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故鄕)…, 잊지 못할 마음의 안식처
40년 가까운 공직으로부터 은퇴하여 전원(田園)으로 돌아누운 지
강산도 바뀐다는 10년의 세월을 넘겼다.
베이비붐 1세대로써 늘 마음속에 품었던 전원(田園)의 꿈을 이뤘다고 할까.
처음엔 시골에 집과 토지를 장만하고 농촌생활에 적응하고자
사회생활에 첫 도전할 때의 심정이었지만 이제야 마음에 작은 여유를 갖는다.
큰 성공을 이룬 것도, 떵떵거리고 살 정도의 부(富)를 축적한 것도 아니지만,
시골생활에 적응을 했고, 또 지금의 삶에 나름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한없이 길고 긴 10년이란 세월…,
작으나마 정착(定着)이란 말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음이 스스로 자랑스럽다.
때론 힘이 들었지만 또 때론 시골생활에 기쁨과 보람을 느꼈던 나날들이
새삼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나름의 준비를 차곡차곡했지만
막상 은퇴를 하고 보니 막막한 심정이었다고 할까.
아파트에서 사는 삶이란 건 도무지 맞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준비된 곳도 없었고, 고향으로의 귀향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다.
무엇부터 정리해야 하며 또 무엇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
국가에서 지급되는 연금소득에 남은 생의 모든 걸 맡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원하는 제2의 직장이 불쑥 나서주지도 않는…,
한마디로 '앞은 천방이요 뒤는 뚝'과 같은 진퇴양란의 신세다.
퇴직 후 몇 년 간 제2의 직장을 얻고자 부지런히 뛰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듯이 하고자 하는 자에게 길은 나서는가 보다.
다행하게도 일자리를 얻어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신세는 면할 수 있었지만,
언제까지고 앞이 뻔한 단기 알바에 전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럭저럭 금세 2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마음을 다시 정하고 경상남도 밀양을 정착지로 선택했다.
제법 큰 저수지가 있는 아담한 마을에 작은 농지를 마련했다.
세월유수(歲月流水)라고 하듯이, 눈 깜짝할 사이에 한 해가 흐른다.
아무리 전원(田園)에 대한 동경의 마음이 있다고 해도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삶이란 쉽지 않았다.
밀양이란 지역은 가족들이 사는 대구 땅과는 조금 먼 거리다.
어쩔 수 없이 마련한 농지(農地)를 정리하고 대구와 가까운 청도로 옮겼다.
경상북도 청도(淸道)로 귀촌(歸村)한 지 8년…, 작은 집과 농지(農地)를 마련하고
그것을 관리하고 가꾸기 위해 쏟아부은 숱한 노력들이 지금에 와서 왜 이리도 느꺼울까.
규모가 크든 작든 농기구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준비를 하고,
시기적절한 농사기술을 익히고 쉴 새 없이 궐기하는
잡초들의 반항을 잠재우기까지 어떻게 견뎌왔을까.
돌아보면, 지금의 마음으론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을 그런 과정이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과정들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일으키는
자긍심으로 돌아오고 있음에 더없이 만족스럽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시골은 텃세가 심하다’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지만,
텃세보다는 외지에서 시골로 들어온 외지인들의 선입견이 오히려 더 심하다.
청도에서 8년 간 살아오면서 느낀 점은
내가 사는 청도의 마을 주민들은 더없이 친절하고 인심이 후하다는 것이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나 스스로 주민들과 거리를 두지 않는다면
여타 어느 도시민들보다 더 다정스럽고 친절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스스로 멀리하고 ‘텃세’라는 이름으로 몰아가는 게
대부분 외지인들의 입장이라는 게 슬픔으로 다가온다.
‘마을회관’에 들려 주민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노라면
그저 형님 동생 누님으로 다가서는…, 그저 가족 같은 분위기이다..
8년 간 살아온 집을 정리하고 다시 청도읍내로 이사를 했다.
얼마 전, 은퇴를 앞둔 어떤 분이 ‘자연과 함께하며 시골에서 살고 싶다’며.
자신이 느끼는 고향과 시골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시골이나 고향의 정취는 이미 그 옛날의 모습이 아니다.
또한 그 시골 고향에 대한 향수를 생각하는 현대인들 역시,
이미 그 옛날 시골에 익숙해진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가끔씩 ‘노후엔 시골이나 산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말들은 너무도 허황된 말에 불과한 것이다.
그 말을 여실히 증명하는 소설작품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최일남 작가의 ‘고향에 갔더란다’란 작품이다.
작가 최일남은 1932년 전북 전주 출생으로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장편에 '쑥 이야기(1953)', '장장하일(1956)', '동행(1959)', '보류(1960)', '갈구(1965)',
'축축한 오후(1967)', '흔들리는 성(1975)', '메마른 손(1988)', '숨통(1989)' 등이 있다.
작가는 1950년대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나
정작 '최일남' 적 색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특징지어지는 이 시기에 들어 그는 이른바,
'출세한 촌놈'들이 겪어야 하는 다단한 이야기를 해학적이고 풍자적으로,
더러는 쓸쓸한 비애의 모습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고향의 모습,
그리고 그 고향의 희생을 딛고 출세한 시골출신의 도시인들이 느끼는 부채의식 등이
이 시기 그의 소설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 그의 소설은 또 다른 변모를 겪는다.
'고향에 갔더란다'와 '읍내 사람들'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이제 70년대 적인 의미의 고향은 존재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그의 소설에서는 날카로운 역사적 감각,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친구들이 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모두 시골출신의 고교 동창생들로 어렵게 대학을 마치고 결혼을 하여
이제는 어엿한 직장과 가정을 가진 30대 후반의 사내들이다.
어느 날 그들은 3박 4일의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잠시 동안이나마 토장국과 호박잎을 먹던 옛 농촌생활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어렵게 시간을 마련해 서울에서 네 시간가량 걸리는 읍내로 간다. 목적지 없는 여행이다.
그들은 소풍 가는 아이들 마냥 들떠 있다. 다시 읍내에서 산골로 가는 막차에 오른다.
해가 저물어 산골에 도착했으나 여인숙 비슷한 것 하나도 없다.
그들은 동네이장 집으로 찾아가 숙식을 부탁한다.
그들이 받은 저녁 밥상은 김치와 우거짓국의 단출한 반찬이다.
그들은 막걸리로 반주하며 허겁지겁 배를 채운다. 모두들 옛 고향의 맛이라고 좋아들 한다.
남포불을 밝히고 고향 이야기로 밤을 지새운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자 그들은 점점 답답해진다.
막걸리 대신 찬 맥주가 생각이 나고, 커피가 지겹다 했지만 다시 또 커피 한 잔이 간절해진다.
그들은 결국 예정된 날을 앞당겨 상경을 하고,
그 길로 다방에 들려 커피 한 잔과 생맥주 한 잔을 나누고 귀가한다.
일인칭 화자(話者)에 의해 서술된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도시 생활자이면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경험한 고향의 체취에서 이내 이질적인 것,
비록 자신의 뿌리이지만 이제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으로 다가온다.
그것을 '나'는 우리들의 등뼈 밑에 매달려 있는 '속물의 꼬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고 그들의 삶이다.
그들이 속물이라면 대부분의 도시인들 역시 그러한 셈이며,
그것은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고향을 상실해 버린 70년대 도시인들의 자화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고향의 기억을 찾아 나서는 여행 끝에는 어김없이 환멸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환멸이며, 결국 고향의 기억은 이미
그들 안에서 흔적만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쓸쓸한 고백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땔나무를 하던 어린 시절을 거쳐
도시의 직장인으로 변모한 '촌놈'들..., 즉 70년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도시의 스트레스를 벗어던지고 정겨운 고향의 품에 안기는 꿈을 꾸곤 한다.
고향은 언제나 어머님 품 속 같이 포근하기만 한 우리들의 피난처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는 '도시 맛을 본 촌놈'들에게 있어 고향은 이미 고향이 아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나 스스로에 대해 깊은 회의와 반성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나 역시도 심심하면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고향에나 갈까' 하고
모진 세파를 피할 수 있는 피난처로 밖에 고향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향은 더 이상 언제까지나
'촌놈'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촌놈'들의 마음이, 아니, 그들의 눈높이와 욕구 수준이 낮아지기 전 까지는 말이다.
어찌 되었든, 간사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들의 마음과는 달리
고향의 존재는 마음의 안식처로 모든 이들의 가슴에 영원히 담겨 있을 것이다.
청도(淸道)에 귀촌이라는 이름으로 뿌리를 내린 지
강산이 한 번 바뀔 정도의 세월을 살았다.
비록 고향은 아니지만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 듯이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남은 삶…, 내 인생 후반을 멋지게 살고자 한다.
비록 함께 살진 못하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가족들을 기다리는 설렘과
전원(田園)의 꿈을 이룬 성취감을 만끽하며….
첫댓글 수고해주신
정년이후
아름다운
진솔한글
좋은글
사진들
잘보고갑니다......................작가님....대단해요
금요일
저녁에도
더운날씨에
건강하시고
좋은분들과..
행복한시간만.....보내세요..!!!
청송작가님....항상.....좋은일만...............응원합니다
반갑습니다.
주말..., 하루 일과가 저물었습니다.
남은 시간도 잘 마무리하시고 즐거운 주일 열어가소서~!^^*~
@청송 권규학
반가운
답글
정겨운글
감사해요..............작가님
8월마지막
일요일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건강하시고.....
행복한시간
기분좋은하루....보내세요....!!
청송작가님.....8월말에도....건강한날만.....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