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상드의 ‘마의 늪’
조르주 상드(1804-1876)는 마의 늪을 1845년에 출간하였다.
상드는 문학보다는 자유분망하게 살았던 여인으로 더 알려져 있다.
젊은 나이에 첫 결혼에 실패한 그는 선택된 남자들과 연애를 즐기면서 살았다. 이 때문에 페미니스트로서 명성을 얻었다.
귀족인 아버지와 평민인 어머니 사이에서 혼전임신으로 태어났다. 부친이 급사한 탓에 지주인 할머니댁에서 자랐다. 1822년 카시미르 뒤드방(Casimir Dudevant) 남작과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남편은 무교양 남이고, 폭력적이어서 남편과 별거에 들어가고, 수많은 남자들과 연인 관계가 되었다. 그 중에는 뮈세(시인) 쇼팽(피아니스트) 메리메(카르멘늬 저자) 등이 유명하다.
남녀차별이 극심했던 그때 남장을 하고 사교계에 출입하거나, 길에서 줄담배를 피웠다는 등 꽤 급진적인 에피소드들이 전해진다.[9]또한 열렬한 자유연애 신봉자로, 남녀가 유별하던 시대에 평생 숱한 애인을 두며 자유연애를 즐겼다. 이를 두고 보들레르 등은 '매춘부'니 '공중변소'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남기기도 했으나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상드와 친구였던 위고는 '사람들이 상드를 욕할 때 그것이 상드를 더 명예롭게 하는 것 같다'고도 평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앵디아나》, 《마의 늪》등이 있다. 서간집도 있다.
또한 정치활동도 활발하게 참여했다.
당대의 명사였으나, 정치활동 실패로 인한 타격과 쇼팽 사후 아들과의 결별을 감수하고 시작한 아들의 친구이자 자신의 비서인 미술가 망소와의 사랑으로 저작활동을 전보다 줄이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유형의 로맨스와 추리소설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상에 맞춰 그녀의 작품은 그녀의 사후 대중의 관심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문인 가문들이 대를 이어가며 인맥을 형성함과 달리, 상드의 자손은 두 손녀가 독신으로 살다 세상을 떠나면서 가문을 잇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드의 마지막 후손들이 상드 가문의 노앙 대저택을 프랑스에 문화유산으로 기증해 남기면서, 이 장소가 세계 쇼팽 팬들에게 쇼팽 명소 중 하나로 인정받아 쇼팽의 연인으로 기억되지만 상드 자신도 이 사랑은 깊은 모성애와 후원에 가까웠던 관계로 회고하며, 사실상 상드의 진정한 사랑은 망소였다. 상드는 친구를 새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아들과 눈물로 이별하면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1940년 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베리 근교의 노앙에 정원생활을 즐기면서 소설을 썼다.
‘마의 늪’의 주인공은 홀아비 농부 제르깽이다. 아내가 죽자 제르깽은 3명의 어린 자녀들과 어쩔 수 없이 이웃의 부유한 과부 카트린 레오나르에게 구혼한다. 젊은 목동 소녀 마리와 함께 레오나르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마의 늪’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면서 늪의 마술에 빠져들게 된다.
목적지에 도착한 제르깽과 마리는 둘 다 실망한다. 레오나르는 오만하고, 허영심이 많은 여자였다. 마리의 고용주는 마리를 욕 보이려고 하였다. 이야기는 엎치락 뒷치락 하며서 진행한다. 마침내 제르깽과 마리는 서로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의 전개나 어조는 전원적이다. 상드는 복잡하고 부패한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당대의 독자들의 취향에 맞추어서 시골을 배경으로 선택했다. 농촌의 힘겨운 현실 (벗어날 수 없는 가난, 오래 살지 못하는 운명 등등)을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인다.
상드의 소설은 낭만주의 특유의 매력과 신선함을 지닌다. 당대의 독자들에게 인가작가라는 명예를 누렸다.
그녀는 낭만주의 계열의 자가로 분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