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평소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데 어떤 경위로 그동안 전혀 몰랐던 이승휘 선생을
알게 되었는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시작은 대한족노동단의 이승연 선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2년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박경순"으로 검색하다가 전혀 생각치
않았던 대한족노동단을 찾았던 감격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며칠전 역시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이승연으로 검색하였다.
검색을 한 이후 발견한 일제문서에서 이승연 선생을 찾기는 하였으나 동명이인이었다.
그런데 그 자료에서 그동안 전혀 몰랐던 새로운 인물을 발견하였으니 바로 이승휘 선생이었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이승휘 선생의 기록을 찾는 과정에서 석주 이상룡 선생 가문이 1914년
당시 길림성 해룡부 간포라는 지역에 거주하였다는 놀라운 정보도 알게 되었으니 이는
이승연으로 검색하지 않았다면 전혀 발견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필자가 며칠전부터 이미 완독한 이상룡 선생의 일대기에 이어서 일송 김동삼 선생의 일대기
를 그린 "만주지역 통합운동의 주역 김동삼" 제하의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거슬러 올라가서 시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전, 종조부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김동삼 선생의 친손자를 뵌 적이 있었다.
당시 자택에서 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어떻게 김동삼 선생의 친손자까지 뵈올 수 있었던
것인지 그 과정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친손자께서 직접 저술하신 책을 필자에게 주셨는데 그 서명이 "북만주반일운동
근거지(北滿洲反日運動根據地) 취원창(聚源昶)" 제하의 책이었다.
그 책을 받은 이후 집에 와서 가끔 읽기는 하였으나 지금 생각하니 그 의미에 대하여 자세히
모르는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가 석주 선생을 비롯하여 그 가문과 서로군정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직접적인 계
기가 바로 대한족노동단 발견이었기에 그 무렵만 하더라도 서간도의 독립운동 단체에 대하여
자세히 몰랐던 것이다.
취원창이란 북만주 하얼빈 동북쪽 35Km에 위치한 집단 농장이라 할 수 있는데 경신대참변에서
서간도 지역 특히 독립운동의 핵심근거지라 할 수 있는 유하현의 한인들이 심대한 타격을 받
았는데 이러한 사건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그 이후 서간도의 한인들이 취원창으로 집단적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여기에 석주 선생의 친척들도 포함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유서깊은 취원창의 역사를 김동삼 선생의 친손자가 저술하였으며, 필자가 그러한 귀한
책을 받는 영광을 입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어제 본 책에서 석주 선생의 당숙이 되시는 이승화 선생께서 1914년 독립운동 자
금모집을 위해 국내에 잠입하여 활동 중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던 새로운 정
보를 알게 되었으며, 더불어 석주 선생의 매부 박경종 선생도 함께 체포되어 징역 8개월을 선
고받고 수감된 사실도 추가로 알게 되었는데 생각하여 보니 필자가 며칠전,발견한 일제문서에
이승화 선생과 박경종 선생 인적사항이 있고 관련 기록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 기록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판결문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마침내 공훈전자사료관 홈피를 통하여 당시 판결문까지 확인하는 성
과를 거두었으니, 이승연 선생으로 검색한 것을 시작으로 전혀 생각치 않았던 이승화 선생의
판결문까지 확인하는 구체적 결실을 이루었는데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은 만약에 "취원
창"이라는 책이 없었다면 이러한 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과정을 체험하면서 필자의 삶에 있어서 독립운동가 발굴이 얼마나 중요한 비
중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뼈속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2018년 2월 2일(금) 박관우 역사작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