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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이리초등학교 개교 백년사(百年史)
먼저 모교 개교 100년사 편찬 준비를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신 안춘근 선배님께 고개 숙여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올립니다.
선배님을 뵌 적은 없으나 카페에 모교 100년사 관련 많은 소중한 자료를 발굴하여 올려주시는 것을 보니 “역사의 전환점은 다수에 의해 가능하나 역사의 발전과 지속은 열정을 가진 소수와 묵묵히 지지하는 다수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저도 동문의 한 사람으로서 내년에 치러야 하는 개교 100주년 행사에 대한 동문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고취하고자 안춘근 선배님께서 올려주신 소중한 자료를 기초로 저 나름대로 “미리 보는 모교 개교 100년사”란 제목으로 정리하여 올려봅니다.
이리초등학교 연혁
-1913년 3월 31일 사찰에서 자영하여 온 사립보통학교를 지역의 유지인 김인형(金仁炯)이 인계받아 이리공립보통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음. -1915년 4월 10일 남학생 20명을 1학급으로 편성하여 개교. -1915년 9월 1일 학교의 터를 익산군 이리읍 마동 260번지로 정하고 75평 크기의 학교 건물을 나무로 지었다. 당시 익산면장이었던 이인징(李仁徵)이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땅 1,000평을 학교 부지로 기증. -1921년 4월 1일 수업연한을 4년제에서 6년제로 변경. -1938년 4월 1일 교명을 “이리일출공립심상소학교”로 개칭함, -1941년 4월 1일에는 다시 “이리일출공립국민학교”로 개칭함. -광복 후인 1945년 9월 25일, 일제의 패방과 함께 닫혔던 학교의 문이 다시 열렸고 -1945년 10월 1일 이리중앙국민학교가 개설되면서 여학생 15학급을 떼어줌. -1946년 6월 1일 교명을 이리국민학교라 개칭하였다. -1950년 6월 전쟁 중에 교실 상당수가 불에 타 소멸됨. -1951년 7월 1일 고현국민학교가 개설되면서 학생 96명을 떼어줌. -1953년 10월 10일에는 광복 후 처음으로 가을 대 운동회를 개최. -1954년 4월 1일 여자 16학급, 남자 20학급, 총 36학급으로 학급을 편성. -1996년 3월 1일 이리초등학교로 개칭하였다. -2015년 4월 10일 이리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아래 그림】우리 모교는 1913년 3월 31일 사찰에서 자영하여 온 사립보통학교를 지역의 유지인 김인형(金仁炯) 선생이 인계받아 이리공립보통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1915년 4월 10일 남학생 20명을 1학급으로 편성하여 개교하였다.
그리고 그해 9월 학교의 터를 익산군 이리읍 마동 260번지로 정하고 75평 크기의 학교 건물을 나무로 지었다. 당시 익산면장이었던 이인징(李仁徵) 선생이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땅 1,000평을 학교 부지로 기증하였다.
모교 이리초등학교가 개교하던 1915년은 일제강점기로 한국사적 측면에서는 이시영 선생 등 30여 명이 비밀결사인 조선국권회복단을 조직하던 때이며,
세계사적으로는 전년도인 1914년에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으며, 1915년은 독일이 바르샤바를 점령한 해이다.
【아래 그림】우리모교는 1915년 개교를 하면서 다음해인 1916년 3월 23일 2명의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게 된다.
우리 모교는 1915년 개교를 하면서 신입생만 받은 게 아니라 기존에 사찰에서 운영하던 학교를 다니던 4학년생들도 함께 받았고, 당시에는 학제가 4년제로 1915년도에 4학년이던 학생들이 다음해인 1916년도 첫 1회 졸업생이 되다보니 우리 모교는 1915년이 개교년도가 되면서 2015년에 99회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2015년도가 또한 개교 100주년이 되는 것이다.
【아래 그림】그리고 1917년 3월에 제2회 졸업생으로 11명을 배출하게 된다.
1917년 1월에 춘원 이광수 선생께서 매일신보에 장편소설 무정을 연재하게 시작한 시기이다.
【아래 그림】1918년 3월에는 제3회 졸업생으로 16명을 배출하게 된다.
1910년대의 일제의 교육은 황국신민화교육으로 즉 식민지 지배에 순종하는 황국신민화가 목표여서 헌병경찰 통치시대로 학교 선생님들도 칼을 옆에 차고 다녔다
【아래 그림】1919년 제4회 졸업생(34명) 시절에는 여자선생님도 계셨다.
【아래 그림】1920년 제5회 졸업생(38명) 시절에는 제복 입고 칼을 찬 선생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일본인 선생님도 제복 대신 양복을 입고 있으며, 두루마기를 입은 조선인 선생님도 다섯 분이나 보인다.
그 이유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일제는 무조건적인 강압통지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고 소위 ‘문화통치’라는 걸을 내세우게 된 게 그 이유가 아닌가 싶다.
【아래 그림】1920년도에 학제가 4년에서 6년으로 연장됨에 따라 1920년도와 1921년도에는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하게 된다.
2년 후인 1922년에 제 6회 졸업생을 5명을 배출한다. 졸업생이 급격히 줄어든 것은 아마도 학제가 연장되다 보니까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학생들이 많아서가 아닌가 싶다.
【아래 그림】1923년도에는 제7회 졸업생으로 17명을 배출하게 된다. 7회 졸업생이 17명인데 졸업사진 속의 학생 수는 그보다 훨씬 많다.
사진 밑에 새겨진 글씨를 자세히 읽어보면 “졸업생(卒業生) 기념”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4년 수업생(修業生) 기념”이라고 적혀있다. 즉 6년을 다닌 졸업생과 4년을 수료한 학생들이 함께 찍었기 때문에 사진 속의 학생 수가 36명이 된다.
【아래 그림】1924년도에는 제8회 졸업생으로 16명을 배출하게 된다.
【아래 그림】1925년도에는 제9회 졸업생으로 48명을 배출하게 되어 졸업생 수가 증가하였다.
【아래 그림】1926년도에는 제10회 졸업생으로 97명을 배출하게 되어 졸업생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다.
【아래 그림】1927년도에도 졸업생 수가 증가하여 제11회 졸업생으로 133명으로 드디어 졸업생 수가 100명을 넘게 된다.
【아래 그림】1927년도 제11회 졸업식에서는 개교 이래 처음으로 여자졸업생 23명을 배출하게 된다.
아마 이분들 중에는 현재까지 생존해 계신 분도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8살에 입학하고 1927년에 6년제 초등학교를 졸업하셨으면 1914년생 정도라고 가정하면 현재 연세가 100세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1928년도 제12회에선 10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되는데 졸업사진은 없고, 1929년도 제13회에선 118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된다. 그런데 사진 속의 학생 수는 52명밖에 되질 않는다. 아마 여자졸업생들은 별도로 졸업사진을 찍어서 그렇지 않나 싶다.
【아래 그림】1930년도 제14회에선 98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된다.
【아래 그림】1930년도 제14회에선 여자졸업생도 25명을 배출하게 된다.
【아래 그림】1931년도 제15회에선 9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된다.
【아래 그림】1931년도 제15회에선 여자졸업생도 24명을 배출하게 된다.
【아래 그림】1932년도 제16회에선 9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된다.
【아래 그림】1933년도 제17회에선 12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남녀 졸업생이 함께 졸업사진을 찍는다.
【아래 그림】1934년도 제18회에선 123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되는데 사진 속에서는 1933년이라고 표기하고 있으나 1934년도가 맞을 것 같다.
【아래 그림】1935년도 제19회에선 132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된다.
【아래 그림】1936년도 제20회에선 17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된다. 1936년도 8월 베를린올필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우승을 하게 된다.
【아래 그림】1937년도 제21회에선 14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되는데 졸업사진은 없고 1938년도 제22회에선 13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된다.
【아래 그림】1939년도 제23회에선 14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된다.
1939년은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이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대독 선전포고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해이다.
【아래 그림】1939년도 모교가 전라북도 야구대회에서 우승한 기념사진
【아래 그림】1939년도 체육대회 모습을 담은 사진
【아래 그림】46회 졸업앨범
【아래 그림】46회 수학여행
【아래 그림】1968년도 제17회 전국 초등학교대항 주산경기대회에서 우승한 기념사진
【아래 그림】57회 스승의 날 은사님을 모시고...
【아래 그림】60회 동창회 소식
【아래 그림】62회 졸업앨범
【아래 그림】이리초등학교는 그 후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를 지나고 8.15광복과 함께 여명기를 맞아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면서 발전기와 중흥기를 거져 2014년도에는 98회 졸업생까지 총 31,999명의 졸업동문을 배출하게 된다.
【아래 그림】모교관련 소식을 전한 신문기사 모음
【아래 그림】역대 교장선생님
【아래 그림】재학생 후배들의 개교 백년 그리기
【아래 그림】총동창회 활동
【아래 그림】재경동창회장 이취임식
【아래 그림】재경동창회 Work-Shop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소회(所懷)
금년은 우리 모교 이리초등학교가 문을 연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 이리초등학교는 일제 강점기인 1915년 구한말의 왕권정치를 지나 개화기 시대에 발맞추어 익산지역 개화와 신교육의 산실인 “정화의 요람”이라는 건학이념에 따라 교육을 통하여 학생들에게 사회적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올바른 규범과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는 교육의 전당으로 설립되었다. 그 동안 배출한 약 3만 3천의 졸업동문들이 사회 각층에서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결과 오늘날 익산지역 명문초등학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우리 모교가 개교한지 100주년이 되었으니, 우리 사람으로 말하면 100세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한 세기를 넘으면 사람이나 사물은 '역사'로 기념된다. 왜냐하면 100년이란 시간은 단순히 물리적 시간의 누적에 그치지 않고 그 나이테 속에 한 나라, 한 사회의 부침과 희비와 온갖 곡절들이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거기엔 물론 아직도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0년을 넘지 못하는 까닭도 있을 것이다. 굳이 아흔아홉을 '일백 백(百)'에서 '한 일(一)'을 뺀 '백수(白壽)'라 부르는 까닭도 그 백년이 쉬 다다를 수 없는 시간이라는 반증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한편으로는 연륜의 깊이를 새삼 되새기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렇듯 우리 모교도 나이가 100세가 되었으니 익산지역 명문초등학교로서 동문 상호간 다양한 교류를 통하여 소통과 협력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동문회를 만들어 모교와 후배들에게 더 큰 관심과 사랑으로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동문 선후배 그리고 재학생 모두 ‘일출인’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지난 100년을 바탕으로 더욱 더 힘찬 앞으로의 미래 100년을 준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 이번 기회에 동문의 한사람으로서 그 동안 모교의 초석을 다지고 성장의 밑거름이 되셨던 많은 선후배님들께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또한 이 순간에도 모교의 발전을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일출 동문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현재 우리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급변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직면해 있다. 교육조차도 경쟁과 시장의 논리에 지배되고 있는 시대다. 이제 중요한 것은 지난 100년의 영광이 아니라 직면하고 있는 도전에 대한 대응이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우리는 오늘 우리 모교와 동문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현재 익산지역 다른 초등학교들은 한 학년이 5∼6반씩 되는데 우리 모교는 과거 10반 이상 이던 학급은 최근에는 2반으로 줄어들었다. 지난 100년처럼 미래의 100년에도 우수한 많은 동문들을 배출하여 우리 모교가 명문학교로서의 전통과 역사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익산에서 발전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학교 이전을 검토해 봐야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우리 모교는 앞으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물론이거니와 올바른 규범과 윤리를 고루 갖춘 학생으로 교육시켜야 하며, 아울러 이들이 일출동문으로서의 Leadership과 함께 도덕적 품성도 갖추도록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지식과 인성을 원만하게 갖출 때 비로소 이 사회의 빛이 되는 참 ‘일출인’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서 크고 작은 개혁을 두려워해서도 멈추어서도 안 될 것이다. 모든 일출 동문이 거듭난다는 각오로 지혜를 모아 우리 모교와 동문회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이리초등학교가 지난 100년 역사의 자랑스러운 금자탑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구성원 모두가 자긍심과 애교심을 갖고 서로 화합하고 단결한 결과이다. 그리고 금년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다시 한 번 구성원 모두의 정성과 힘을 모아 서로 신뢰하고 화합하는 동문회, 건실하고 지성과 덕성이 넘치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 100년 동안 여러 선배님들이 그래왔듯이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시작하는 금년을 제2의 개교라는 생각으로 일출 동문 모두가 창립의 주역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며, 끝으로 개교 100주년의 경사를 맞이하여 일출동문 모든 분들께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4월 10일 57회 이화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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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상에나... 졸업사진을 어케 이러게 보존했대요... 대단하시네요. 근디 이화구님은 안보이는거 같아요.
사진찍으시니라고..그런가요
역대교장 6명은 알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