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 : 다음백과 / 사마천/司馬遷 (BC145 ~ BC86)
사마천의 저서 사기(史記)에 나오는 위세가에 대한 글을 주 1회 단위로 게재하고자 한다. 총 30회 가량된다. 글의 출처는 세계위씨종친회 홈피이다.
사마천은 문서를 정리하고 기록을 담당하는 관직인 태사령이었다. 이는 아버지의 관직을 이어 받은 것이었다. 사마천과 같이 태사령이었던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기원전 110년 병환으로 사망하며 아들인 사마천에게 자신이 저술하던 역사서의 편찬을 완료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당시 사마천의 나이는 36세였고, 사마천이 "사기" 를 완성한 것은 그때로부터 19년이 지난 55세 때였다.
그가 "사기" 를 저술할 때는 종이가 발명되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죽간과 목간에 526,500자의 한문을 칼로 새겨 기록하였다고 한다.
기원전 99년 사마천은 흉노에 항복한 '이릉' 이라는 장군을 비호하다가 한의 효무제에게 태사령 직책을 파면당하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죽음을 면하는 방법은 엄청난 액수의 벌금을 내거나 궁형(宮刑)을 받는 것이었다. 궁형은 생식기를 자르는 치욕스러운 형벌이었다. 사마천은 궁형을 선택하여 치욕스러움을 견디고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역사서 편찬을 완성하고자 하였다. 그것이 자기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사명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글출처 : 다음백과)
위씨들의 선조는 필공(畢公) 고(高)의 후손들이다. 필공 고는 주왕실과 동성인 희씨(姬氏) 성이다. 주무왕(周武王)이 주왕(紂王)을 토벌할 때 고(高)는 필(畢) 땅에 봉해졌다. 그래서 성을 필(畢)이라고 했다. 후대에 이르러 봉작이 끊겨 평민으로 전락하여 일부는 중원으로 다른 일부는 이적(夷狄)의 땅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그의 후손 중에 필만(畢萬)이라고 있었는데 당진(唐晉) 헌공(獻公)의 신하가 되었다.
진헌공(晉獻公) 16년 (기원전 661년) 조숙(趙夙)은 어자(御者)로 필만은 차우(車右)가 되어 헌공(獻公)을 호위하여 곽(霍), 경(耿), 위(魏)를 정벌하여 멸하고 당진의 땅으로 병합하였다. 경(耿) 땅에는 조숙을 위(魏) 땅에는 필만을 봉하여 대부로 삼았다. 복자(卜者)인 언(偃)이 말했다.
“ 필만의 후손을 필시 크게 귀하게 될 것이다. 만(萬)은 모두 채워진 수다. 위(魏)는 큰 이름이다. 이것은 하늘이 봉작(封爵)과 상을 크게 내려 위씨를 도우려고 하는 것이다. 억조(億兆)의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을 천자라 하고 만민을 다스리는 사람을 제후라 한다. 금일에 그가 봉해진 고을의 이름이 크고, 이어서 가득 채워진 수가 뒤따르니 그의 후손은 필시 많은 백성들을 포용하게 될 것이다.”
당초에 필만이 점을 치던 시자(侍者)에게 당진의 군주에 대해 길흉을 물었다. <둔(屯)>이라는 점괘와 그 변괘(變卦)로 <비(比)>를 얻었다. 신료(辛廖)라는 사람이 점괘를 해석하였다.
“ 길하다고 하겠습니다. 둔괘(屯卦)의 상은 견고한 것을 차지한다는 뜻이며 비괘(比卦)의 상은 그것을 차지하여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니 어찌 이 점괘보다 길한 것이 있겠습니까? 장차 자손이 번성하여 크게 일어날 것입니다.”
필만이 위(魏) 땅에 봉해진 후 11년 되는 해에 당진의 헌공이 죽었다. 당진의 헌공의 네 아들이 군위를 놓고 서로 싸워 당진은 내란에 휩쓸리게 되었다. 그러나 필만의 자손들은 시간이 갈수록 계속 늘어만 갔다. 이어서 그들의 종족과 영지 이름을 위(魏)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필만이 위무자(魏武子)를 낳았다. 위무자는 위씨의 아들 신분으로 당진의 공자 중이(重耳)를 섬겼다. 당진의 헌공 21년에 위무자는 중이가 유망(流亡)의 길을 떠날 때 같이 따라가 19년 후에 다시 당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중이가 환국하여 당진의 군주 자리에 올랐다. 이가 진문공(晉文公)이다. 문공이 위무자에게 위씨의 작위와 봉지를 이어 받게 하고 대부의 대열에 서게 하였다. 위무자가 자기 봉지를 다스리기 위해 위읍(魏邑)을 축조하여 관부(官府)로 삼았다. 위무자는 도자(悼子)를 낳았다. (글출처 : 세계위씨종친회)
혹시 문중 선대에서 가지고 계셨던 글이나 자료를 밴드에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몇몇 종친들께 선대의 글을 올릴 것을 부탁했으나 아직 결정이 되지 않아서 부득이 사마천의 위세가를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연재할 글이 있다고 연락주시면 이 글은 뒤로 미루고 우선권을 드리겠습니다. 이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세계위씨종친회 카페 운영자와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본인을 밝히기 거부해 부득이 출처만 게재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휼륭하신 조상님들의 피를 가진 위대한 후손들이네요.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덕분에 뿌리 공부 잘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