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부르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맥, 아니면 메켄지라고 불린다. 캠핑하다가 어여쁜 딸을 잃어버리고, 결국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고 있는 남자이다. 딸을 찾으려 온갖 지역을 헤맸지만, 결국 경찰은 그의 딸이 피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이야기했다. ‘거대한 슬픔’이 그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툭하면 그는 ‘만약에’라는 게임에 빠져들곤 한다. 만약에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지만 않았어도. 만약에 아이들이 카누를 타겠다고 했을 때 안 된다고만 했어도. 만약에 그 전날 출발하기만 했어도. 만약을 외쳐보지만, 그래봤자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파파’에게서 편지가 왔다.
메켄지,
오랜만이군요. 보고 싶었어요.
다음 주말에 오두막에 갈 예정이니까 같이 있고 싶으면
찾아와요.
_파파 (22p.)
맥은 찢어지고 젖은 미시의 빨간 드레스를 발견할 수 있었던 오두막을 떠올렸다. 그것을 발견했을 당시, 맥은 친구의 품에 쓰러져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떠올렸다. 그 오두막에 초대하는 파파. 맥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오두막에서 다시 만나자는 파파의 편지가, 진짜 하나님이 편지를 보내신 것인지. 아니면 미시를 살인한 살인범이 맥을 놀리고 있는 건지. 결국 맥은 다음 주말에 오두막으로 갈 계획을 세운다. 물론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한 채. 그렇게 오두막에서 맥은 정말 하나님과 만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살인범을 만나 무찌르는 어마어마한 액션을 찍었을까? 이야기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된다.
이번 연도 27번째 책인 오두막은, 내 머리를 정말 세게 한 대 치고 갔다. 아는 집사님이 자신이 청년일 때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하게 된 점들이 많다고 말씀하시며 빌려주셨었다. 그렇게 약 400쪽이 넘는 책을 두려운 마음으로 펼치게 되었고, 솔직히 처음에는 아이를 잃어버리고, 절망하는 이야기에 이게 무슨 내용인가 싶었다. 그런데 맥이 오두막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 또한 함께 오두막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는 함께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 모험은 정말 말 그대로 휘황찬란했다. 맥과 나를 오두막으로 초대한 그 ‘파파’는 정말 하나님이셨다. 그런데 여기서 참 이상하게도, 아프리카 여성으로 등장하는 성부 하나님, 중동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목수인 성자 예수님, 아시아 여성 영성으로 등장하는 성령 하나님, 사라유가 등장한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과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오두막에서 맥과 나를 만나주신 것이다. 마치 우리의 고정관념을 제거하기 위해 그렇게 나타나신 듯 보였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아침을 먹고, 도시락을 싸가서 호숫가에 가 예수님과 물 위를 걸었다. 또한 사라유와 함께 마음의 문을 열며 회복을 경험했다.
내가 오늘 가장 소개하고 싶은 장면에서는 소피아라는 잠언의 여인 또한 나온다. 바위 표면에 있었던 문을 열어보았고, 맥과 나는 바위를 통과하여 그 안으로 들어갔다. 컴컴한 바위 속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소피아가 등장하며 흐릿한 발광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혜의 여인 소피아는 맥에게 그의 다섯 아이에 관하여 질문한다. 그녀가 마지막 죽은 아이 미시에 관해 질문할 때, 맥은 벌떡 일어나며 이야기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걸 믿지 못하겠어요!” (250p.)
맥의 비난이 사방에 메아리가 되어 퍼져나갔지만, 소피아는 한결같이 침착했다. 그리고 맥에게 한 의자에 앉으라고 이야기했다.
“매켄지, 아까 당신이 여기 온 이유에 대해 설명했었죠? 당신은 당신의 아이들 뿐만 아니라 심판 때문에 여기 왔어요.” (250p.)
맥은 자신의 죄의식과 패배감을 느끼다가, 자신이 죽었으니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 거라고 말하며 혼란스러워하다가, 믿을 수 없다며 소리쳤다. 소피아는 그런 맥에게 심판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닌, 심판관의 자리에서 심판하는 것임을 이야기했다. 처음엔 맥은 아무 능력이 없는 자신이 어떻게 심판을 하냐며 이야기했지만, 소피아는 맥의 행동을 하나하나 짚으며 뛰어난 심판 능력이 있음을 강조했다.
“아, 그건 사실이 아닐 텐데요. 당신은 우리와 잠시 지내는 동안 뛰어난 심판 능력을 이미 입증했어요. 게다가 평생 동안 많은 사람들을 심판해왔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은 물론이고 그들의 동기마저 당신이 전부 아는 것처럼 심판했어요. 당신은 피부색고 신체 언어, 체취까지 심판했고, 역사와 관계도 심판했죠. 심지어 당신만의 미의식에 따라 한 인간의 인생관까지도 판단했어요. 이런 사실을 모두 고려하면 당신은 꽤 많은 심판을 해왔어요.” (253p.)
소피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맥과 나는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졌다. 간접적으로 이 이야기를 들은 나조차 고개를 숙이도록 만들었다. 소피아의 말은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다. 우리는 말로는 아무 능력 없는 연약한 죄인이라고 하지만, 막상 행동으로는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것처럼, 남을 판단하고 심판하고, 심지어는 하나님까지 심판하고 있었다. 그런 우리의 심판 능력은 아주 뛰어날 게 분명했다.
결국 맥은 심판관의 자리에 앉아서 무엇을 심판해야 하는지 묻기 시작했다. 소피아는 그에게 하나님과 모든 인류를 심판할 것을 말하고, 당황하는 그의 말에 또다시 이야기했다.
“놀리다니요? 당신 세계에서 심판받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분명 많겠죠. 적어도 몇몇은 수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야기한 탓으로 비난받아야 해요. 이 세상 가난한 이들의 것을 먹어치우는 탐욕스러운 자들, 어린아이들을 전쟁에 희생시키는 자들, 자기 아내를 때리는 남자들, 단지 자신의 화풀이를 위해 아들을 때리는 아버지들. 매켄지, 그들은 심판받을 만하지 않나요?”
“또 순진한 어린 여자아이를 희생양으로 삼는 자는요? 매켄지, 그자는 어떻게 하죠? 유죄인가요? 심판받아야 하나요?” (257p.)
메켄지는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그래요! 그놈은 지옥으로 떨어지라고 해요!” (257p.)
소피아의 말에 맥은 서슴없이 인류를 심판하기 시작했다. 아들을 잘못 키워서 무시무시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린 그의 아버지, 망가짐의 유산인 아담, 모든 것을 시작하신 하나님까지. 결국 맥은 하나님도 비난받아야 한다며 더 크게 외쳤다. 흥분하여 외치는 맥에게 그녀는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당신의 자녀 중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하늘과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두 아이를 선택해야 해요. 딱 두 명만. 또 당신의 자녀 중에서 영원히 지옥에서 살아갈 세 아이를 선택해야 해요.” (258p.)
다섯 아이를 가지고 있는 맥에게, 어느 셋을 지옥으로 보내겠냐는 그녀의 말에 맥은 무너지고 말았다. 더 이상 심판관이 되고 싶지 않다고,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수없이 외쳤지만, 소피아는 끝까지 그를 밀어붙이며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고함을 질러댔다.
“대신 내가 가면 안 될까요? 영원히 고문받을 사람이 필요하다면 내가 대신 가겠어요. 그래도 될까요?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내 아이들 대신 내가 가게 해줘요. 제발. 제발, 이렇게 빌게요. 제발. 제발.” (262p.)
맥과 나는 펑펑 눈물을 쏟으며 예수님의 마음을 느꼈다. 아무도 심판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 같이 보일지라도, 맥은 맥 스스로 전부를 희생한다고 해도 아이들을 사랑할 가치가 있다고 심판한 것이다. 나 또한 자기 백성을 완벽하게 사랑하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특별히 이 부분을 읽으며 마음이 눈물로 가득 찬 것만 같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책으로 깊이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고 감동하여 나오는 눈물이었다. 끝없이 우리는 아무런 자격 없다는 걸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심판하는 자리에 서 있으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더욱 겸손하게 만드시기 위해 그 사랑을 깨닫게 하신다.
요즘 문뜩, 하나님께서 나에게 계속해서 겸손을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생각이 든다. 겸손이란 무엇일까? 칭찬해 줄 때 피하려 하는 몇 마디는 절대로 겸손이 아니다. 겸손이란, 내 위치를 아는 것, 내 자리를 아는 것, 결국 나를 아는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교회에서 우리를 죄인이라고 말하는 말에 사실 마음이 편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 내가 죄인이지, 내가 무슨 죄를 짓고 살아가지, 그저 평탄한 삶에 죄인이라는 단어는 우리를 불편하게만 한다. 나 또한 그랬다. 내가 왜 죄인인지, 왜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저 기도하라니까 기도하고, 말씀 읽으라고 하니까 말씀을 읽었다. 그런데 이제는 깨닫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느 자리에 있는지, 내 삶을 보니 왜 내가 죄인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욱 그분의 은혜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십자가의 무게를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나는 모태신앙이기에 십자가를 너무 많이 들어서 딱히 와닿을 때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임을 깨달은 후에는, 그 십자가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 상상하게 되었다.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완벽한 사랑. 그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는 자연스레 겸손을 추구하게 된다. 내 머릿속에 겸손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이유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여전히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자리를 깨닫지 못한다. 이름만 ‘그리스도인’이지, 막상 삶은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세상에서 분별하며 살아야 하며,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은 그저 세상과 단절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당시 신분이 낮은 여성, 아이, 병자들에게 다가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스스로 돌아보길 원한다.
이 책을 꼭 읽기를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사실 이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마음이 시원치 않다. 그러나 내가 나눈 내용 외에도 엄청난 장면들과 깨달음이 많으니,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특별히 내가 이야기한 오늘 장면을 더욱더 깊이 묵상하길 원한다. 이 책이 영화로도 나왔다고 해서 꼭 봐야겠다고 다짐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