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명배우 열전>을 열렬히 애독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 연재를 조금 일찍 당겨 시작하는 관계로 <명배우 열전>은 예상보다 빨리 끝맺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로버트 레드포드,케빈 코스트너는 <명감독 열전>에서 소개했기 때문에 <명배우 열전>은 총 19편으로 마감하게 된 셈입니다.
찰턴 헤스톤,윌리암 홀덴,헨리 폰타,오드리 헵번,잉그리드 버그만,톰 행크스,러셀 크로우 등 소개하여야 할 명배우들이 많이 있으나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합니다. 새연재 제목은 <영화와 그 역사적인 배경>으로 일단 정해 보았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최근에 <덩케르크>를 게재하여 열띤 호응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해서 많은 분들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파악되어 <명배우 열전>을 잠시 중단하고 이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약 60편 정도에 걸쳐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종래와 같은 뜨거운 성원 부탁드립니다.
[ 헐리우드의 원조 반항아, 말론 브란도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부터 <지옥의 묵시록>까지 말론 브란도가 영화계에 남긴 업적은 굉장히 큰 것이죠. 원조 반항아에서부터 괴물같은 중년으로의 변신까지 그는 정말 대단한 배우였습니다.
그는 많은 영화인들이나 평론가들 사이에서 '20세기 최고의 배우' 후보로 흔히 꼽히는 인물입니다. 적어도 그가 명배우라는 것에 반론을 제기할 만한 사람은 없을겁니다. 그런 만큼 말론 브란도가 영화역사에 남긴 배우로서의 가치는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말론 브란도는 1924년 미국 네브라스카에서 출생했습니다 그의 가정은 그리 단란치 못했는데 이는 그의 아버지가 주벽이 심해 가족들을 매우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대부>에서
그 영향 때문인지 그는 원만하지 못한 성격을 갖게 되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가 퇴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방황하는 그를 보고 격분한 그의 아버지가 좀더 가치있는 일을 해보라는 충고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브란도가 연기에 입문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전해지지요.
미네소타에 있는 연극학교에 입학했지만 여기서도 또 퇴학을 당한 뒤 누이 2명이 연극과 예술을 공부하던 뉴욕으로 가 당시 배우양성가로 유명한 스텔라 애들러의 지도를 받게 됩니다.
브란도의 재능을 알아본 애들러는 “브란도는 사실 배울 필요도 없는 천부적인 배우”라며 “브란도가 연기하지 못할 인간은 없다”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 브란도가 직접 감독한 <애꾸눈 재크>
브란도에게는 무명생활이란 너무 짧은 것이었죠. 이미 1946년 비평가들은 "앞으로 이 젊은이 브란도를 주목하라"라고까지 얘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 브란도는 돈을 벌기 위해 뒷골목에서 벌이는 로데오경기에 참가했다 코가 부러져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특유의 매부리코를 얻게됩니다
이런 브란도를 지켜본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는 영화감독 엘리아 카잔에게 브란도를 추천했고 이것이 브란도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출연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 후 50년대에 들어와 배우로서 전성기를 보냅니다. 멕시코 혁명을 다룬 <혁명가 자파타>를 통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판 마녀사냥 메카시즘이 몰아치던 50년대 초반, 자신이 공산주의자임을 실토(?)하고 미국사회로 전향한 엘리아 카잔 감독의 54년작 <워터 프론트>에서 주인공 테리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 <워터 프론트>에서
60년대 잠시 주춤하다 72년 이탈리아의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로 중년에 접어든 말론 브란도가 조심스레 50년대의 영광을 재현하게 됩니다.
이어서 말론 브란도 최고의 작품 <대부>가 등장하게 됩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걸작 <대부>에서 과연 돈 꼴리오네 역의 말론 브란도와 아들 마이클 꼴리오네 역의 알 파치노가 없었다면 어떤 영화가 됐을까? 하고 의문이 들기도 할 정도로 두 배우의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평을 받게됩니다.
* <대부>에서
특히 대부 돈 꼴리오네를 연기한 말론 브란도의 연기는 영화 백년사를 통틀어 최고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요. 그런데 당시 영화를 제작한 파라마운트 사장은 말론 브란도를 캐스팅할 경우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까지도 해고할 것이라며 강경하게 그의 캐스팅을 결사반대했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코폴라 감독은 말론 브란도의 머리에 구두약을 칠하고 휴지를 말아서 브란도의 양쪽 볼에 넣어 볼록하게 만든 후 테스트 촬영을 했습니다. 누구인지도 모르고 테스트 촬영본을 본 파라마운트 사장은 ‘이 사람이 바로 주인공이다’를 외쳤고, 그제서야 코폴라 감독은 그 배우가 사장이 그렇게 반대하던 말론 브란도였다고 사실을 밝혔습니다.
* <대부>에서
결국 말론 브란도는 대부 돈 꼴리오네로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지만, 촬영 내내 마우스피스를 끼고 연기를 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대부>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이 확정되자 그는 마국인들의 인디언에 대한 차별을 이유로 대신 한 인디언 여인을 시상식장에 보내 그러한 내용의 성명성을 읽게 했습니다. 꾸준히 미국 내에서 차별받는 아메리칸 인디언을 지원해온 그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 <지옥의 묵시록>에서
브란도의 여성편력은 다양하기로 소문나기도 했지요. 첫 부인 캐쉬피를 비롯 3번을 결혼한 브란도는 두 번째 부인으로 멕시코출신 여배우 모비타 카스테나다, 세 번째 부인으로는 영화 <바운티호의 반란>에서 공영한바 있었던 타히티출신 타리타 테리피아를 둬 살아생전 “백인, 혼혈인, 태평양출신 폴리네시아인 등 여러 인종의 여성을 모두 경험했다”고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첫 부인인 웨일즈출신 여배우 앤나 캐쉬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크리스천은 지난 1990년 배다른 여동생 치옌의 남자친구를 권총으로 쏘아죽인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고 치옌은 1995년 25살의 나이로 자살해 생을 마감하는 비극도 겪었습니다.
그는 2004년에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원한 대부 돈 꼴리오네
[ 대표작 소개, <워터프론트> ]
“나도 고상해질 수 있었어. 도전자가 될 수도 있었어. 지금처럼 날건달이 아닌 누군가가 될 수도 있었다고! 인정하란 말야!”
미국 영화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워터프론트>는 배신과 반공주의의 편집증으로 얼룩진 50,60년대의 미국이라는 국가의 허위를 고발합니다. 이 영화는 강한 충격을 안겨주는 새로운 사회적 리얼리즘을 강렬하면서도 유연하게 할리우드로 이끌어 들였습니다.
이는 특히 메소드 기법(배우가 극중 배역에 몰입해 그 인물 자체가 되어 연기하는 방법)을 체득한 뉴욕 전후세대 배우들의 자연주의적이고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연기에 힘입은 바 큽니다.
이 영화는 뉴욕과 뉴저지 부두의 부정행위를 폭로한 말콤 존슨의 신문 기사 <워터프론트의 범죄>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배경이 되는 실제의 고통스러운 사건은 영화의 사실적인 주제와 배경과 자연스러운 연기에 가슴 졸이는 진실한 감정적 힘을 실어주고 레너드 번스타인의 선동적인 음악도 완성도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가장 자주 언급되는 고전적인 명장면은 택시 뒷좌석에서 테리와 찰리가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지만, 그밖에도 잊지 못할 명장면이 많습니다.
브란도가 에바 마리 세인트의 작은 장갑을 자기 손에 끼어보는 장면, 테리가 애틋하게 돌봐오던 비둘기들을 자신을 존경하는 동네 소년이 다 죽여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 에디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 사랑을 받아줄 것을 호소하고 둘이 함께 바닥으로 미끄러지며 필사적인 키스를 나누는 장면 등등
< 간략한 줄거리 >
머리회전은 느리지만 예민한 테리(말론 브랜도 분)는 실패한 권투선수 출신의 부두노동자이며 부패한 노조 지도자 자니(리 J.코브 분)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조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를 살인하는 일에 일조하게 되고, 그것을 깨닫고는 몹시 괴로워합니다. 그 죄책감은 죽은 사람의 누이 에디(이 영화로 데뷔한 애바 마리 세인트 분)을 사랑하게 되면서 더욱 극심해집니다.
테리가 처한 위기는 자니의 냉철한 변호사이며 오른팔인 자기 형 찰리(로드 스타이거 분)가 자신을 배반했음을 깨닫는 순간 극에 달합니다. 에디가 부두노조를 장악한 악당들에 맞선 싸움에 교구 신부(칼 말덴 분)를 끌어들이면서 자니의 협박은 더욱 치명적으로 변합니다.
테리는 힘겹게 묵계를 깨고 의회위원회에서 증언을 합니다. 그가 옳은 일을 했음에도 부둣가(워터프론트) 사람들은 그를 ‘밀고자’라고 따돌리며 부두에서 그를 폭행합니다. 그 후 겁은 먹었지만 그의 뜻에 동조하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삶과 노동을 속박하고 있던 자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테리를 따릅니다.
첫댓글 소시적 나의 애창곡 알흠다운 미성 앤디 윌리암스가 생각납니다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