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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PW : 믿음 BIW : 은혜를 입으라 AG : 신앙인들
TS :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흠뻑 받아누리는 것이다.
아름다운 종소리
네덜란드 나라의 수도 서울인 암스테르담에는 니콜라스 교회당이 있습니다.
교회당에서 들려오는 청아한 종소리는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여운이 있다고 합니다.
한 여행자가 그 아름다운 종소리의 근원을 찾아서 예배당 종탑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는 청년이 흰 장갑을 낀 채 커다란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큰 건반을 두드리느라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종탑 안은 차임벨과 오르간 소리가 범벅이 되어 고막을 찢을 듯한 파열음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여행객이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종탑 안이 너무 시끄럽고 분주하군요.”
청년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종탑 안에서는 고통스런 불협화음일 뿐입니다. 그러나 밖에서는 아름다운 종소리로 들린답니다.”
암스테르담의 하늘을 달콤한 음악으로 가득 채우는 니콜라스 교회당의 종소리는 한 청년의 땀과 희생에서 나온 것입니다.
세상은 이런 숭고한 희생자들의 수고에 의해서 향기를 발산시킵니다.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목적들 중에 하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입니다.
봉사를 위해서는 먼저 교회 안에서 교육을 잘 받아야 합니다.
성도님들이 교회에만 머물면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참다운 신앙인은 삶의 현장을 변화시킵니다.
진정한 믿음의 성도님들은 삶 속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드러내 보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드러내 보이는 사람이 예수쟁이요 참다운 성도님입니다.
P4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천국을 회복하여 신권주의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인류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하여 빼앗기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하여 사람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아닌 다른 피조물을 사용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와 생명을 회복하려고 하지 않으신다.
사람으로 인해서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람으로 인하여 다시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를 통해서 그 일을 이루려고 하실까?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구령의 사역은 바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회복하려고 하신다.
예수님은 완벽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완전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라고 성장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으로, 지구촌으로 보내기 위하여 사용할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구령의 계획을 실행해 나가려고 하신다.
어떤 경로가 되었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노아, 데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아론, 여호수아, 갈렙, 삼손, 사무엘, 다윗, 나단, 히스기야, 엘리야, 엘리사, 세례요한, 예수님의 12명의 제자, 70명의 제자들, 바울과 바나바와 누가와 마가와 실라를 비롯하여 교회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오늘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세워가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도 한결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우리들 자신들도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기에 하나님 나라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어서 주님의 사명자로 부르심을 받고 일꾼이 되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온전하게 세워가고 세계 선교의 선봉장으로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계실까?
그 여인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신앙인들에게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D4.
① 마리아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
사가랴에게 찾아가셔서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아들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6개월 후에 이스라엘의 북부 갈릴리 나사렛 동네의 마리아라는 아가씨에게 찾아가신다.
마리아는 유다지파 다윗 왕의 후손인 요셉과 결혼하기로 약혼한 아가씨라고 소개하고 있다.
갈릴리 북부지방, 나사렛 동네에는 마리아라는 아가씨만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나사렛 동네에는 마리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아가씨가 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찾아오셨던 것일까?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찾아오신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마리아는 유다 지파 다윗 왕의 후손인 요셉과 약혼한 아가씨라고 소개한다.
그러면 마리아가 어느 누구와도 약혼하지 않고 그야말로 싱글이었다고 해도 마리아에게 찾아오셨을까?
마리아가 요셉이 아닌 다른 청년과 약혼해도 마리아에게 찾아오셨을까?
가령 유다 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 출신의 청년과 약혼했어도 마리아에게 찾아오셨을까?
유다 지파 출신이라 해도 다윗 왕의 후손이 아닌 다른 청년과 약혼했어도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찾아오셨을까?
만약에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한 상태가 아니라 이미 결혼한 여인이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을까?
마리아가 이미 혼인하여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면 마리아를 찾아오실 이유가 없다.
만약에 마리아가 누구와도 약혼하지 않았다면 마리아를 찾아와야 할 이유가 없다.
마리아가 유다 지파 다윗의 왕의 후손인 요셉과 약혼하지 않았다면 마리아를 찾아오실 이유가 없다.
마리아가 유다 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 출신의 청년과 약혼을 했더라도 마찬가지로 마리아를 찾아오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찾아오신 이유는 유다 지파 다윗 왕의 후손인 요셉과 혼인하기로 약혼까지 했기 때문에 찾아오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약성경에서 다윗 왕의 후손을 통하여 인류의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고 예언하였기 때문에 그 예언을 성취하기 위하여 마리아라는 처녀가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이신 아들 예수님을 완벽한 하나님으로 동시에 완전한 사람으로 지구촌에 보낼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는 아가씨가 누구인가에 온 관심을 집중하시는 것이다.
마리아의 가문이 뛰어나서도 아니고, 마리아가 다른 아가씨보다 더 예뻐서도 아니다.
마리아에게 탁월한 재능, 능력, 돈, 학식이 많아서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단지 인류의 구원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려는 통로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것도 이미 혼인한 여자도 아니고, 혼인할 계획이 전혀 없는 여자도 아니다.
아직 혼인하지는 않았지만, 혼인할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여자가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조건에 마리아가 가장 합당하다고 하나님께서 여기신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의지와 주권을 보여주고 선포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아가씨에게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통해서 역사하실 비전과 꿈과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마리아에게 찾아오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머무는 여인에게 찾아오시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마리아가 요셉이 아닌 다른 사람과 약혼했다면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찾아오실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찾아오신 단 하나의 이유는 다윗 왕의 후손인 요셉과 약혼한 처녀였다는 조건 하나밖에 없다.
다른 그 어떤 조건도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을 찾아오시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는 배경이 좋아서 찾아오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인들이 아무런 배경도 가지지 않았어도 단 하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믿음으로 신앙고백한 것, 그 조건 하나 때문에 신앙인들을 찾아오시는 것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되고, 웅장하지 않아도 되고, 멋지지 않아도 되고, 예쁘지 않아도 되고, 잘 배우지 못해도 되고, 힘이 없어도 된다.
단 하나,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우리들을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하나님의 귀한 복음의 사명을 맡겨주신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하기로 약혼한 여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은 신앙인들이 누구와 함께 하는가? 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함을 보여주시는 말씀이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로 주변에 누구와 연관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의지와 섭리가 머무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만약에 신앙인들이 하나님께서 버리기로, 저주하기로 작정한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신앙인들도 그들과 함께 버림을 당하거나 저주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느 지역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셨다면 그 지역에 계시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심판을 받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주변 정리를 잘하면서 살아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면서 아무에게나 함께 지내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축복을 받기는커녕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계의 회초리를 맞아야 하는 경우도 생겨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신앙인들은 신앙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의 테두리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② 마리아에게 은혜를 입혀 주시는 하나님.
마리아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하여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말씀하신다.
마리아는 천사가 자기를 찾아오실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었을까?
마리아는 꿈에도 상상해 보지 않았던 일이다.
마리아는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마리아에게는 전혀 예기치도 않았던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상상하지도 않았던 일들을 진행시켜 나가실 때가 있다.
지금까지 지구촌에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예견했던 일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들,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던 일들이 수없이 일어난다.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소리쳐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을 얼마든지 일으킬 수 있는 분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입은 자라고 말씀하신다.
뜬금없이 불현 듯 찾아오신 하나님은 “은혜를 입은 자”라고 불러주시는 것이다.
마리아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은 30절에서도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은혜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부어주시는 것이다.
은혜는 내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 하나님께서 전폭적으로 부어주시는 것이다.
은혜는 수없이 갈망할 수 있다.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야 한다.
매일매일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면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은혜는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찾아오셔서 부어주시는 것이다.
어떤 때는 이슬비처럼, 어떤 때는 가랑비처럼, 어떤 때는 폭우처럼, 어떤 때는 태풍처럼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찾아오셔서 부어주시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삶 자체가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를 입으면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이다.
③ 마리아의 태를 원하시는 하나님.
마리아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통해서 역사하실 하나님의 구령 사역을 말씀하신다.
31-33절에서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이미 구약성경에서 예언해 주신 이스라엘 왕,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이스라엘의 왕이 바로 네 몸을 통해서 태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태어나실 왕은 “예수”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될 것이라는 말씀까지 하신다.
예수라는 이름은 마태복음 1:21에서 요셉에게 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려주신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태어날 예수라는 이름은 바로 자기 백성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자신의 몸을 통하여 예수라는 이스라엘의 왕이 태어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마리아는 어떻게 심정이었을까?
내 배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태어난다는데, 이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와... 내가 이스라엘 왕의 엄마가 된단 말이야! 정말 내가 왕의 어머니가 된다고!” 하면서 감동하고 감격스러워했을까?
아니면 “어떻게 내 몸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태어난단 말이야? 이게 말이 돼. 적어도 내가 이스라엘의 왕을 낳는 어머니가 된다면, 내가 약혼한 요셉이 왕이어야 돼잖아. 그런데 내가 약혼한 요셉은 평범한 목수인데, 어떻게 목수의 아내가 이스라엘의 왕을 낳을 수 있단 말이야.”라고 하면서 의심하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내가 요셉과 파혼하고 이스라엘의 왕에게 시집가야 하나? 지금 이스라엘의 왕은 폭군으로 알려진 헤롯대제라는 왕인데, 헤롯대제는 유대인이 아니라 에두미야 사람인데...”라고 하면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부정하지는 않았을까?
“내가 저 사람의 말을 잘못 들은 게 확실해.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그런가 하면 요셉과 결혼할 날짜를 세어보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유대인의 결혼방식은 여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폭적으로 남자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다.
남자가 약혼한 신부와 혼인하여 살 수 있는 신혼집이 준비되면 신부에게 어느 월 어느 날에 신부를 데리러 가겠노라고 연락하게 된다.
그러면 그 날이 혼인날이 되는 것이다.
신부는 신랑에게서 연락이 올 때까지 앞으로 혼인하여 살림할 준비를 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방법, 옷을 만드는 방법, 아이를 낳아서 양육하는 방법 등등 여러 가지 여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이처럼 결혼식 날짜는 남자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하루라도 빨리 요셉과 혼인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마리아는 순식간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고 간다.
그래도 아직은 이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그래서 마리아는 천사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되묻는 것이다.
마리아는 적어도 아들을 낳으려고 하면 혼인하여 잠자리를 가져야 되는데, 아직은 그런 일이 없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묻는 것이다.
이때 천사는 마리아에게 “네가 낳을 아들은 남자를 통해서 낳는 아들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낳을 아들”이라고 하늘의 비밀을 알려준다.
35절에서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에 의해서 잉태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성령이 너를 덮으리니”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룻기 3장에 보년 보아스가 자신의 밭에서 잠을 자려고 할 때, 룻이 보아스가 누운 곳으로 가만히 숨어 들어가서 눕게 된다.
잠을 자던 보아스는 잠을 깨어보니 왠 여자가 자신의 곁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룻은 보아스에게 룻기3:9에서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표현이다.
룻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미 다 망가진 시댁의 기업을 회복시켜 줄 사람은 보아스 당신이기 때문에 당신은 나의 남편이 되어주세요.’라고 하면서 청혼하는 말이다.
오늘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라고 하는 말씀은 성령님께서 마리아에게 남편의 역할을 감당하여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실 것이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마리아가 낳을 예수란 분은 남자에 의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태어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마리아로서는 점점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분명히 아이를 낳으려고 하면 남녀가 관계를 맺어야만 잉태할 수 있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남녀간의 관계를 맺지 않고서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천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마리아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시는군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군요.”라는 심정이었을까?
“아니 정말 그렇 수 있다구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하면서 놀라워하는 심정이었을까?
사랑하는 누군가와 혼인하기로 약혼하기는 했지만, 한 번도 남자와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자매에게 어느 날 문뜩 전혀 생판인 사람이 찾아와서는 “당신은 이제 아들을 잉태하여 낳을 것입니다. 그 아들은 장차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수행할 사람이 될 겁니다.”라고 말씀하신다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만약에 우리 교회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어느 자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면 그 자매는 어떻게 반응할까?
‘요즘은 아기 낳고 시집가는 것이 혼수래.‘라고 하면서 좋아라 했을까?
아니면 손을 절래절래 흔들면서 “난 아니라고. 난 절대로 그런 일은 없어.”라고 부정하고 있을까?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더구나 성경 시대에는 여자가 약혼한 남자의 아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잉태했다면 그 여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시대이다.
마리아는 동네 사람들에 의해서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④ 증표를 보여주시는 하나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하면서 반신반의하는 마리아에게 하나님께서 35절에서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36절에서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평생 불임녀로 알려져 있던 엘리사벳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임신한 지 이미 6개월이 지났다고 말씀하면서 증표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마리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는 것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지신 의지와 계획과 섭리에 의하여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라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하신다.
창세기17;1에서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아브라함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말씀이 “엘 샤다이(El Shaddai)하나님”이라는 호칭이다.
엘샤다이의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하시겠다고 결정하신다면 못 하실 일이 없다는 말씀이다.
창세기1;2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말씀으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90세가 되는 사라의 몸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고, 불임녀 엘리사벳의 몸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고, 처녀 마리아의 몸도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구원의 계획을 세워가기 위하여 얼마든지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역사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기만 하면 무엇인들 못 하겠는가?
하나님은 못 하실 일이 전혀 없는 분이라고 보여주시는 말씀이다.
어떤 일이든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마리아가 염려하고 고민하는 문제들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분이다.
하나님께서는 남자 없이 아이를 임신하여 출산하는 일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마리아가 다른 남자와 간음하여 아이를 잉태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서도 얼마든지 구해낼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모든 것들, Everything을 해낼 수 있는 분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인류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지구촌으로 보내시기 위하여 마리아를 선택하셨고, 마리아의 태를 사용하려고 크나큰 은혜로 덮어주시는 것이다.
⑤ 순종할 수 있도록 감동을 주시는 하나님.
38절에서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한다.
마리아의 고백을 들은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를 떠나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간다.
마리아가 이처럼 순종하겠다는 고백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순종은 자기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헌신하는 것이다.
순종은 자기 자신을 내어드리고 헌신함으로 주님의 거룩하신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구령세계가 펼쳐지고,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다.
마리아의 순종은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헌신이다.
마리아의 순종은 인간적으로 보면 동네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여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순종이다.
마리아의 순종은 버림당하는 것도 받아들이겠다는 헌신이다.
마리아의 순종은 남편이 될 요셉이 오해하여 파혼하겠다고 해도 묵묵히 따라가겠다는 고백이다.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과 계획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결단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버리겠다는 결단이요, 누군가로부터 버림을 당하더라도, 심지어 죽임을 당하더라도 기꺼이 순종의 길을 걸어가겠노라고 결단하는 신앙의 고백이다.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의 길을 걸어가면 손해 보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순종의 삶은 인간적으로 볼 때 성공자의 삶이 아니라 실패자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순종의 삶은 다른 사람에 비하여 뒤처지거나 낙오자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비록 그렇게 좋지 않은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지더라도 기꺼이 믿음으로 순종의 길을 걸어가겠노라고 결단하는 것이 순종의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결단하는 신앙인의 모습이다.
⑥ 순종함으로 복을 주시는 하나님.
마리아의 순종으로 인하여 염려하던 일들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막아주신다.
신랑에게도 버림을 당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리아가 순종함으로 인류의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낳아서 양육한 어머니가 된다.
마리아가 순종함으로 인류의 메시야이신 예수님만 낳은 것이 아니다.
남편 요셉과 더불어서 많은 자녀를 낳는 축복을 받는다.
마가복음 6:3에 보면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에서 마리아는 예수님 외에 여러 명의 자녀들을 낳았음을 알 수 있다.
적어도 4명의 아들들과 여러 명의 딸들을 낳았음을 알 수 있다.
4명의 아들들 중에서 야고보는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야고보서를 기록한 사람이 된다.
유다도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유다서를 기록한 사람이 된다.
다른 자녀들도 성경에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큰 형님이신 예수님, 큰 오빠이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여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훌륭한 주님의 일꾼으로 세워져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 일에 쓰임받는 일꾼이 되었을 것이다.
마리아의 순종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고, 헤아릴 수 없는 영혼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사명자가 된다.
마리아의 순종으로 수많은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들이 세워지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전하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기꺼이 순종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담대함, 당당함도 가지게 된다.
신앙의 의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신앙의 위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당당하게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짐을 입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L4 & B4.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들도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를 입으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길은 어렵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운 길이 될 수 있지만, 단순하고 쉽다고 생각하면 아주 쉽고 단순한 길이 될 수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기기만 하면 된다.
엘샤다이의 전능하신 하나님, 에벤에셀의 도우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의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들, Everything을 믿음으로 맡기고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풀어가시도록 맡겨드리면 된다.
어떤 일이든 내가 스스로 풀어가려고 하면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풀어가시도록 맡겨드리면 아주 쉽고 수월하게 해결되어 갈 수 있다.
그러기에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떠나고 대적하는 악인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인의 길을 따라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면 된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칭찬받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덧입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계획과 섭리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넘치게 받을 수 있는 신앙인으로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