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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번의 글자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무릎 꿇을 절(㔾)글자이고, ②번의 글자는 그분의 은혜를 저버리고 있는 사람(亻)과 발(止)을 그린 발꿈치들 기(企)자
새해를 맞이하면서 복(福)을 받으라는 메시지를 자주 들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이 성경적인 복이며, 본질적인 복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지금 널리 퍼져 있는 세상의 복이 아니라 정말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최초의 복과 그리고 구약과 신약에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복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최초로 인간에게 복(福)을 주셨다는 성경구절이 바로 창세기 1장 28절이다.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하신다. 이것은 영혼들의 생육과 번성과 충만함, 그리고 영적인 다스림과 정복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 ‘복을 주시며’에 쓰인 ‘복(福)’이 히브리어 ‘바라크’인데, 기본 뜻은 ‘무릎을 꿇다’는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다스리며 정복하라’는 복을 누림의 가장 기본은 바로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그 분 앞에 무릎을 꿇고(㔾) 그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뱀인 마귀의 말을 듣고 순종함으로 마귀에게 무릎을 꿇어(㔾)버린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께는 발꿈치를 들게(企) 되었던 것이다.
아담의 타락이후 대부분이 하나님께 발꿈치를 든 존재가 되었지만 그 분 앞에 무릎을 꿇어 순종함으로 은혜를 입은 대표적인 사람이 나온다. 그가 바로 대홍수의 주인공인 노아이다. 노아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는 구체적인 표현은 보이지 않고 단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고 다스림을 받았던 대표적인 모습이었다.
이것을 보여주는 글자가 바로 위의 그림 ③번인데 이 글자가 바로 복종(服從)하다의 복(服)자이다. 지금은 단지 ‘옷’, ‘입다’의 의미로 바뀌었지만 이것은 방주(舟)라는 배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㔾)의 모습인 것이다. 무릎 꿇을 복(服)의 갑골문자를 보면 가운데 무릎 꿇은 사람(㔾)의 왼쪽에는 방주인 배(舟, 凡)가 있고, 오른쪽에는 그 사람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축복하는 손(又)이 있는 모습으로 구성된 글자이다. 이에 대하여 일본의 갑골학자 백천정(白川靜)은 ‘복종하다’, ‘받들어 모시다’, ‘종사하다’의 뜻으로 쓰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구약의 노아와 같은 배경으로 기록된 고대근동의 대홍수의 기록을 보자. 수메르 판 최초의 노아인 지우수드라는 대홍수가 끝이 나고 최고신 아누와 엔릴 앞에 엎드렸으며(㔾), 길가메시 서사시의 대홍수 주인공 우트나피쉬팀은 노아처럼 제사를 드렸으며, 최고신 엔릴은 그의 손을 잡고 배에 오르게 하고 난 다음에 그의 이마에 손을 얹고 영원히 사는 생명을 축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을 한족(漢族)이라고 한다. 그들의 조상들은 주(周)나라와 그 위로 올라가면 하(夏)나라이다. 그들에게는 무릎 꿇는 문화가 없다. 그런데 최초의 한자인 갑골문을 만들고 무릎을 꿇는(㔾) 것은 상(商)나라 즉 동이족인 우리의 문화였던 것이다.
위의 그림 ②번의 글자가 사람이 발꿈치를 들고 있는 발돋움할 기(企)자이다. 이 글자를 보면 위의 사람 인(亻,人)자와 아래에는 사람의 발인 발지(止)자의 모습으로 사람이 발꿈치를 들고 있는 모양인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900년 전 허신은 『설문해자』에서 “기(企)는 발뒤꿈치를 들다(擧踵也)는 뜻이다”라고 했다. 이 발돋움이 하나님을 기다리고 소망하는 것이라면 좋은 것이 될 수 있겠으나 성경에서는 받은 은혜에 대하여 배신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다윗은 자기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아히도벨이 자신을 배신하고 압살롬에게 갔던 것에 대하여 ‘나의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다’(시 41:9)고 했고,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았던 가롯 유다를 향하여도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요 13:18)고 하셨다. 고대 근동에서는 발바닥을 보이는 것이 경멸의 표시로 간주 되었다고 한다.
이 세상의 하나님의 떠난 모든 자는 바로 하나님께 대하여 발꿈치를 든(企) 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발꿈치를 든 죄인들에게 진정한 복(福)은 무엇이 될 것인가? 역시 바라크인 무릎 꿇는 것(㔾)이다. 그러니까 구약의 복이나 신약의 복이 전혀 다르지 않는 것이다. 빌립보서 2장 10-11절 말씀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㔾)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렇게 예수 이름에 무릎을 꿇고 주라 시인하여 복(福)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의 복은 무엇인가? 역시 다르지 않다. 날마다 삶 속에서 무릎을 꿇고(㔾) 그 분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 분 앞에서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服從)하여 무릎 꿇려야(㔾)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服從)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벌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중이시기 때문이다(고후 10:4-6). 그리고 이 복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계 4:10)
구약과 신약의 복(福),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나서의 우리의 삶의 매일 매일의 삶의 복(福) 역시 그 분 앞에 무릎 꿇고(㔾) 그 분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는 삶은 어떤 삶일까? 그것은 무릎 꿇어 기도함으로 그분의 통치, 그 분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새벽 미명에도 기도하셨고, 어떤 때는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십자가를 앞두고는 감람산에서 무릎을 꿇고(㔾) 세 번이나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신 것이다.
우리도 날마다 무릎 꿇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성령님의 감동으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 주신 그 사랑에 만족함으로 날마다 감격하며, 감사하며, 그분을 찬양하며,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진정한 복(福)인 것이며, 우리가 구해야 할 성경적인 복(福)인 것이다.
▲송태정 성경적 갑골한자해석연구소 대표/순복음해남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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