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발생한 윤회전생 실화
2022년 1월 30일
글/ 설련(雪蓮)
【정견망】우리 집에서 내가 직접 경험한 아들의 윤회전세(輪回轉世) 이야기를 써내어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나는 사천(四川) 천북(川北)의 궁벽한 산골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늘 저녁이면 꿈을 꾸곤 했는데 꿈속의 사람, 사건, 사물, 정경은 익숙한 것도 있고 낮선 것도 있었다.
때로는 꿈에서 발생한 일이 다음날이나 며칠 후 실제로 발생한 적도 있다. 당시 나는 자신의 꿈이 아주 정확하다고만 생각했다.
나중에 꿈은 갈수록 신기해졌고 늘 자신이 신선(神仙)의 옷을 입고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꿈을 꾸거나 또는 관음보살이나 석가모니불 등의 신불(神佛)을 보곤 했다.
때로는 대낮에도 하늘의 신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중 어떤 신선은 여전히 알지 못했다. 한번은 꿈에 왕모낭랑(王母娘娘)을 뵙고 반도(蟠桃)를 하나 먹었는데 이튿날 하루 종일 배가 고프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내가 진정으로 소요자재(逍遙自在)한 신선이 되어 마음대로 인간세상을 날아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열 살 나던 해 초여름 나는 하늘에서 천마(天馬), 선녀, 왕모낭랑, 용왕(龍王) 등 뭇 신들을 보았다. 나는 곧 옆에 있던 엄마와 숙모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빨리 보세요, 하늘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녀들이 하늘을 보고는 나에게 “헛소리, 어디 있단 말이니?”라고 했다. 당시 엄마는 나를 심하게 때렸다.
당시 나는 사람은 모두 다 볼 수 있다고 여겼고 내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서 두들겨 맞으니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집에 돌아오자 엄마가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후 나는 꿈속 장면 및 천상의 장면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성인이 된 후, 대법을 수련한 후에야 나는 비로소 원래 자신이 어려서부터 천목(천안, 제3의눈)이 열려 있어서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장면과 고층생명들을 볼 수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보통사람들의 천목은 닫혀 있다.
한편 우리 집 근처에 아버지보다 몇 살 연상인 당숙(堂叔)이 사셨는데 성격이 온화하고 충직한데다 근면성실하고 마음이 선량해서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으려 했다. 우리 두 집은 서로 사이가 아주 좋았다.
1988년 초 당숙이 간경화로 복수가 찾지만 우리 산골은 너무 가난해서 병원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집에 있는 돈은 전부 아이들 학비로 들어갔고 남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숙은 억지로 통증을 참아가면서 농사일을 했으니 사람도 무기력해졌고 집에 수입이 없었다.
당시에는 학교에 학기마다 학비를 내야 했다. 아빠는 원래 우리 형제들 학비를 내고 남은 35위안으로 돼지를 키워 돈을 벌려고 했는데 아빠는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잘 아셨기에 자발적으로 이 돈을 당숙에게 빌려주었다. 당시 엄마도 아빠의 행동을 적극 지지했다.
하지만 당숙의 병은 점점 더 악화되었고 복수가 너무 커져서 농사일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해졌다. 엄마는 당숙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겨 우리 집에 있던 돼지기름이며 쌀을 절반정도 당숙에게 주었다.
엄마가 쌀과 돼지기름을 당숙에게 보낼 때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아주 기뻤다. 사실 부모님은 줄곧 당숙의 집을 도와주셨다.
이듬해 봄이 되자 당숙은 곧 돌아가시게 되었다. 부모님이 당숙을 보러 가자 당숙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내가 금생에 자네 집의 돈과 또 그런 두터운 은정(恩情)을 갚지 못했으니 내 반드시 내세에 돼지나 소로 태어나 자네들에게 갚아주겠네.”
당숙은 마지막으로 눈물을 보였고 이튿날 곧 세상을 떠났다.
당숙이 세상을 떠난 지 두 달 후 아버지가 암퇘지 한 마리를 사오셨고 나중에 새끼를 낳으면 팔아서 돈을 벌려고 했다.
그런데 이 돼지는 특이하게도 우리에 가둬놓지 않고 풀어놓아도 희한할 정도로 주변 환경에 잘 적응했다. 배가 고파도 울지 않았고 밖에 나가서 스스로 먹이를 찾아먹고는 돌아왔는데 우리가 돌볼 필요조차 없었다.
한번은 그것이 당숙이 살던 곳을 한 바퀴 돌고는 금방 돌아왔다. 엄마는 늘 이상한 돼지라고 말했다. 이렇게 몇 달이 지나 성장한 후에 새끼돼지를 낳았다.
새끼도 일반 돼지보다 잘 자라서 팔 때 돈을 잘 받을 수 있었다. 부모님은 아주 즐거워하셨고 평소 농담처럼 당숙이 돼지로 변해서 우리 돈을 갚으러 왔나보다 라고 하셨다. 이렇게 되자 우리 집 수입도 꽤 증가했고 생활형편도 나아졌다.
1995년 새해 초가 되자 기존의 씨돼지는 이미 어미돼지로 변했다. 어느 날 어미 돼지가 새끼들을 데리고 나갔는데 돌아오다가 이웃집 담에 막혔다.
엄(嚴)씨 성의 이웃이 새끼 돼지를 잡아서는 가뒀다.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어미돼지가 울고 있었고 새끼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급히 “네 새끼는 어디 갔니?”라고 묻자 어미돼지가 마치 말귀를 알아들은 것처럼 몇 마리 울음소리를 내더니 길가로 나갔다. 어머니가 그것의 뒤를 따라가 보니 어미돼지는 다급한 듯이 빠른 걸음으로 모친을 이웃집으로 데려갔다.
어미 돼지가 소리를 내면서 울자 새끼돼지가 어미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곧 따라 울었다. 그러자 그 집 사람들도 새끼돼지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저녁에 엄마가 이 일을 말하자 모두들 어미돼지가 인성(人性)과 잘 통하니 분명 당숙이 돼지로 변해 빚을 갚는 거라고들 말했다.
그날 저녁 나는 일찍 잠에 들었다. 꿈속에서 우리 집 어미돼지가 당숙으로 변한 것을 보았는데 당숙이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나는 지금 어미돼지의 태(胎)에 들어와 너희 집에 은혜를 갚고 빚을 청산하러 왔단다. 네가 신선이 되는 것은 나중에 실현될 것인데 너는 선연(仙緣)이 아주 크단다!”
내가 “저는 사람이라 날 수 없어요!”라고 하자 당숙이 말했다. “대성인(大聖人)께서 네 꿈을 실현시켜 주실 것이고 너는 아주 높이 날 수 있단다. 나는 너와 이전 한 세(世)에 인연이 있었으니 네 아이로 태어날 것이다. 내가 돼지 태에 들어간 것은 빚을 청산하려는 것으로 사람으로 전생해 대성인께서 오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거란다.”
나는 그저 “네네”라고 대답했다. 이때 당숙이 사라졌다.
나는 단번에 정신이 들었는데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상태였다. 꿈속의 장면이 너무나도 진실하고 또렷했다. 나는 가족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이미 어미돼지가 바로 당숙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
반년 후 음력 9월 초였다. 어미돼지가 낳은 새끼들이 다 팔린 어느 날 낮 어미돼지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오랫동안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엄마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생각했다.
이때 어미 돼지가 몇 번을 울었는데 소리가 상당히 컸다. 우리가 모두 가서 보니 어미 돼지가 땅바닥에 넘어져 있었고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네 다리를 몇 번 흔들더니 곧 죽어버렸다. 아버지는 지전(紙錢)을 가져다 돼지를 위해 태워주며 비통하게 말씀하셨다.
“형님 마음 편히 잘 가세요. 형님이 갚아준 돈이 꽤 많이 남았습니다. 우리 가족을 위해 큰 공헌을 하셨으니 우리도 형님 몸을 팔지 않고 편히 묻어드리겠습니다.”
오후에 아버지는 큰 구덩이를 하나 판 후 어미돼지를 잘 묻어주었다. 동생은 또 어미돼지를 위해 일기를 한편 써서 그것을 기렸다.
곧 음력 10월이 되었고 나의 출산날짜가 가까워졌다. 이달 초 나는 통통한 아들을 낳았는데 첫 울음소리가 정말로 어미돼지와 흡사했다.
아이가 해년(亥年 돼지 해) 해월(亥月 돼지 월)에 태어난 데다 첫 울음소리가 돼지와 같다고 해서 아버지는 아명을 ‘저저(豬豬 꿀꿀이)’라 지으셨다.
나는 전에 꾸었던 꿈에 대해서는 가족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았다. 어려서 어머니에게 크게 혼난 일을 겪은 후로는 이미 어떤 꿈이든 말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들 한 살이 좀 넘었을 때 나는 시내에 나가서 일을 했다. 아들이 2살이 좀 넘었을 때 법륜대법이 우리 고향에서 널리 전해졌다. 부모님은 모두 법을 얻어 수련하셨고 매일 모두 함께 모여서 연공했는데 이곳에 아이를 데려가셨다.
아들은 아주 얌전해서 그곳에서도 울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그때는 아들이 아직 말을 확실히 하지 못할 때였는데 부모님보다 먼저 1장 공법 구결을 외우자 수련생들이 모두 이 아이는 연분이 크다고 여겼다.
나중에 나는 아들을 시내로 데려올 준비를 했다. 고향집에서 며칠을 지내는데 엄마는 당시 연공하면 병을 고칠 수 있고 몸이 건강해진다는 말만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몸은 이렇게 건강하니 병을 치료하고 몸이 건강해지는 것은 필요가 없어.’
이에 더 이상 엄마에게 대법에 대해 묻지 않았다. 부모님은 아침저녁으로 연공을 하셨고 나도 아들을 데리고 갔다. 그 며칠간 아이는 아주 좋아하면서 1장 공법 구결을 외워 내게 들려주었다.
어느 날 오후 아들이 나를 돼지우리(엄마는 매년 돼지를 길렀다)로 데려가더니 돼지를 끌어안고 돼지 위에서 잠을 잤는데 아주 편안해보였다.
또 돼지울음 소리를 배워서는 내게 “엄마 나는 돼지가 좋아요, 내 이름도 꿀꿀이니 매일 꿀꿀이와 자고 꿀꿀이와 함께 밥 먹을래요.”라고 말했다.
아이가 너무 진지하고 사랑스런 모습을 보고 나는 눈물이 나와서 아들에게 말했다.
“너는 지난 번 한 세에 돼지였지만 지금은 사람이란다. 그럼 돼지랑 좀 더 자거라.”
1999년 7월 20일 공산당의 박해가 시작되었다. 부모님은 당시 대법 서적을 보호하셨다. 나는 당시 오성(悟性)이 좋지 않아서 대법을 수련할 기연을 놓쳐버렸고, 공산당 박해가 그렇게 험악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때 나는 시내에서 몇 년간 일해서 번 돈으로 작은 집을 하나 샀다. 아들과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시내로 들어갔다. 당시 엄마는 자신이 어디를 가든 꼭 대법서적은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당시 아무 생각도 없었고 그저 엄마더러 잘 수습해서 시내로 가져오게 했다.
시내로 이사 온 후 몇 년간 나는 평소처럼 출근하느라 비교적 바빴고 부모님 역시 수련이 좀 해이해져서 평소에는 수련에 관한 일을 언급하지 않으셨다.
아들이 여덟 살 되던 해 연말 업무 중에 대법을 수련하는 한 동료를 만났다. 그는 내게 진상만 알려주었고 불법수련(佛法修煉)이란 말은 하지 않았다.
엄마는 평소 책을 내 옷장 위에 놓았는데 어느 날 옷장을 열다가 책이 아래로 떨어졌다. 내가 급히 책을 집어 손가는 대로 열어보니 ‘백일비승(白日飛升)’이란 몇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 나는 머릿속으로 일순간 멍해졌고 순간적으로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마치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대성인(大聖人)은 바로 《전법륜》의 사부님이 아니신가! 그분이 나를 신선이 되게 해주실 것이다. 나는 격동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곧장 그 동료를 찾아가자 그는 내게 대법 수련은 법공부와 연공을 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당일 5가지 공법을 배웠고 부모님과 함께 법을 공부했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수년전 꿈속에서 점화가 있었음에도 얼마 전까지 깨닫지 못했으니 법을 얻기가 쉽지 않았고 놓친 시간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와 동시에 아들도 법공부와 연공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천목(천안)이 열리자마자 곧 사부님(法身)을 보았고, 또 나에게도 사부님께서 미소를 지으신 채 앞에 서 계시고 가볍게 자신의 엉덩이를 두들겨 몸에 달라붙은 나쁜 영체들을 청리해주셨다고 했다.
부모님도 다시 정진하기 시작하셨다. 한 가족 삼대(三代)가 대법을 수련하면서 비학비수(比學比修)하니 그 즐거움이 비할 수 없었다.
그때 부모님의 신체도 전보다 훨씬 건강해지셨고 아버지는 체력이 좋아져서 일을 나가신다. 엄마는 내게 지금은 건물(우리는 당시 7층에 살았다)을 올라가는 게 훨씬 쉬워졌고 아무리 많이 걸어도 피곤하지 않다고 하신다. 나 역시 어느 날 온몸에 힘이 넘치는 것을 느꼈다.
수련을 통해 나중에 나는 천목으로 볼 수 있는 범위가 훨씬 커졌고 볼 수 있는 시간도 길어졌으며, 사람의 전생도 볼 수 있었다. 이는 바로 전법륜 책에서 말한 숙명통(宿命通) 초능력으로 사람들은 특이공능이라고 말한다.
아들을 보니 명조(明朝) 때 왕으로 전생한 적이 있고 또 19세기에 프랑스에서 전생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아주 독특한 취향을 지닌 풍경화가였다.
아들은 몇 생애 동안 성격이 늘 아주 평화롭고 또 부드러워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편안하게 했다. 사실 사람은 모두 윤회 전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