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Paul의 발자취를 따라서- 2007 Part II
Greece 여행
카발라 (Kavala)
1) “행전 16:11-12”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시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포리스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필립비로 갔다.”
여기서말하는 “네아포리스 (Neapolis)” 가 바로 현재는 “카발라”라고 하는 항구도시. Puritan들이 영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처음 미국에 도착한것을 기념하는 도시인 Boston 근처의 Plymouth를 연상하는 자리이다. Plymouth 는 서울의 민속촌 같은 마을로 제일 의미가 있는것은 우물 같은데 큰 바위 돌 하나 를 묘셔 (?) 놓고 ‘여기가 Puritan 들이 상육한 자리이다’ 라고 기념하는 자리이다. 이 카발라에는 St Paul께서 상륙하신것을 기념하는 자리는 동방정교회 (Orthodox Church) 하나가 있더군. 이 도시에는 특히 Russia에서 Russian Orthodox Christian을이 많이순례를 온다는 현지 가이드가 설명.
2) “행전 16: 9”
“어느날 밤 바오로는 거기에서 신비로운 영상을 보았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오로 앞에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와 주십시요’ 하고 간청하였던 것이다.”
자그마한 정교회 건물에 도착하니 그 교회 건물은 들어 갈수는 없지만 그 교회 전면 벽에 정교하게 만든 모자익의 그림이 눈에 뛴다. 그 모자익은 한편은 St Paul께서 꿈에 Alexander 대왕이 나타나 “어서 와서 우리 나라 사람들을 구해달라”고 청하는 것을 듣는 장면이고 바른 쪽으로는 St Paul께서 Asia에서 구라파 (= Kavala, = Neopolis)로 건너가는 장면을 그린 모자익 그림이었다. 그때야 그저 그러니 하고 넘어 갔지만 순례를 마친뒤 성경을 다시보니 위와 같은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전에도 읽었었겠지만 그게 머리에 남아 있을만하게 신경을 쓴것이 아니었다.
성경에야 그저 “마케도니아 사람”이 라고 나와 있어 우리가 그 구절을 읽을때 무심히 지나치는 구절이겠으나 마케도니아 사람 (=북부 그리스 사람) 의 입장에서는 성경에 나오는 그 “마케도니아 사람”이 바로 “Alexander 대왕” 이라고 보는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런 모자익 그림을 그려 벽을 장식해 멀리서 찾아 오는 순례객의 발거름을 멈춰 성경의 이야기를 느끼게 해 준다.
필립파이 (Philipi)
1) 항구 도시Kavala (Neapolis) 에서 산하나 넘어가면 넓고 기름진 평원이 나오는데 이 곳이 바로 옛날의 필리파이. 이 도시는 Alexander 대왕의 아버지 필립 2世가 자기 이름을 따서 명명한 도시로 Roma 의 장군들 (Anthony and Octavian 군대와 과 Brutus and Cassius군대 사이) 끼리 전투가 전개된 역사적 격전장이었다고 하는군.
(駐: 성경에나오는 지명으로 앞으로 나올 지명들, 필립보, 테사로니카, 고린도, 아테네, 에페소 등등은 현재는 고대 유적지나 그 당시는 모두 대 도시들이었다는 것을 꼭 염두에 두어야한다.)
2) “행전 16:14”
“그들 가운데 리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 . . . . . . 하느님을 공경하는 여자였다. . . . . . . 리디아는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세례를 받고 . . . . . .”
St Paul께서 이 도시에 세운 교회가 구라파에서 처음 세워진 Christian 교회이며 또 리디아 (Lydia)라는 여자 에게 세례를 주셨는데 이 Lydia가 구라파에서 최초로 Christian이 된 사람이다. 그리고 이분은 성인품에 오르셔 St. Lydia로 불리는 분이다. 이 St Lydia가 세례를 받은 장소쯤 될만한 냇가에 조그맣게 만들어 놓은 기념탑 앞에서 우리 구릅 몇 사람끼리 미사를 지냈는데 그 감회 또한 적지 않았다. 우리 구릅의 지도 신부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젊은 신부로 인도에서 오신분 이었다. 성당 같으면 St Lydia의 동상을 만들어 세울 법한데 그리스 정교에서는 동상 (Statue)이 없고 전부 그림이나 모자익이라 여기에도 St Lydia의 동상은 없고 단지 쪼그마한 그림만 붙여 있드군. 이 성경 구절에 특히 눈에 띄는것은 세례 받기전의 Lydia를 “하느님을 공경하는” 사람으로 St Paul께서 표현 하셨다는 사실이다. Christian이 아니드라도 “하느님을 공경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하신 말씀으로 알아들을수 있다는것이다.
3)그리고 추후 (우리 나이 30세쯤 되었을때) 이 필립파이 의 신자들에게 St Paul께서 편지를 쓰시었는데
a) 복음의 교리 (for the faith of the gospel) 에 충실하고 서로 화합해 살것이며,
b) 하느님과 우리와의올바른 관계는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고 ) 내가 그리스도를 믿을때 내 믿음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세워주시느거라는 설명.
c) 이를 신학 용어로는 “믿음으로 義化 – justification by faith” 라고한다
테사로니카 (Thesaloniki)
1) 마케도니아 지방의 최대 도시인 항구 도시. St Paul께서 서기 49-50 년 겨울에 선교를 하신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에 편지를 어떻게 쓰셨는지 테사로니카 前書와 後書를 보아보자. 이 편지는 St Paul께서 처음 쓰신 편지로 신약성경중에서 제일 처음 쓰여진 거라는 이야기. 글은 Greek 말로 서기 50년경에 처음 쓰여져 (우리 나이가 20여세쯤되어서이다) 후일 신약의 일부분이 되었지만 편지라는것이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니 쓰는것이라 그 당시의 교회의 이면상을 상상할수 있는거다.
a) 서로 도와주고 사랑 할것이며
b) 교회 지도자들을 존경 해야하고
c) 직접 말로 가르친거나 편지로 가르친것을 잘 지켜나갈것이며
d) 세상 종말이 곧 온다고 일 안하고 하늘만 쳐다 보는 사람은 먹지도 말아야 한다.
신자들끼리 아웅다웅하는것이며 교회의 가르침에 이의를 다는것이 이미 그때부터 있어 왔던 일이며 末世가 임박했다는 說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배경 설명 4
테사로니카는 그리스의 북쪽 지방으로 거기서 북쪽으로 좀 더 올라가면 터키의 수도 Istanbul이 있다. Istanbul은 현재야 Turkey의 수도이나 마케도니아 사람의 입장으로 보면 빼았겼던 땅을 되 찾지 못 한곳이다. (註: Turkey 가 Greece를 400년 동안 점령)
1) 로마 제국이 그 영토가 너무 광범해 Roma의 황제 Constantine이 그 나라를 東로마 제국과 西로마 제국으로 갈르고 수도를 로마에서 현재의 Istanbul로 遷都하고 그 도시 이름을 자기 이름을 따서 Constantinople이라고 개명. 그리고 1000여년 동안 동로마 제국으로 비잔틴(Byzantine) 文化를 일으켜 나간다.
2) Roma 에서는 300-400년을두고 Christian들이 박해를 받아오다가 Constantine 황제가 Christian 교회를 인정하는 바람에 겨우 위기에서 헤어난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황제가 수도를 Constantinople 로 이전하는 바람에 “고아” 신세가 된것이다.
3)정치적으로 버림받은 서 로마 제국의 Roma는 얼마되지 않아 망하게 되고 춘추 전국시대가 되는것.
4) Constantine황제가 Christianity를 인정하는바람에 초기 Christianity는 그 교회의 교회건축, 미술등등은 이 동로마 제국의 문화인 비잔틴 (Byzantine) 문화의 영향권에서 발전한것이다. 그래서 최초의 교회건축 양식을 Byzantine 양식이라고 하는데 교회건물 지붕이 둥그런 양식이다.
5)교회의 敎理도 이 동로마 제국 (Byzantine 문화권)에서 발전하게 되는데 교회가 최초로 당면한 교리 문제는 “예수님은 하느님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대두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예수님의 神性 (divinity of the Lord)을 부인하는 說에 대해 예수님의 神性( Divinity) 을 재 확인한것이 사도시대 이후 최초의 시련이었다.
6) 그 다음문제는 “예수님, 하느님, 성령님”간의 관계가 어떻게 되나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것. 이 교리가 “三位一體의 교리”(The Holy Trinity)로 여러해에 걸친 찬반 토론 끝에 공식적으로 채택이 되는데 Catholic에서는 지금도 그때 채택된 “니케아 信經- Nicene Creed”를 매 주일 미사마다 외우게 된다. 그러나 서방교회가 “filioque” (聖神을 성부께서 보내시지만 聖子도 보내신다는 의미) 라는 단어를 주장하는 바람에 동방교회( Byzantine Church) 와 서방교회 (Western Roman Church) 가 서기 1054년에 갈라서게 된다. 이는 교회가 두개로 갈라진 이유로 교리상 차이점만을 강조해서 하는 말이다. Catholic에서 말하기를 동방교회에서는 삼위 일체 교리를 믿는것이 아니라 三位三體를 믿는것이라고 말한다.
6) 그다음 문제가 된 주님의 人間性 (humanity of the Lord) 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 되며 그래서 나온 결론이 예수님은 하느님 (God) 이시면서 동시에 사람 (Man) 이시라는 교리가 나오게 된다.
7)그 다음교회가 접한 의문이 그러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예수님의 어머니”와는 어떤 관계이냐 하는 문제이다. 그래서 다시 공의회가 에페소 (뒤에 설명) 에서 열리고 결론으로 “마리아는 Theotokos (神의 어머니 – 聖母) 이시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駐: 동방교회에서의 성모님 공경은 Catholic 신자도 놀랄 정도로 깊으며 그 교회의 聖畵나 모자익도 상당부분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계시는 성모님에 관한 그림이다.)
7) 여기까지는 동방교회나 Roman Church나 그 교리가 같다. 갈라지기까지 공의회가 7번 열렸었기에 이를 “초대교회의 7대 공의회”라고 하며 갈라진 이후는 서방 교회에서만 공의회가 계속되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1960년도에 열린 공의회가 21차 공의회이다. 백년에 한번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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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4,5부가 있습니다.-현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