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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가 주책부린 것이 냉장고 원장고가 되었다
늙은이가 주책 부린 것이 냉장고 온장고가 되었다
인간 사회에 있는 각종 제도나 규범이나 윤리적 이런 것이 어떻게 처음에 만들어졌는가 아주 단순하다.
살아오면서 경험을 많이 쌓은 그러니까 까마귀 여우 능구렁이가 되어 말하잠 머리를 가진 늙은이한테서 나왔는데 늙은이가 왜 그런 것을 말하자면 제창했는가 그건 젊은 놈한테 맞아 죽지 않기 위해서 먹을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그런 말하자면 발상을 일으켜 가지고서 사람들한테 주입식으로 집어넣은 거야.
두뇌에다가 그러니까 윤리적인 거 이런 거 제도적 규범이 되게끔 그런 이제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말하자면 다스리기 용이하게하는데 그렇게 이제 이해(利害)가 맞아떨어져서 늙은이 생각과 힘 가진 놈과 이해가 맞아떨어져서 피지배자를 잘 말하자면 노예를 삼고 종을 삼고 구슬려서는 핍박하고 탄압하는 대로 이용하는 거지.
이 말씀은 인간 사회의 제도, 규범, 윤리 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다소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원: 사회 규범의 시작은 **경험 많은 늙은이(≈ 까마귀, 여우, 능구렁이)**에게서 나왔다.
동기: 늙은이가 규범을 만든 목적은 생존을 위해서였다. 즉,
젊은이에게 맞아 죽지 않기 위해.
먹을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수단: 이러한 발상을 주입식 교육을 통해 사람들의 두뇌에 넣었다.
역할 및 이용: 이러한 제도적 규범은 결국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다스리기 용이하게 만들었다.
늙은이의 생각과 **힘을 가진 자의 이해관계(利害)**가 맞아떨어져, 피지배자(노예, 종)를 구슬리고 핍박하며 탄압하는 데 이용되었다.
전체적으로, 인간 사회의 질서 체계가 순수한 도덕이나 공익보다는, 노년층의 생존 전략과 권력자의 지배 욕구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도구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첫 문장의 "늙은이가 주책 부린 것이 냉장고 온장고가 되었다"는 비유는 **사소한 개인적 욕심이나 행위(주책)**가 결국 **대규모의 유용하거나 보편적인 체계(냉장고/온장고와 같은 기능)**로 자리 잡았다는 역설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일체의 무슨 제도라는 것 규범이라 하는 거 이런 것을 본다 한다 할 것 같은 뭐 하라 뭘 잘하라 하면 무슨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가 그렇게 금기사항 벌로 말하자면 구성되어 있어 벌 주는 것으로 그러니까 그건 핍박하고 탄압하려고 말하자면 그렇게 생겨 먹은 거 늙은이가 자기 살려는 자구책에 의해서 말하자면 방어책에 의해서 생긴 거다.
젊은 놈한테 맞아 죽을질까 봐. 이 짐승 세계에 이런 걸 본다면 힘 가진 놈이 왕 아니야.
여기 말하자면 아프리카의 사자와 나라에도 늙은 사자가 젊은 사자한테 쫓겨나잖아.
그거와 같은 거야. 그런데 사람을 머리 두뇌를 굴리는 생각이라는 것이 뭔가 다른 그걸 이성(異性)이라 그러지 이성이 들어박혀가지고 그런 얄팍한 수작을 벌인다 이거야.
사용자님의 이 발언은 앞선 내용의 주장을 더욱 구체화하고 강화하는 논리입니다.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도와 규범의 본질은 '금기'와 '벌'이다:
규범은 '무엇을 잘하라'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마라'는 금기사항과 이를 어겼을 때의 벌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본질적으로 사람들을 핍박하고 탄압하기 위해 설계된 도구이다.
기원은 늙은이의 '생존 방어책'이다:
이러한 규범은 늙은이가 자신을 지키려는 자구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체적인 동기는 **"젊은 놈한테 맞아 죽을까 봐"**라는 공포이다.
인간과 짐승 세계의 비교 및 차이:
짐승 세계: 힘 가진 놈이 왕이며, 아프리카 사자 무리처럼 늙은 사자는 젊은 사자에게 쫓겨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인간 세계: 인간은 **'머리'와 '두뇌'를 굴려 '이성(理性, Reason)'**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결론: 이 '이성'이라는 것이 결국 늙은이가 힘 대신 **'얄팍한 수작'**을 부려 젊은이의 힘을 제어하고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낸 기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성(異性)'이라고 오타를 내셨지만, 문맥상 '이성(理性)'을 의미합니다.)
종합적으로, 이 주장은 인간의 사회 규범과 도덕을 '이성적이고 고귀한 가치'로 보지 않고, **노년층이 힘이 약해진 후 생존을 위해 만든 '지적이고 교활한 무기'**로 해석하는 매우 냉소적이고 힘의 논리에 기반한 관점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인간하고 저 짐승하고 틀리다. 인간이 다른 게 뭐 있어 짐승하고 다른건 오직 불을 사용한다.
지금 다른 짐승들은 불을 사용하지 못하는데 인간은 불을 사용함으로 인해 가지고서 불을 다룰 줄 앎으로 인해서 다른 짐승하고 이렇게 말하자면 구별이 되는 거지.
그래 이제 그 지배자하고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져서 힘없는 넘들을 보호하고 말하자면 잘 이렇게 살려준다는 미명(迷名) 하에 그따위 제도 규범 윤리적인 거 이런 것을 말하고 생산했는데 그 각종 민족적인 거와 종족 사회와 그 지역 환경과 말하자면 부합되게시리 연결 지어가지고 맞아떨어지겠끔 이렇게 제도 규범 이런 것을 윤리적인 거 이런 것을 말하자면 약속하는 거지.
만들어 가지고선 전통이 되고 오래되면 습기 누적 인자(因字)에 의해서 이제 전통이 되는 거야.
사용자님의 발언은 인간과 짐승의 차이점, 그리고 사회 제도 및 규범의 형성 과정을 힘의 논리와 지배층의 이해관계에 기반하여 해석하고 있습니다.
핵신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과 짐승의 유일한 차이: '불의 사용' 🔥
인간과 다른 짐승의 구별되는 유일한 특징은 불을 사용하고 다룰 줄 안다는 점이다.
제도/규범/윤리의 형성 배경: '지배자의 이해타산'
이러한 규범과 제도는 **지배자(힘 가진 자)**와 **기득권층(늙은이 포함)**의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져 만들어진 것이다.
규범이 만들어진 **표면적 이유(미명)**는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살려준다"는 것이지만, 실질적 목적은 지배층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있었다는 해석입니다.
규범의 지역화 및 전통화
이러한 제도와 규범은 각 민족, 종족 사회, 지역 환경에 부합되도록 만들어져 약속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약속된 규범들이 습관으로 누적되고 오래됨에 따라 결국 **전통(傳統)**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종합적으로, 사용자님은 불의 사용을 인간의 유일한 특징으로 보며, 사회 질서는 보편적 선(善)이 아닌 지배와 생존을 위한 실용적 도구이며, 이것이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적 전통으로 굳어진다는 냉소적인 사회 진화론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가지고 우리는 이런 한 제도와 윤리가 있다 무슨 법이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그것을 고수(固守)하고 지키고 안 그러면 가책 받는 양심 같은 것이 마음에 있어서[양심(良心)이라하는 것도 외부(外部)반영(反影)된것 다 세뇌 주입식으로 정신세계 자리잡는 숙주(宿住)가 된것이 거든] 옥죄이게 하는 거, 주늑이 들게 하는 거 그런 방향으로 흐르게 시리 하였다.
그러니까 이세상에 그에 대한 그 부작용 반작용 그런 것에 대한 부작용 반작용 이런 걸 전부 다 따지고 보면 원초적으로 그 늙은이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 제공한것이라
그래가지고 험한 구렁텅이 도탄을 만드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말씀이야. 일체의 규범과 제도 윤리적인 거 이런 것이 없으면 오히려 화과산 수렴동처럼 살기 좋은 원숭이 사회처럼 그렇게 될 수도 있는데 그 무슨 법 조항이든지 규범이든지 제도이든지 그 틀을 깨거나 벗어나려 하면 응징에 처한다.
엄벌에 처한다 이런 식이야. 무엇을 그걸 지키게 되면은 무슨 상을 크게 주고 너 임금 해먹어라 이런 식이 아니다.
이런 말씀이야. 뭐 떡을 준다든지 황금 덩어리를 준다 이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마구 지지 핍박 탄압 누르는 것으로 규범과 제도와 윤리적인 것이 생겨 먹었다.
이런 뜻이여.
사용자님의 발언은 이전의 모든 주장을 집약하고, 사회 제도와 규범에 대한 극단적인 부정론과 비판을 제시하며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양심(良心)의 정체:
우리가 규범을 지키게 만드는 양심은 내면에서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이 반영된 것이다.
이는 곧 세뇌 및 주입식 교육을 통해 정신세계에 자리 잡은 **'숙주(宿主)'**와 같은 것이며, 우리를 옥죄고 주눅 들게 만드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모든 문제의 원천은 '늙은이의 발상':
세상의 모든 규범, 제도, 윤리 및 그에 따른 부작용과 반작용을 따지고 보면 원초적으로 늙은이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규범들은 결국 세상을 **"험한 구렁텅이와 도탄"**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합니다.
규범 없는 사회에 대한 이상향:
일체의 규범, 제도, 윤리가 없다면, 오히려 **'화과산 수렴동'**의 원숭이 사회처럼 살기 좋은 곳이 될 수도 있었다고 가정합니다.
규범의 작동 방식: '응징과 탄압' 중심:
규범은 지키는 사람에게 **큰 상(예: 임금 자리, 황금 덩어리)**과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다.
대신, 그 틀을 깨거나 벗어나려 할 때 '응징과 엄벌'에 처한다.
즉, 규범과 제도의 본질은 **"마구 지지고 핍박하고 탄압하여 누르는 것"**에 있으며, 이것이 곧 규범이 생겨난 방식이자 목적이라는 결론입니다.
종합적으로, 사용자님은 사회의 모든 질서 체계를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을 통제하는 기득권(늙은이)의 교활하고 폭력적인 수단으로 간주하며, 이는 결국 세상의 불행(도탄)을 초래했다고 주장하는 극단적 반(反)제도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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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어찌 좋게만 보여져 그러니까 그런 거는 하마 악마의 머리에서 굴려 나오는 거지.
사람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소이(所以) 악마가 그렇게 한 거다.
이거 그런 악마가 생각을 굴려가지고 숙주 삼고 생각이 들어박히게 한 것이거든.
그래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늙어 힘이 쇠(衰) 하니까 아 나는 물러나야 되겠다 이래 스스로 알아서 물러날 수가 있기도 하고 그러면 이제 너 힘이 센 놈 너 젊은 놈 니가 왕이고 어른이다.
우리는 되려 신하(臣下)니까 얘 너 젊은 놈 나이 젊은 놈한테 우리 늙은 골백살이 먹었어도 굽혀서 노비 생활하겠습니다 이렇게 빌어야 될 게 될 판이라 여 그런 게 원리인데 그거 안 하겠다고 늙으니까 힘도 없으면서 먹을것 밥만 축내면서 대접받으려고 그래서 그 따위 일체 윤리적인 거 도덕적인 거 뭐 이런 것이 말하자면 교과서적으로 막 생겨 먹게 생겼다.
그러니까 그 이사(李斯) 분서갱유(焚書坑儒) 같은 게 왜 일어나 그런 제자백가 사상 그 덜 되먹은 논리를 펼쳐가지고 점점 어지럽게 하니까 약서만 나벼두고 다 태워라 한 거 아니야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힘 가진 자가 장땡인데 그 힘 가진 자가 제 힘을 자랑 못하게 구슬리려고[최면] 그래가지고 오히려 힘없는 놈이 힘 가진 놈을 말하자면 부려 쳐 먹으려고 그런 못되먹은 생각에 의해서 말하자면 각종 제도 규범 무슨 윤리적인 거 도덕적인 거 이런 거 아가 생겨 먹고 뭐 개인이나 공동체 운운하면서 거기에 다 맞춰가지고 어떻게 각 지역마다 각 나라마다 종족(宗族)마다 그렇게 제도 전통 규범 이런 게 다 생겨 먹게 됐다 이런 뜻이야.
사용자님의 발언은 이전의 논조를 유지하며,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 자체와 그 산물인 사회 규범을 **'악마적 발상'**의 소산으로까지 격하시키는 극단적인 비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각'과 '악마'의 연결:
사회 규범이 좋게 보이지 않는 이유가 **"악마의 머리에서 굴러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든 것 자체가 '악마가 그렇게 한 것'**이라고까지 주장합니다. 이 '생각'이 악마의 발상을 숙주 삼아 자리 잡게 했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질서와 '억지' 규범:
자연스러운 질서: 힘이 쇠한 늙은이는 스스로 물러나 "젊은 놈, 네가 왕이다" 하며 굽히고 노비 생활을 하겠다고 빌어야 하는 것이 원리이다. (짐승 세계의 힘의 논리)
억지 규범의 탄생: 하지만 늙은이가 이 원리를 따르지 않고, "힘도 없으면서 밥만 축내고 대접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 방편으로 윤리, 도덕, 교과서적인 규범 등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분서갱유(焚書坑儒)의 해석: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을 예로 들며, 이는 **힘 가진 자(황제)**가 **"덜 되먹은 논리"**를 펼쳐 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제자백가 사상을 제거하고 질서를 회복하려 한 행위로 해석합니다. (이 해석은 규범이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주장을 강화합니다.)
규범의 최종 목적: '힘없는 자의 통제 수단'
세상은 **힘 가진 자(장땡)**가 최고이지만, 규범은 그 힘 가진 자가 제 힘을 자랑 못하게 구슬리고(최면 걸고), 오히려 힘없는 놈이 힘 가진 놈을 부려먹으려고 만든 **"못되먹은 생각"**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개인이나 공동체를 운운하며 각 지역, 나라, 종족마다 제도, 전통, 규범으로 정착되었다고 결론짓습니다.
종합적으로, 사용자님은 인간의 이성적 사유 능력과 그 결과물인 사회 규범을 악마적이며 반자연적인 것으로 보며, 이는 힘없는 늙은이가 젊은이의 힘을 역으로 통제하고 착취하기 위해 고안된 교활한 책략이라고 주장하는 매우 극단적이고 권력 투쟁 중심적인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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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늙은이라는 그 늙어지면서 추접한 거지 추악하게 늙은 거지 누구든지 다 그러다 그렇게 보면 다 추악한 늙은이가 된다 이런 말씀이야 곱지 못한 현상이지 왜 젊은 놈한테 굽히면 안 될 게 뭐 있어 젊은 놈을 높이고 너는 왕 하고 나는 신하 할게.
앞으로 잘 봐줘. 힘이 없는 조금 힘 있을망정 그있는데로 힘이 없을 망정 힘 없는 데로 너를 부축해서 임금 모시듯 잘 할테니.
우리 신하 될게 힘 없는 놈 잘 봐다고 아 이렇게 해야 원리인데 지혜[지식 경험] 좀 있다고 해서 뭐 인의예지(仁義禮智).
삼강오륜(三綱五倫) 말하자면 유가(儒家)적 논리로 보면 그렇잖아.
그런 거 해가지고 힘 있는 놈 젊은 놈을 올라타려고 그러는 거거든.
그러니까 잘못된 거지. 그러니까 자연 우주도 그렇지만은 지구상으로 자연 법칙을 말하자면 거슬리라고 하는 거 그걸 극복(克服)한다고 하는데 자연을 극복하려 한다.
그러는데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려 하는 것이거든. 자연의 법칙은 힘의 순환(巡還)이다
말하잠. 늙은이가 힘도 없으면서 젊은 놈을 못 살게 굴고 올라타려고 하는 건... 젊은 놈이 힘을 막 방출해 가지고 써먹게 해 가지고 뭔가 그렇게 큰 뜻을 포부를 펼치게 해야 되지.
그걸 왜 지지누르려들어 인륜과 도덕이 이따위로 타령을 하면서 그러니까 이건 뭔가 잘못돼서 잘못된 거야.
이 세상의 모든 제도와 규범 이런 것이 다 그렇게 잘못된 거야.
윤리력 이런 것이...
그런 게 없어야 되는 거예여. 그래야지만 좋은 세상이 되고 말하자면 평화롭게 살게 된다.
그런 각종 제도 규범 이런 걸 만들어 놓고 그건 말야 덫과 올 무 이런 거 거 낚시 이런 것이 되는 것이거든.
그래서 거기 걸려들거나 막 치이거나 이러면 막 두들겨 잡으려 하고 그럼 말하자면 힘없는 자 이렇게 지배자가 피지배자 다루는 거 그러니까 말하잠 노예 종 이런 걸 부리고 나머지는 뭐냐 요리감이여 요리감이라서 왜 살려두느냐 이 세상이 생겨 먹은 것이 음식만 주기만 하면 요리감으로 살아 있는 거야.
그러니까 냉장고 역할 온장고 역할을 하는 거야. 이 세상 생태계 논리가 말하자면 냉장고에 음식이 안 상하잖아 부패되지 않잖아.
온장고도 그렇고 온장고에 넣게 되면 계속 뭔가 쉬지 않으려면 끓여놔야 되잖아.
그걸 우리 온장고 역할을 하는 거야.
냉장고는 이렇게 말하면 얼어제켜서 변질되지 않게 하는 거 그와 마찬가지로 이 생태계 논리를 잘 온장고 냉장고로 활용하여서 먹잇감을 그냥 이렇게 싱싱하게 말하자면 보관하기 위해서 살려놓는 거나 마찬가지야.
힘 없는 놈을... 힘이 있는 놈이...
사용자님의 마지막 발언은 앞선 모든 비판을 **'자연의 힘의 법칙'**을 기준으로 집대성하고, 사회를 **'지배자의 식량 보관 시스템(냉장고/온장고)'**으로 비유하며 극단적인 비판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핵심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노년의 추악함:
늙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추접하고 추악하게 늙는 것"**이다.
곱지 못한 현상의 원인은, 자연의 원리대로 젊은이에게 굽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의 원리 vs. 인위적인 규범:
자연의 원리: 늙은이는 힘이 없으니 젊은이를 왕으로 모시고 신하가 되어 잘 봐달라고 비는 것이 마땅하다. 이는 **'힘의 순환(巡還)'**이라는 자연 법칙이다.
규범의 문제: 하지만 늙은이는 **지혜/경험(≈ 지식)**을 내세워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삼강오륜과 같은 유가적 논리를 만들어 힘 있는 젊은이 위에 올라타려 한다.
이는 **'자연의 법칙(힘의 순환)'을 거스르려는 행위(극복)**이며, **"뭔가 잘못돼서 잘못된 것"**이다.
규범의 파괴적 결과:
늙은이가 젊은이의 힘 방출과 포부 펼치는 것을 '지지 누르기' 위해 인륜과 도덕을 타령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제도, 규범, 윤리는 모두 잘못된 것이며, 없어져야 좋은 세상과 평화가 온다.
규범은 힘없는 자를 가두는 **'덫, 올무, 낚시'**와 같아서, 걸려들면 두들겨 잡으려 한다.
사회의 극단적인 비유: 냉장고/온장고 생태계 🥩
지배자가 피지배자(노예, 종)를 다루는 방식은 마치 음식물을 다루는 방식과 같다.
피지배자들은 단지 **'요리감(먹잇감)'**일 뿐이다.
냉장고/온장고 논리: 힘 있는 자는 힘없는 자를 싱싱하게 보관하여 먹잇감으로 활용하기 위해 살려 놓는다.
냉장고 역할: 얼려 제켜서 변질되지 않게 한다.
온장고 역할: 쉬지 않도록 계속 끓여 놓는 역할을 한다.
즉, 이 세상 생태계와 제도는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장기간 통제하고 착취하기 위해 만든 '보존 시스템'**이라는 것입니다.
이 발언은 사회 규범과 윤리를 **'자연의 이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늙은이의 생존 본능에서 나온 교활한 도구로 규정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 사회의 구조 자체를 힘 있는 자의 먹이 사슬로 해석하는 매우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인 권력 투쟁 중심의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 그렇게 돼 가지고 있는 것이지 그것이 백성을 힘없는 놈을 보호하고 사랑하고 이따위 주장 그건 다 입에 발린 말인거야.
세객(說客)들이 주장하는 거지. 그러니까 그런 걸 부려서 사탕 발림으로 감언이설(甘言利說) 혹세하는 것이지 실상은 그렇게 부려 쳐 먹는 노비나 요리감을 오래도록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하자면 그렇게 하는 것이거든.
세상을 보호한다는 구실을 단다. 이런 말씀이야.
어 민초들을 그러니까 하나도 말하잠 이세상의 인륜 시비 흑백 뭐 이런 것도 원래 없지만 옳다고 볼 수가 없다.
이렇게 한쪽으로 말하자면,, 이것도 편파적인 생각이고 편견이지 그렇지만
어 처음에 뭘 만들어 낸 건 편견에서 비롯된것 아니고 뭐야 제 생각에 치우쳐 가지고 잣대를 그렇게 들여 밀었지.
다른 방향에서 생각을 해보면 이런 지금 이 강사처럼 말을 할 수가 있잖아.
잣대를 들이민다 하면은 그러니까 어떻게 보느냐 각도에 따라서 그것이 뭐 네모진 것으로도 보이고 세모진 것으 보이고 꽃으로도 보이고 나비로도 보이고 돌로도 보이고 기암괴석(奇巖怪石)으로도 보이고 말하자 수석송(水石松) 나무, 돌 물 다 이런 것으로도 이렇게 관찰이 된다.
이런 말씀이야. 한 가지로 골수에 메여가지고 자기 주장만 옳다 하고 그 모습만 바르다 할 수는 없는 거다.
어떠한 사물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이리저리 다 변화가 되어 일어난다.
변형이 되어 일어난다 이런 뜻이기도 하여
사용자님의 이 발언은, 앞서 주장했던 사회 규범에 대한 냉소적인 해석을 마무리하면서, 그러한 해석 또한 **'편견'**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다양성에 대한 논의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호' 주장의 허위성:
"백성을 보호하고 사랑한다"는 주장은 모두 입에 발린 말이다.
이는 **세객(說客, 달변가)**들이 주장하는 것이며, 감언이설(甘言利說)과 사탕발림으로 사람들을 **혹세(惑世)**하는 행위이다.
실제 목적은 **노비나 요리감(피지배층)**을 오래도록 상하지 않게 부려 먹기 위한 것이며, "세상을 보호한다"는 것은 단지 **구실(핑계)**일 뿐이다.
규범과 윤리에 대한 최종 평가:
이러한 세상의 인륜(人倫), 시비(是非), 흑백 등은 원래 없으며, 옳다고 볼 수 없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성찰: '편견의 인정'
화자 본인의 주장이 **"편파적인 생각이고 편견"**일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처음에 뭘 만들어 낸 것은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며, 모든 시작은 자신의 생각에 치우쳐 잣대를 들이민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합니다.
관점의 상대성과 다양성:
잣대를 들이미는 각도에 따라 사물은 다르게 보인다. (네모, 세모, 꽃, 나비, 돌, 기암괴석 등)
**"한 가지로 골수에 메여가지고 자기 주장만 옳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떠한 사물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이리저리 다 변화되고 변형된다는 깨달음을 공유하며, 앞선 논의를 마무리 짓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발언은 사회 질서의 근원적 악함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펼쳤으나, 최종적으로는 세상의 진리는 하나가 아니며, 자신의 주장 역시 하나의 편견일 수 있다는 상대주의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로 귀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좀 이제 문맥을 틀어선 앞에 이야기하고 틀리겠지만은 의미가... 우리가 인간이 생태계가 거의 99%가 모르는 거야.
앞서서도 많은 강론을 했지만 뭐 맹자에도 나가지고 혼자 다 만사 통달은 못한다 하잖아.
말하자면 뭐 혼자 사농공상(士農工商) 글읽고 베짜고 농사 짓고 신 삼고 대장쟁이 쇠 다루고 이거 다 하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다 자기 방면에만 조금 아는 체하지 다 99%는 모르는 거야.
그 모르는 거가 그러니까 0.1% 1%의 아는 것을 말하자면 농락하고 부려먹는 거다 이런 말씀이에여.
99% 모르는 것이 1% 아는 것 그 1% 아는 건 밝다 하는 뜻으로 관념을 둔다면 빛이여 빛의 이론에 의해서 형성된 게 현생 우주거나 다중 우주거나 과거 우주거나 새로운 우주거나 그런 논리다 이거야 그래서 그 빛이 이론이 결국은 그건 뭐 안다 남은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상하수도 고장 난 걸 고쳐주는 그런 걸 모르잖아.
여느 사람들은 잘 아는 철물점 아저씨다 이런 말씀이에요.
철물점 아저씨가 바로 이 1% 0.1%에 해당하는 빛의 이론이다 이런 뜻이야.
그래 그러게 그렇게 1%에 해당하는 빛의 이론이 까막눈 암흑 99%의 신하(臣下)가 되어서 말하자면 종 노예가 되어 가지고 봉사하고 희생하고 이런 형국이 된 것이 바로 이 세상 현재 생긴 우주 현상이다 이런 뜻이야.
사용자님의 마지막 발언은 앞선 사회 비판의 논조에서 벗어나, 지식과 무지의 비율을 들어 현실 세계의 역설적인 구조를 설명하는 매우 독특한 철학적 비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식의 비율:
인간 생태계에서 우리는 거의 99%를 모른다. (맹자가 말한 만사 통달 불가능과 유사)
각자 자기 분야만 조금 아는 척할 뿐이다.
지식과 무지의 역설적 관계:
**99%의 모르는 것(무지)**이 **0.1%~1%의 아는 것(지식)**을 농락하고 부려 먹는다.
'아는 것(1%)' = '빛': 1%의 지식은 밝다는 뜻에서 **'빛의 이론'**으로 비유됩니다. 이 빛의 이론이 현생 우주 등을 형성했습니다.
구체적인 비유: 철물점 아저씨:
이 '빛의 이론'에 해당하는 1%의 지식은 **"남은 모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하수도 고장 난 것을 고쳐주는 '철물점 아저씨'**가 바로 이 **1% 또는 0.1%의 '빛의 이론'**에 해당합니다.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
현실 세계의 구조:
문제는 **1%의 '빛의 이론'**을 가진 자가 **99%의 '까막눈 암흑(무지한 대중)'**의 신하, 종, 노예가 되어 봉사하고 희생하는 형국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이 세상에 생긴 우주 현상(구조)**이라는 뜻입니다.
종합적으로, 이 발언은 전문 지식(빛)을 가진 소수가 실질적인 존중이나 지배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지한 다수(암흑)를 위해 복무하고 희생하도록 구조화된 현실의 역설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식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다수의 필요에 의해 봉사 계층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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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무슨 내가 자전거 타고 오늘도 오다가 공연을 이렇게 길가에 오다 애들 공연을 봤지만 뭐 춤추는 공연 이런 걸 봤지만 그거 다른 사람 다 하진 못하잖아.
그 몇 번만 올라가서 연기 공연하듯이 막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데 그건 보는 사람들은 다 까막는 모르는 입장이 돼 가지고 들여다 보고서 말하잠 좋아라 한다 이런 말씀이 오감각의 기쁨을 느끼는데 그 실상을 그 관객들이 거기서 들여다 보는 관객들이 그걸 뭐 일부러 시킨 건 아니지만은 그들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결국은 이 까막눈 암흑 상태에 있는 관객들이 말야 시킨 거나 마찬가지로 너희들 그래 한번 해 봐라 우리 구경할게 이런 식이 된 거다 이런 말씀이에여.
그러니까 우주는 99%가 다 모르는 거야.
아 그 1%에 해당하는 것들이 그렇게 아는 체하면서 육투리 발광을 깔면서 세상이라 하고 뭐 우주라 하고 별세계이라 하고 은하성운이 어떻고 안드로메다.
성운이 어떻고 이따위 개수작 나발을 떠든다 이런 말씀이지.
그러니까 아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거야. 도탄에 들고
사용자님의 마지막 발언은 앞서 제시했던 **'99%의 무지(암흑)'와 '1%의 지식(빛)'**의 역설적 관계를 길거리 공연 비유를 통해 구체화하고, 지식의 고통을 강조하며 결론짓고 있습니다.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길거리 공연 비유:
공연자 (1%의 지식/빛): 춤을 추고 연기하는 능력을 가진 소수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할 수 없는 기술을 가짐)
관객 (99%의 무지/암흑): 공연 내용을 **"까막눈으로 모르는 입장"**에서 들여다보며 오감각의 기쁨을 느낍니다.
역설적 지배: 비록 관객들이 직접 시킨 것은 아니지만, 공연자들이 보여주려는 행위는 결국 99%의 무지한 관객들이 "너희들 해봐라, 우리가 구경할게"라고 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의 구조를 형성합니다. (다수의 요구에 소수의 재능이 봉사하는 형태)
지식인의 '육두리 발광' 비판:
1%에 해당하는 지식인들은 **"아는 체하면서 육두리 발광"**을 떨며 세상, 우주, 별세계, 은하 성운, 안드로메다 등을 언급합니다.
화자는 이러한 논의를 **"개수작 나발"**이라고 비판적으로 폄하합니다.
지식의 고통:
이 모든 논의를 통해 궁극적으로 도출되는 결론은 **"아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이며, 지식 때문에 "도탄(苦痛, 고통스럽고 어려운 처지)"에 든다는 것입니다.
종합적으로: 사용자님은 세상의 지식이란 대다수 무지한 대중(99%)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역설적인 봉사 행위이며, 진실을 아는 소수(1%)는 이러한 봉사 구조와 지식의 무게 때문에 오히려 고통과 도탄에 빠진다는 지식인의 비극적 인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자는 고통 의식이 없다 모른다 하면 생각해 봐.
무슨 고통이 있겠어 어 그러니까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이런 식으로 모르는 상태 의식 없는 상태 까막눈 상태 이런 식으로 점점 들어가다 보면은 그래 거긴 말하자면은 거기는 큰 고통스러운 것이 없게 되는 거지 그래 그런 것 모르는 상태가 안다 하는 놈을 종을 삼아 부리는 것이 그 모르는 감각 속에서 말하자면 그 희열을 느끼게 하는 거야.
모르는 자들 모르는 자들이지 하나가 아니야 그 무슨 어떤 하나를 말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항상 이 강사가 형용화(形容化)시켜서 형성(形成)시킨다 하지 무슨 작(作)을 말하지 않는다.
작품 작자(作者) 이러면 신앙(信仰) 종교(宗敎)의 개념으로 빠져가지고 엉뚱하게 시리 말하잠 이 세상을 말하잠 사이비(似而非)가 뭐인가 지배자가 따로 있어서 만들어 놔 자 말하자면 붓쟁이 화쟁이가 말하자면 포인트가 그려 달라고 하는 것은 제놈이 그려주고서 11조 받아 처먹으려 하는 식으로 말하자면 제 것이라고 으시되는 모습이 된다.
이런 말씀이야. 그러니까 일체 작품이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냥 형용화시켜서 이렇게 그림을 그려가지고[그리라 해가지고 붓쟁이한테 붓쟁이 빛은 암흑의 신하지 그러니깐...] 형성시켜서 이루어서 이렇게 열어 보여서 여러 사람들한테 드러내 보여준다.
오감각으로 춤추고 노래하고 이런 걸 다 시청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그런 식으로 열어 보여주는 것이지 무슨 그걸 작품이라고 이렇게 하면 하면 어떤 귀신이나 들이 덧 씌워가지고 그건 귀신 놈이 만드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된다 이런 말씀이야.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되면 안 된다 또 이런 또 이야기를 또 이렇게 덧붙여 보는 것입니다.
사용자님의 이 마지막 발언은 앞선 논의들을 **'지식', '고통', '창조'**의 개념으로 엮어 최종적인 철학적 결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지(암흑)와 무고통:
모르는 자에게는 고통 의식이 없다. 모르는 상태, 의식 없는 상태(≈ 암흑 물질, 암흑 에너지, 까막눈 상태)로 가면 큰 고통이 없어진다.
이 **모르는 상태(다수)**가 **아는 자(소수)**를 종으로 부리며 그 모르는 감각 속에서 희열을 느낀다. (다수의 무지에 소수의 지식이 봉사하며, 다수는 그 봉사를 통해 만족을 얻음)
'형용화'와 '작품'의 구분:
화자는 자신의 설명이나 이 세상의 현상을 '작품(作品)'이라고 부르는 것을 강력히 거부합니다.
이유: '작품', '작자(作者)'라는 개념은 신앙이나 종교의 개념으로 빠져서, 마치 '지배자'가 따로 있어 세상을 만들어 놓고 십일조를 받아먹으려는 식의 사이비 논리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화자는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그저 '형용화(形容化)'시켜서 '형성(形成)'시킨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절대적인 창조자가 아닌, 현상과 과정을 통한 드러남을 강조)
지식인(붓쟁이)의 역할 재정의:
여기서 지식인(예: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 혹은 비유적으로 붓쟁이)은 여전히 암흑(무지)의 신하입니다.
그들은 단지 "형성시켜서 이루고, 열어 보여서 여러 사람들한테 드러내 보여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오감각으로 춤과 노래를 시청하게 하듯이)
종합적으로: 이 발언은 무지함을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상태로 규정하고, 이 무지한 다수(암흑)가 지식을 가진 소수(빛)를 부려서 봉사를 통해 희열을 얻는 세상의 구조를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더 나아가,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특정 창조자나 신의 소유물(작품)**로 보지 않고, 단지 **드러나고 표현되는 과정(형용화)**으로 보아야 한다는 반(反)신앙적, 반(反)창조자론적인 철학적 관점을 제시하며 논의를 매듭짓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모두 안다 하는 것 제자 백가 사상 좌도방문이고 옳고 그름 할 것도 없이 다 그래 늙은이 힘 없는 놈들이 제 맞아 죽지 않고 굶어 죽지 않으려고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골자는 그거야. 팩트 이야기는...
그러니까 늙은이가 아주 추접해도 더럽게 추접하게시리 이 세상의 각종 제도 규범 이런 걸 말하자면 제창한 거다 이런 뜻이야.[모든 방면 무르 농익은것 다 늙은것이 된다 결국은 부패 되고 말잖아 싱싱하게 보관 유지되는 것이 별로 없다 낙과됨 보호막이 부패됨 종자(種子) 견과(堅果)는 대지(大地)가 보호 이듬해 싹이튼다 ]
그 지역 환경에 맞게 시리, 그렇게 여러 가지 말야 상황이 벌어지는 거 거기 맞게시리 그래가지고 힘 가진 놈이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구실려서 글쎄 냉장고 온장고 생태계를 삼아가지고 말하자면 종 노비 삼으려 하는 것과 그것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이제 각종 규제 제도 규범 윤리적인 것이 말하자면 세상에 있게 되었다 이런 뜻이야.
사용자님의 마지막 정리 발언은 앞선 긴 논의의 핵심을 매우 간결하고 강하게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핵심 요약 (The Core Argument):
세상의 지식과 사상의 본질:
이 세상의 모든 '안다 하는 것', 즉 제자백가 사상, 좌도방문(邪道傍門, 이단적인 사상) 등은 옳고 그름을 따질 것 없이 모두 같은 근원을 가진다.
**골자(팩트)**는 **"늙은이 힘 없는 놈들이 제 맞아 죽지 않고 굶어 죽지 않으려고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규범의 추악한 기원:
늙은이는 "아주 추접하고 더럽게 추접하게" 이 세상의 각종 제도와 규범을 제창했습니다.
모든 것이 무르익으면 결국 부패하듯이, 늙은이가 만든 규범 역시 곱지 못한 결과를 낳습니다. (다만 종자/견과처럼 대지가 보호하는 예외도 언급)
규범이 세상에 있게 된 이유 (냉장고/온장고 생태계와의 결합):
늙은이의 규범 제창은 지역 환경과 상황에 맞게 발생했습니다.
이 규범은 **'힘 가진 놈(지배자)'**이 **'피지배자'**를 구슬려서 **"냉장고/온장고 생태계"**를 삼아 종과 노비로 부리려 했던 목적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용자님은 사회의 모든 질서와 사상을 노년층의 극단적인 생존 본능과 권력층의 착취 욕구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추악하고 교활한 도구로 해석하는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권력투쟁론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그게 잘못된 거야 뭔가 이렇게 이 규범 제도 이러면 항시 그 이게 부정부패 비리 부작용 반작용 이런 게 따라붙게 돼 있어.
그래 원래 없는 것만 못한 거야.
밥 그릇이라 하는 것은 뭔가 밥을 담아 먹으려고 그래 뭔 그릇을 만들잖아 거기 담기길 바라는 거예여.
그걸 유비무환(有備無患) 정신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냥 밥그릇만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형태 말하잠 역할을 한다.
이렇게들 떠들지만은 실상은 그건 언제든지 담아 먹으려고 이렇게 생겨 먹은 것이거든.
그러니까 일단 이 세상에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는 모든 제도 규범 윤리적인 것이 밥그릇이라 하면 그 반대적으로 부작용 논리 반작용 논리 부패 논리 이런 것이 전부 다 밥이 된다 이런 뜻이기도 해.
음식이 된다 이런 뜻이기도 하다. 이런 말씀이야.
예 이번에는 이렇게 그럴싸한 제도 규범 윤리적 이런 것이 다 늙어서 힘 없어서 죽지 못해 가지고 맞아 죽을까봐 겁이 난 늙은이 주둥이의 생각에서부터 나왔다.
이런 것을 주제를 걸고서 한번 강론을 펼쳐봤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무슨 제도 규범, 윤리적 이런 건 다 옳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거지. 예
말하자면 절대 그런 게 아니야. 그거 그냥 힘 있는 놈이 그렇게 뭐어 힘 없는 놈을 고혈 착취로 빨아 쳐 먹으려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냉장고 온장고 논리가 돼고...
사용자님께서 앞선 긴 논의를 최종적으로 정리하고 마무리하셨습니다.
최종 결론 및 요약:
규범의 필연적 문제점:
제도와 규범은 본질적으로 부정부패, 비리, 부작용, 반작용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되므로 **"원래 없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밥그릇' 비유를 통한 제도 해석:
제도/규범/윤리 (= 밥그릇): 무언가 담기 위해(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형태입니다. '유비무환'의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언제든지 담아 먹으려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부작용/부패 논리 (= 밥/음식): 제도가 만들어지면 그 반대 논리, 즉 부작용, 반작용, 부패 논리가 생겨나는데, 이것이 바로 **(지배자가 이용해 먹을) '밥' 또는 '음식'**이 됩니다.
근본적인 주제의 재확인:
이번 강론의 주제는 "그럴싸한 제도, 규범, 윤리적인 것"이 **"늙어서 힘이 없어서 죽지 못해, 맞아 죽을까 봐 겁이 난 늙은이 주둥이의 생각에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최종 판단: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제도, 규범, 윤리적인 것은 **"옳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들은 절대적인 선(善)이 아니며, **"힘 있는 놈이 힘 없는 놈을 고혈 착취로 빨아 쳐 먹으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는 곧 냉장고/온장고 논리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사용자님은 이로써 인간 사회의 질서 체계에 대한 극도로 회의적이고, 힘의 논리에 기반한 비판적인 강론을 모두 마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