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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는 자세로 생활하라
- 선문대학교 아산 캠퍼스 학생회관 봉헌 및 준공식 말씀 -
날짜 : 1999. 9. 12(日)
장소 : 선문대학교 아산 캠퍼스 학생회관
우리는 사랑을 위해서 태어난 존재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에요? 전부 다 남자와 여자들입니다. 남자와 여자들이 모였다는 것입니다. 학생 여러분은 “내가 제일이 되고 싶다. 내가 제일이다” 해서 자신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생각합니다. 나를 중심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가 태어나기를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은 잘 알아야 합니다. 여자라는 말은 남자를 선유조건으로 하는 말입니다. 여자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남자를 인정하는 말입니다. 위라는 말은 위 자체로서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래라는 것을 인정한 후에 위가 생기는 것입니다. 좌우도 마찬가지고, 전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관계세계로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을 보면 교수관계, 학생관계, 정치외교관계 등 모든 것이 관계의 세계입니다. 그 관계라는 것은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인정하는 데 있어서 주체가 결정되고, 주체를 인정하는 데 있어서 상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존재의 기원 자체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봐도 마음과 몸의 이중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은 왜 있느냐? 마음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몸은 왜 있느냐? 마음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이 그렇게 위해서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그 위하는 데는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느냐? 이런 물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해서 존재한다면 누구나 다 좋아합니다. 그러면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것을 바라는데, 나만 좋아 가지고는 안됩니다. 좋다는 그 자체는 뭐냐 하면, 몸과 마음이 좋아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좋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전후관계면 전후가 좋아하고, 상하관계면 상하가 좋아하고, 남자와 여자의 관계면 남자와 여자가 좋아하고,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서는 국가와 국민이 좋아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좋아할 수 있는 핵의 내용이 뭐냐? 그것을 우리가 학술적으로 표시하면 가치의 문제가 됩니다. 가치의 근본, 최초의 그 가치가 뭐냐? 여러분이 학문을 한다면 지식에 있어서 최고의 학자가 되어야 하겠다고 합니다.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사회에 나가서 출세해서 돈을 벌어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필요합니다. 또,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출세해야 되겠다고 하는데,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단지 잠깐 필요한 것들이지 영원히 가지 않는 것들입니다. 내가 귀하기를 바라는 것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있지만 내일도 보다 빛나고 가치적인 존재로서 영원히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나를 영원히 인정할 수 있는 근본적인 내용이 무엇이냐?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를 영원히 가치적인 존재가 되게 할 수 있는 그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돈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그러면 그게 뭐냐? 그것은 사랑입니다. (311-248)
상대 때문에 태어났다
오늘날 보통 ‘사랑’ 하게 되면 세속적인 세계의 사랑을 말하는데,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근본적인 사랑입니다. 근본적인 사랑은 어떤 것이냐? 절대적이어야 되고, 유일해야 되고, 불변해야 되고, 영원해야 됩니다. 인간들이 지금까지 사랑을 말해 왔는데 문학에서는 영원한 사랑, 불변의 사랑, 절대적인 사랑, 유일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이 사랑이 절대적인 주체가 되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우주 형성의 근원을 따져 보게 될 때, 과연 어떻게 되어서 사랑을 중심삼고 시작하게 되었느냐? 이렇게 보게 될 때, 사랑의 주인인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출발과 근원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존재를 이 땅 위에서 내가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 자신이 있어요?
아무리 잘났더라도 인간은 원인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결과적인 존재, 상대적인 존재입니다. 그렇게 상대적인 존재라면 그 존재의 결정은 자기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상대로 말미암아 존속의 결정을 이어받는다는 것을 오늘날 인류는 몰랐습니다.
내가 태어난 것은 나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존재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은 그 자체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위해서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인간인 나 자신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 때문에 태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학생들도 왜 태어났어요? 상대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학생은 교수, 선생이라는 말을 중심삼고 생겨났습니다. 자기들이 있기 전에 선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교육기관인 학교에 상대되는 것은 집입니다. 집을 말한다면, 학부형의 집도 있고 교수의 집도 있습니다. 이 집들이 상대적으로 위해야 됩니다. 상대라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위하는 자리에서만 존속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 봤어요? 오늘날 학생들은 교수한테 말 한마디를 들어도 기분 나쁘다고 싸우고 그럽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교수의 그 말 한마디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 줄 모릅니다. 그것도 모르고 기분 나쁘다고 합니다. 교수는 충고를 해줘야지요. 학생들은 기분 나쁜 말을 듣더라도 자기가 기분 나빠할 것이 아니라 나쁜 점을 헤아리고 시정해야 됩니다. 이렇게 전부 다 위해서 활동하고 작용하는 세계관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세계관을 가지면 얼마나 멋지게 살 수 있겠어요!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내가 그 고개를 넘으면 미래에 큰 소원의 터전이 될 수 있는 무엇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운이 있다면 천운이 그렇게 나를 찾아옵니다. 내가 더 큰 그 자리로 가려면 위해서 투입해야 됩니다. 자기를 위하는 입장에 서면 큰 목표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눈은 왜 있느냐? 눈이 왜 있는지 생각해 봤어요? 눈은 보기 위해서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보기 위해서 생겨났어요? 코는 왜 있느냐? 자기의 냄새를 맡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관 전체가 왜 있느냐? 오관은 상대를 위해서 있습니다. 이런 논리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학생은 왜 있느냐? 학교를 위해서 있고, 그 다음에는 선생을 위해서 있습니다. 학교가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도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학교와 선생을 위해서 있다는 것입니다. (311-250)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절대, 유일, 불변, 영원한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분인데, 그렇다면 하나님 자신이 사랑 앞에서도 그러실 수 있느냐 이거예요. 이런 제언을 하게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니까 참사랑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하나님까지도 절대복종할 수 있고 절대 위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 유일, 불변, 영원하게 위하실 수 있는 그런 분이기 때문에 그 사랑이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누구든지 위하는 데서만이 사랑이 성립됩니다.
선생이 있다고 할 때, 여러분이 그 선생이 훈시하는 것을 절대 위하고 그대로 행하면 선생이 내 것이 됩니다. 선생도 그런 학생의 선생이 되겠다고 바랍니다. 모든 존재는 사랑을 소망하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고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상대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학생들은 뭐 어떻고 어떻다고 하면서 자랑을 하고 싶어합니다. 봄이 되면 봄옷을 입고 환경에 맞게끔 화장도 하면서 학생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데, 그것은 다 헛된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 그래요? 자기를 곱게 보이기 위해서 그래요, 뭘 하려고 그래요? 그렇게 한다고 곱게 봐 주지 않습니다. 자연 그대로여야 됩니다.
여자들은 입술에 뭘 발라요? 옛날에는 분홍빛을 발라서 그래도 보면 기분이 좋았는데, 그 다음에 빨간색을 바르더니 요즘에는 죽은 피 색깔입니다. 왜 그렇게 시커멓게 바르고 다녀요? 시커먼 피를 바르고 다닌다는 것은 여우가 닭을 잡아먹을 때 피를 입에 묻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입술이, 주둥이가 작으니까 묻는 면적이 넓어서 언제나 새빨갛게 묻히고 다닙니다. 여우는 그렇게 피 칠을 하고 꼬리를 젓습니다.
세상에서 남자가 꼬리를 젓는다고 해요, 여자가 꼬리를 젓는다고 해요? 여자가 꼬리를 젓는다고 합니다. 입에 발랐으니까 여우같이 하고 꼬리를 젓습니다. 여자는 꼬리를 자랑하고 꼬리를 젓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섀도를 해 가지고 눈을 왜 시커먼 가운데 묻어 버리느냐 이거예요. 눈을 감으면 완전히 무덤입니다. (311-252)
천지의 이치
여러분은 위해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학생들이 이 학교의 주인이신 하나님같이 학교를 위하게 되면 학교가 그렇게 위하는 학생의 학교가 됩니다. 천운이 따라다닌다는 것입니다. 학교를 지키고 있는 운이 있다면 그 학생을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나를 위하라고 하면 그렇게 안 됩니다. 선생들도 그렇습니다. 자기의 자리를 중심삼고 학생은 고생하더라도 나를 위하라고 하면 밀려 나가게 됩니다. 우주가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생각지 않고 희생적인 마음으로 시간을 개의치 않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재미를 붙이고 밤이나 낮이나 그들을 위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느냐? 그렇게 24시간 위하려고 하니까 왕초가 됩니다.
한국에서는 왕초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던데, 세상에서는 힘을 가지고 강제로 해 가지고 왕초가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 서 있는 레버런 문이라는 사람은 지금까지의 생활철학이 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는 데마다 욕을 먹었지만 내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귀하다는 모든 것을 투입하고 투입하다가 보니까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라고 하던 사람이 이제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미국 정부의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한테 가서 레버런 문이 어떤 분이냐고 한번 물어 보라구요! 그러면 존경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을 위해 줬으니까 갚아야지요. 양심은 아는 것입니다. 북극이 어디에 있는지, 남극이 어디에 있는지를 지남철은 압니다. 위하는 사람을 주인으로 모셔야 되고, 위하려고 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세우는 것이 천지의 이치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 오신 분들 중에는 철학가니 사상가니 하는 잘났다고 하는 학자님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생활적인 철학, 생애적인 철학을 가지고 일생을 그렇게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가 지옥에 가겠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데려다가 모십니다. 천국은 다른 데가 아닙니다. 주인의 자격을 가지고 언제나 중심의 책임을 지고 위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이것을 틀림없는 사실로 여러분 앞에 증거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천국 가고 싶어요, 성공하고 싶어요? 천국에 가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공은 그만두고 천국 가고 싶어요? 둘 다 가능합니다. 그리고 천국 가려면 성공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성공이 무슨 성공이냐? 사랑을 중심삼고 주체적인 성공을 한 사람이 천국으로 직행합니다.
누구든지 상대를 위해서 태어났으니까 위하는 사랑을 가지고 일생동안 살아가는 사람을 가정에서는 효자라고 합니다. 효자는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나라에서는 충신이라고 합니다. 세계에서는 성인이라고 하고, 하늘땅과 천주에서는 성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성자보다 위하는 하나님은 만 우주의 주인이요, 영원 불변한 아버지의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그분을 중심삼고 있는 모든 전부는 그 주인의 대상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신 본체가 되시는 그분 앞에 나도 따라서 아들딸이 되기 위하여 저나라에 가서 영원히 위하여 살 수 있다면 사랑의 꽃이 되고 등대 불이 될 것입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아이구, 내가 어려우니까 나 살기 위해서 한다” 할 때는 자기의 무대만 끝나면 끝나 버립니다. 그러나 내가 공부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하늘땅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하면 지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면 투입하고 또 투입하는 것입니다.
몇 억천만년 타락한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천 년을 하루같이 노력하신 주인이 계시니까 오늘 자신이 얼마나 불효자요, 얼마나 불충자요, 얼마나 죄인인가를 알고 그 주인을 저 밑창에서부터 쌓아 올라가서 위하겠다고 하면 그 주인이신 하나님까지도 점령할 수 있습니다. 내 하나님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311-254)
위하여 사는 사람
처녀 총각들은 시집 장가를 잘 가고 싶은 욕심이 있지요? 그런데 자기를 위해서 백 날을 뛰어 보라구요. 다 도망갑니다. 얼굴이 잘생기고 못생긴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얼굴만 가지고는 3년도 못 가서 미워집니다. 3년 동안 이불에 누워 가지고 이마를 맞추고 살면 대번에 미워집니다. 그러나 위하는 마음이 있으면 영원히 갑니다.
여러분은 한국에서 제일가는 학생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 있지요? 반대로, “나는 나를 위하는 데 있어서 챔피언이다” 하는 녀석이 있으면 망해야 됩니다. 내가 손을 안 대도 망합니다. 지금까지 레버런 문이 많은 무대를 거쳐왔지만 무너지지 않고 드러나 가지고, 이제는 모두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레버런 문이 자신을 위해서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기에 집 짓는 것을 보라구요! 아이엠에프(IMF;국제통화기금)의 지원을 받을 만큼 어려운 경제 위기 때문에 통일중공업이 날아갈 수 있는 때입니다. 내게 있는 재산을 전부 다 투입하고 빚지면서 이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다 투입하고 빚지면서 투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이렇게 합니다. 그런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실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망하라고 하면서 아무리 두들겨 패더라도 어떻게 돼요? 이것을 두들겨 팼다가는 그들의 뿌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50년 이상 반대를 받아도 나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더 사랑해야 됩니다. 종족은 가정보다 큽니다. 종족에는 수천 가정들이 있고, 나라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있고, 세계에는 수많은 국가들이 있고, 천주에는 영계를 포함한 모든 전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영계와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 세계와 관계를 맺어서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학교도 여러분이 지어야 됩니다. 내가 돈 한푼 안 대주더라도 여러분의 손으로 집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와 가지고 젊은 사람들을 부려먹겠다고 이야기한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부려먹고서 망하면 안되겠지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살고 세계가 산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일이에요, 나쁜 일이에요? 좋은 일입니다. 좋지 않다는 사람들은 손 들어 봐요! 그놈의 손을 잘라 버려야 됩니다.
아직까지 선생님은 반지를 끼워 보지 않았습니다. 내가 반지를 끼면 몇 캐럿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지를 안 끼었습니다. 하나님이 최고의 예술적인 작품으로 빚으신 손입니다. 옛날에는 팽팽하던 살이 나이가 들어서 주름살이 졌지만, 주름살을 가진 게 보화입니다. 청년 때부터 위하여 살다가 할아버지가 되었으니까 나한테 신세를 진 사람들이 밤낮 찾아와서 인사를 하려고 하고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나를 좋아하지요? 얼마나 만나 봤다고 그래요?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무리 훌륭하고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게 뭐 필요해요? 자기한테 마음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마음이 종대가 되기 위해서는 위하여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위하여 사는 사람은 차원이 넓고 깊기 때문에 대상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 사람을 중심삼고 커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위하겠다고 해야 커지지 위하라고 하면 점점점 작아집니다. 그렇게 작아져서 맨 나중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311-257)
선과 악의 전략 전술
레버런 문은 과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세계에서 민첩하고 머리가 나쁘지 않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선생님이 우주의 근본을 밝혀 놓고 보니까 모든 존재는 그 자체를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은 공산당식의 투쟁개념입니다. 그 따위의 것들은 자멸하는 것입니다.
선생한테 데모하고 싶은 학생이 있으면 나한테 이야기하라구요! 이놈의 선생들과 학생들을 그러한 패들로 만들면 놓으면 내가 여기에 와서 불을 놓아 버릴 것입니다. 미련이 없습니다. 나라에 그런 사람들은 필요 없습니다. 배우는 사람이 데모가 뭐예요? 데모는 공산당이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데모를 통해서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대회를 통해서 발전한 것입니다.
요즘에는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까 사람들의 머리가 돌아가요, 그냥 있어요? 머리가 잘 돌아갑니다. 그것이 사실 같아요, 거짓말 같아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어디에 가서 말씀하더라도 “그것이 거짓말이다” 하는 소리를 내가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모두 다 참이라고 하니까 그것은 진리입니다.
이가 왜 있어요? 혀가 왜 있어요? 이와 혀가 얼마나 위험천만이에요! 밥을 하루에 세 번씩 먹으면서 몇 백번을 깨물 텐데 그 사이를 들랑날랑하니까 혀와 이의 박자가 얼마나 잘 맞아요! 서로 위하려고 하니까 조심하고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내 학교, 내 나라! 다 그러고 싶지요? 효자는 집안에 열 형제가 있으면 그 집안을 위해서 누구보다 더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는 사람입니다. 가정의 효자가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순신도 있고, 애국자들이 많지만 그들보다 십배 백배 더 나라를 위해야 됩니다.
지금 북한이 곤란한데, 내 손을 빌려야 할 때가 왔습니다. 내가 장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한에 투입한 것과 마찬가지로 투입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불쌍하게 되어서 내가 투입하려고 하니까 나를 붙잡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를 붙잡게 되면 틀림없이 원리적으로 선생님이 주체적인 입장에 서게 됩니다.
지금까지 기성교회가 50년 동안 나를 반대했지만, 나는 기성교회를 위해서 우리 통일교회를 위하는 것보다 더 많이 투입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흥해야 되겠어요, 망해야 되겠어요? 흥해야 됩니다. 자기들이 아무리 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제거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선은 위하면서 맞지만, 악은 치고 잃어버립니다. 그게 선과 악의 전략 전술입니다. 하나님의 전략 전술은 맞고 손해배상까지 청구해 가지고 커 가는 것이요, 악마는 치고 손해배상까지 물어 줘서 빼앗기고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311-259)
위하여 사는 것은 발전의 원칙
존재의 기원은 위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고, 참사랑도 위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광물세계는 양이온과 음이온이 주체와 대상으로 되어 있지요? 식물세계도 그렇잖아요? 암술과 수술이 있습니다. 동물세계에도 수놈과 암놈이 있습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예요? 하나님과 인간은 뭐예요? 남자와 여자의 두 인간이 합해 가지고 마이너스가 되고, 하나님은 주체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서 있어야 되고, 하나님은 사랑을 위해서 인간을 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논리에 의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됩니다.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자기 친척들을 위하지요? 요즘에 보게 되면 “김씨가 제일이다, 이씨가 제일이다” 하면서 야단하잖아요? 그러면 얼마만큼 횡적으로 투입해 주었느냐는 것입니다. 모든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투입은 희생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 같은 학생시절에는 소제(掃除)를 참 잘했습니다. 다 나간 교실을 내가 다 훔쳤습니다. 서로 안 하겠다는 것을 맡아 가지고 깨끗이 청소했던 것입니다. 소제반이 있었는데, 그 녀석들이 도망갔다가 아침에 와 보고 “아이고…” 이러는 것이었습니다. 한 일주일이 가고 한 달쯤 지나가니까 전체가 “아이구, 깨끗하다. 참 고맙다” 하더라구요. 학교 선생님까지 와서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누구든지 고맙다고 하는 것은 굴복한다는 것입니다. 예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싸우지 않고 점령할 수 있는 내용이 그러한 것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천리를 따라가고 가정은 종족, 종족은 민족, 민족은 국가, 국가는 세계를 위하여 희생하는 천리를 따라가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판도를 갖추고 있지만 하늘땅을 위해서 희생하고, 하늘땅은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하고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 것이냐? 나를 위해서 희생하고 투입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시는 것입니다. 한 바퀴를 돌아서 나를 보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 하나님한테 돌아가서 근본을 만나는데, 거기서 스톱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 재출발할 수 있습니다. 더 커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차원 높은 발전을 할 수 있고 한 단계를 올라갈 수 있는 이론적인 근거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오늘 선생님이 말씀하는 원칙을 지켜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선생님같이 어디에 가든지 섭리의 주체가 되어서 만유의 존재들이 여러분을 둘러싸게 됩니다. 모두 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요?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쌍수를 들어 보자구요! (311-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