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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아름다운 교회’를 찾아보니 전 세계와 우리나라 대한민국 전역에 있는 작고 예쁜 교회들 사진이 검색되었습니다. 저는 건강하고 교회, 성도들이 참 멋지게 신앙생활하는 교회들의 활동모습이나 여러 가지 사역을 기대하며 찾았는데 인터넷은 외형적으로 참 예쁜 교회를 ‘아름다운 교회’라며 찾아주었습니다. 미국의 어느 시골 한적한 곳에 있는 작고 예쁜 교회, 우리나라 제주도 곳곳에 있는 작고 예쁜 교회들, 강원도 산골지역에 예쁜 펜션처럼 꾸며진 예쁜 교회들, 전라도 도서지역과 해안가에 지어진 작고 예쁜 어촌교회들이 검색되었는데 사진을 보면 정말 분위기 좋고 내실이 어떤 지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지만 외형만 따져보면 정말 ‘아름다운 교회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우리도 터가 있고 건물을 지어야한다면 그렇게 예쁘게 짓는 것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건물이 예쁜만큼 시설을 만드는데, 유지하는데 더 많은 돈이 들어갈텐데.. 그리고 그렇게 유지하기 위해 마음과 정성을 쏟고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할텐데 그것보다 본질적인 교회의 모습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부러움과 아울러 오히려 위안을 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사진들을 보면서 우리가 교회를 외형적으로 잘 꾸미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모습은 외형적인 아름다움이나 사람들이 보며 ‘예쁘다’라고 건물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가운데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존재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역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하나님을 섬기며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성전을 찾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성전의 모습을 보시며 노발대발 화를 내시며 책망하며 성전의 잘못된 운영에 대해 분노하시는 모습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예루살렘성전의 모습을 살펴보고 이 모습속에서 이 시대 우리가 제대로 가꿔야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임하시는 성전으로써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로 바르게 드려지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성도가 함께 신앙생활하며 아름다운 교회모습을 유지해야할 우리 고주리교회가 진정 말씀대로 운영되어지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함께 참 아름답고 멋진 교회를 세워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에서는 첫째로 돈거래가 없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15절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먼저 성전에 들어가보셨습니다. 그런데 성전안에는 장사꾼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매매하기 위해서 성전에 있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성전에 들어온 목적은 돈벌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습이 정말 싫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성전에는 환전상도 있었고 비둘기파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단지 비둘기파는 사람들만 기록되어 있지만 비둘기뿐 아니라 양, 염소, 송아지 등등 각종 제사에 쓰이는 제물을 파는 사람들이 성전안에 이 곳 저 곳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의 상을 엎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에서 돈으로 뭔가를 해보려는 것을 정말 싫어하십니다. 교회내에서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을 정말 가증스러워하십니다. 특히 하나님앞에서 삶을 헌신하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하나님의 종이 돈에 집착하고 돈 때문에 사역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분노하실 일입니다.
한국교계를 대표하는 유명한 교회 충현교회의 담임이셨고 지금은 그 교회 원로목사님이신 신성종목사님의 아내되시는 이건숙사모님 일화가 국민일보에 실린 것 봤습니다. 총 30편으로 나눠서 평생의 삶에 있었던 많은 일화를 실었는데 그 중의 한 편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한 번 들어보세요.
『우리 부부가 가발가게를 시작한 2년간은 초창기 개척 시기라 호황이었다. 남편 신성종 목사는 돈이 들어오니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좋은 타자기도 사고 책도 마음대로 사서 공부하는 속도가 빨라 급 스피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발가게를 하는 동안 내겐 엄청난 유혹이 다가왔다. 세상에! 돈이 술술 들어오니 돈으로 무엇이나 할 수 있었다.
“여보! 우리 교수니 목사니 신학자니 다 팽개치고 장사를 합시다. 돈이 이렇게 술술 들어오는데 뭣 하려고 그 고생을 해요. 영주권을 신청하고 다운타운(Down Town) 좋은 곳에 큰 가게를 차리고 돈을 왕창 벌어요. 목사보다 장로가 되어서 헌신하면 되잖아요.” 이렇게 돈독에 빠진 나를 남편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단호한 어조로 강하게 말했다. “나 오늘 모교 교수로 청빙 받았어. 내가 아이들 데리고 귀국할 터이니 당신은 가게를 정리하고 학업 마치고 바로 귀국해.” “난 안 갈 거야. 여기서 돈 벌 거야. 세상에! 이 좋은 돈!” “우리 두 사람 공부 끝나면 돈은 하나님께서 바로 걷어간다고 했어. 내가 기도응답 그렇게 받았으니 빨리 가게를 정리하라고.” 그는 바로 아이들을 데리고 귀국 준비를 하고 내가 다니는 대학 근처에 방 하나를 얻어주면서 자동차는 바로 팔아버려 내 발을 묶어버렸다. 겁이 많았던 나는 운전대를 잡지 못하게 해서 운전을 못 하니 꼼짝할 수가 없었다』
50여년전 미국 유학이라면 정말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겠지만 신성종목사님 부부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유학하면서도 돈을 많이 벌며 쓰며 미국유학을 하는 경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목회자로서 이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이면서 오히려 사탄의 유혹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돈이 많아져서 목회를 잘 준비할 수 있었겠지만 돈이 많아져서 목회보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일들을 찾으며 목회의 길을 내버릴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교회의 사역에도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겠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9,10절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교회 내부에서도 돈으로 뭐든지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디 가든지 편안한 것을 추구하고 그래서 돈으로 나의 신앙도 평가받으려고 합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행해지는 각종 봉사도 교회에서 돈으로 처리하는 경우를 종종 많이 보게 됩니다. 요즘 중,대형교회의 성도들중에 찬양대를 모으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대형교회에서 찬양대를 세울 때 수고비, 혹은 격려비차원으로 어느 정도 사례비를 준다고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 격려하고 감사하는 표현으로 이런 것이 이용되면 좋겠지만 이것이 이젠 보편화되어 그런 사례비가 없으면 찬양대를 모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하니 문제가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교회는 찬양대뿐 아니라 식당봉사, 꽃꽂이봉사, 교회청소마저도 돈을 받아야 할 수 있다고 하든지 봉사할 사람을 구할 수 없어 아예 민간업체에 구내식당운영이나 교회청소, 교회장식 등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현대교회의 이런 모습은 아마 예수님 당시 제사장들이 성전안에서 매매하는 사람들과 결탁하여 각종 잇권을 주고 성전에서는 운영수익의 일부를 얻으며 윈윈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며 정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목회자나 장로같은 중직자뿐 아니라 성도들도 교회에서 상거래를 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이 시대 교회의 모습을 우리 주님께서 찾아와서 보시면 어떠실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여러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교회성도들을 대상으로 영업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이 생겨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해서 평일에 하던 일을 주일에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다가 문제가 생긴거면 그나마 이해를 하겠지만 어떤 경우는 아예 신앙에는 관심없고 단지 영업행위를 위해 교회안으로 들어와 영업행위를 하는 경우도 참 많이 봅니다. 요식업이나 유통업등 각종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 혹은 보험이나 다단계판매를 하는 세일즈맨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일단 관계를 형성한 후에 영업리스트에 교인들을 올려놓고 예배와 선교, 봉사등 교회의 사역보다 개인 직업의 홍보와 영업에 열을 올리는 경우라면 우리 주님께서는 정말 그런 행위를 어떻게 보실까 생각을 해보게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 환전을 하는 사람들에게 노하시며 분명하게 성전에서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1장 16절입니다.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혹 교회에서 어떤 물건을 사고 어떤 물건을 팔고 하는 일에 대해 대소롭지 않게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어차피 교회에 왔는데 교회에 온 김에 “내가 하는 일, 내가 아는 분이 하는 일에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고 돈거래를 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런 일이 우리의 신앙을 망가뜨리고 교회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고 교회를 생계를 위한 수단이나 돈, 명예, 권력을 얻을 수단으로 악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에서 어떠한 돈거래도 허락하시지 않고 신앙적 행위가 아닌 세상적인 행위로 교회에서 교제하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정말 참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 본질적인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가실 때 우리 고주리교회는 신앙인의 관계속에서 돈거래를 하거나 자기의 일을 가지고 영업행위를 하는 일이 없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에서는 둘째로 기도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17절입니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득찬 각종 물건을 매매하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고 구약성경 이사야에 나오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보자면 교회의 본질은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교회에서 할 일은 어쩌면 기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참 많은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하나님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하여 교회로 인도하고 각종 구제와 봉사를 통해 교회가 선한 일을 하며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교회내에서 찬양과 교육과 선교등의 많은 일이 있는데 ‘어떻게 기도만이 교회가 해야할 일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맞습니다. 교회는 참 많은 일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기도하면서 시작하고 기도하면서 진행하고 기도하면서 결론이 나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시작과 진행, 마침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밖에 없음”을 저와 여러분이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월요일 제가 존경하는 한 분의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에 가셨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들이 여러 분이 계시지만 그 중에 단 한 분만 뽑으라고 하면 그 목사님을 뽑습니다. 그 분은 제가 어릴 적 신앙생활하던 교회 일명 ‘모교회’라고 말하는 수영로교회 제가 소속되어 출석할 당시 수영로교회 담임목사님이셨고 제가 그 곳을 떠나 목회사역을 시작한 이후 수영로교회에서 원로목사로 추대받으신 분이십니다. 저는 이 목사님의 다른 것도 자랑을 많이 하지만 단 한 가지를 가장 본받고 싶고 그 한 가지가 이 목사님의 전부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그 분의 별명인 “기도의 사람”에 나타난 것입니다. 즉 기도로 이루는 인생입니다. 그 분이 평소에 강조한 교회성정과 부흥은 “무릎으로 세운 교회”입니다. 그 분이 후배와 제자목회자에게 강조했던 것은 목회의 삶은 바로 “은혜목회”였습니다. 그 큰 교회를 세우시고 큰 교회의 담임목회를 하셨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이고 “본인이 한 것이라고는 기도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생기면 기도하고 힘든 일로 일이 막히면 기도하고 항상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가장 본질적으로 맞는 말인데 그 분을 따르는 후배들, 제자들은 그 분에게서 이런 책망의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왜 일이 안돼?” “왜 은혜롭게 일을 못 처리해?” “기도하지 않아서잖아.” “죽기를 각오하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기도해봐.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해야지.” “기도도 안하고 힘들다고 어렵다고 하면 어떻게 하냐?” 등등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정말 진정 정답인데 정말 쉽지 않는 것임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분을 옆에서 보면 기도로 목회를 은혜롭게 성공시키신 분, 기도하니 일이 착착 진행되는 것을 보여주신 삶을 간증거리로 너무나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지금 부산에 가면 세워진 신축교회당은 1997년 IMF가 터지기 바로 직전 성전건축을 계획하며 수영만요트경기장 앞에 있는 엄청난 크기의 공터를 매입해서 세워진 교회당입니다. 이제 땅을 샀으니 건축해야하는데 건축비를 뽑아보니 약 400억원이상이 들어가는 엄청난 공사였습니다. 이제 막 공사를 시작했는데 IMF가 터졌습니다. 경제적으로 엄청난 위기가 찾아와서 어디서 돈빌릴데도 없고 어디서 큰 헌금을 할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위기에서 보통의 담임목사님 같으면 어디 은행 조금이라도 저금리로 대출을 받아보려고 사방팔방쫓아다니며, 교회내에서는 성도들을 독려해서 헌금많이 해서 교회당을 빨리 건축하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은행대출얘기 한 번도 안하고 성도들 헌금해서 건축하자는 말 한 번도 안하고 오로지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하십니다.”라며 기도를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교회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자며 줄기차게 기도회를 진행했습니다. 결론은 뭘까요? IMF구제금융으로 나라가 정말 힘든 그 때 실업자가 속출하고 기업도 안되고 자영업도 안되는 그 시기에 대출 한 푼 안 받고 헌금강요 한 번 안하면서 기도만 했더니 그 큰 성전이 공사기간 큰 문제없이 완전하게 건축되었습니다. 그 분이 평생 설교하시면서 그 분이 어릴 때부터 경험했던 은혜를 강조하셨는데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오로지 “은혜로 살다가 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 하셨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실 것을 믿고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신앙인이라고 자부할 때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기도할 때는 항상 응답받을 것을 기대하며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서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 교인들이 비가 오도록 특별 기도회로 모였다고 합니다. 그 때 아이 하나가 우산을 들고 교회에 왔습니다. 교인들은 의아해하며 이 아이에게 “이렇게 맑은 날인데 왜 우산을 가지고 왔니?”라고 물었고 어떤 어른은 “너 미친 것 아니냐?”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어린 아이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비가 오기를 위해 기도하러 왔으면 비가 올 거 아니예요. 하나님이 기도응답하실 줄 믿고 우산을 가지고 왔어요”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십시오. 옛날에 어느 소도시의 한 교회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그 교회 옆에 있는 술집이 있었습니다. 그 술집에서 술을 마신 사람들이 술에 취해 고성방가하며 돌아다니니까 교회 예배에 방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이 술집이 불이 나서 없어지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어느 날 진짜 이 술집에 화재가 났습니다. 그러자 술집 주인은 교회에 소송을 걸었습니다. 교회에서 자기 술집에 불이 나도록 기도했기 때문에 불이 났다며 보상해달라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화재에 대한 책임을 왜 교회에게 전가하냐며 강력하게 부인했습니다. 사실 불이 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은 사실인데 그로 인해 술집주인은 기도응답이라고 했고 교인들은 그런 기도로 불이 날 수 없다고 하며 기도한 것을 못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 두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우리의 신앙이 어떤 수준인 지 우리를 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는 교회가 기도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믿고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정말 우리 고주리교회가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름다운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은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는 것, 기도하는 일이 끊어지지 않는 것, 항상 기도하는 것이 삶의 기본이 되어야합니다. 교회에서도 기도하고 집에서도 기도하고 어디를 가든지 기도하는 성도가 진정한 아름다운 성도입니다. 또한 교회에서는 어떤 일을 하든지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진행하며 기도로 결과를 내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계획과 인간적인 진행과 인간적인 결과를 얻으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라기보다는 세상의 친목회, 동호회, 사업체 같은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기도하는 아름다운 성도, 기도하는 아름다운 교회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에서는 마지막 셋째로 잔악한 음모가 사라져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18절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전을 방문하여 성전의 모습을 보며 노발대발 화가 나신 이유에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성전지도자들의 모습이 너무나 신앙인이라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자체가 본연의 모습을 잃은 것도 있지만 성전의 지도자들이 신앙의 본질적 모습을 하지 못하고 악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때문에 더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성전안에서 매매하는 행위를 허락했습니다. 이런 일에만 더 집중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매대를 엎으시고 기도하는 성전으로서의 회복을 선포하였는데 오히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고민하고 있으니 정말 화가 나실 만도 하였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모습이 바로 강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앞에 있는 본문 마가복음 11장 17절을 한 번 다시 읽어볼까요?
마가복음 11장 17절입니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라고 할 때 이 ‘강도’가 누굴까요? 저는 이 본문을 통해 볼 때 강도는 바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입니다. 장사꾼들이 성전안에 들어오면서 가장 큰 경제적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성전의 지도자들, 곧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삶의 목표는 항상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 자신들의 이익을 빼앗는 사람들을 막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성전을 정화하고 본질의 모습으로 개혁하려고 할 때 어떻게든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하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타인의 재산을 빼앗는 사람,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강도가 아니겠습니까? 이들의 머리속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을 죽이는 살인도 서슴치 않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정말 무서운 강도라고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마음속에서 형제에 대해 미워하는 마음을 가졌다든지 살인의 의도를 품었으면 살인한 것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입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어 세상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온유와 사랑과 섬김과 나눔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욕망과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18세기 영국의 성공회 목회자이자, 찬송가 작가였던 존 뉴턴은 지중해를 오가는 상선의 선장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열한 살 어린 나이때부터 아버지의 상선 선원으로 일했습니다. 젊은 시절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잡아오는 노예선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는 배 안에서 온갖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잔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748년 3월 1일 그는 배 안에서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란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는 오랫동안 그의 영혼 속에서 깊이 잠자고 있던 어머니의 기도소리와 찬송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의 모든 삶의 정리하고 그가 대적했던 바로 그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받고 목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43년간 목회사역을 감당했고 그가 목회하던 중 진정 변화되었던 그 은혜에 감격하며 1779년,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작사하여 미국 민요 Amziging Grace 곡조에 가사를 붙여 찬송하였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3,4절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야고보서 1장 21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갈 때 정말 우리의 심령부터 아름다운 모습을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속에 어떤 악한 마음도 품지 말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교회도 교회답게 선하고 온유하며 교회다운 모습으로 착한 일만 하는 교회로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의 아름다운 모습이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잊지말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교회의 모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이 깨끗하게 회복되기를 기대하시며 성전에서 행하신 일들을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면서 우리는 이 시대 우리의 교회의 모습과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떠해야하는 지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편의대로 신앙생활하기보다 본질에 맞는 원리에 맞는 신앙생활을 해야합니다. 물질의 유혹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생활, 물질적 편안함을 추구하는 신앙생활이 아닌 마땅히 바르고 온전한 신앙의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여야겠습니다. 또한 우리 신앙의 모든 기준은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여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은 말씀을 읽고 말씀을 근거로 항상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대화의 방법은 바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성품이 악하여질 수 없고 우리의 행동이 잔혹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항상 성령의 열매를 맺고 거룩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몸과 영혼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깨닫게 되기에 우리의 마음과 행동에 항상 거룩함을 추구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7절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삶이라는 성전, 우리의 신앙생활을 하는 교우관계가 있는 교회라는 성전, 또한 우리가 모여서 주님의 일을 함께 하는 교회당이라는 성전... 이 모든 성전에서 이제는 세상적인 거래를 물리치고 기도하는 성전이 되기를 소망하며 거룩한 열매를 맺는 성전으로 만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