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0. 06;00
눈치도 없이 가을비가 밤새도록 내렸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바람에 추위를 느껴 방풍재킷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쓴다.
몸이 오싹할 정도로 춥다.
기온은 영상 8도이지만 체감온도는 영하의 날씨로 느끼니
아직 단풍도 제대로 들지 않은 가을을 밀어내고 겨울이 올
모양이다.
아차!
발이 미끄러지며 넘어질 뻔하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는다.
까치밥으로 남겨두었던 홍시가 떨어진 거도 모르고 밟은 거다.
어느새 감이 익어 홍시(紅枾)가 되었구나.
내 인생도 익은 홍시만큼이나 깊어졌다는 생각을 하며 문득
고향집 앞마당을 떠올린다.
대청마루에서 보면 남쪽으로 살구나무, 대추나무, 감나무가
자리를 잡았다.
살구는 늦은 봄에서 초여름에 따먹으면 되었고,
대추는 언제부터 미쳤는지 시름시름 앓아 많이 열리지 않았다.
감나무는 나무 밑에 두엄을 둔 탓인지 해거리를 하지 않고
해마다 풍성하게 열렸다.
아버지께서는 까치밥을 남겨두고 딴 감을 굴뚝 옆 토끼장과
함께 나란히 궤짝 속에 두었는데, 굴뚝의 온기에 땡감은 서서히
홍시가 되어가고 형제들의 겨울 간식거리가 되었다.
감은 명태와 비슷하게 많은 이름을 가졌다.
명태는 북어, 동태, 먹태, 황태, 노가리, 코다리 등으로 분류한다.
감은 대봉시(大峯枾), 단감, 땡감, 연시, 홍시, 반시, 건시, 반건시,
곶감, 편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나는 그중 홍시를 제일
좋아한다.
06;30
세찬 바람에 몸이 휘청인다.
옛이름으로 가을바람은 선선하고 서늘한 바람이라 '갈바람'이라
했고, 소소하고 쓸쓸하기에 소슬(蕭瑟)바람이라도 했다.
그런데 지금 불어오는 바람은 소슬바람이 아닌 강쇠바람이라
손이 시리기 시작한다.
07;00
백발이 된 '붉은 서나물'이 장엄하게 일생을 마치려 한다.
옛날에는 붉은색 염료의 역할을 했건만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아 산모퉁이에서 쓸쓸히 시들어가는 거다.
< 붉은 서나물>
요즘 산속은 소금을 뿌린 듯 온통 흰색 꽃이다.
비탈진 곳, 개활지를 따지지 않고 '서양등골나물'이 숲을
점령했다.
북미 원산으로 1978년에 발견되어 생태교란식물로
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산과 들에 퍼졌다.
연한 잎과 줄기를 삶아 나물로 먹거나 된장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는데 아직 먹어보지는 못했다.
< 서양 등골나물 >
서양등골나물의 위세에 밀린 토종 '등골나물'이 바로
아래에서 왜소한 몸을 바르르 떤다.
이 녀석을 어떻게 보호하여야 할까,
간섭하지 않고 그냥 자연생태계의 원칙에 맡겨야겠지.
< 등골나물 >
나는 지금 피고 있는 '애기똥풀'의 생명력에 경외감을 느낀다.
개화기는 5~8월인데 10월 중순에도 노란 꽃이 피다니 참
대단한 생명력이다.
줄기를 자르면 노란 액체가 뭉쳐있는 것이 보이는데 애기똥과
같다나,
독성이 강해 함부로 만지거나 먹으면 안 되지만 이질, 황달성
간염, 결핵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 애기똥풀 >
평소의 운동량보다 많이 하고 내려오다가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된 '단풍잎 돼지풀'을 발견했다.
'가시박'과 함께 이 땅을 얼마나 많이 점유하여 토종을
밀어내려나.
어쩌면 잠자리와 '벌노랑이'가 사라진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 단풍잎 돼지풀 >
개활지로 나오니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7시부터 또 비가 내린다고 예보가 되었기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백로(白露), 한로(寒露)가 지나고 가을은 깊어만 간다.
텃새가 돼버린 왜가리 한 마리가 망월천에 고개를 박은채
수초를 쪼아대기 시작하고,
하늘가에 기러기 떼 역 V자 형태로 비행을 한다.
2022. 10. 10.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