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p-G-oO3oOWc
새엄마와 세벌의 내복(內服)
(默想, 感動的인 이야기).
내가 열두살이 되던 이른 봄,
엄마는 오빠와 나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당시 중학생인 오빠와 초등학교(初等學校)
5학년인 나를 아빠에게 부탁(付託)한다며 눈물짓던 마지막 길...
내게 남겨진 건 엄마에 대한 추억(追憶)과 사진(寫眞) 한장.
엄마는 사진(寫眞)속에서 늘 같은
표정(表情)으로 웃고 계셨다.
아빠는 그렇게 엄마의 몫까지 채워가며 우리 남매(男妹)를 길러야만 했다.
그게 힘겨워서였을까?
내가 중학생(中學生)이 되던 여름.
아빠는 새엄마를 집으로 데려오셨다.
엄마라고 부르라는 아빠의 말씀에 우리 남매(男妹)는 따르지 않았다.
결국(結局) 생전(生前) 처음 겪어보는 아빠의 매 타작(打作)이 시작(始作)되었고,
오빠는 어색(語塞)하게 "엄마"라고
겨우 목소리를 냈지만,
난 끝까지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니 부를 수 없었다.
왠지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瞬間),
돌아가신 진짜 엄마는 영영(永永) 우리들 곁을 떠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종아리가
회초리 자국으로 피멍이 들수록 난 입을 앙다물었다.
새엄마의 말림으로 인(因)해 매 타작(打作)은 끝이났지만,
내 가슴엔 어느새 새엄마에 대한 적개심(敵愾心)이 싹트기 시작(始作)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새엄마를 내가 더 미워하게 되는 결정적(決定的)인 일이 벌어졌다.
내 방(房)에 있던 엄마 사진(寫眞)을 아빠가 버린다고 가져가 버린 것이다.
엄마 사진(寫眞) 때문에 내가 새엄마를 더 받아아들이지 않는 거라는 이유(理由)에서였다.
이때부터 새엄마에 대한 나의 반항(反抗)이 본격적(本格的)으로 시작(始作)되었다.
다른 사람의 기준(基準)으로 보면 분명(分明) 새엄마는 착한 분이었다.
그러나 한번 타오르기 시작(始作)한 나의 적개심(敵愾心)은 그 착함마져도 위선(爲善)으로 보일만큼
강렬(强烈)했다.
난 언제나 새엄마의 존재(存在)를 부정(否定)하였다.
그해 가을 소풍(消風) 날이었다.
학교(學校) 근처(近處) 계곡(溪谷)으로 소풍(消風)을 간 나는 도시락을 싸가지 않았다.
소풍(消風)이라고 집안 식구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점심(點心) 시간(時間)이 되고 모두들 점심(點心)을 먹을 때,
계곡(溪谷) 아래쪽을 혼자 서성이고
있는 내 눈에 저만치 새엄마가 들어왔다.
손에는 김밥 도시락이 들려있었다.
뒤늦게 이웃집 정미 엄마한테서 소풍(消風)이라고 전해듣고 도시락을 싸오신 모양(模樣)이었다.
난 도시락을 건네받아 새엄마가 보는 앞에서 계곡(溪谷) 물에 쏟아버렸다.
뒤돌아 뛰어가다 돌아보니,
새엄마는 손 수건(手巾)을 눈 아래 갖다대고 있었다.
얼핏 눈에는 물기가 반짝였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증오(憎惡)와 미움속에 중학시절(中學時節)을 보내고 3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고입(高入)
진학상담(進學相談)을 해야했다.
아빠와 새엄마는 담임(擔任) 선생님의 말씀대로 가까운 인근(隣近)의 인문고(人文高) 진학(進學)을 원하셨지만,
난 산업체(産業體) 학교(學校)를 고집(固執)하였다.
새엄마가 원(願)하는 대로 하기 싫었고,
하루라도 빨리 집을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집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결국, 내 고집(固執)대로 산업체(産業體) 학교(學校)에 원서(願書)를 냈고,
12월이 끝나갈 무렵 경기도(京畿道)에 있는 그 산업체(産業體)로 취업(就業)을 나가기로 결정(決定)됐다.
드디어 그날이 오고,
가방을 꾸리는데 새엄마는 울고 있었다.
그러나 난 다시 한번,
정말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음속으로 결심(決心)했다.
나는 경기도(京畿道)에 도착(到着)해서도 보름이 넘도록 집에 연락(連絡) 한번 하지 않았다.
나의 산업체(産業體) 공장(工場) 생활(生活)은 그렇게 시작(始作)되었고,
낯설음이 조금씩 익숙해져갈 무렵 옷(衣) 가방을 정리(整理)하는데,
트렁크 가방 맨 아래 검은 비닐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分明) 누군가 내 가방 속에 넣어놓은 비닐 봉투(封套)였다.
봉투(封套) 속에는 양말(洋襪)과 속옷 두벌 그리고 핑크빛 내복(內服) 한벌이 들어있었다.
편지(便紙)도 있었다.
가지런한 글씨체...
새엄마였다.
두번을 접은 편지지(便紙紙) 안에는 놀랍게도 아빠가 가져간 '엄마 사진'이 들어 있었다.
새엄마는 아빠 몰래 엄마의 사진(寫眞)을 간직했다가 편지지(便紙紙) 속에 넣어서 내게 준 것이다.
이제껏 독(毒)하게도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물 콧물 뒤범벅이 되며 편지(便紙)를 읽고 또 읽었다.
그동안 쌓였던 감정(感情)의 앙금이 눈물에 씻겨 내렸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以後) 처음으로 그날 밤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첫 월급(月給)을 타고 일요일이 되자 난 흥천행(경기 여주 흥천면) 버스를 탔다.
밤새 눈이 많이 내려 들판에 쌓여 있었다.
내 손에 세벌의 내복(內服)이 들려 있었다.
아빠, 엄마 그리고 새엄마의 내복(內服)...
새엄마... 아니 나의 엄마는 동구(洞口: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 밖에 나와 날 기다리고 계셨다.
빗자루가 손에 들린 엄마 뒤에는 훤하게 아주 훤하게 쓸린 눈길이 있었다.
"새엄마... 그동안 속 많이 상하셨죠?
이제부턴 이 내복(內服)처럼 따뜻하게 제가 엄마로 모실께요."
아직도 말로 못 하고 속말만 웅얼거리는 나를, 어느새 새엄마의 따뜻한 두팔이 감싸안고 있었다...
– 출처: 좋은 생각 –
내가 가진 편견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차단하는 것
그것은 오히려 어두운 작은 방에 스스로를 가두어
점점 외롭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살면서 어찌 미워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일단 마음을 여세요.
그리고 한 번 들여다보세요.
오늘의 명언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모습 속에 보이는 자신의 일부분을 미워하는 것이다.
– 헤르만 헤세 –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 한계치를 넘는다면
한 발짝만 물러나서 상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세요.
때로는 마음 안에 가득 찬 증오나
적개심 때문에 상대방의 진심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나무는 제 손으로 가지를 꺾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제 마음으로 가까운 이들을
베어버린다.
– 톨스토이 –
옮겨온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