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운봉 고원의 가야세력 - 기문국(己汶國)
우륵의 가야금 12곡에도 그 이름(상기물)이 등장한다
상기물, 하기물
남원 운봉고원, 가야시대 기문국이 깨어나다.
가야세력인 기문국(己汶國)이 남원 운봉고원에 처음 존재를 드러낸 것은 1981년이다.
그해 광주와 대구를 잇는 88고속도로공사에 포함된 남원 월산리 가야계 고총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졌는데,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마한과 백제의 영역 일 것이라 추정 했으나 조사이후 그 조영주체가 가야로 밝혀지면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곽장근 교수(군산대학교 박물관장)는 전북 동부권에 가야문화를 기반으로 발전했던 세력이 존재했으며, 그 주체가 기문국으로 운봉고원을 중심으로 발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동안 경남권에 국한됐던 가야의 흔적이 전북 동부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견되면서 현재까지도‘남원 월산리 고분군’은 역사적인 장소로 관심 받고 있다.
2010년‘남원 월산리 고분군’은 추가로 진행된 발굴조사로 고고학계의 이목이 또 한번 쏠리게 됐는데, 그 성과는 가히 상당했다. 월산리 M5분에서 중국계 청자인 계수호(鷄首壺)가 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백제왕의 주요 하사품으로 알려진 최상급 위세품의 하나로 종전에 익산 입점리와 공주 수촌리, 천안용정리, 서산 부장리 등 백제의 영역에서만 나왔다.
또한 신라의 천마총과 황남대총 출토품과 흡사한 철제초두(鐵劑鐎斗)를 비롯해 금제 귀걸이, 갑옷과 투구, 기꽂이 등 가야계 위신재로 포함돼 있었다.
이는 중국과의 독자적인 외교를 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출토품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월산리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두락리에도 40여기의 가야계 고총이 무리지어 있는데 2013년 남원 유곡리 및 두락리 고분군 32호분 발굴조사를 통해 무령왕릉 수대경과 비슷한 청동거울을 비롯해 금동신발, 철촉다발, 말뼈, 토기 40여점, 철기 100여점 등 다수의 유물이 출토돼 운봉고원이 당시 막강한 세력을 이루었던 가야계의 국가, 즉 기문국이 존재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지금 가야의 역사는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
가야의 역사는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에 유적과 출토된 유물로 이야기 한다.
남원에서 그동안 출토된 양질의 유물들을 통해 전북 동부지역에서의 막강한 세력을 이룬 가야국가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 주었고 더불어 최근 지표조사 결과로 밝혀진 운봉고원 일대 35개소의 제철유적은 그 근거를 더욱 충분히 뒷받침 해주고 있다.
흔히 가야시대는 철의 왕국이라고 한다. 철의 왕국이라고 불렸던 가야의 그 많은 철들이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에 대한 의문의 해답은 바로 이 제철유적에서 찾을 수 있다. 운봉고원 일대 가야세력의 힘은 바로 이 철이었을 것으로 많은 학자들은 이야기 한다.
현재 옥계동 제철유적의 시굴조사를 진행중으로, 조사결과에 따라 심도 깊은 발굴조사를 통해 더욱 객관적으로 가야의 역사성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2013년 김해시, 고령군, 함안군은‘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렸다. 남원시과 장수군은 고분뿐 아니라 산성, 봉수, 제철유적을 기반으로 세계유산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도출해 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많은 양질의 유물이 출토된 남원 유곡리 및 두락리 고분군은 사적으로 지정 추진 중이며 중심유적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남원시는 앞으로 체계적인 조사와 많은 연구를 기반으로 제철유적을 중심으로 한 ‘가야역사유적지구(가칭)’의 2020년 잠정목록 등재를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운봉고원’ 제철유적지… 가야시대 ‘포철 단지’ 아니었을까
남원 성산리 산길 나뭇잎 사이에서 발견된 슬래그(slag·철 불순물) 더미.
ㆍ수수께끼의 ‘남원 유적’ 르포
▲ 마한·백제 영역 추정됐지만월산리 고분군 발굴되면서남원 동부권 ‘가야 세력’ 입증
▲ 그간의 학계 정설 뒤집으며가야의 역사 새로 쓰게 될 듯
“여기가 삼국시대에는 포항제철 단지가 아니었을까요?”
6일 전북 남원의 성산리 제철유적을 살펴보기 위해 등산로를 벗어나 100여m를 걸어 들어갔다. 나뭇잎 사이로 철의 불순물인 슬래그(slag) 더미가 보였다. 철은 철광석을 채석해 1~2㎝로 파쇄한 뒤 제련로에 넣어 녹여서 만들었다. 제련로에는 숯과 철광석을 번갈아 깔아 숯을 태웠고 그 온도로 철광석을 녹이는 원리였다. 이 슬래그는 철이 녹은 뒤 제련로 구멍으로 흘러나온 불순물이다. 곽장근 군산대 사학과 교수는 “슬래그의 부식 정도를 보면 삼국시대라고 추측할 수 있는데 이 철제 유적들을 발굴해야 제련로의 형태, 당시의 생활 양태를 엿볼 수 있을 것”이라며 “‘철의 왕국’이라고 불렸던 가야의 그 많은 철들이 어디서 왔는지 의문을 풀어줄 유적”이라고 말했다.
곽 교수는 남원 운봉고원의 철에 주목했다. 운봉고원 일대 가야 세력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이 세력은 백제와 맞대고 있었는데 어떻게 백제에 복속되지 않았을까. 곽 교수는 지난해 1년 동안 지리산 삼봉산에서 노고단까지 반경 25㎞를 지표조사한 후 제철유적 23개소를 찾아냈다. 현재도 지표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곽 교수는 “세력이 막강했던 고령의 대가야도 대규모의 제철 유적은 제시하지 못했다”며 “이 지역은 대대로 철의 산지였던 것으로 보여 운봉고원에 있었던 가야 소국의 힘도 철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백두대간을 올라오니 고원의 평지가 펼쳐졌다. 해발 500m의 고원지대에는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 그만큼 기온이 낮다는 뜻이다. 운봉고원은 운봉읍·산내면·인월면·아영면 4개 읍·면의 평평한 고원지대를 이르는 말이다. 운봉읍에서 인월면으로 이동하니 백두대간 위의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휘감고 있는 분지가 펼쳐졌다. 산 너머 운무를 넘어가면 경상도 함양이 나온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원래 운봉고원은 고려시대 왕건에 의해 남원에 편입되기 전 통일신라까지는 함양에 속해 있었다. 함양 철령군의 속현이었던 것이다.
남원 두락리 32호분 발굴 전 모습.
발굴 후 모습.
곽 교수는 운봉고원 일대의 가야 소국이 기문국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 세력에 대한 해석이 엇갈린다. 이희준 경북대 교수는 “남원 동부의 가야 세력은 대가야권으로 보고 있다”며 “기문이라는 이름이 있었다고 해서 독립적인 세력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당시 백제와 신라에서도 철을 생산했기 때문에 운봉고원에서 발견된 제철 유적을 발굴해 시대 분포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10년 남원 월산리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가야계 투구와 비늘갑옷, 왕이나 상류층 유물과 함께 나왔던 철제 초두, 백제 지배 세력이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제 계수호(청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운봉고원은 마한과 백제의 영역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돼 왔지만 월산리 고분군이 발굴되면서 달라졌다.
남원 동부권에 가야문화를 기반으로 발전했던 세력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가야는 경남과 경북 일부 지역에 자리를 잡은 연맹왕국이었다는 학계의 정설을 뒤집었다.
2013년 남원 두락리 및 유곡리 고분군 40기 중 32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금동신발과 백제 무령왕릉 수대경과 비슷한 청동거울, 토기 40여점, 철기류 100점 이상이 출토됐다. 가야의 역사는 다시 쓰여지기 시작했다.
남원 월산리 M5호분에서 출토된 철제 초두.
2013년 발굴했던 두락리 32호분은 복원돼 고층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곽 교수는 “봉분이 크다는 것은 세력의 힘이 컸다는 것이고 기수가 많다는 것은 세력의 존속 기간이 길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라며 “40여기 중 하나를 발굴했을 뿐인데도 금동신발이 나왔는데 이 고분들을 전부 발굴하면 가야의 속살을 얼마나 더 보여줄지 예상하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40여기의 고분 중 일부는 봉분을 깎아 밭으로 쓰거나 일부는 봉분 위에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자라 고분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남원시는 분포 조사를 통해 가야계 고분으로 추정할 수 있는 고분 180기를 밝혀냈다. 시는 올해 전라북도 기념물 10호로 지정돼 있는 두락리 및 유곡리 고분군부터 사적 지정 신청을 할 계획이다.
2013년 김해시, 고령군, 함안군 등 3개 시·군은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가야 고분을 올렸다. 시 관계자는 “남원 동부의 가야계 고분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운봉고원(雲峰高原)
이칭
운봉 분지, 雲峰 盆地
고원 및 분지규모
길이: 3~10㎞
면적: 약 65㎢
높이: 해발고도 450~550m
소재지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운봉 고원(雲峰 高原)은 전라북도 남동부의 소백산맥에 위치한 분지 형태의 고원으로, 그 범위는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의 행정 구역과 일치된다. 운봉 고원은 운봉천이 흐르는 북동쪽과 구룡 계곡이 위치한 남서쪽 가장자리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600~1,300m 사이의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450~550m 고도의 분지 지형을 이루고 있다.
소백산맥을 따라 내려오는 백두대간의 마루금은 운봉 고원의 북쪽 경계를 이루다가 고원의 남서쪽에서 고원 내부를 관통하여 지리산 노고단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운봉 고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앙과 북동부 지역은 지표면을 흐른 하천이 낙동강에 흘러드는 낙동강 유역에 속하지만, 남서부의 일부 지역은 섬진강 유역에 해당된다.
명칭 유래
운봉 고원이 위치한 운봉읍은 삼한시대에는 진한(辰韓)의 영토였고 삼국시대에는 모산현(母山懸)이라 불리는 신라의 국경 요새지였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현재의 지명인 운봉현(雲峰縣, 雲城)으로 개칭되었다. 운봉의 지명 유래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중에서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운봉이라는 지명이 북한의 개마고원에 위치한 두운봉(頭雲峯)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다.
두운봉도 운봉과 마찬가지로 높은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는 고원상의 분지 지형인데, 두운봉 일대에 거주하였던 발해 유민들이 운봉에 정착하면서 두운봉과 비교하여 붙인 지명이라는 설이다.
자연환경
운봉 고원의 지질은 대부분 중생대 대보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원의 남쪽과 북쪽에는 지리산 변성암 복합체가 분포하고 있다. 운봉고원은 해발고도 450~550m 범위의 분지상 고원으로써, 남동쪽의 산지에서 람천(濫川)이 발원하여 북류 및 동류하여 엄천강과 남강에 유입되어 결국 낙동강에 흘러들고, 백두대간의 분수계 너머인 운봉 고원 최남단의 주촌리에서는 주촌천이 발원하여 좁고 깊은 협곡을 형성하며 서쪽으로 흘러 요천에 유입되어 결국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운봉 고원은 내륙의 고원 상에 위치하므로 기온의 계절적 차이가 큰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남원의 연평균 기온은 12.2℃, 8월(최난월) 평균 기온은 25.4℃, 최한월(1월) 평균 기온은 -1.6℃이다. 따라서 운봉 고원은 남원 기상대에 비해 400~500m 더 높은 고도에 위치하므로, 약 2~3℃ 더 낮은 기온 범위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형성 및 변천
운봉 고원의 형성은 지반융기와 차별침식의 결과이다. 신생대 제3기 후반 이후로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지반 융기가 발생하면서, 운봉 고원은 단층선을 사이에 둔 서쪽의 남원시 일대에 비해 더 큰 지반 융기가 일어난 결과 현재와 같이 고도가 높아졌다. 게다가 운봉고원은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활발한 풍화 및 침식작용을 받아 고도가 낮아지고 기복이 완만해지면서 분지 형태의 지형으로 변화되었고, 상대적으로 풍화 및 침식에 강한 주변의 편마암 지역은 높은 봉우리와 능선으로 남아 분지상의 운봉 고원을 둘러싸고 있다.
운봉 고원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경사가 완만한 람천의 유역은 침식 작용이 활발하지 않지만, 경사가 매우 급한 주촌천 유역은 하천의 침식작용이 매우 활발하여, 좁고 깊은 협곡을 이루며 상류쪽으로 골짜기를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람천과 주촌천의 경계를 이루는 주촌리와 덕산리 일대에서는 주촌천이 람천 유역에 침입하여 주촌천의 유역으로 취하는 하천 쟁탈(stream piracy)이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현재 운봉 고원의 남서쪽에 치우쳐 위치한 백두대간의 분수계가 수만 또는 수십만 년 후에는 고원의 중앙부로 이동될 가능성이 높다.
현황
운봉 고원은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의 행정 구역과 거의 일치된다. 운봉읍은 1995년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읍 소재지는 서천리이다. 운봉 고원은 지형적인 이점 때문에, 배추, 고추, 마늘 등의 고랭지 채소와 화훼 재배가 활발하다. 그리고 용산리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면양목장 국립종축장이 위치해 있으며, 준향리에는 한국 경마축산 고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는 등, 축산업도 활발한 지역이다. 과거에는 유기(鍮器)와 목기(木器)가 유명하여 운봉장은 전북에서 손꼽히는 명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