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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여행 기획 박종희 작가의 연재 소설] '머피의 법칙(갬블러) 2부'...대체 어디로 가야하나~
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1분 전
모 주방에 닥친 '일촉직발'의 위기...FBI 피해 3국으로 탈출 |
삽화: 이기원 작가증인,
(지난호에 이어 계속~)
연대지휘부 리더는 CIA 대외정책국 특수 작전 부 요원이었다. 등급으로 따지면 과장이었고, 모 주방이 라스베가스에서 만난 미국인은 부장이었던 것이다.
그는 주로 자금지원과 병기보급을 맡아서 활동했는데, CIA 미 중앙정보국은 니카라과 사태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어, 특수 작전 부 재량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 연방 중앙정보국 본부에서 일절 자금지원은 하지 않고, 특수 작전 부 선에서 무슨 짓을 하던, 자금을 만들어 작전을 수행하라는 묵계가 떨어진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FBI 중앙수사국이 CIA 특수작전부의 불법행위를 내사한다는데, 그 이유는 마약을 대량 유입해, 미국 내에서 소비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또 무기중개상들한테 불법으로 중화기와 각종 탄약을 구입, 국외로 반출한다는 점도 수사 대상이었다.
미국의 대외정책 상으로는 분명 자국을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지만, 미국 내 53개주 전역 치안을 담당하는 FBI 시각엔 엄연한 불법이고, 범죄단체들과 비밀 거래를 한 점은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인 듯하다. FBI도 USA 자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대 전제는 인정하나, 그 과정에서 미국 헌법이 규정한 상, 하위 법까지 무시해가며, 정보관리주관기관이 탈법을 일삼는 것은 연방국 체제를 뒤흔드는 월권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FBI는 절대 미국 대내외의 정보수집과 CIA 운영에 관해서는 간섭하지 않고, 정보기관 비밀 임무를 제한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최상위 정보기관이 권력형 범법을 일삼으면, 그와 관련된 거대 갱단을 어떻게 법정에 세울 수 있겠는가 하는 추궁이다.
하지만, FBI도 CIA 특수 작전 부의 임무를 잘 알고 있고, 더구나 백악관 NSA 즉, 대통령 직속 국가안전보장위원회에서 직접, 간섭을 자제하라는 요청이 있어, 니카라과 내전이 진행되는 상황 중에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있다. 그저 반군과의 교전이 종료되기를 지켜볼 뿐이다.
그렇다면 미 대통령도 이미, 니카라과 교전수행을 안다는 의미인데, CIA 대외정보국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동구권이 수상하다는 것이다.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동유럽 공산국가들 경제파탄이 심각해 민심이 동요하고 있고, 극히 일부지만, 서유럽으로 탈출을 감행한다는 보고란다. 동구권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크루즈 유람선에서 만난 영국 계 노신사로부터 들은 바 있지만, 그 혼란이 현실화된다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배경은 클레물린궁의 주인이 고르바초프로 바뀐 뒤, 2차 세계대전 종전과 동시에 위성국을 내내 지원하던 원조금을 삭감하면서 비롯됐고, 소련은 냉전체제 유지를 위해 투입하던 막대한 군사비를 감당 못하고, 계획경제에 재정이 악화돼 대외 지원 자금을 중단한 것이다.
CIA 대외정보국의 판단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 1주일 뒤, 미국 3대 메이저 방송들이 동유럽 엑소더스를 일제히 톱뉴스로 다뤘다. 그리곤 시간이 갈수록 동유럽 탈출러시가 기아급수로 폭주한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리포트 했다.
처음엔 동구권 공산정권이 국경선을 드문드문 넘는 탈출자들을 사살하기도 했지만, 그 숫자가 갑자기 불어나자 포기했고, 불가리아에서 시작된 탈출러시가 내륙으로 번져 유고와 체코, 동독에서도 월경자들이 늘어나자 헝가리, 폴란드까지 무너졌다. 소련이 끝까지 마지노선을 구축했던, 베를린 장벽마저 붕괴되자 클레물린 궁은 공산체제를 포기했고, 휴양지로 떠났던 고르바초프가 한동안 공산당 중앙 서기장 별장에 감금돼 있다, 모스크바로 귀환하자마자 당 서기직을 내놓았으며, 옐친이 쿠테타를 일으켜 소련 공산정권을 몰아냈다.
냉전체제의 한 축이었던, 공산권이 무너진 건 1989년과 1990년 사이 그것도 단 6개월 만이었다. 볼세비키 혁명으로부터 발원된 공산주의가 1세기도 안 돼 종막을 고했다.
공산권 붕괴 소식을 접한 니카라과 반군도 더 이상 정부전복 활동을 접고, 와해됐다. 반군의 이상향이나 다름없었으며, 소련체제를 니카라과에서 구현하려 했는데, 목적이 사라진 터라, 스스로 포기한 채 밀림지대를 떠난 것이다.
이제 현실적인 문제는 마다과에 주둔한 외인부대 뒤처리다.
미 대사관의 히스페닉과 직접 날아온 CIA 특수작전부장 미국인은 외인부대 활동 중지를 선언하고, 각 교전지에 배치됐던 부대원을 전부 원위치 시켜, 각자 니카라과를 알아서 떠나라며, 비행기 표를 건넸다. 외인부대원들에게 지급할 주급은 이미 계좌에 다 송금했으며, 서류상 특수작전 부 정보요원이란 직책도 해제해 정리했다. 부대원들은 아무 불평 없이 개인장비를 반납한 뒤, 평복으로 갈아입고, 국제공항을 통해 하나 둘 빠져나갔다.
밀림지대에서 반군활동을 감시하던 다른 CIA 특수작전 부 정보요원들은 서둘러 떠났지만, 모 주방은 잔류해, 니카라과 정부와 협상에 들어갔다.
물론, 히스페닉과 미국인을 보좌하는 것이었으나, 이제껏 반군소탕작전에 투입된 무기들을 반값에 사라는 것이었고, 그 동안 외인부대 운영에 소요된 경비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니카라과 대통령은 자신을 방어해준 것은 고맙게 생각하지만, 현 정부는 돈이 없다고 발뺌했다.
히스페닉과 미국인은 노발대발했다. 당신이 비공식적으로 지원해달라고 해, 불법적으로 전비를 마련 투입했는데, 지금에 와서 오리발을 내밀면, 어쩌느냐는 것이었다.
협상은 지루하게 계속 됐다. 니카라과 대통령 말은 만약 마다과가 공산반군에 넘어갔으면 미국도 위태로웠으니까, 지원에 선뜻 나선 거 아니냐고, 당위성을 강조했다. 미국인과 히스페닉은 당신이 정, 그러면 권좌에서 내 쫒길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반정부인사들에게 무기를 넘기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다그치자 입을 다물었다.
더구나 당신이 스위스은행에 빼돌린 거액의 불법자금을 그들에게 폭로하면 감옥 밖에 더 가겠어, 하자 알았다는 거다. 원하는 금액은 다 못 주고 80%만 넘기겠다는 거였다. 거의 보름이나 협상을 벌인 끝에 전비를 회수했고, 무기들을 정부군에게 양도했다.
연대지휘부도 전부 철거하고, CIA 특수작전 부 잔여요원들도 귀국 길에 올랐다.
다만, 문제는 미국 내에서 연방 중앙정보부의 입장처리였다. 정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가면, 특수작전부장인 미국인은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른다. 히스페닉도 대사관에 휴가를 내고, 함께 LA행 비행기에 올랐다. 모 주방도 동행했는데, 같은 여객기에 탄 의무관은 존 홉킨즈의대 대학병원으로 복귀했다.
모 주방은 LA에서 미국인을 비롯해 히스페닉 등, 다른 CIA요원들과 헤어져 리노로 갔다. 누나네 집이 인근이지만, 거기 갈 생각은 없었다. 가봐야 환영도 못 받고, 오래 기거할 수도 없다.
삽화: 이기원 작가
● 대체 어디로 간다?
H카지노에서 은행계좌를 확인해 보니,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와 있었다.
전투요원으로서 주급 3백 달러의 1년 치 합산 금액, 이외 독사에 물려서 몸 상태가 안 좋으니, 요양하라는 뜻의 2만 달러, 그리고 보너스가 5만 달러 더 입금돼 있었다. 잔무처리와 니카라과 대통령과 협상에 참여한 대가 인 듯했다.
밑천이 도합 8만 달러였지만, VIP룸에 상주하기는 어려워 작은 판인 세븐카드에 섞였다.카지노에만 들어서면 그는 지난 과거는 다 잊는다. 아니, 생리적으로 도박판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생활 자체이기 때문이다.
니카라과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였던 악몽조차, 카드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게임은 그럭저럭 잘 풀려, 밑천을 조금 불렸다. 도박이란 항상 상승세만 있는 게 아니고, 흐름이 오르내리는 터여서 칩을 그다지 많이 쌓지는 못했다.
오후 4시부터 끼어들어, 새벽에 이를 때까지 겨우 5만 달러 밖에 따지 못했다.
마음은 VIP룸 바카라 판에 가 있어 그런지, 풀린다 싶다가도 막히곤 했다. 플로시를 잡으면, 풀하우스가 튀어나오는 식이다.
하지만, 니카라과에서 독사에 물린 후유증인지, 신경을 많이 쓰면 두통이 생기곤 했다. 어느 땐 또 시야가 흐려지기도 했다.
커피를 30잔이나 마셔대고, 담배를 1보루나 피워대며, 오랜만에 게임다운 게임을 즐기고 싶었지만, 컨디션은 점점 나빠져, 하는 수없이 판에서 물러나 객실로 올라갔다.
삽화: 이기원 작가
창밖은 이미 동이 트기 시작했고, 거리도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청소차가 살수를 해가며, 작은 도시를 깨끗이 정리하고 있었다.
모 주방은 의무관이 떠날 때 쥐어준, 수면제 한통에서 세알을 꺼내 입에 넣고 물을 마셨다. 그리곤 지친 몸을 침대에 뉘였는데, 문득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나와 고작 한다는 짓이 도박인가 싶었다.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딱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보통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직장생활 또는 자영업 따위를 해볼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선뜻 내키지 않았다. 이제 곧 마흔 줄에 접어드는데, 불혹이면 자신을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옛 선인들의 일침에 부끄러움이 엄습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늘 생각이 생각에만 그친다는 게 문제다. 성격적인 결함이라면 결함일 것이다.
한숨 깊게 자고 일어났는데, 몸은 여전히 무겁다.
해변 가 숙소에 있을 때, 맹독의 후유증이라고 의무관은 말했다. 독사면역혈청이 신경마비를 풀면서 원상회복을 유도했지만, 맹독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탓이란다. 독사에 물린 직후, 영국 계 부대원이 신속히 응급처지를 했지만, 야전병원으로 후송되는데 시간이 걸려, 아주 극소량이지만, 심장까지 퍼져 사망일보 직전이었다는 것이다. 응급실에 도착할 때 이미 전신마비가 왔고, 심실 세 동이 시작돼 5분만 더 지체했으면, 심장마비가 진행됐을 것이라 했다.
생각 할수록 악몽과 같은 경험이었다. 죽음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 모 주방으로서는 살아나는 게, 죽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라스베가스에서 밑천 다 털릴 때 마다 자살을 시도한 게, 벌써 세 번이나 된다.
한 번은 유리창을 깨 밖으로 뛰어내리려 했었고, 두 번은 리벌버 권총으로 러시안 룰렛처럼 방아쇠를 당겼으나 모두 허탕을 쳤을 따름이다. 총알 한 개를 여섯 개 구멍에 아무렇게나 장전하고, 탄창을 뱅그르르 돌려서 격발하는 따위 말이다. 운 좋게도 세 번이나 빈 구멍으로 당겨져 살았지만 말이다.
삽화: 이기원 작가
룸 서비스로 끼니를 대충 얼버무리고, 다시 세븐카드 판으로 내려갔다. 게임을 할 때만 이런저런 고민과 갈등, 번뇌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카지노마다 세븐카드 룰은 좀 다르지만, 대개는 비슷하다.
기본은 10달러고, 4구는 하프, 5구부터 풀 베팅이다. 그러나 손님들과 딜러가 합의하면 6구부터 풀 베팅으로 하는 예도 있고, 7구만 풀 베팅인 경우도 있다. 풀 베팅은 되 받아치기가 통상 두 번이다.
어제는 6명이 게임에 참여했고, 기본이 5달러, 7구에만 풀 베팅으로 했는데, 손님도 바뀌고 인원이 줄어, 그를 포함 4명밖에 안 돼, 앞서 게임 하던 세 사람이 5구부터 풀 베팅을 하기로 한 모양이다.
1인당 기본이 10달러이니까, 4구는 하프로 20달러씩 베팅하고, 5구부터 풀 베팅 이어서 80*4=320달러를 베팅하며, 6구는 320*4=1220달러, 히든은 1220*4=4880달러가 되는데, 네 명이 다 7구를 받는 걸, 전제한 판돈이다. 그리고 되 받아 치기를 5구부터 2회씩 한다면, 판돈은 백만 달러를 웃돈다.
모 주방은 첫 판 6구에서 카드를 접었다. 패가 너무 안 좋았고, 카드 한 장 더 보기 위해 1220달러를 밀어 넣기에는 부담이 컸다. 자기 밑천이 고작 20만 달러 조금 넘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방들도 패가 안 좋으면 5, 6구에 카드를 접어 판돈이 작아지는 경우는 훨씬 불안이 덜하다.
두 번째 판은 석장이 같은 다이아몬드 무늬로 들어왔는데, 플로시를 바라 볼 수 있는 카드다.
딜러가 4구를 오픈했는데, 아쉽게 스페이드였다. 일단 20달러를 밀어 넣었고, 다른 세 명도 베팅했다. 5구는 천만 다행으로 다이아몬드가 떨어졌다. 그는 망설임 없이 320달러를 베팅했고, 손님 중 한 명이 카드를 접어 판돈은 960달러가 되었다. 6구는 다시 고민하게 만들었는데, 클로바가 떨어진 것이다. 상대 중 또 하나가 패를 접었다. 판돈은 1920달러다.
모 주방은 승부를 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두 눈을 감고, 조용히 딜러가 박스에서 카드 빼는 소리를 들었다. 오픈된 카드를 먼저 본 상대가 한 숨을 푹 쉬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모 주방은 원 페어 밖에 안 되는 상황이어서 만약, 다이아몬드가 아니면 판돈을 내주어야 할지 모른다. 단, 예외는 있다. 상대가 같은 원 페어일 경우는 이길 수 있다. 에이스 페어이기 때문이다.
딜러가 오픈을 권하자 상대는 투 페어를 나직이 중얼댔고, 모 주방은 거의 무의식 적으로 졌구나 싶어 눈을 떴는데, 마치, 마술을 부린 듯 다이아몬드가 빨려 들었다. 상대는 패를 그냥 접었다. 그가 베팅을 하면 되 받아 치려고 했는데, 아쉬웠다.
다음 판도 제법 괜 찬은 패가 들어왔다.
스페이드와 클로바, 하트 5 석장이 떨어진 것이다. 끗발 날 때 당겨둬야, 오래 버틴다. 잘만하면 포 카드를 바라볼 수도 있다.
리노는 라스베가스보다 판돈이 좀 클 뿐 아니라, 게임 하는 사람들 수준도 상당히 높다.
말하자면, 도박꾼들이 1300m 고지를 일부러 찾아오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그래서 뻥 카는 없다. 더러, 터번 쓴 중동 석유부호가 돈질로 상대의 기를 죽이려 해도, 대부분은 진 카로만 승부를 한다. 허나, 그게 게임할 때 더 힘들게 만든다. 다른 손님들 패를 신속 정확하게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딜러는 베팅 액수를 확인해가며 4구를 오픈했다.
하트 7이 떨어졌다. 네 명이 5-6구까지는 간다고 가정하면, 판돈을 염두에 둬야 한다.
모 주방은 웬 지 불안한 느낌 엄습했는데, 5구도 스페이드 킹이 나온 탓이다. 다른 세 명의 얼굴 표정을 유심히 살피며, 베팅을 했고, 6구는 클로바 에이스가 나왔다.
미치겠다.
입술이 바짝바짝 타 들고, 호흡도 거칠어졌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오줌까지 찔끔거렸다. 포 카드는 아니더라도 풀 하우스만 떨어져도 승산은 있었으나, 방정맞게 트리플로 말라 버릴 것 같았다. 다행이라면 손님 둘이 접었다는 거였고, 판돈은 작아졌다.
일반 하우스 방 같으면, 자기 패와 상관없이 베팅을 되받아 쳐, 판돈을 3배까지 키우는 게 보통이지만, 카지노에서 그렇게 게임하는 손님은 아랍인들 밖에 없다. 그 외에는 정해진 베팅에 순순히 응하는데, 판돈이 너무 커지면 서로 부담을 갖게 되고, 일반 하우스 방보다 베팅 액이 최소 다섯 배는 큰 규모이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베팅을 했고, 7구를 보기로 결정했다.
상대를 주의 깊게 관찰하니, 투 페어는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면 플로시 정도를 어림할 수 있겠지만, 바닥에 깔린 카드가 하트, 스페이드, 클로바이기에 아직 족보를 쥔 건, 아니라고 판단됐다. 서로 히든을 기다리기는 마찬가지다. 최악은 손님이 풀 하우스를 잡을 경우다. 그렇다면 자신이 최소한 같은 풀 하우스나 최대 포 카드를 건져야 승산이 있다는 이야기다. 아니면 같이 말라버리든가.
운명의 7구가 딜러 손에서 밀려나와 펼쳐졌는데, 스페이드 퀸이었다.
모 주방은 망연자실했고, 깊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럼에도 속내를 감추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상대에게 작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다. 그 손님도 표정이 굳어 있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칩을 쥔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게 눈에 띠었다. 상대는 그래도 꽤 많은 밑천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시간을 좀 끌었다.
딜러가 어떻게 할 것인지, 물을 정도로 뜸을 들였다.
손님은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내놓았다. 먼저 베팅한 것은 모 주방이었고, 상대가 망설이는 것을 보면, 족보는 아니라고 생각한 거다. 만약, 여기서 모 주방보다 높은 족보가 나오면, 상대는 샤 킹이 된다. 시간을 너무 끌고, 딜러에게 기다려 달라는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시간을 끌 수는 없다. 접든지, 베팅을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손님이 다시 망설이자, 딜러가 베팅을 받을 거냐고, 거듭 물었는데, 그가 미안하다며 카드를 뒤집었다. 딜러는 판돈을 모 주방에게 밀어주었다.
카드는 심리전이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면, 가차 없이 선제공격을 가한다. 그래야 낮은 패를 잡고도 족보를 이기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돈 질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작은 판 몇 번 먹고, 큰 판에 물리면, 금방 쪽박을 차게 되는 것이다.
모 주방의 밑천은 조금 늘었다. 하지만, 행운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카드가 각 패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6구에서 접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겨우 원 페어, 투 페어를 만들기 위해 5천 달러 가까운 거액을 던지고, 7구를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랑비에 옷깃 젖듯 밑천은 야금야금 빨려나갔다.
결국, 흐름을 바꾸기 위해, 잠시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박스에 챙긴 칩은 그나마 50만 달러에 조금 모자랐다. 손목시계를 보니 벌써 자정이었다.
객실로 올라온 모 주방은 룸 서비스를 요구해 식사를 했지만, 늘 그렇듯 커피와 담배에 찌든 혀와 목구멍이 최고급 요리마저 거부한 것이다.
평소 같으면 잠을 청하기 위해 창녀를 불렀겠지만, 그의 주머니엔 수면제 한 통이 들어있었고, 아직 2/3 나 남아있었다. 내성이 생기면 별 무소용이겠지만, 지금까지는 잠을 잘 유도해 주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이내 잠이 들었다.
헌데, 잠결에 희미하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수면제 약효가 강해 일어날 수 없었고, 또 귀찮았다. 얼마간 소란이 계속된다 싶더니 인기척이 느껴졌고, 그를 잡아 흔드는 것이었다. 낯선 남자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헤이! 옐로우 보이! 옐로우 보이!”
“...”
모 주방은 한참 만에 비몽사몽 눈을 뜨고, 올려다보니 흑인이었다.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는 키가 꽤 컸다.
“옐로우 보이, 정신 차려.”
“당신 누구야?”
모 주방은 쉰 목으로 물었는데, 여전히 흐릿한 시선이었다. 흑인은 대꾸 없이 그를 잡아 일으켰고, 강제로 욕실로 끌고 가, 샤워기의 찬물을 뒤집어 씌웠다. 냉기에 화들짝 깬 모 주방은 정체 모를 흑인에게 다시 다그쳤다.
“당신 누구야?”
그리곤 주머니에 권총이 있는 것처럼, 제스처를 취했다. 흑인은 멈칫하며 말했다.
“진정해, 진정하라고. 옐로우보이. 나는 CIA 대외정보국 소속 요원이야.”
“신분증 보여 봐.”
모 주방은 흑인이 내민 증을 확인하고 안도했지만, 뭔가 잘못된 것을 눈치 챘다. 니카라과에서 일은 공식적으로 끝났는데, 대외정책국이 아닌 정보국 요원이 리노까지 찾아온 이유를 몰랐다. 그는 쭈그리고 앉아 얼굴을 마주했다.
“지금 대외정책국장과 특수부 작전부장 이 FBI에 소환됐고, 연방 중앙정보국 국장은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 중이야.”
“짐작 못한 바는 아니지만, 나와 무슨 상관이 있어.”
모 주방이 강경하게 되묻자, 흑인은 담배를 건네 붙여주었다.
“만약, 작전부장이 기소되면 FBI가 너를 증인으로 내울 수 있어서 그래.”
“왜?”
모 주방은 타월로 젖은 몸을 신경질적으로 닦으며, 침대로 나와 앉았다. 흑인은 그의 짜증을 이해했다.
“네가 마약과 무기를 우송해준 장본인이고, 더구나 니카라과에서 정보전투요원으로 활동 했을 뿐 아니라, 니카라과 정부와 전비배상 협상에까지 가담한 사실을 전부 다 FBI 중앙수사 본부가 알고 있어. 또 아직 미국 내에 있다는 것도 파악한 터수고.”
“골치 아프게 생겼네,”
“맞아. 그래서 권유하는데, 지금 당장 미국을 뜨는 것이 좋겠다는 게, 우리 생각이야.”
“공항을 어떻게 빠져나가?”
“아직은 수배령을 내리지 않았는데, CIA와 NSA가 FBI를 설득하는 중이야. 그러니까 만약의 사태를 대비, 미국을 빠져나가란 거야. 단, 한국이나 유럽으로는 가지 마. FBI가 인터폴과 함께 너를 뒤져낼 테니까. 더구나 범인인도협정을 맺은 국가들이거든.”
“아니, 내가 무슨 중죄를 졌어?”
모 주방이 언성을 높였다. 울화가 치민 것이다. 흑인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건 나도 알지만, CIA방침인 걸 어떻게 해. 이왕 이렇게 된 거, 네가 좀 도와 줘.”
“에이! 씨 팔!”
모 주방은 타월을 바닥에 홱 내던졌다. 미 중앙정보국 내부지침이니 도리가 없다. 정, 말을 안 들으면, 간단히 제거해 버릴 수 도 있다. 흑인의 채근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CIA 요원들은 기소 범죄자 보호프로그램을 운영하는 FBI와 달라 상대가 정보국에 해롭다고 판단하면, 가차 없이 청소하는 스타일이다. 지금, 흑인이 점잖게 설득하다 영 안 되겠어, 란 마음을 먹으면, 극단적으로 사살해 사막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짐을 챙겼고, 흑인의 권유를 받아들여 객실을 나섰다.
삽화: 이기원 작가
그리곤 1층 환전소에서 칩을 바꿔, 미국본토 은행에 넣었다. 여행경비를 제외하고 말이다. 흑인은 머쓱한 표정으로 충고했다.
“FBI가 잠잠해질 때까지는 미국에 다시 들어오지 마. 알겠어? 네가 니카라과에서 미국을 위해 고생한 거 다 알고, 정보국에서도 너에게 불이익이 생길까 봐, 미리 손을 쓰는 것이니까,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빌어먹을...”
모 주방은 H카지노 밖에 세워둔 자동차를 함께 타고, 리노 국내선 공항으로 갔다.
흑인은 LA행 비행기 표를 사주면서 말했다.
“동구권이 무너져, 전 세계가 다 뒤숭숭 한 거 몰라?”
“관심 없어, 난.”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기구가 CIA 야. 게다가 정권이 바뀌면, 대대적인 인원감축과 기구 축소가 불가피할 것 같아. 어쩌면, 너를 보는 것도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몰라.”
“...”
모 주방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흑인의 말에 공연히 숙연해졌다. 냉전시대에서 미 연방 중앙정보국이 행사한 권한은 거의 무소불위였는데, 그 초법적 권력을 엉뚱하게, 공산권 붕괴가 앗아가는 것이다.
정치적으로야 민주주의가 승리한 것처럼, 보여도 그로써 세계 초일류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더 많은 짐을 짊어지게 된 것이다. 그는 흑인에게 악수를 청했다.
“내 걱정 말고, 당신 업무나 잘 봐.”
“지금은 너를 무사히 미국에서 내보내는 게, 내 임무야.”
“풋...”
모 주방은 피식 웃었다.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CIA요원이 다 배웅을 하는지 알 수 없다. 협소한 공항청사 안내방송이 곧 LA행 국내선이 이륙할 예정이니, 승객들은 탑승하라는 것이다.
모 주방은 흑인에게 한 번 더 악수를 청하고, 공항 활주로에 선 작은 비행기에 올랐다. LA까지는 30분이면 간다.
아침 7시 첫 비행기엔 승객들이 꽤 있었다.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같았다.
비행기는 곧 이륙했다.
(다음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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