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풍성하고 행복한 가정 만들기 시133:1-3
시133편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함께 누리는 이상적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할 것입니다.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어려움과 기쁨과 즐거움과 환난을 나누는 가정에 주시는 하나님의 복된 은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화목한 가정의 아름다움과 그러한 가정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복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화목한 가정의 모습은 모든 사회와 국가의 토대가 됩니다.
화목한 가정에서 풍성한 복을 누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형제가 연합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라.(1)
형제가 함께 어울리는 화목한 가정의 아름다움과 그것이 하나님의 복이 된다 합니다.
가정의 연합이 그 자체로써 그 가정과 구성원들에게 가져다주는 영적 가치를 부각시키고 있으며, 선하고 아름다운 그 가치에 집중하라 말합니다.
보라! 라는 부사가 맨머리에 나온 것은 개인적인 느낌이나 개인적인 판단이 아니라, 그 주제가 창세로부터 계속되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형제의 연합 즉 가정의 화목은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인간의 모든 삶, 즉 개인이나 사회나 민족이나 국가를 원초적으로 지배하는 것임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생활은 인간의 출생으로부터 무덤에 들어가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구심적인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이 가정으로부터 시작되어 가정으로 귀결되는 것인 만큼 근원적인 토대임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을 쉽게 망각하기가 쉽습니다.
아니 망각하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재벌들의 형제의 난이라는 보도를 너무 쉽게 접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형제가 아닙니다.
그들이 가정을 등지고 돈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미 인간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곳에는 경영과 경쟁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먹는데 어떤 집은 대박이 나는 집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수더분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정성껏 음식을 합니다.
손맛이 한결같습니다. 인심이 후합니다.
그래서 추가로 공기를 시키면 의래 공짜입니다.
왜냐하면 밥장사 하면서 배불리 먹여 보내야지 돈 주고 밥 사먹는데 양이 안차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니 음식도 맛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손님을 밥을 사먹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음식 한 가지를 해도
아깝고 공기 한 그릇을 줘도 공기밥값을 챙깁니다.
맛도 떨어지고 장사도 안되고 인심만 고약해 지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사랑으로 식구들을 돌보는 사람이 아내 한 사람이거나 남편 한 사람이어서는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1절의 감탄은 단순히 가정의 연합에 관하여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그 같은 이상적 가정의 모습을 실현하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정의 화목은 그 구성원들이 얼마나 진실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 식구들이 함께 모여 나누는 상호관계의 풍성함을 통해 그 가정은 내적으로 더욱 강하게 결속될 것입니다.
가정에서의 연합은 가정의 구성원 모두에게 다른 모든 관계가 무너져도 그것만은 유일하게 끄떡없이 변함없이 바위처럼 버티고 서 있다는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가정안에서의 연합은 그 가정에 속한 개개인으로 하여금 활력 있는 삶을 공급하고 자기 가치의 인식을 심어 줌으로써 풍성한 삶을 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의 모습에는 지상적 가치에 국한되지 않고 영적가치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들의 연합을 가로막는 불화, 오해, 무관심 같은 부정적인 요인들이 극복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연합이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허물을 감싸 안고 관용하며 모든 어려움을 인내하면서 이룬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결과로써 마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창조해 가는 과정으로 지고지선의 것입니다.
가정의 화목은 가족 모두의 사랑, 인내, 절제, 관용, 용서, 은혜의 연합된 결과이기에 세상의 그 어떤 가치와 비교될 수 없는 최상의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어찌 야곱이 사랑한 요셉의 후손 중에서 메시야가 오지 않고 유다의 후손에서 다윗 왕이 나오고 다윗의 후손에서 메시아가 오셨는지 구속사를 보면서 의문을 느끼지 않는지요?
유다는 레아가 낳은 야곱의 넷째 아들입니다.
야곱의 사랑하는 라헬이 낳은 11번째 아들인 요셉이 색동옷을 입고 형제들이 양치는 곳으로 왔을 때 형제들에게 요셉을 죽이지 못하도록 중재합니다.
창37:26-27“ ...우리가 우리 형제를 죽이고 그 피를 은닉한들 무엇이 유익할까...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형제간에 살인 사건을 막은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애굽의 총리에게 베냐민 대신 자신이 볼모로 잡힐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스스로 희생의 십자가를 지겠다고 자원한 것입니다.
아버지와 가족의 평안을 위하여 자기 한 몸을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창44:33-34“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
마침내 형제를 위해 스스로 헌신하며 중재에 앞섰던 유다를 야곱이 축복합니다.
창49:10“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 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라.”
그렇습니다. 가정 내에서 화목을 위하여 스스로 앞장서고 중재자가 되고 희생을 감수하는 자에게 나라를 맡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가족 간의 화목은 인간의 노력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 바로 가정을 창설하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이루어지는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형제간의 화목의 가치를 존중하고 바라지만 누구나 그런 행복을 누리지는 못합니다.
본문은 형제와의 연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부사이나 부자 사이의 연합에 앞서서 형제의 연합을 강조하시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구약 시대의 형제들이 동거한다는 것은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분깃을 부모의 유산을 쪼개지 않고 보존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내적인 연합이 이루어져야 외적 동거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조상의 분깃을 온전히 보존하는 내적 연합과 외적 동거가 바로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루는 가장 귀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 가정의 연합은 하나님의 가정인 교회의 든든한 기초단위여야 합니다. 가정의 연합을 통한 행복과 풍요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넘쳐 흐르게 할 의무가 성도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행복한 가정은 형제의 연합을 위하여 모든 구성원이 끊임없이 진정성을 가지고 노력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가정이 하나님이 기뻐 임재하시는 이 땅에서 천국의 모형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도 여러분의 가정이 바로 하나님이 임재하시어 호주가 된 귀한 가정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화목한 가정에서 풍성한 복을 누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둘째로 연합된 가정을 아름다움으로 채워라(2)
모든 가족 구성원들의 마음이 내적으로 연합되고 그 결과 외적으로 함께 동거하는 이상적 가정의 모습은 그것 자체로 선하고 아름답고 복된 것입니다.
형제가 동거함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세 개의 영상을 통해 가정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먼저 보배로운 기름입니다.
기름은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할 때 바른 향기로운 올리브유를 말합니다.
올리브중에서 가장 좋은 극상품을 구별하고 그중에서 맨 처음 짜낸 극상품 감람유를 머리에 바르며 성직을 안수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을 중재하는 자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보배로운 것은 선한 것 즉 이상적 가정이 하나님 보시기에 그리고 모든 인간들이 보기에 더 없이 아름다운 것을 말합니다.
이 기름의 향기가 그것을 맡는 모든 자들을 만족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가정은 그 가정이 있다는 것만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큰 기쁨과 만족을 준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아론의 수염입니다.
수염이 옷깃까지 흘러내리는 것은 고대 중동지역에서남자의 아름다움과 명예를 상징합니다.
아프리카 어는 종족은 지금도 남자 미인대회를 하더라구요.
얼굴을 온통 칼라로 칠하고 계속해서 뛰면서 인내력을 체크하고 그 심사가 끝나면 최고의 미남을 선발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대제사장 아론의 수염이 흘러넘친 것같이 화목한 가정은 구성원 모두의 최고의 명예를 주고 기쁨과 만족을 준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헐몬의 이슬입니다.
헐몬산은 팔레스틴 지방의 최고봉으로 높이가 2815m인 산으로 오늘날 시리아 이스라엘 요르단의 국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산에서 눈이 녹아 요단강 갈릴리 호수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헬몬산 수원지가 우리 대아저수지 수문처럼 3개의 용출구가 있어 엄청난 물을 뿜어 요단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헬몬산에서 냉각된 많은 양의 이슬이 바람에 불려 가나안땅에 내려 목마른 식물들을 자라게 한다는 것입니다.
헐몬의 풍부한 이슬이 바로 하나님께 받는 은혜를 상징합니다.
즉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노래하기 위해 헐몬의 이슬을 언급한 것입니다.
낮 동안 내려쬐던 뜨거운 햇볕으로 시들어져가는 식물들이 밤에 내리는 이슬을 머금고 생기를 되찾아 신선함을 얻는 것처럼 하나님의 가정은 형제의 아름다운 연합을 통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간다는 것입니다.
보배로운 기름과 아론의 수염과 헬몬의 이슬이 삼중적으로 내려 온 가족 모두에게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약속인줄 믿습니다.
온전한 가정은 그 존재 자체로 더없이 아름답고 가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화목한 가정에서 풍성한 복을 누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셋째로 화목한 가정에서 영생의 복을 명하십니다. (3)
시인은 3절 후미에서 위에서 아래로 흘러 내리는 하나님의 복을 강조합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합니다.
이는 이 시의 결론이자 1절과 세 가지 비유에 대한 이유입니다.
왜 온전한 가정이 아름답고 또 그러한 비유들이 적절한가?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가정에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가정의 연합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복을 명하신 장소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영생을 예시해주신 장소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통로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그 분의 백성들과 교제하는 장소입니다.
시온은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시는 근원지로 삼은 곳입니다.
마찬가지로 연합된 가정은 시온산과 같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으로써 영생이 은혜가 그 가족 모두에게 풍성하게 내리게 되는 통로인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이 시온산들이 되어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이 부양하는 경비와 노력이라면 혼자 자유롭게 살겠다 자녀를 키우는데 엄청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데 꼭 자녀를 낳아야하느냐는 등 차마 생각조차 못했던 망언을 합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복주시기 위해 만나주시기 위해 만든 천국의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든 성도든 불문하고 혼기가 차면 가정을 이루어야합니다.
남자는 상투를 틀어야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죽어서도 총각으로 죽으면 송장이 아니라 아장이 되어 봉분을 못하는 것이 우리의 옛 풍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주시기위해 만나주시기 위해 임재하시는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때 큰 은혜가 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가정은 가정예배를 드림으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화목한 가정에서 풍성한 복을 누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형제가 연합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라.(1)
둘째로 연합된 가정을 아름다움으로 채워라(2)
셋째로 화목한 가정에서 영생의 복을 명하십니다. (3)
시온의 산들에 임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제 가정에 임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찾아오시기 위해 가정을 창설하셨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거룩한 공동체로 가정의 온전한 연합과 동거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며 하나님께서 복주시는 근원인 가정의 연합과 동거를 위해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영원토록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