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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신학기 준비 특강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행1:1-26
요절/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신학기 준비 특강으로 사도행전 1장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사도들을 통해 어떻게 교회를 세우시고 어떻게 예루살렘에서부터 로마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는지 담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주체가 예수님이라면 사도행전의 주체는 성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사도들을 통해 생명구원 역사를 이루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가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령이 임하시면 사도들에게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 말씀해줍니다. 또 성령께서 임하시기까지 사도들이 어떻게 영적 환경을 예비했는지 나옵니다. 우리가 이를 배우므로 신학기 성령의 인도함과 권능을 덧입어 복음 역사를 힘있게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자 누가는 먼저 쓴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행하시며 가르치신 일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하신 날까지 일들을 기록했습니다.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신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까지 40일 동안 이 땅에 머무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기간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첫째, 제자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 즉 부활을 나타내셨습니다. 끝까지 예수님 곁을 지켰던 여자들과 막달라 사람 마리아에게는 부활의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셨습니다. 힘들어져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 엠마오로 낙향하는 두 제자에게는 심방 가셔서 부활의 믿음을 심고 제자공동체로 돌아오도록 하셨습니다. 도마에게는 부활한 자신을 만져보게 하심으로 믿는 자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오백여 형제들에게는 일시에 보이기도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40일 동안 자신이 살아나셨다는 여러 가지 확실하고 많은 증거들을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렇게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확신시키고자 하신 것일까요? 이는 제자들이 앞으로 전파해야 할 것이 부활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십자가와 함께 복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신앙만 있고 부활 신앙이 없을 때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을 위해 헌신하지만 슬프고 무기력하며 손해의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부활 신앙은 죽음조차도 이겨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 앞에 굴복해야 했던 온 인류에게 주시는 승리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의 첫 열매로서 장차 우리의 부활을 보증해줍니다. 우리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 이어집니다.
또 죽음을 정복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우리 인생은 결코 실패하지 않고 승리합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 수고한 것이 하나도 헛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주님이 보상해주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생 속에 어떤 역경이 닥쳐와도 만유를 통치하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런 분명한 부활 신앙이 있을 때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얼마 안 있어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복음 역사를 계승해 자립적으로 섬겨야 할 자들입니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신앙의 기초가 부활에 있어야 함을 아셨습니다. 신앙의 기초가 자기 신념이나 의지나 예수님에 대한 인간적 충성심이었을 때 연약하고 한계적이어서 죽음 앞에 두려워 부인하고 도망갈 수밖에 없음을 아셨습니다. 연약하고 두려움 많던 제자들이 담대하고 생명력 충만한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마음에 분명한 부활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제자들 마음에 하나님 나라를 심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부터 예수님의 주된 관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목적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토를 넓히고 건물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각 사람의 내면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욕심을 따라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을 때 그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죄와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또 이를 위해 제자들을 부르셔서 복음의 일꾼들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자신의 죄를 진실하게 회개하면서부터 우리 내면에 시작됩니다.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고 회개하고 복음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영접할 때 이루어집니다. 이를 위해 복음 전파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것으로 시작해서 사도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한 것으로 끝이 납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부활과 하나님 나라가 키워드입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사도들과 함께 모였다(While he was eating with them)는 것은 함께 식사 교제를 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식사 교제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려 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예루살렘은 실패와 좌절의 도시였고, 두려움의 도시였습니다. 그들이 믿고 따르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던 곳이요, 그들마저 죽이려는 종교 지도자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은 두렵고 부담스러운 곳으로 하루속히 예루살렘을 떠나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왜냐면 복음 역사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예언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2장 3절은 말씀합니다. “율법(교훈)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누가복음 24장 47절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으로 복음 역사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승천 후, 남겨진 사도들이 당장은 자립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처음부터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예수님 대신 그들을 돕는 자로 오십니다. 성령은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그들의 모든 연약함을 감당해 주시고, 그들의 모든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이 성령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때 예루살렘의 힘든 환경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예루살렘에서 더 적극적으로 복음 역사를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힘든 예루살렘의 형편이나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한 자신만을 바라봐서는 안됩니다. 예루살렘에 남아봤자, 당장에 아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미리 자포자기 해버리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사도답게 주님의 복음 역사를 계승하기 위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영적인 환경을 예비해야 합니다. 또 그들은 보편적인 마음으로 어느 누구에게라도, 어떤 지역일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마음에는 유다이즘에 사로잡혀 이스라엘에 국한된 하나님 나라 회복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나라 회복이라는 미션을 부인하거나 무관심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이니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라 하십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8절을 읽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은 유다이즘에 갇혀 이스라엘에 하나님 나라 회복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민족과 이념을 초월해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유일한 관심이요, 소망입니다. 예수님은 이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열두 사도들을 택하여 예루살렘에서부터 복음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을 대적하던 사울을 변화시켜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그를 통해 소아시아와 그리스를 넘어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나 복음 역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이후에도 하나님은 각시대마다 택하신 종들을 통해 로마를 넘어 땅끝으로 알려진 스페인과 영국과 미국과 한국과 중국까지도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 복음은 중동과 아시아, 유럽, 북미, 중남미, 오세아니아, 아프리카까지 전파되고 있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세계 곳곳에 예수의 증인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위대한 계획을 가지고 열두 제자들을 택하셔서 훈련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각시대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자들을 택하셔서 그들을 통해 복음 역사를 이루어오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각처에서 택하신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 역사에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이 땅에 태어나 UBF라는 교회 공동체로 모이게 하신 목적은 우리를 통해 진주의 영혼들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UBF만을 위한 것도 아니요, 경상도와 대한민국과 전 세계 땅끝까지 보편적으로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생명 구원 역사는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한 사람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우리 인생 자체도 감당하기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나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예수의 증인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을 덧입을 때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원천은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실 때 자신의 인생 문제, 두려움과 연약함의 문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 갖고 도울 수 있습니다. 실제 두려움 많고 무능했던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실 때 담대하고 능력 있는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던 갈릴리 평범한 사람들이 여러 나라 말로 유창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 번에 삼천 명, 오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능력은 사도들을 어느 정도까지 증인 되게 하십니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된다고 하십니다. 현재 제자들에게는 예루살렘도 벅차고 두려운 곳입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을 배척하고 원수처럼 생각하는 땅입니다. 그나마 사마리아는 소문도 듣고 여행 삼아 한두 번 가보기라도 했지, 땅끝은 가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능력을 주시면 그들은 어느 곳에서든지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번 성지순례 기간 가이드를 해주셨던 목사님은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무슬림들과 사귀고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복음을 대적하는 그들에게도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능력주시면 내게 익숙한 곳에서부터 시작해 복음을 대적하는 곳, 내가 모르는 낯선 곳에서도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사도들은 한동안 하늘만 쳐다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야속하고 서운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아와 같은 심정으로 걱정하며 넋을 잃고 구름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무슨 말씀이 들립니까?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1).”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신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십니다. 다시 오셔서 제자들에게 부활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주십니다. 처음 오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된 사명을 주셨다면, 다시 오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결산하시고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시며 부활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급으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만 쳐다보며 넉두리만 할 것이 아니라 사명의 땅에서 다시 오실 주님을 생각하며 예수의 증인의 삶을 힘써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처럼 지금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모든 신자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6장 19절은 “너희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했습니다. 성령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내면에 항상 임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신앙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영적인 소원을 불러일으키시며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성품을 변화시켜 성숙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해주십니다. 때마다 필요한 지혜와 용기와 믿음을 덧입혀 주십니다. 이처럼 성령은 우리의 능력과 지혜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성령이 내주하고 계시는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신자들이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다 엄청난 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 방법이 다르고, 각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부분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일하심은 각 사람에게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성령의 내주하심을 받았더라도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있다는 것은 성령께 붙들려 지속적인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을 받았어도 늘 자기 욕심대로 살면서 성령을 근심케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신자는 하나님을 슬프시게 합니다. 물론 이런 사람도 성령이 내주해 계신다면 어찌하든 하나님의 나라까지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이 내주하시는 것을 확신하고 자신을 성령께 맡기며 성령의 지속적인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과 지혜로 열매 맺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제자들처럼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합니다. 바울 서신의 실천 편에는 ‘성령을 좇아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들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올바른 신앙생활의 원동력은 성령의 충만함, 즉 성령의 지속적인 인도함을 받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연약함과 한계를 극복하고 힘있게 복음역사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사도들은 성령께서 임하기를 기다리며 어떻게 영적인 환경을 예비했습니까?
첫째,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들이 거처하고 있는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곳에는 가룟 유다를 제외한 열한 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님의 아우들과 예수님을 따랐던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함께 했는데 모인 무리의 수가 약 120명 정도였습니다. 그들이 모여 뭐했습니까?
14절을 읽겠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들은 함께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힘쓰다’는 것은 기도하는 일에 헌신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두려움을 느낄 때 기도했습니다. 혼란스러울 때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할 때도 기도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시기까지 지속적으로 기도했습니다.
말씀과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간절한 소원을 아뢸 수 있습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강압적으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임하시고 일하십니다. 성령께 자신을 맡기고 인도함을 구하는 자들을 신실하게 인도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임하시고 우리를 인도해주시도록 간구할 때 우리 안에서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 나 자신을 내어드릴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셔서 능력을 부어주시고 선한 일을 행하게 하십니다. 다락방 기도는 오순절 성령세례를 받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도 제자들은 모이기에 힘썼고 모이면 합심해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신앙과 마음의 간절한 표현입니다.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그 기도 속에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 간절함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전달됩니다.
둘째, 공동체를 정비했습니다. 베드로는 기도하는 중, 가룟 유다가 맡았던 직무를 대신할 자를 세워야 함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유다의 배반은 모든 제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로 택함을 받아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또 돈궤를 맡아 관리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그가 어째서 예수님을 배반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또 누군가 가룟 유다처럼 또다시 배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서로 간에 깊이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가룟 유다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했습니다. 그는 시편 말씀을 인용해 가룟 유다의 배반은 불행한 사건이지만 성경에 예언된 말씀이 성취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가룟 유다의 문제를 인간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주권 편에서 보았습니다. 가룟 유다의 문제는 고통스러운 문제이지만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성취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제자 공동체 안에 있던 가룟 유다로 인한 회의와 서로에 대한 불신들이 정리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유다가 맡았던 직무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제자 공동체의 내면적인 문제 해결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공동체 정비가 필요했습니다. 베드로는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자고 했습니다. 사도의 조건은 요한의 세례로부터 예수님의 승천 때까지 함께 했던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을 올바르게 증언할 수 있고 그 증언이 신빙성이 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베드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사도의 자격 조건이 되는 두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한 사람은 요셉, 또 한 사람은 맛디아였습니다. 제자들은 기도한 후, 제비 뽑아 맛디아를 열두 번째 사도로 세웠습니다. 이로써 맛디아가 가룟 유다가 담당했던 봉사와 사도의 직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이 임하시고 일하시도록 제자 공동체를 내외적으로 정비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 문제처럼 우리 각자의 내면과 교회 공동체에도 성령께서 일하시는데 걸림돌이 있다면 해결함 받고 정비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해결되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의문과 회의와 불신이 있다면 그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 편에서 생각하고 말씀에 기초해 분별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또 회개하지 않는 죄 문제를 품고 있다면 진실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모든 영적 부흥은 진실한 회개로부터 시작됩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기 때문에 죄를 몹시 싫어하십니다. 죄로 인해 근심하고 탄식하십니다. 죄를 품고 있는 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죄들을 진실하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또 교회 공동체적인 문제들이 있다면 합당하게 해결해서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정화하고 정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각 사람과 우리 공동체에도 성령께서 일하셔서 권능을 덧입혀 주시고 주의 증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까지 예수님의 부활과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셔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게 하셔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 되게 하십니다. 이런 성령의 일하심에 저와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부활과 하나님 나라에 영적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더불어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의 증인된 삶을 힘 있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다만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기에 힘쓰며 성령의 공동체를 이루어 성령께서 일하시는 공동체,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공동체, 생명 구원이 흥왕하게 일어나는 공동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