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관람
2023.9.12.(화) 오후 서울대학교병원 진료있는 날이라 오전에 여유있게 나섰다. 오늘은 조선왕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국립고궁박물관을 찾아보기로 했다.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로 나오니 바로 옆에 있었다. 경복궁 찾으며 잠시 들여다본 적 있지만 제대로 된 관람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경복궁 담장 안에 있는 박물관을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조용히, 자세히 관람하고 있었다.
2층은 조선의 국왕, 조선의 궁궐, 왕실의 생활, 기획전시실이 있어 왕실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품위를 엿볼 수 있었다. 1층에선 대한제국, 어차, 기획전시실에서 외세의 압박이 거세지던 1897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했던 근대화의 열망과 실천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순종황제가 탔던 어차, 세계에 20여 대만 남아있다는 미국 제너럴모터스사의 자동차가 눈에 띄었다. 지하1층은 궁중서화, 왕실의례, 과학문화, 열린수장고, 고궁 배움터가 있었다. 성리학 이념에 따라 나라를 다스렸던 조선왕실 의례, 통치자의 정당성과 사회를 안정시키는 수단이었던 과학문화로 천문학의 각종 천체 관측기구, 해시계, 자격루 등 당시 과학기술의 높은 성취도 만나볼 수 있었다. 조선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문화와 역사, 그 유산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늦지 않게 혜화역 거쳐 병원에 도착, 검사와 진료를 받았다. 수술 후 회복과정이 잘되고 있어 3개월 뒤 예약하고 돌아왔다. 모든 것이 은혜, 범사에 감사^^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
(언제, 어디서나 360도 VR로 온라인박물관에서 전시물과 해설 들을 수 있다..)
https://www.gogung.go.kr/gogung/main/main.do
지하철 이용 찾아가기/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 도보 5분, 5호선 광화문역 1번 출구 도보 10분
1월 1일, 설날 당일, 추석 당일은 휴관
관람 시간 10:00~18:00(수요일 토요일은 10:00~21:00, 입장은 마감 1시간 전까지 가능)
바로 옆 경복궁은 매주 화요일 휴무
국립고궁박물관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國立古宮博物館
도심 속에서 펼쳐지는 조선 왕실 이야기
출처 ; 다음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89XX25300024
너그러움이 힘이다[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312〉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동아일보 2023-09-12 23:30
태종 12년, 즉 1412년 5월이었다. 의정부에서는 한 편의 시 때문에 난리가 났다. 그것은 새로 시작한 조선 왕조에 대한 부러움 섞인 찬사에서 시작하여 고려 왕조에 대한 안타까운 애도로 끝나는 시였다. “천년의 새 도읍이 한강 저편에 있어/충성스러운 신하들이 밝은 임금을 보좌하누나/삼국을 통일한 공은 어디 있는가/고려의 왕업이 길지 못한 것이 한스럽구나.” 고려의 관리였던 서견(徐甄)이 쓴 시였다. 신하들은 그것을 불순한 시라고 생각하고 태종에게 서견을 잡아들여 추궁하라고 했다.
그러나 태종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고려의 신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고려 왕조를 애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조선 왕조도 언젠가 같은 운명에 처할지 모른다며 서견이 보여준 지조와 충성심은 본받아야 할 것이지 처벌할 대상이 아니니 더 이상 따지지 말라고 했다. “우리 이씨가 어찌 천지와 함께 무궁할 수 있겠는가. 이씨의 신하 중에 이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신하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새로운 왕조가 들어섰는데 어찌 고려 왕조에 대한 향수를 토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태종이 아무리 다독여도 끄떡하지 않았다. 그러자 태종은 그렇게 “따지고 싶다면 백이(伯夷)의 도리가 잘못이라고 한 후에” 따지라고 했다.
백이가 누구인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평정한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며, 동생인 숙제(叔齊)와 함께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다가 굶어 죽은 은나라 왕자다. 백이와 숙제는 지조와 정절의 대명사였다. 그들은 유가의 선비들에게 칭송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고려 왕조를 애도하는 시를 지은 서견도 백이와 숙제처럼 칭송의 대상이어야 했다. 신하들은 그러한 논리 앞에서 할 말을 잃고 왕의 뜻에 따랐다. 너그러움이 편협함에 승리를 거두고 서견을 구했다. ‘태종실록’은 60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너그러움이 얼마나 소중한 덕목인지를 생생하게 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