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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말씀과예수님중심의삶
골로새서 3:16-17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우리는 현재 혼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시대가 임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러한 때 우리가 가장 지혜롭게 사는 길은 영원한 말씀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의 설교를 통해 옛사람을 벗어 던지고 새사람을 옷 입으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영원하고 무한하신 우리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우리의 옛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상태요, 반면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새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는 주의 자녀가 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신자는 옛사람으로 살지 않고 새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만일 신자가 옛사람으로 살면 비참한 삶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의 뜻에 따라 새사람으로 살면 영원한 보람을 맛보며 가장 지혜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16절과 17절을 원어로 보면 네 개의 현재 분사 동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르치며, 권면하며, 노래하며, 감사하며”입니다. 이 동사는 분사 동사이기 때문에 계속 진행되는 현상입니다. 또한 남성 복수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주어는 바울의 글을 받은 골로새 교인들, 즉 주의 모든 성도들입니다.
이 네 가지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사실 17절도 16절과 맞물려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여” 늘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면” 계속 가르치고 권면하고 노래 부르고 감사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골로새 성도들을 향한 당부인 것입니다. 무엇과 연관된 당부입니까? 그렇습니다. 거룩함과 관련된 당부입니다.
우리는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린 상태에 있고 새 사람을 입은 상태에 있으니 새사람을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계속 닮아가며 또한 그분을 아는 지식을 계속 새롭게 하라는 명령과 관련된 당부입니다. 그러므로 이 당부는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과 완벽하게 맞물린 당부입니다.
한편, 새 사람을 입은 거듭난 주의 자녀는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옷 입는 자유의지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자유의지의 결단은 신자라도 한계가 있어서 로마서 7장의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었습니다.
[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19-24)
그런데 로마서에서 바울은 성도에게 있는 이러한 모순과 연약함을 해결하는 비결을 말하였습니다.
[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7:25; 롬 8:1-2)
그런데 이 동일한 내용을 바울은 골로새서에서도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16절과 17절입니다. 그리고 이 두 절에서 핵심은 하나의 지시로 나타나는데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개역 개정은 “풍성히 거하여”라고 번역했는데 더 정확한 번역은 “풍성히 거하여 하여”라고 해야 합니다.
아무튼 이 지시는 에베소서로 건너가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지시와 동일한 것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18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경외함으로피차복종하라
](엡 5:18-21)
여기서 우리는 성령 (프뉴마)와 말씀 (로고스)는 떼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로고스와 성령의 역사는 반드시 병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말씀이 없는 성령의 역사는 악령의 역사이며, 성령이 없는 말씀 연구는 이성주의 및 죽은 신학, 혹은 세상 철학 및 초등 학문일 뿐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인 거룩함과 관련하여 일단 세 개의 서신에서 지시를 받았는데 오늘 우리의 본문인 골로새서 3장 16절, 로마서 8장 2절, 그리고 에베소서 5장 18절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라”(골 3:16).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입니다.
그런데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명령은 우리가 전에 매우 구체적으로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 가지였는데 믿음과 기도와 말씀과 관계하라는 지시라고 배웠습니다. 즉, 부활 승천하셔서 만유의 주가 되셔서 성령을 부으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고 의지함으로 성령 충만함을 받을 수 있고,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성령을 부어주실 것을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함을 받을 수 있고, 마지막으로는 우리의 본문의 결실과 성령 충만의 결실이 같은 것을 확인하면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도록 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한편, 로마서 8장 2절은 지시라기보다는,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안에 있는 생명에 역사하시도록 성령을 부으심이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한다고 알려주는 진리입니다. 따라서 로마서 8장 2절은 지시가 아니라 진리를 말하는 것이기에 믿어야 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성화와 관련한 중요한 세 구절 중에 우리에게 유일한 지시로 와 닿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는 것과 그리고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처럼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의 강력한 약속에 따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즉, 기도하는 자에게 아버지께서 반드시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책임에는 자유의지로 옛사람을 벗어 던지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이 있는데, 그 선택에 있어서 인간의 옛사람이 하도 질겨서 조금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대로 쓰러지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연약함까지 하나님은 잘 아시고 그 연약함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려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16절인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16절은 우리 신자들이 거룩함에 이르는데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고 우리가 반드시 온 마음을 다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얼마나 성실히, 그리고 꾸준히 감당하는지에 따라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성령을 통해 우리 삶에 얼마나 풍성히 나타날 것인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우리의 기도 생활이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전서 4장 5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는 진리를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기도 부분은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우리를 향한 지시, 곧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라”는 지시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자, 여기서 “그리스도의 말씀”은 (호 로고스 투 크리스투)입니다. 로고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며 또한 객관적인 말씀을 뜻합니다. 즉, 성경으로 남겨진 말씀이 로고스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했으니 성경 전체가 집중적으로 가리키는 복음이 그 핵심입니다. 그럼에도 그 복음은 성경에 쓰여 있으니 “그리스도의 말씀”은 복음을 중심으로 하는 성경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때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라”는 것은 강한 명령입니다. 삼인층 현재 명령형 동사로 되어 있습니다. 즉, 반드시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거하도록 하라”는 원어 (에노케-사)는 전치사 (엔)이 더불어 있으니 대단히 강한 어조입니다. 그 단어는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롬 8:11).
또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안에 성령으로 거하시는 것을 나타낼 때에도 정확하게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6).
심지어 내 안에 있는 옛사람 또는 죄 역시 내 안에 거한다고 하면서 같은 단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7).
이로 보건대 (에노케-사)는 나와 함께 존재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심지어 내 존재 그 자체와 같을 정도로 내 안에 있는, 그러나 나와는 구별되는 상태로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을 말합니다. 즉,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신 것처럼,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는 강력한 명령인 것입니다. 또한 비유하기가 그렇지만 (에노케-사)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내용, 즉 죄가 내 안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할 때에야 비로소 그 때 우리는 넉넉히 죄를 이기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신나게 닮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삼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인격적으로 체험하며 인격적으로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즉, 거룩함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므로 16절은 우리가 얼마나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하며, 외어야 하며, 묵상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바울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을 받는 비결이고,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는 비결이며, 내가 가장 큰 복을 받는 비결이고, 영원한 가치와 보람과 영광을 받아 누릴 수 있는 비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더욱이 바울은 “풍성히” 거하도록 해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풍성히’는 원어로 (플루시오스)인데 “차고 넘치도록, 흘러 넘치도록, 터질 것처럼”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을 통해 밖으로 차고 넘칠 정도로, 흘러 넘칠 정도로, 터질 정도로 여러분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 만일 ‘아니오’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그 풍성한 약속들이 여러분의 삶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조금도 기대하지 않기 바랍니다. 만일 ‘아니오’라고 한다면, 우리의 삶은 불신자들과 거의 다를 바 없고, 고작 기독교라는 종교적 색채만을 띄는 액세서리에 머물 것이며 여러분의 신앙은 죽는 그 날까지 갓난아이 차원에 머물 것입니다. 혹은 거짓 신자로 판명되어 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말씀과 기도로만 거룩하여질 수 있는데 그 중 ‘말씀’ 부분에서 주의 종 사도 바울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 사랑하는 여러분!
제발 제발 성경을 붙들고 읽기 바랍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읽고 읽어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차고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정도가 될 때까지 성경을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반복하여 보며 기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지난 번 골로새서에서 우리는 새 사람을 옷 입으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 설교를 듣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차고 넘치도록 그 마음에 거하게 한 사람이라면 이 시간에 그 모든 새 사람의 옷들이 기억날 것입니다. 새 사람의 옷으로 무엇 무엇이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납, 용서, 사랑, 평강, 감사가 있었습니다. 그 전 주에 설교한 것으로는 우리가 벗어야 할 옛사람의 옷들을 상세하게 나열했습니다. 벗어야 할 옷들로는 무엇이 있다고 알려주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분함, 노여움, 악의, 비방, 부끄러운 말, 거짓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것들이 다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어야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하게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나 설교를 들을 때나, 신학이나 성경에 대한 강의를 들을 때, 우리는 철저하게 배우려고 온 마음과 뜻을 다해야 하고, 혼자 성경을 연구할 때도 모든 정성과 마음을 다해서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특이한 표현으로서 성경 및 복음을 나타내면서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의미합니다. 즉, 복음 그 자체를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이 땅에서 40일을 다니시며 가장 분명하고 정확한 가르침으로 제자들의 눈을 환하게 열어주셨습니다. 이때 부활하신 우리 주께서 하신 말씀 중 하나는 모든 성경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엔 파사이스 타이스 그라파이스)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 24:25-27)
[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판타 타 게그람메나 엔 토 노모 모우세우스 카이 타이스 프로페-타이스 카이 프살르모이스 페리 에무)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더라
](눅 24:44-45)
또한 예수님의 가장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도 모든 성경이 왜 기록되었는지를 정확히 알려주었습니다.
[
20: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1: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 20:30-21; 요 21:25)
즉, 구약이든 신약이든 우리는 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얻어 그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특이한 단어는 ‘너희’라고 하여 전부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명령도 복수로 되어 있고, 그 명령을 준행할 때 나타나는 현상도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골로새서 편지는 한 개인에게 쓴 편지가 아니라 골로새 교회에 보낸 서신입니다.
즉,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는 명령은 교회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물론 이미 우리가 다룬 것처럼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 각 개인에게 주신 명령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 공동체에 그 명령이 주어진 것이 더 무게가 실립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교회에 성경을 가르치시고, 그러한 성경 해석과 교훈은 주의 종에게 전달되니, 주의 종은 그 교훈을 주의 백성에게 ‘풍성하게’ 전함으로 교회 전체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차고 넘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소위 목사들의 책임이 한량없이 커지며 소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으로 교회 공동체에 차고 넘치도록 하지 못하는 사역자가 있다면 그는 사명이 없거나 사명을 모르는 목사거나 게으른 자로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 자입니다. 혹은 주께서 세우신 말씀의 종이 아닌 거짓 선지자인 것입니다.
이에 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참 교회의 특징을 한 가지 증거하셨는데 바로 “말씀이 흥왕하더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 즉 복음이 교회에 차고 넘쳤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행 12:24)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 19:20).
[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2-26, 27)
그리고 사도행전 6장을 보면, 교회에 말씀과 기도가 차고 넘쳐야 하기 때문에 그 당시 교회 지도자인 사도들을 위해 집사 직분이 생겨나게 됩니다. 즉, 집사 직분은 말씀과 기도가 흥왕할 수 있도록 말씀을 전하는 자를 도와 교회의 전반적인 여러 행정 및 관리의 일을 돕는 역할입니다.
[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행 6:2-7)
그러므로 교회의 지체들은 집사나 권사들이 맡은 일에 관심을 쏟으면 안 되고, 그 직분을 세운 의도대로 언제나 말씀이 기도 가운데 흥왕할 수 있도록 늘 주의 종을 지원하며 위하여 기도하며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주의 종들은 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딤후 4:1-2)
말씀을 전하는 일은 교회의 생사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의 주의 종들은 이 엄중한 명령을 늘 받들어 최선을 다해 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하나가 되는 교회가 될 것이며,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이 존귀함을 얻는 교회가 될 것이며, 모든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깊어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오직 성경, 오직 기도로 충만하여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그 방향으로 집중해야 합니다.
이에 교회 그 자체에 대한 정의에 있어서도 이렇게 묘사됩니다.
[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19-22)
이처럼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교회가 될 때 성령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실 것이며, 기도의 역사가 이곳 저곳에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 또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크게 변화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신랑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가는 거룩한 신부인 아름다운 교회인 것입니다.
[
25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엡 5:25-27)
그러한 교회에 속한 지체들은 성경의 약속대로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거룩한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교회가 아니라면, 그런 교회는 동창회, 클럽, 동호회, 소셜 집단 활동을 교회라고 부르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교회는 거짓 복음이든 이단이든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이런 교회를 다니는 신자들은 그저 그곳에서 사회 생활을 하고 세상에서 얻는 칭찬과 권력과 돈과 자랑을 교회에서 얻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부패한 거짓 교회에 속한 지체들은 죽는 그 날까지 아무런 복음의 능력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결코 죄를 이기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영광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오직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향해 자라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그 안에서 자라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골 2:6-8)
[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요, 이에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4-5; 요 15:3, 7-8; 8절의 표현 일부 수정)
이러한 하나님이 알려주신 목적이 여러분이 교회에 다니는 목적이어야 합니다. 또한 그런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는” 교회를 다녀야만 새 사람을 옷 입고 날마다 새롭게 되는 역사를 ‘함께’ 맛보며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게 되면 우리는 “가르치며, 권면하며, 노래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는 상태에만 있다면 계속 우리는 “가르치며, 권면하며, 노래하며,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네 가지 현상을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이 현상은 ‘나타나는’ 것이지만, 우리의 자유의지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확인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하게 될 경우 자유의지의 동원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즉, 기꺼이 즐겁게 자원하여 “가르치며 권면하며 노래하며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 가르친다는 것은 원어로 (디다스코)입니다. 그런데 ‘서로’ 가르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주의 종이 그리스도 앞에서 가르친 것을 교회 지체들이 배운 그대로 서로 가르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 교회는 개혁주의 교회로서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 남긴 신앙 고백에 따라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그 고백에 따라 서로 가르치면 될 것입니다. 즉,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으면 되는 것이고 그 모퉁잇돌로는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시면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소위 개혁주의라고 하는 많은 교회들마저도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전하지 않는 점입니다.
또한 모든 지혜로 가르치고 권면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혜는 신자의 모든 삶에 ‘적용되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삶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말씀이 적용되어 아름다운 결실들이 있게 되었는지를 나누는 것이 권면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권면하다는 것은 원어로 (누쎄테오)인데 그 뜻은 “훈계하다, 경고하다, 특히 행동 및 믿음에 대해 바르게 인도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하게 거하는 가운데 권면하는 것은 디모데후서의 내용과 매우 잘 어울립니다.
[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라.
](딤후 2:22-25)
이처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신자의 모든 삶이 순종으로 이어지고 그 말씀이 적용되는 가운데 지혜로 행하는 것이 교회며 신자의 풍성한 삶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이는 예배를 중심으로 하는 삶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지혜롭게 살아가는 자들의 특징은 언제나 예배 중심의 삶으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지만 그 삶은 평소의 삶으로 이어지면서 그 특징은 넘치는 은혜 가운데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이는 종종 가정이나 직장 생활에서도 은혜가 넘쳐서 찬양을 흥얼거리는 모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충만한 은혜 가운데 하나님께 계속 마음속으로나 입으로 노래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무엇을 하든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원어로 보면, ‘하고’는 없습니다. 그 대신 이미 언급한 것처럼 “무엇을 하든 말에나 행동이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그분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도록 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범사에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뜻은 “주 예수님을 대신하여”라는 뜻도 있고, “주 예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뜻도 있고, “그분을 힘입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의미들이 다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주 예수를 대신하여 주 예수의 영광을 위하여 주 예수를 힘입고 모든 말과 행동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한 마디로 내 모든 삶의 중심이 오직 주 예수가 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이 내 결단보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함으로” 그 말씀의 능력으로 이러한 네 가지의 현상이 자원하는 마음 가운데 우리의 삶에 나타나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16절과 17절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마무리합니다. 그 말씀은 우리 안에 풍성하게 거하게 됨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영향을 끼치더니, 결국 항상 모든 일에 주의 영광을 나타내며 하나님께 한량없는 찬송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자상하시고 완벽하신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모든 것을 조금도 빠짐 없이 무한 풍성하게 철저하게 준비해 주시는 주 하나님을 느끼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죽기까지 순종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충성을 보십니까? 그러니 얼마나 우리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히브리서 1장 1절을 보면 현재 만유의 주와 왕으로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이 구절을 보면, 우리 주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재 어떤 상태이며 무엇을 하시는지 알려주시는데 놀랍게도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주 예수님은 만물을 붙드시고 또한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일을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지금도 우리 주 예수께서 사용하시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속죄 효력이 무한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죄를 씻으려면 그리스도께서는 죄 없는 의인이 되어 택한 백성의 죗값을 대신 치러야 합니다. 이에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며 영원한 희생양으로 등장합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역할을 완수하셨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효력이 모든 믿는 자에게 무한하게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에 부활 승천하신 만유의 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지금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물론 죄의 정결하게 하는 일과 관련되어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사건은 십자가의 구속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단번에 자신의 생명을 드리심으로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즉, 죄의 정결을 위한 바탕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이 사건 외에 인간의 죄를 정결하게 할 수 있는 사건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사람으로써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늘도 그가 친히 십자가에서 속량하신 무한한 죄 사함과 죄 씻음의 효력으로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고 나아가 성령을 부으심으로 우리의 죄성을 해결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의지하고 우리의 대제사장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갑시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죄 문제가 근본적으로 언제든지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이 예배 시간에 우리의 대제사장이요 영원한 속량이 되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 당장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4-16)
아멘, 아멘! 할렐루야!
오늘도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시작되어 주의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우리 하나님께 영광된 삶이 계속 이어지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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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