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화시대에세이] 특권
민병식
2020년부터의 일이다. 인사발령으로 인해 집이있는 안양에서 새로운 근무처인 인천까지 대중교통으로 출퇴근 해야할때가 있었다. 늘 집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광역버스로 갈아타고 다니는 고된 나날이었는데 새벽 출근 길에 꼭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버스정류장 옆에 위치한 가판대를 운영하는 할아버지 였다. 그런데 그 분옆에는 그 분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보이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가 한 분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출근하는 시간과 거의 비슷한 시각에 할머니 손을 잡고 꼭 출근을 하는 것이다. 행인도 많이 없고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어서 손님도 거의 없는데 이른 새벽부터 문을 열기에 의아했다. 행여 그 앞을 지나갈 때면 저절로 시선이 갔는데 볼 때마다 좁디 좁은 공간에 꼭 두 분이 앉아 있는 것이다. 나중에 근처 식당 아주머니께 들은 바로는 모자지간이라고 하며 다른 가족은 없고 둘만 산단다.
그 가판대를 자주 이용하기로 했다. 물건도 별로 없고 허름했지만 나라도 무언가 사야겠다는 의무감에 가끔 음료수나 물 등 필요한 것들을 사곤 했는데 2021년 언제부터인가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늘 같은 시각에 출근하는 할아버지, 그러나 근면함과는 어울리지 않게 안색은 늘 어두웠다. 축저진 어깨, 일그러진 얼굴은 흡사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티탄 신족의 한 사람으로제우스와 싸웠다가 패하고 그 벌로 하늘을 짊어지는 벌을 받은 아틀라스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던 할아버지가 요새 얼굴이 밝다. 부스에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도 않던 그가 밖으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구두 수선점 아저씨와 대화도 하고 웃음을 나눈다. 심지어는 인도를 청소를 하고 물건에 쌓인 먼지를 턴다 혹시 로또라도 맞은 것일까. 늘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궁금증은 더해 갔지만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발그레하니 혈색이 좋아진듯하고 어깨가 펴졌다. 혼자하는 출근은 하루이틀이 아니라 한동안 계속되는 중이다. 할아버지의 웃음의 원인은 무엇일까.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설마 할머니가 세상을 뜨시고 큰 짐을 덜어낸 것일지도 몰랐다.
누군가의 죽음에 기쁨과 슬픔이 공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을 싸늘하게한다. 며칠 전 어머니께서 뇌경색으로 입원하셨다. 백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부잣집 자제로 태어나 건강 관리를 받고 산삼같은 약초만 먹고 살았다면 모를까. 불사를 꿈꾸며 신하로 하여금 온 세상을 뒤져 불로초를 찾게한 진시황도 결국 사망했는데 하물며 식민지배와 전쟁 통의 암울한 시대를 산 내 부모 세대의 노인 들이 아프지 않다면 그것도 이상할것이다. 부모의 노환은 결국 자식 들의 마음 씀에도 덩달아 무게를 늘인다. 부모님이 수시로 병원에 입원하는 지라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알면서도 병원을 갈 때마다 부담을 느끼긴 마찬가지다. 한 편으로는 가판대 할아버지처럼 걷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하루 종일 돌봐야하는 것 보단 내가 훨씬 상황이 나으니 감사한 마음도 들고 한편으로는 의사의 지시대로 잘하고 있으면 좋으련만 뭐가 마음에 안드는지 계속 아들을 불러제끼는 어머니의 전화가 피곤하기도 하다.
삶과 죽음의 두 세상 사이에 놓인 다리 위에서 곡예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허약한 심신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같은 시간을 맞이 해야한다는 조금은 이른 걱정을 해보게된다. 돌이켜보면 인간은 세상에 태어난 후 죽음을 향해 한 발 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물론, 죽음을 생각해볼 나이가 아닌 때에는 생각할 동기도, 필요도 없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을 뿐, 점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죽음이 삶의 끝 언저리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연히 언젠가 모두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은 삶이 중요한 것이다.
어머니 집에 다녀오는길이다. 주말마다 노인복지관에 아주 조악하긴 하시만 체력단련실이 있는데 노인옹 워커른 끌고 다녀야해서 보호자없이는 거동이 불편하다. 평일에는 요양보호사 아주머니가 모시고 가지만 주말엔 내가 가야 운동이라도 하면서 바람을 쐴수 있기에 에어컨도 짱짱짱 나오고 드시고 싶다는 과일도 좀 사다드리고 오늘 해야할 숙제는 끝냈다.
집으로 가는 길, 가판대에 들린다. 작심하고 물어보기로 했다.
"할머니는 요새 어찌 않보이세요?"
"욕창이 심하고 음식물도 못드셔서 요양원으로 모셨어요"
경비 아저씨들을 위해 음료수를 몇개 샀다
"만원입니다.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우렁차다. 이 무더운 날, 한 평도 안되는 좁은 공간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올듯한 선풍기에 의지해 여름을 지내면서도 할아버지는 밝고 짱짱하다. 나도 태양을 견디다 못해 시원한 음료를 들이키며 갈증을 달랜다
"더운데 고생하세요."
푹푹 찌는 날씨 버스정류장 앞에서 아직까지 죽음보다는 삶에 더 가깝다고 생각되는 가판대 할아버지와 나는 땀을 뻘뻘흘리며 여전히 살아있음과 앞으로 더 살 자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첫댓글 좋은 수필과 어울리는 사진 잘 감상했습니다.
이 수필을 읽으며 죽음과 삶의 언저리에서 손을 맞잡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