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광복회 김유길 부회장
광복회는 임시정부 광복군 출신의 친목단체인 광복군동지회와는 달
리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한 유공자(건국훈장을 탄 350여 명)나 유족회 의 공식 모임이다.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것을 단체의 목적으로 하 며 국경을 넘어 한민족정신 고취
사업을 추진한다.
지난 4월 9일 6박7일의 일정으로 러시아·미국 등 해외거주 독립유공 자 후손
24명이 방한한 배경에도 광복회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상해 임시정부 수립 80주년을
맞은 광복회 김유길 부회장(80)의 회고를 들 어본다.
올해로 상해임시정부 수립 80주년을 맞았다. 남다른 감회가 있을 듯하 다.
“지난해 3·1절 기념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현 정부가 처음으로 대 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말하는 것을 감격스럽게 들은 기억이 난다. 세간에서 아는 것처럼
광복회 윤 회장(윤경빈 회장)과 대 통령이 사돈간이지만 그런 것을 떠나 최근엔 왠지
기를 펴고 사는 느 낌이다.”
광복군 출신으로 알고 있다. 개인 소개를 한다면.
“평양 출신으로 안주중학교를 나와, 일본 오이타대학 경제학부를 졸 업했다.
태평양 전쟁 말인 1944년 봄 학병에 징집됐다 2주일 만에 탈 출했다. 당시에는 임천에
장개석군 사령부가 있었는데 여기에 한국광 복군 훈련반이 있었다. 중국 각지에서
모인 33인의 조선 탈주병과 함 께 가을까지 훈련을 받고 중국군 소위로 임관했다.
8명은 현지에 남고 나머지 장준하, 김준엽 등 우리는 6,000리를 걸어 당시 중경에
있던 임시정부를 찾아갔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서야 김 구 선생 등과 감격적인
해후를 할 수 있었다(이 대목에서 김 부회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태극기 앞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 다고 맹세하던 것이 눈에 선하다.”
광복 후 친일파가 득세했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움은 없었는가.
“크게 보아 우리는 김구 선생 계열에 속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 이 초대
대통령이 되자 단적인 예로 취칙할 때 이력서에 광복군에 있 었다는 내용조차 적을
수 없었다. 알아주기는커녕 오히려 신상에 불리 했기 때문이다. 직업 군인이 다른
친구들도 오랫동안 독립운동을 했다 는 사실을 숨겨야만 했다고 들었다. 그런 세태가
얼마나 원통했겠는 가.”
최근 몇 년 전부터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시류가 있는데.
“내가 알고 있기에는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부 터 문제가
많았다. 김구 임시정부와도 사이가 안 좋았다. 미국에 간 것 도 상해 임정의 탄핵을
받아 쫓겨가듯 간 것이다. 이 때문에 광복 후 임정세력이 아닌 한민당 보수세력,
친일 경찰과 손잡고 나라를 세웠다. 일본 관동군 출신의 박정희, 또 그를 이은 전두환,
노태우도 크게 보아 한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지원금은 어느 정도인가.
“나의 경우 건국훈장 4등급(애국장)이다. 1~2등급은 생존한 이가 없고 3등급(독립장)
열 분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광고 효과를 노린 때문인지 3등급에 대한
지원금은 상당하지만 4등급부터는 노부부 두 사람이 빠듯이 생활할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 군사정부 시절에는 오히려 후했는데 웬일인지 문민정부 시절부터 대폭 삭감됐다.”
첫댓글 1999년도 기사입니다... 오래된 기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