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그막 의자
정영선
그해 봄,
그 의자는 트럭위로 올라타지 못했다
멀어지던 이삿짐을 멍하니 바라보던 낡은 의자
경비실 옆에 새 일터를 얻었다
허공에 뜬 열 평 남짓한 거실에서
십 수 년 갇혀 살았을 의자
늘그막에야 복이 터졌다
화단에 나무그늘 수시로 마실 오고
이파리 사이로 기웃대던 햇살도
차디찬 관절을 데워주고 간다
지팡이 다섯 개가 쉬었다 가고
학원버스 기다리던 아이도 앉았다 간다
겉모습은 볼품없으나
네 개의 관절은 아직 쓸 만하다고,
한 가족을 모시던 늙은 의자
자신만만 수백 세대 동네를 모시고 산다
늙을수록 몸이 바빠야 잡생각이 안 난다던
아버지 아직 할 일이 많으시다
첫댓글 고운 시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