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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
2023년 2월 4일 연중 제4주간 토요일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0-34
그때에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매일의 삶을 주님께 보고 하십시오.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명령을 받고 둘씩 짝을 지어 이리떼 속으로 떠났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속속 돌아와 자신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보고합니다. 여기서 '보고'(報告)한다는 것은 내려준 명령에 대하여 그동안 진행상황을 자세하게 그 경과나 결과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문서나 구두로 보고하기도 하고 브리핑을 하기도 하지만 명령을 받은 사람이 명령을 내린 사람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명령을 하지도 않았을 때는 보고할 수도 없고 명령을 받지 않았다면 보고할 내용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주님으로부터 복음으로 또는 교회의 가르침으로 명령도 받고 사명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날마다 그 결과를 보고하고 살고 있습니까? 아침에 눈을 뜨면 그날 해야 할 일을 주님으로부터 받습니까?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아이들과 가족이나 이웃들과 친구들이나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그리고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이면 그 날의 실행한 일과 하지 못한 일이나 자잘한 모든 것들을 주님께 말씀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침기도 시간은 바로 사명을 받는 시간이고 저녁기도 시간에는 보고의 시간을 주님과 갖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그날의 기분, 감정, 느낌, 심지어는 불평, 불만, 속상한 것 등 하나도 빠지지 않고 보고해야합니다. 우리는 경문만 외우거나 귀찮다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속상한 일을 상의하고 잘못한 일을 반성하며 잘한 것은 자랑하고 섭섭한 일들은 모두 토해서 주님께 말씀드리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만 속으로는 “그래 참 잘했다. 얼마나 애를 많이 썼는지 나는 다 안단다. 그 동안 배는 곯지 않았느냐?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무얼 좀 먹으면서 너희들끼리 얘기를 하면서 좀 쉬어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끔 이렇게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쉬는 것을 ‘피정(避靜)이라고 합니다. 피정은 피세추정(避俗追靜) ’시끄러운 세속을 피하여 고요함을 따른다.‘ 라는 뜻이고 '피세정념'(避世靜念) 곧 ’시끄러운 세상을 피하여 깨끗하고 고요한 마음을 갖는다.‘ 또한 '피세정관'(避世靜觀) 의 준말입니다. 우리가 '시끄러운 세상을 피해서 따로 고요하게 자신을 살펴보고 참 하느님의 뜻을 마음에 새긴다.'는 뜻입니다.
오늘 예수님과 제자들은 서로의 체험을 얘기하면서 그동안 실패담이나 성공담도 서로 주고받으며 토의할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시 재충전하여 주시며 힘과 용기를 더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서로 나누는 과정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공동체의 사귐을 돈독히 하여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사랑은 두터워질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진솔한 모임을 가질 때 비로소 공동체의 아름다운 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convivenza, 또는 convivencia'라는 말을 씁니다.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로 ‘꼰비벤자’라고 하는데 ‘함께 산다.’라는 말이고, ‘하느님 체험을 나눈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공동체에서 특히 구역 반 모임이나 꾸르실료의 울뜨레야나 팀 모임이 바로 꼰비벤자 입니다. 또한 M.B.W의 정기적인 모임이나, 피정을 말하기도 하고, M.E에서 말하는 sharing이나 포콜라레 생활모임 등 피정이나 생활 나눔의 모임을 꼰비벤자라고 합니다.
오늘 주님은 제자들과 공동체의 모임을 갖고 함께 체험을 나누기 위해서 배를 타고 호수를 가로질러 한적한 곳으로 떠나십니다. 제자들이 정말 한가하게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이 바쁘게 살았던 삶과 세상을 잠시라도 떠나서 이렇게 피정을 갖는 것을 오늘 예수님께서는 본보기로 보여주십니다. 우리도 자신의 영적 쇄신을 위하고 영혼과 육신의 안식을 위하여, 공동체의 활력을 위하여, 또한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하여, 주님께 그 결심을 보고하고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로 회심하는 기회를 적어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의 피정을 가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피정에 떠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는데 호수를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궁금해서 묻게 되지요. “어디를 그렇게 바쁘게 뛰어가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같이 호수를 가로질러 건너 가셨다오. 그래서 예수님을 보러 갑니다.” 라는 말을 듣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에 함께 동참하여 이 동네 저 동네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어 배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보다 먼저 도착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도 그렇게 예수님을 향하여 세상 곳곳에서 모여왔으면 좋겠습니다. 이곳 저 곳에서 예수님을 만나러 간다고 구름처럼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우리들이었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궁금하여 들으려고 달음질 쳐 한 걸음에 달려왔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시고 증언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위대한 목자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3,15-17.20-21
형제 여러분,
15 예수님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칩시다.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16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
17 지도자들의 말을 따르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하느님께 셈을 해 드려야 하는 이들로서
여러분의 영혼을 돌보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탄식하는 일 없이
기쁘게 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들의 탄식은 여러분에게 손해가 됩니다.
20 영원한 계약의 피로, 양들의 위대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21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어 여러분이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우리에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축일2월 4일 성녀 요안나 (Jane)
신분 : 왕비, 설립자
활동 지역 : 발루아(Valois)
활동 연도 : 1464-1505년
같은 이름 : 요한나, 잔, 잔느, 쟌, 제인, 조반나, 조안, 조안나, 조한나, 지아나, 지안나, 지오바나, 지오반나, 후아나
발루아의 성녀 요안나(Joanna de Valois)는 1464년 4월 23일 프랑스 파리(Paris)에서 당시의 왕인 루이 11세(Louis XI)와 왕비인 사부아(Savoie)의 샤를로트(Charlotto)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육체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고 더욱이 곱사등이에 마마 자국까지 있었기 때문에 국왕인 그녀의 부친은 그녀를 매우 냉대하였다.
그러나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오를레앙(Orleans)의 공작인 루이(Louis)와 결혼하기로 정해졌기 때문에 성녀 요안나는 12세가 되던 해에 여러 가지 정치적인 정황에 따라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후 오를레앙의 공작은 그녀를 무시하고 혐오했으나, 이러한 모진 대우들을 그녀는 고결한 성품으로 이겨냈다. 후에 루이 12세로 왕위에 오른 오를레앙의 루이 공작은 자신의 결혼은 루이 11세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성녀 요안나는 그의 이런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정해 주었다. 결국 혼인무효와 함께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나 베리(Berry)의 공작으로 봉해진 성녀 요안나는 자신의 영지를 왕국 안에서 가장 지혜롭게 운영하였다.
그녀는 가난한 병자와 전염병 환자 구호, 주거 시설 복구, 가난한 일꾼들의 급여 인상, 여자 어린이들의 교육,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기금 모금, 수도원 개혁 등을 계획에 따라 실천하였다. 그러던 중에 그녀는 작은 형제회 회원이자 자신의 고해사제였던 가브리엘 마리아(Gabriel Maria, 8월 27일) 신부의 도움으로 신심 깊은 10명의 여성들을 모아 관상 수도원인 '성모 영보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성녀 요안나는 자신이 세운 수녀원에서 1504년에 가브리엘라 마리아(Gabriella Maria)라는 수도명으로 서원을 했지만,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궁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녀는 남모르는 고행과 여러 번의 신비로운 종교체험을 한 후 1505년 2월 4일 부르주(Bourges)에서 사망하였다. 성녀 요안나는 1742년 4월 21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950년에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축일2월 4일 성녀 마리아 데 마티아스 (Maria de Mattias)
신분 :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 연도 : 1805-1866년
같은 이름 : 마띠아스, 메리, 미르얌, 미리암
성녀 마리아 데 마티아스(Maria de Mattias)는 1805년 2월 4일 지리적으로 이탈리아의 프로시노네(Frosinone) 지방에 위치한 교황령의 최남단 마을인 발레코르사(Vallecorsa)에서 태어나 그날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신심 깊은 가정에서 아버지 조반니 데 마티아스(Giovanni de Mattias)와 어머니 오타비아 데 안젤리스(Ottavia de Angelis)의 네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매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읽어주는 성경 이야기를 듣고 인류 구원을 위해 희생양이 되신 예수님께 대한 위대한 사랑을 키워갔다. 비록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여성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녀는 스스로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신앙의 진리뿐만 아니라 성경의 일화와 인물들에 대해 배우고 내면화시킨 이 모든 일들은 발레코르사와 그 주변 지역이 무질서와 혼란에 빠져 고통 받던 시기(1810-1825년)에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마리아의 정신 안에서는 증오와 복수를 야기하는 인간의 피와 사랑과 구원을 가져다 준 그리스도의 피의 존재가 대비되었다.
10대 초반까지 세상과 접촉하지 못하고 집안에 박혀 지내던 그녀는 한때 종교보다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두기도 했지만, 16-17세에 이르러 인생의 의미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고 무한한 사랑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내면의 어두움을 걷어내던 그녀는 신비로운 환시를 경험하고 하느님의 아름다운 사랑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 사랑은 모든 이를 위해 당신의 피를 내어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고 명백해졌다. 또한 이 체험은 마리아가 앞으로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사랑과 천상 아버지의 감미로운 사랑을 깨닫도록 하는 원천이요 힘이자 동기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피를 어떻게 주셨는지를 알고, 하느님의 눈으로 자신의 가치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의 마음과 사회는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이러한 체험이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그녀가 17살이 된 1822년 보혈 선교회를 설립한 성 가스파르 델 부팔로(Gaspar del Bufalo, 1월 2일)가 그녀의 마을을 방문했다. 자기희생의 모범으로써 그리스도의 보혈(보배로운 피)의 신비를 제시한 성인의 설교에 마을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은 마리아는 자신의 가슴 속에 간직했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하느님께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결국 가스파르 성인의 동료 중 하나인 가경자 조반니 메를리니(Giovanni Merlini) 신부의 지도 아래 그녀는 1834년 3월 4일, 그녀의 나이 29살에 프로시오네의 아쿠토(Acuto)라는 작은 마을에서 학교를 시작하며 그리스도의 성혈 흠숭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성녀 마리아 데 마티아스 원장은 30년을 넘게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하며 여러 곳에 소녀들을 위한 학교와 수녀원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당시 여자 아이들이 교육의 혜택을 받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가정생활의 성화를 위해 기혼 여성을 위한 강좌를 여는 등 여성 교육에 헌신하였다. 그녀는 당나귀에 짐을 싣고 먼 길을 걸어서 여행하는 힘겨운 여정이었지만 자신이 가는 곳이면 어느 마을에서든지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를 흘림으로써 구속의 사랑을 이루신 성혈의 신비를 선포하길 원했다. 그래서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서 그녀는 ‘설교하는 여성’으로 알려졌다. 그녀가 설립한 공동체는 매우 가난했고 종종 먹을 것이 떨어질 때도 있었지만 항상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과 무엇이든 나누기를 원했다.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 그녀가 설립한 수도 공동체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이미 70개를 넘어섰다.
그녀는 1866년 8월 20일 로마(Roma)에서 선종하여 로마의 캄포 베라노(Campo Verano) 묘지에 묻혔다. 그녀의 성덕에 대한 명성은 선종 이후에 더욱 널리 퍼져 30년이 지난 1896년 그녀에 대한 시복시성 절차가 시작되었고, 그 열기는 1950년 10월 1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그녀의 시복이 선포되었을 때 최고점에 올랐다. 그 후 그녀의 유해는 로마에 있는 수녀원 총원의 보혈 경당 내로 옮겨 모셨다. 그녀는 2003년 5월 18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의 축일은 예전부터 기념해 오던 2월 4일 또는 선종일인 8월 20일에 기념한다.
오늘 축일을 맞은 요안나 (Jane), 마리아 데 마티아스 (Maria de Mattias)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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