하겠다는 자는 제 정신이 아니거나 아니면 김정일 동무의 발바닥이라도 핥겠다는 천하고 더러운 놈입니다. “설마”만 되풀이하며 스스로 진보와 개혁의 선구자처럼 착각하고 있는 사이비 지성인‧지식인들이 사실은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는 겁니다. 경제적으로도 크게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은 이놈들이 몽땅 발로 밟아 뭉개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김정일은 한반도를 제 세상 되게 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은 지금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정신부터 차려야지요. 그 사람 세상 되면 우리가 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자명의 이치를 왜 모르고 김정일에게 유리한 짓만 골라서 합니까.
이번 추석에 기쁜 일이 꼭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 동안 미국 뉴욕 주 어느 감옥에 억류되어 있던 박동선 씨가 풀려나 서울에 돌아온 사실입니다. 아마 70년대의 일이었지요. “코리아 게이트”가 미국 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한 번 크게 뒤흔들었던 그 때의 그 사건을 기억하시겠지요, 그 주인공이 박동선 이었습니다.
그가 면책특권을 약속 받고 미국 의회가 주최한 청문회에 나가서 그 유창한 영어로, 당당하게 자기의 입장을 변호하던 그 늠름하던 모습은 지금도 내 눈에 선합니다. 세계 어디서나 정치판이란 얼음판 같은 것이어서 정적을 잡으려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법인데 미국이라는 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박동선은 가장 세련된 한국인 로비스트였을 겁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로비스트란 어떤 목적 때문에 관련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돈도 쓰고 향연도 베푸는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 아닙니까. 박동선이 하던 일이 그런 일이었고, 그는 워싱턴 정가의 유력인사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박동선은 그 청문회 과정에서 어느 한 사람의 이름도 거명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었기 때문에 그 청문회가 끝날 때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쉰 그 나라 정치인들이 여럿 있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5년 전에 그는 미국 아닌 나라를 여행하다가, 미국 수사당국에 납치되어 재판 아닌 재판을 받는 등, 말 못할 곤욕을 다 치르고 지난 추석 때 풀려나 돌아왔습니다. 한국인이 억울하게 납치‧억류되어 있는데도 한국 정부는 우리들의 탄원을 외면하고 매우 냉담했습니다. 그러나 박동선은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끝까지 의리를 지킨 당당한 사나이의 귀국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사람을 살리는가 하면 그것은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희망만 있으면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죽지 않으면 사는 것 아닙니까.
미국의 31대 대통령 루즈벨트(FDR)는 20대에 해군차관으로 발탁될 만큼 유능한 인물이었는데 40이 다 되어 소아마비에 걸려 휠체어를 타고 그의 인생의 후반 20여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경제공황에 시달리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미국의 지도자로만이 아니라 세계의 지도자로서 빛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미국 국민을 향해 “겁을 내지 말라. 두려하지 말라”고 외쳤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공포 그 자체다.(What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이것이 그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는 과감한 정책들을 세웠고 그 정책들을 과감하게 수행하여 미국의 경제를 살렸고,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들을 물리치고 자유세계를 수호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대통령 후보로 4번 출마하여 4번 다 당선되었습니다. 마지막 4번째 임기는 그가 취임하자 병으로 쓸어졌기 때문에 시작만 하고 끝낸 셈이지만 그의 탁월한 지도력이 미국을 살렸고 세계를 살렸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오늘 경제가 최악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모두가 야단들입니다. 물론 세계경제가 미국 대기업들의 도산의 영향을 받아 모두 허덕이는데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는 것뿐인데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불평, 불만만 터뜨리고 있습니다. 길은 우리 앞에 있습니다. 국민을 향해 “두려워 말라”고 일러주세요. 자살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삽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이 나라의 초등교육을 망치고 있다는 소문은 오래 전부터 들었습니다. 이 나라의 교육을 바로잡겠다는 큰 뜻을 가지고 선생들이 뭉쳐서 만든 전국 교원노조가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는 학부모들의 불만의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어쨌건 최근에 있었던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주 후보는 전교조를 두둔하는 사람이고 공 후보는 전교조를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하며 두 사람이 열띤 공방전을 벌렸습니다. 처음에는 주 후보가 이길 것 같다는 여론조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개표결과는 주 씨가 참패하고 공 씨가 승리하여 서울시 교육감에 취임할 수 있었습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결국 하늘은 전교조를 밟고 말았습니다.
최근에는 우리가 모르던 전교조의 비행이 연일 신문에 보도됩니다. 16개 교육청이 전교조와 맺었다는 협약문을 보면, 전교조가 교육청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충실하게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교사들이 정치에 맛을 들여 교육정책에도 간여하고 인사권까지도 쥐고 흔들게 되어있으니 “이게 뭡니까”. 교감 임용에도 노조의 입김이 작용하고 학교 신설이나 이전 또는 통폐합에도 노조의 의견을 듣지 않고는 일이 안 되게 되어 있으니, 전교조는 우리 몸에 생긴 단순한 혹입니까 악성의 암세포입니까. 빨리 손을 쓰셔야 합니다. 절대로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이러다간 나라가 망합니다.
우리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으면 어떤 긴급한 사태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의 와병설, 중병설이 세계를 소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만일 김정일이 계속 중태이거나, 갑자기 죽었다고 할 때 과연 후계자는 누가 될 것인가, 계속 1인 독재일까 집단지도체제가 될 것인가, 추측과 예언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체제가 그대로 있는 한, 새로운 독재자가 또 등장한다 하여도 큰 변화가 있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북은 계속 핵무기를 가지고 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협박‧공갈할 것이고, 북의 2300만 동포는 김일성‧김정일 독재 하에서나 마찬가지로 자유 없고 인권 없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을 것이 뻔합니다.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도 북 체제의 불안정에 우려를 표명했다고 전해집니다. 북이 만들어 갖고 있는 핵무기의 파괴력을 걱정하는 맥락에서 던져진 한 마디일 겁니다. 만일 김정일의 후계자가 핵폭탄을 하나 던지면 핵전쟁이 일어나 남쪽의 대한민국도 망하고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다 망하고 마침내 북의 인민공화국도 망하게 될 것인데, 그것은 자살행위이지요. 나는 김정일은 물론 그의 후계자들이 어느 놈도 자살할만한 용기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의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고는 통일도 없고 평화도 없습니다. 그 체제를 박살낼 수 있는 무슨 묘안이 없겠습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은 누군가. 물론 자본을 가진 기업인이죠. 그는 돈도 많이 벌고 쓰기도 잘 쓰고 좋은 옷 입고 비싼 음식 먹고 외제차나 최고급 국산 차를 굴립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사장이나 회장보다 더 힘이 센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입니다.
노동자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 없는 중에도, 조합을 만들어 가진 자에게 대들면 가진 자가 꼼짝 못하게 마련입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파업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을 것입니다. 공장의 기계가 돌아가지 못하면 그 공장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데 강성 노조가 법에 없는 파업을 되풀이하면 기업 하나가 문을 닫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극단으로 말하자면 노조가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횡포를 일삼는 것인데 그러다 망한 중소기업은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노조의 진정한 목적은 노동자의 생활향상입니다. 노임을 더 받기 위해 기업주와 맞설 필요가 있습니다. 그 밖의 다른 목적으로 노조가 뛰는 것은 모두 불법입니다. 이 나라의 전교조를 보세요. 그것은 노조가 아니라 정치단체입니다. 노동자를 위해 뛰는 단체가 아니라 모종의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불순한 집단입니다. 법으로 정치로 대처해야 합니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신지 565년, 반포하신지 568년이나 되는데 그 동안 한글이 겪은 수난은 말로 다하기 어렵습니다. 대왕께서 우리글을 창제하시고 그 때부터 중국문화의 맹신자들은 한글을 구박하고 한글이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적극 방해하는 일을 쉬지 않고 힘쓴 결과, 오늘 전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입을 모아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과학적인 표음문자라고 격찬하는 우리의 한글은 한자에 밀려 언문으로 전락, 일제 때에는 우리글 우리말이 강점자들에 의해 말살의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부터 극력 반대했던 최만리 같은 선비들이 오늘도 살아 있어서, 중국문자를 섞어 쓰지 않으면 우리는 한자문화권에서만 살아온 동양 3국 중에서 가장 뒤떨어진 나라가 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들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망상입니다.
중국과 일본이 한결같이 그 어려운 한자에 짓눌리고 시달려 저 고생을 하고 있는데 장차 한글문화권의 새 시대를 만들어야 할 한국 땅에 한자문화의 무거운 짐을 어린이들, 젊은이들의 영어의 짐도 어깨에 힘겨운데 거기다 또다시 중국글의 짐을 더 얹으려는 심보가 무엇입니까. 한국인의 일상생활에 침입을 끈질기게 시도하는 한자문화를 배격하지 않고는 우리가 새 시대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부모가 물려준 재산이 아무것도 없으면 아들‧딸은 고생하게 마련입니다. 아버지가 맡긴 큰 기업을 더욱 크게 키워 세계적인 기업을 만든 아들들이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이건희의 삼성이나 정봉구의 현대가(그의 지분은 자동차뿐이라지만) 다 그런 본보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유산이 전혀 없는 곳이 이 나라의 정계라고 한다면 좀 지나친 말이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에게 묻습니다. 이 나라의 정치판에서 한 가지라도 물려받은 좋은 유산이 있습니까. 내가 보기에는 한 가지도 없습니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고작인데 정 회장은 기업인이지 정치인이 아니었습니다. 서울 시장의 임기 4년은 경험일 뿐 결코 유산은 아닙니다. 이 대통령은 빈손으로 청와대의 주인이 되었고 정당은 여야를 막론하고 짐은 되지만 보탬은 안 됩니다. 먼저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을 모조리 깎아내리는 것 밖에 오늘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할 일이 없습니다.
집안에 어른이 필요하듯이 나라에도 연륜과 경륜이 풍부한 노장들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요 다음 총선 때부터는 정계에도 인물들을 많이 머물게 하여 우리나라에도 영국의 윌리암 글래드스톤이나 윈스턴 쳐칠 같은 거물 정치인들이 유산 있는 정치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나라에 평화봉사단원으로 와서 일한 경험이 있는 스티븐스 여사가 미국 대사가 되어 서울에 돌아온다는 소문이 있을 때부터 한국인의 가슴은 설레 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을 잘 알고 한국을 사랑할 뿐 아니라 한국어가 유창한 그가 북미합중국의 대표가 되어 미국을 위해 그리고 한국을 위해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그렇게 반가웠고, 그가 오는 날을 기다린 것도 사실입니다.
그는 공항에 내려서 기자회견에서 첫 마디가 “심은경입니다”이었고, 계속 우리말로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여 모든 한국인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였습니다. 정부수립 후 지난 60년의 세월 속에서 수많은 주한미 대사들이 오고 갔지만 이번에 부임한 스티븐스 대사만큼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미국대사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다른 어느 나라와의 관계보다도 한미 간의 우의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이때에 이런 훌륭한 친구가 대사로 부임을 했으니 크나 큰 축복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를 심은경 으로만 알고 그렇게만 대하면 큰 잘못입니다. 그는 스티븐스라는 이름을 가진 주한미대사입니다. “심은경”은 흘러간 옛날의 한 토막 추억일 뿐입니다. 스티븐스를 “심은경”으로만 알고 그를 괴롭히는 일은 절대 있어선 안 된다고 믿습니다. 한국에 대한 그의 아름답고 슬픈 추억을 건드리는 일은 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과자에서 멜라민이 검출되어 중국에서 만든 해태 과자 ‘미시랑’은 2600여 봉지가 유통 중이라 긴급 회수가 불가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과자에 독이 들어 있다니 사람을 죽일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인간이 이런 짓을 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야채도 생선도 만두도 중국서 오는 것은 안심하고 먹어선 안 된다는 경고가 뜨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중국의 경제 성장은 세계를 놀라게 만들고 있습니다. 군사력의 증강도 선진국들에게는 하나의 공포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북한을 사이에 두고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우리로서는 6‧25 때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통일의 꿈도 깨어지고 말았지만 그 악몽이 가끔 되살아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난 8월에 있었던 북경 올림픽이 예상외로 호화찬란했던 것도 국력을 과시하기 위함이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국은 무엇을 노리고 있습니까. 세계정복입니까. 400년 전에 대서양의 새 시대를 주도한 영국이나, 100년 전에 그 바톤을 이어받은 미국은 사람이 먹이선 안 될 먹거리를 만들어 파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늘의 중국의 철학이 무엇인가, 가치관이 무엇인가 묻고 싶습니다. 힘만 있으면 세계를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입니다. 중국이 징기스칸의 몽골처럼 되어 이 시대의 폭군이 되는 것을 원하는 나라도 원하는 백성도 없습니다.
1948년에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이 날까지 이 씨 성을 가진 분 두 사람이 이 나라의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초대 대통령이 이 씨였고 17대 대통령이 또한 이 씨입니다. 초대 대통령 이 씨는 엄청나게 크고 대담한 지도자였습니다.
일제하에는 독립투사였고 해방 된 조국에 돌아와서는 좌‧우 격돌의 혼란 속에서, 남‧북 협상의 어처구니없는 가면무도회에 나가 춤출 것을 거절하고, 유엔 감시 하에 총선거를 실시하고 김일성의 반대와 그 졸도들의 방해공작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대한민국을 수립하는 일에 성공했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대립‧반복‧분쟁 속에서 살아남는 길은 자유가 살아 숨 쉬는 신생 공화국을 세워야 한다는 그의 투철한 의지와 신념이 없었던 들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습니까.
인민군의 불법 남침을 물리치기 위해 그는 유엔군의 참전을 종용했고, 드디어 9‧28 수복의 기적을 탄생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중공군이 끼어들어 후퇴가 다시금 불가피하게 되었을 때에도 그의 자세는 의연했고 그의 태도는 당당하였습니다. 김일성의 생지옥으로 돌아가기를 원치않던 그 많은 반공포로들을 유엔군의 반대를 무릅쓰고 석방,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살라고 하였으니 그는 과연 대장부였습니다.
같은 이 씨 성을 가진 17대 대통령이시어, 큰 정치를 하세요. 대운하 건설의 꿈을 버리면 안됩니다. 그리고 박근혜, 이회창도 끌어 안으세요. 야당도 그 품에 안으세요. 때가 되었으니 큰 정치를 하세요.
이명박 후보를 작년 12월 큰 표 차로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은 이 나라의 민주적 저력이었습니다. 그 힘을 우리는 전 세계에 과시한 셈입니다. 발전도상에 있는 동남아나 아프리카의 나라들로서는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민주적 행진이었다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중국은 물론이요, G7에 끼어있는 일본도 한국의 민주주의를 보고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과연 한국이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나라인가 아닌가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하루나 이틀에 끝이 났다면 그것은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고 오히려 애교로 보고 미소로 맞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처구니없는 시위가 난동으로 번지고 폭행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가운데 석 달하고도 열흘이나 더 되풀이되는 것을 보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야당 의원들 중에 그 시위에 합세하는 자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의회정치를 적신호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아 대한민국 국회의 의석을 차지한 사람들이 불법시위에 가담한다면 민주적 질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닙니까. 어떤 사회도 질서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자율이 없으면 타율 밖에 없습니다. 불법을 자행하는 야당들과 노조들을 다스리지 못하면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다고 믿습니다.
전 세계의 언론이 계속 멜라민 공포를 보도합니다. 일부 중국인이 돈에 눈이 어두워 우유의 양을 늘리기 위해 물을 섞고 독약이 될 수도 있는 멜라민을 투입, 단백질의 양을 늘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든 유명 상표의 우유를 먹고 병에 걸려 주사바늘을 꽂고 울어대는 중국의 어린 것들을 TV의 화면으로 지켜보면서 양심이 살아있는 세계인은 누구나 가슴 아픈 느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 동안 중국인이 그런 식으로 만들어 전 세계에 팔아먹은 불량식품, 불량물품들을 보면서 중국이 앞으로 군사대국이 되고 경제대국이 된다는 사실에 호감을 갖는 사람은 없고, 그것이 인류전체의 큰 재앙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중국과 국경을 함께 가지고 살아야 하는 한국인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최근에도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어선을 검문검색하다 숨진 박경조 경사는 중국 선원들이 휘두르는 삽에 머리를 맞아 바다에 추락한 것이 확인된답니다. 이런 인간들이 중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단 당하고 보니 치가 떨립니다.
우리 역사 5000년에 중국인으로부터 받은 피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심각한데 민주주의 밝은 세상이 되어도 중국은 저렇게 밖에 못하나 생각하니 이 겨레의 앞날이 더욱 걱정스럽습니다. 중국을 이기는 길을 빨리 모색해야겠습니다. 요새 한국에는 중국을 두둔하고 나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편을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이용훈 대법원장이 대법원 강당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는 가운데, 60년의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자랑할 만한 일들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고, “권위주의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법관이 올곧은 자세를 지키지 못해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질서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고 자백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답니다. “대법원장으로서 과거 우리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드린데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많은 한국인이 흐뭇한 느낌을 가졌을 것입니다. 이 대법원장은 ‘참여정권’하에서 사법부의 수장으로 취임하던 3년 전에도 사법부의 과거를 반성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밝힌 바 있었습니다.
다만 이 원장에 묻고 싶은 한 마디는 “지난 3년 동안은 사법부가 정말 정권과 금권으로부터 자유로 왔습니까”하는 것입니다. 판사가 부장판사 될 생각을 버리고, 검사가 검찰총장 될 욕심을 포기하고 재판에 임하였다면 나라가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법관들이 출세의 야망을 떠나고 돈의 유혹을 물리치고 법의 공정한 집행만을 힘쓴다면 이 나라는 머지않아 세계를 이끌고 나가는 1등 국가가 될 것입니다. 양심의 소리를 들은 듯하여 마음이 흐뭇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벌어진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이들은 이 대통령을 가리켜 “억세게 운이 나쁜 사나이”라고 합니다. 미국에 밀어닥친 금융위기가 전 세계의 경제적 위기를 조성하는 가운데 한국이 예외가 될 수가 없습니다. 주로 중동에서 생산되는 석유 값이 천정을 모르고 치솟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산업이 큰 타격을 받게 마련이고 국민의 경제생활이 많이 위축된 사실 또한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 나라의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국민적 기대 속에 당선된 대통령에게 너무나 가혹한 시련이라고 느껴집니다.
정치에 경험이 없는 대통령인지라 취임하기 전부터 실수가 너무 많았습니다. 정권인수위원회는 어리석다 못해 한심한 짓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 정부를 위해 일해야 할 평생공무원들을 너무 많이 원수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취임한 뒤에도 그들과 손발이 맞지 않아 줄곧 정부 내에는 불협화음 뿐이었습니다. 청와대와 내각을 따분한 사람들로 채우니 정치가 따분하다는 느낌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운하 건설계획을 일부 인사들의 반대 때문에 포기할 뜻을 밝혔을 때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셈입니다.
그러나 역경은 오히려 유능한 인재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마련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역경을 뚫고 나가세요.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정치 지도자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한 때 프랑스는 히틀러의 침략을 물리치지 못하여 괴뢰정권이 탄생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에게는 지하 저항운동을 총지휘하는 드골이라는 위대한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국민의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영국에는 윈스턴 처칠이라는 대단한 사나이가 있어서 히틀러의 폭격기가 런던 시가지를 사정없이 때리는 위기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영국인은 자유라는 그들의 전통적 가치를 사수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만 있으면, 지도자만 있으면, 우리도 우리가 직면한 이 총체적 난국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해방 이후 줄곧 한국의 정치를 지켜보며 그 속에서 살았습니다. 내가 보기에 기회를 얻지 못해 불행하게 끝난 정치 지도자는 조병옥과 신익희였습니다. 그 두 사람을 키웠다면 6‧25를 겪은 대한민국이 오늘처럼 초라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한국정치의 오늘을 예의 주시할 때 꼭 키워야 할 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한나라당의 박근혜 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새로 떠오르는 이 별을 띠우지 않고 밟으면 이 겨레를 위해 못할 짓을 하는 겁니다. 그를 우선 기회를 봐 국무총리에 지명하고 조각 일체를 그에게 일임하세요.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만 관장하고 그에게 정치를 한 번 맡겨 보세요. 대한민국에 새 바람이, 참신한 바람이 불 것입니다.
<삼국유사>에 처음 4341년 전 이 나라를 세운 단군이 등장합니다. 어느 나라의 건국에나 신화는 따르게 마련이니까 오늘의 상식으로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단군조선은 뜻이라고 할까 이념이라고 할까, 모종의 꿈을 가지고 출발한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건국의 설화를 가진 다른 여러 고대국가들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이념, 그 가치를 요약한 것이 “홍익인간” 이었다고 짐작됩니다. “널리 사람에게 유익을 준다”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인데, “세계화”니 “글로벌리즘”이니 하는 것을 따지고 보면 “홍익인간”입니다. 현대인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풀이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전 세계가 떠드는 “세계화”는 내용에 있어서는 개인과 집단의 이기주의가 도사리고 있어서 평화적 발전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홍익인간”은 순수하고, 나만을 위함이 아니라 남을 더욱 받드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5,000년 가까이 그런 높은 국가적 사명을 가진 우리가 잘못된 정치 때문에 한 번도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백성은 줄곧 시달리기만 하였습니다. 임진왜란만 해도 주상을 에워 싼 잘못된 지도층 때문에 나라는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백성은 헐벗고 굶주렸고, 왜적에 의해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가치입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대한민국입니다.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킵시다. 단군의 높은 뜻을 구현합시다.
이틀 전에 나는 여든 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가까운 이들이 우리 집 마당에서 200명 넘게 모이는 엄청나게 큰 생일 파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조상 때부터 많은 손님이 있을 때에는 냉면을 대접합니다. 아마도 반세기 가까운 전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 것도 사리 위에 얹은 것이 없는 냉면- 모윤숙 시인이 젓가락을 들고 우리 집 냉면그릇을 굽어보면서, “이게 나체 냉면이구만”하던 그 음성이 지금도 내 귀에 쟁쟁합니다.
오랜 세월 인생길을 함께 더듬어온 친구들도 많고, 누구라 하면 다 알만한 유명 인사들도 여럿 찾아 주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황장엽 선생이 자리를 함께해 주신 것은 매우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껴안고 사나이들의 눈에 눈물이 어리었습니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그가 겪은 개인적 희생은 눈물 없이는 돌이켜 볼 수 없을 겁니다. 나의 친 형님 같은 황장엽 선생입니다.
이번 잔치에 박동선 씨가 찾아와 자리를 함께 해 준 것도 또한 매우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는 나의 친구의 동생인데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내 동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유능할 뿐 아니라 나라 사랑의 정신이 뚜렷한 인물입니다. 그 사실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그를 두들겨 팬 한국과 미국의 고약한 인간들이 원망스럽습니다. 가을은 깊어가고 나의 인생의 섣달 그믐날도 이제 멀지 않다는 생각에 혼자 미소 짓는 뜻 깊은 하루였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첫댓글 이 나라 원로 어르신의 충정어린 민족사랑의 장문 잘 보았습니다. 한민족의 홍익인간 사상을 지구촌 모든이들이 공감하게 우리모두 하나로 뭉쳐서 이루어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