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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pxx2NKl1Oo4?si=Gi0mdYH9EfK183xd
가룟 유다의 입맞춤
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위기 상황 속 제자들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마태복음 26:47~56, 개역개정)
* 입 맞추는(48절) 유대인의 전통적 인사법으로 사랑과 존경을 표하는 방법이었다.
* 군단(53절) 로마의 1개 군단은 보병 6천 명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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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유다가 데려온, 칼과 몽치를 든 큰 무리가 예수님을 잡자,
예수님과 함께 있던 한 사람이 칼을 빼 대제사장 종의 귀를 벱니다.
예수님은 칼을 가진 자는 칼로 망한다 하시고, 성경을 이루기 위해 무리에게 순순히 잡히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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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 유다의 입맞춤마태복음 26장 47~50절
47 예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유다가 다가왔습니다. 유다 곁에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보낸 큰 무리가 칼과 몽둥이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48 그리고 예수를 넘겨줄 사람이 그들에게 신호를 보내기로 정해 두었습니다. “내가 입을 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붙잡으시오.”
49 곧바로 유다는 예수께 다가가 “랍비여, 안녕하십니까?”라고 말하며 입을 맞추었습니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친구여, 무엇을 하려고 여기에 왔느냐?” 그러자 사람들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더니 예수를 붙잡아 체포했습니다.
-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넘겨주기 위해 입맞춤이라는 친밀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랍비여’라는 말과 입맞춤은 존경과 사랑의 상징이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예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모습, 이것이 배신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유다를 향해 “친구여”라고 부르시며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이 단순한 말과 행동이 아니라 중심에서 나오는 진실이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모습은 갖추었지만, 마음은 하나님과 멀어져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겉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며 마음은 멀어져 있지는 않나요?
주님을 향한 나의 고백은 진실한 사랑에서 나오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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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상황 속 제자들마태복음 26장 51~56절
51 그때 예수의 일행 중 한 사람이 손을 뻗어 자기 칼을 빼고는 대제사장의 종을 내리쳐 그 귀를 잘랐습니다.
5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뽑는 사람들은 모두 칼로 망할 것이다.
53 내가 내 아버지께 청하면 당장 12군단보다 더 많은 천사들을 보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너는 모르느냐?
54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면 성경에서 이런 일이 마땅히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55 그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강도를 잡듯이 칼과 몽둥이로 나를 잡으러 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는데 너희가 그때는 나를 체포하지 않았다.
56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예언자들의 글을 이루기 위해 일어난 것이다.” 그때에 제자들이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 예수님이 붙잡히는 순간, 제자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칼을 들어 싸우려 했지만, 이는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폭력을 거부하시고 끝까지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십니다. 결국 제자들은 두려움에 무너져 모두 도망칩니다. 이 장면은 우리의 신앙이 위기 속에서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참된 제자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위기 속에서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지는 않나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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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세이
☑️ 결국, 사람입니다.
가룟유다의 이야기를 묵상하다 보면, 단지 배신의 비극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리보다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를 참된 제자로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가까운 자리에 있는 것과 주님의 마음을 품는 것은 같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함께 걸어도, 중심이 주님께 있지 않으면 얼마든지 다른 길로 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의 교회도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교회는 오랫동안 부흥과 성장을 위해 좋은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큰 행사도 준비하고, 더 좋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애써 왔습니다. 물론 그런 수고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런 것들이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일까지 대신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겉은 풍성해 보여도 정작 말씀 따라 살려는 사람,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 복음으로 살아내는 사람은 충분히 세워지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더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교회가 정말 찾아야 할 사람은 세상에 길들여진 사람이 아니라, 부족해도 말씀을 따라가려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주목해야 할 사람은 화려한 능력을 가진 사람보다,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실천하려고 선한 양심으로 씨름하는 사람입니다. 좀 서툴러도 기도의 무릎을 아는 사람, 눈에 띄지 않아도 맡겨진 자리를 충성스럽게 지키는 사람, 넘어져도 다시 복음 앞으로 돌아오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교회를 세웁니다.
오늘 우리 시대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복음의 사람, 말씀의 사람, 기도의 사람, 헌신의 사람입니다. 돈과 규모와 영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진실한 성도와 목회자입니다. 사람이 주인 노릇하는 교회에는 금과 은은 있을지 몰라도, 예수 그 이름의 사랑은 흐려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세워지는 교회에는 화려함이 부족해도 생명이 있고, 눈에 띄는 힘이 적어도 사랑이 있습니다.
결국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로 유지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사람으로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프로그램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서로를 붙들어 주며, 약한 것을 고치고, 상한 마음을 돌보며, 예수님의 제자를 세워 가는 일입니다.
가룟유다의 이야기는 그래서 남의 실패를 보여주는 본문이기 전에, 오늘 우리의 중심을 점검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나는 정말 주님을 따르는 사람인가, 아니면 주님 곁에 머무르면서도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사람인가. 이 질문 앞에 정직해질 때, 교회도 다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람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끝까지 세워야 할 사람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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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절 묵상
26장 47,48절 | 결국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장서서 예수님이 계신 곳을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보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은30을 받게 됩니다. 가룟유다와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도망할까 싶어서 나름대로 서로 신호를 준비해서 왔습니다. 가룟유다는 자신의 스승이신 예수님께 가증스러운 입마춤을 하며 넘겨 줍니다. 그는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그를 배반하고 자신의 배를 불리는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잘못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빙자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려는 그릇된 일들의 유혹을 뿌리쳐야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하여 복음적인 것을 앞세워서 행하는 일들도 조심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복음의 지식들은 복음의 참된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어져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오늘의 기도
국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주님과 연합함으로, 죽음을 넘어 부활 생명에 이르는 은혜를 누리고 전하는 성도들이 되길 기도합시다.
국외
보츠와나는 인구 대다수가 기독교인인데, 국민의 에이즈 감염률이 높습니다. 부모가 에이즈로 사망해 홀로 남겨진 아이들에게 위로와 회복이 임하길 기도합시다
오늘의 말씀 명언 마태복음 26장 47~56절
십자가는 세상의 지혜를 뒤집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 존 스토트
예수님의 길은 힘이 아니라 희생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길이다. - N. T. 라이트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뜻에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 A. W. 토저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 속에서도 자신의 일을 이루신다. - 마틴 루터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좁지만 확실한 길이다. - 리처드 박스터
참된 신앙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다. - 조나단 애드워즈
참된 영성은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 프랜시스 쉐퍼
복음은 우리가 자신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게 만든다. - 팀 켈러
3월28일 전도
마태복음 26장에서 가롯 유다는 군병들을 이끌고 와 예수님께 입맞춤으로 그분을 넘겨줍니다. 겉으로는 존경의 표현이지만, 그 속에는 배신이 담겨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향해 “친구여”라고 부르시며 끝까지 사랑으로 대하십니다. 한편, 예수님이 잡히시는 위기 속에서 제자들의 모습도 드러납니다. 베드로는 칼을 들어 폭력으로 대응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멈추게 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을 선택하십니다. 결국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모두 도망칩니다.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마태복음 26장 56절
신앙의 진짜 모습은 편안할 때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드러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위해 죽을 것처럼 고백했지만, 실제 상황 앞에서는 모두 도망쳤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결단의 말보다 중요한 것은 순간순간의 선택입니다. 예수님은 배신과 폭력, 두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손해와 두려움 앞에서 주님을 내려놓지 마십시오. 작은 순종 하나가 우리의 믿음을 지켜 냅니다. 오늘 하루,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붙드는 진짜 제자의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1
오늘의 말씀해설
가룟 유다의 배신(26:47~50)
성도는 한결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 변질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넘겨주기 위해
큰 무리를 이끌고 옵니다. ‘칼’을 든 자들은 로마 군인들이고, ‘몽치’(몽둥이)를 든 자들은
대제사장 및 장로들을 보호하는 경호원들과 성전 경비들입니다. 이런 정도면 ‘강도’(55절),
곧 로마에 저항하는 반란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보내던 병력입니다. 가룟 유다는 당시 일상적인
인사법을 군호로 삼아 누가 예수님인지 알립니다. 존경의 인사 뒤에 간교한 술수를 숨긴 것입니다.
가룟 유다에게는 예수님이 더는 ‘주님’이 아닙니다.
그는 마지막 만찬 때처럼 예수님을 ‘랍비’(선생님)라 부릅니다(25절).
‘믿음의 주’(히 12:2)이신 예수님을 끝까지 굳건히 붙들 때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은 입맞춤으로 자신을 파는 가룟 유다의 간교한 행동을 보셨을 때
마음이 어떠셨을까요?
- 적용 질문: 예수님을 믿는 게 기쁨인가요, 부담인가요? 변치 않는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칼을 쓰는 자의 결국(26:51~56)
위기에 처했을 때 드러난 인격이 진짜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위기 순간에도 원수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시자, 제자 중 하나가 칼을 빼내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내리쳐 자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과 긍휼로 종의 잘린 귀를 만져 낫게 하십니다(눅 22:51).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려는 무리와 무력으로 맞서실 능력이 충분히 있습니다.
만약 하늘 아버지께 구하면 열두 군단(7만 2천 명)이 넘는 천사들을 아버지께서 보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영원히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는 진리를 교훈하시고,
칼이 아니라 사랑과 순종으로 죽음의 길을 친히 택하십니다.
- 묵상 질문: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52절)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 적용 질문: 언제 미움의 칼, 정죄의 칼, 비방의 칼, 복수의 칼을 사용하고 싶었나요?
그런 마음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제 힘과 감정으로 주님 일을 감당하려 했던 모습을 버리고,
끝까지 말씀대로 행하신 주님 앞에 굴복하기 원합니다.
겸손과 순종으로 자신을 내어 주신 주님을 따르며 주님과 깊은 사귐을 나누는 진정한 친구가 되게 하소서.
2
가룟 유다가 안내해 온 성전경비병들에게 예수님이 잡히시고 제자들은
도망쳤습니다.
배신의 입맞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과 말씀하실 때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보낸 군사들, 성전경비병들을 안내해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예수님께 입맞춤으로 따라 온 군인들에게
신호를 보내는데 본문에서 열둘 중의 하나라고 명시한 것은 가깝고 친밀한
자의 배신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헌신하겠다고 고백하는
우리도 유다의 자리에 설 수 있음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역사 성취과정에 악역을 담당하는 자들이 있는데
굳이 내가 가룟 유다의 역할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베드로의 저항
예수님이 체포당하시는 과정에 제자 중 하나(베드로)가 칼을 빼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귀를 떨어뜨립니다. 그때 예수님은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고 하시고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성경 말씀을 이루어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하기 위한 데
있음을 밝히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지만 문제는 우리 방식대로,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법으로 예수님을 섬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잡히심
예수님은 성전경비병들에게 순순히 체포되어 그들을 따라가십니다.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들을 부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는 것은 만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당신 목숨을 버리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뿔뿔이 도망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기도로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유능해도 영적으로는 오합지졸일 수 있습니다.
기도와 말씀, 예배를 통해 하늘의 능력을 받아 맡겨진 배역을 잘 감당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끝까지 따르는 제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 끝까지 기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47~50절).
배반자 유다가 왔습니다. 그리고 입 맞추는 자가 예수라는 암호까지 정했습니다. 예수님께 다가와 인사를 하며 입을 맞춥니다. 예수님은 그런 유다를 향해 ‘친구여’라고 부릅니다(47~50절).
이러한 상황이 일어날 것임을 아셨음에도 예수님은 기도의 자리를 지키셨고,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단순히 순종의 단계를 넘어 배신자 유다를 향해 연민의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끝까지 그를 사랑하는 제자로 품으셨습니다. 믿음이 있다 하면서도 자비와 용서 그리고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참된 제자라 할 수 없습니다. 목회에 부담을 주는 사람이라도 끝까지 사랑으로 품는 넓은 마음을 가진 목회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끝까지 유다를 품으신 예수님을 본받아 용서와 자비를 실천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겸손히 기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51~56절).
옆에 있던 한 제자가 칼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그 제자를 향하여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할 것’이라며 꾸짖습니다(51~53절). 예수님이 당신이 가지신 권능으로 맞서지 않으신 이유는 ‘성경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이요,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함’임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54~56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대단한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마음만 먹으면 이런 상황쯤이야 가볍게 해결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로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순종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의 고난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당신이 가지신 힘으로 그들과 맞서지 않으셨습니다. 평화라는 이름으로 주님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보이지 않는 칼을 휘두르는 그리스도인들을 봅니다.
교회 안에 서로의 기득권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러 폭력들이 난무하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따지고 보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믿음이 나 역시 참 많이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더디게 교회가 나아갈지라도 상대방에 대한 편견과 판단하는 마음을 버리고, 세상의 길이 아닌 주님의 길을 따르는 건강한 목회가 되도록 더 훈련 되어져야 하겠습니다.
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고 말았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의 귀를 고쳐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마26:52~54)
주께서 권능이 없어서 잡히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주 앞에 모셔 선 자는 천천만만의 천군입니다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단7:10)
다만, 십자가의 도를 이루심으로 부활의 도를 여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려고 참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칼의 나라가 아니라,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입니다(롬14:17)
칼로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주의 얼굴 빛으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노와 증오의 칼을 거두고, 오직 스데반처럼 주의 얼굴 빛을 세상에 비추기 원합니다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오직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시44:3~6)
그러나 세상은 칼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스스로 말한 것처럼 자기들의 근본이 칼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칼에 대해서 책망하셨습니다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마26:55~56) 칼로 피를 흘리면 자기의 피도 흘려야 하는 악순환입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창9:6)
하나님은 피 흘리기 좋아하는 자에게 반드시 그 피가 항상 그를 따르게 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피를 만나게 한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겔35:5~6) 우리의 구원은 여호와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호1:7)
그러므로 오직 주의 얼굴 빛 안에서 주의 이름만 의지하기 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2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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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마 26:50)
횃불을 들어도 누군가를 잘 알아볼 수 없는 어두운 새벽, 가룟 유다가 군사들을 안내하여 예수님께로 다가가 입맞춤라자 예수님은 그를 향해 “친구여”라고 부르시며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부르심 속에서 끝까지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그 상황을 바꾸실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더 깊이 다가옵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씀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하셨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내 상황을 바꾸고 싶어서 애쓸 때가 많았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불편함을 피하고 싶고, 억울한 순간에서는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먼저 올라왔던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모습은 그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발견 합니다.
순종은 약함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 때로는 손해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길이 결국 가장 강한 길임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도 떠올려 봅니다.
내가 넘어지고 부족할 때에도 여전히 “친구여”라고 불러주시는 주님의 마음을 기억합니다.
반드시 내 뜻을 이루어야한다는 생각보다, 주님의 뜻에 제 마음을 맞추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제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상황을 바꾸기보다 순종의 길을 선택하는 믿음을 주시고,
어떤 순간에도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게 하옵소서.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도 말씀의 길을 따라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님, 입술로는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멀어졌던 저를 돌아봅니다.
위기 앞에서 쉽게 흔들리고 도망치려 했던 저의 연약함을 용서해 주옵소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붙드는 믿음을 주옵소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택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오늘도 저를 붙드시고, 진실한 제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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