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6. 10. 19. 월요일.
비가 그친 가을날의 날씨.
하늘이 밝고 맑고 환하고, 기온도 온화해서 참 좋다.
약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까짓것'이다.
집나이 일흔아홉살 만77살인 나.
늙어갈수록 등허리뼈가 활처럼 더욱 휘어지고 굽혀져서 낮에 걸어다는 것조차도 무척이나 어렵고 힘이 든다.
특히나 밤에 자려면 잠자리에 바로 눕지도 못한 채 옆으로 새우잠 형태의 자세로 누워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심각한 통증으로 입을 짝 벌리고 악을 써야 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번에는 배를 방바닥에 대고는 천천히 어깨를 들어올려서 휘어진 등뼈를 조금이랃도 펴려고 애를 쓴다.
주먹 쥔 손으로 등뼈를 다독 다독거린 뒤에서야 마지막 자세로 등을 방바닥에 눕혀 천장을 바라보는 형태를 취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매우 조심스럽게 하다보면 잠은 제대로 자지 못한다.
서너 시간 끙끙거리다보면 새벽 4시경 가까이 된다.
그 이후에서야 잠들기 시작해서... 아침 늦게서야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요즘 내 노년의 삶이 정말로 힘이 들고, 어렵다.
등뼈 아프고, 눈은 어리버리하고, 귀는 전혀 들리지 않고, 주머니는 텅텅 비어가고.
요즘 들어와 문득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든다.
잠 자다가 나도 모르게 숨 떨어졌으면 한다.
내가 죽으면 내 초상장레는 아주 간단하게 치뤘으면 싶다.
내 사후를 미리서부터 생각한다.
나는 장례식장의 거창한 장례식, 특히나 허례허식을 거절한다.
시체에 입히는 베옷 삼베옷은 무시무시하고 혐오스럽고, 형식적인 장례절차도 싫어한다.
또한 쓰잘데기 없는 조화(꽃) 화환도 싫어한다.
특히나 시신을 운구하는 상여는 더욱 싫고 겁이 난다.
내가 보기에는 사체에 대한 지나친 과잉 예절은 정말로 쓰잘데기 없는 짓거리에 불과하다.
물론 반대로 생각하면 특정업체 업자한테는 돈벌이에 좋은 기회가 된다.
내가 죽으면 평소에 입던 옷차림 그대로 입혀져서 곧장 화장터로 실려가고, 즉시 화장한 뒤에 뼈 유골만을 수습해서
작은 단지에 넣어서 잠시 보관했으면 싶다.
자식들이 짬을 내서 내 고향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 뒷편에 있는 죽청리 선산 상단에 있는
내 아버지 어머니 합장 무덤 아래 빈 터에 유골함을 살짝 묻었으면 한다.
내 어린시절, 청년시절, 중장년시절 등에서 보아왔던 초상 장례식의 형태는 무척이나 허위적이고, 짝퉁이며, 거짓 같았다.
오로지 장례식장과 장례 진행요원, 영혼을 다루는 종교인들의 돈벌이 수단이 되고, 과장된 장례행사는 '지랄'이라고 여긴다.
사후에 영혼이 있다고? .....
아무런 종교관이 없는 나는 특히나 더욱 그렇다.
때문에 내가 죽으면 초상장례는 극도로 간소화했으면 싶다.
요즘 들어와 자꾸만 더 늙어가는 내 처지이다.
점점 더 아프고, 힘들어 하니까 문뜩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든다.
내 사후에 대한 초상 장례 처리방법을 자식들한테 미리 알리고 싶다.
...... 이하 생략.
2.
<극보문학카폐>에 '무초 김도성' 님의 수필이 올라왔다.
내가 퍼서 '세상사는 이야기방'에 올려서 거듭 읽어야겠다.
나이 많은 나한테는 많은 뜻을 지닌 작품이다.
나보다도 나이가 약간 더 많은 김도성 문학가님.
삶을 열심히 사신다는 것을 거듭 느낀다.
지금도 테니스 라켓을 힘차게 휘두르며, 나무 판자에 예술작품으로 서각하고, 글을 쓰신다.
또한 아픈 아내를 위해서 오랫동안 간병하며, 밥을 지어서 아내한테 떠먹이신다.
김 선생님의 노년의 건강과 삶이 정말로 존경스럽고 본받을 만하다.
무초 작가님의 수필을 아래처럼 퍼서, 거듭 읽는다.
3,
인생의 마지막 계절을 어떻게 살 것인가/칼럼
무초 김도성
인생에도 마지막 계절이 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죽음을 생각한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날들이 가까워질수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더욱 절실해진다. 오래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다.
나는 노년의 시간을 글쓰기와 서각에 바친다. 새벽과 저녁에는 글을 쓰고 낮에는 나무에 글자를 새긴다. 같은 사물을 바라보아도 계절과 시간, 그날의 마음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 봄날의 나무와 겨울의 나무가 다르듯, 같은 풍경도 기쁨과 슬픔을 품은 사람에게는 서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는 그렇게 세상에 흔히 묻혀 지나가는 것들을 사유하고 글과 작품으로 남기려 한다.
내가 쓴 글과 서각 작품이 훗날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을지는 내 몫이 아니다. 그러나 작품을 만드는 동안 최선을 다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평가와 명성은 타인의 판단에 달렸지만, 성실함과 진정성은 스스로 지켜야 할 삶의 태도다.
육신의 생명은 유한하다. 그러나 한 사람이 남긴 글과 작품, 삶의 지혜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을 수 있다. 나는 내 작품이 후대의 기억 속에서 오래 살아남기를 소망한다. 그것은 육신의 죽음 이후에도 나의 영혼이 문자 그대로 영원히 산다는 확신이라기보다, 내가 남긴 정신이 다른 사람의 삶에 작은 울림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다고 작품을 남기는 일만이 노년의 가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명작을 남기지 못해도,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도 한 사람의 삶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배려하며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귀한 생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마지막 계절에는 몇 가지 욕심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지나간 선택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 용서할 일이 있다면 먼저 마음을 풀고,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늦기 전에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한다. 건강을 돌보고 몸이 허락하는 만큼 움직이며, 하루의 작은 기쁨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도움받기를 거부하는 고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죽음을 생각하되 죽음만 바라보며 살지는 말자. 내일이 불확실하다고 오늘의 의미까지 불확실한 것은 아니다. 오늘 쓸 한 문장, 새길 한 글자, 누군가에게 건넬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남은 생을 빛나게 할 수 있다.
인생의 마지막 계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아니다. 살아온 날을 이해하고, 남은 날을 정성껏 가꾸며, 떠날 준비를 조용히 해 나가는 시간이다.
--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배우며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평안한 노년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지혜다. --
2026. 10. 19.
[인생의 마지막 계절을 어떻게 살 것인가 작성자 무봉 김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