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으로 실행해 지켜야만 해석된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유혹하려 다니는 사단에게 동방의 의인 욥을 지목하여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기 1:7) 하시며 자랑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단은 욥이 하나님께 그 같이 충직스러운 행동을 하는 까닭은 하나님이 그에게 풍족한 재물과 자녀들과 편안함을 주셨기 때문일 뿐, 만일 그런 것들을 도로 빼앗아 버리면 즉시 하나님을 대면해 욕할 것이라고 장담하였습니다. 사단의 이같은 말은, 피조물의 대표인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까닭은 모두다 재물과 자녀들과 부귀영화 같은 것들을 풍성히 주신 일 때문일 뿐, 그런 혜택이 없으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할 까닭이 전무하다는 뜻입니다.
사단의 이같은 반박은 하나님을 이만저만 무시하고 모독한 말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육적인 것들을 풍족히 채워 주셨을 때에만 경외의 대상이 될 뿐, 그것이 배제된 상태하에서는 추호라도 경외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사단이 자신과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께 이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소유물(재능)들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실체가 되시는 성품, 곧 사랑과 공의와 정의와 정직과 거룩함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좋아해 따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자녀된 분수와 도리를 갖출 가치는 없고, 또 그런 사람들이나 천사들을 존중해 줄 가치가 없다고 하는 반역의 우두머리입니다.
여인이 남편감을 고를 때 남자의 소유물의 풍성함과 미모를 중심 삼아 고르고 남자가 지닌 고명한 성품과 인격을 무시할 땐, 그는 남자라는 영혼(산 사람)과 결혼하려는 영혼을 지닌 참된 여인이 아니라, 남자라는 껍데기 육신(형상, 소유물, 우상)과 결혼하려는(뭉치려는) 껍데기(몸통) 뿐인 여자(창녀)로 자처하는 짓입니다. 오늘날 온 세상의 여인들이 이같은 껍데기(창녀)의 안목으로 남편감을 선택하려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국민들도 이같은 안목으로 자신들을 다스리고 통치할 공직자, 곧 남편감들을 선출하려 합니다. 사람들이 이처럼 부패타락하게 된 것은, 모두다 사단의 하나님께 대한 도적(반역)의 습성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자신보다 하나님의 소유물을 더욱 사랑해 가지려고 하는 건, 사단으로부터 전수된 도적의 습성 때문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실체가 되신 말씀은 사랑해 지키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소유물들만 좋아하는 사단의 말을 믿고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이 바로 도적질입니다. 모든 도적은 남이 지니고 있는 소유물만 사랑해 가지려 하고 그 사람 자체가 되는 말씀은 싫어해 버리거나 죽입니다. 여인이 남자의 소유물만 사랑해 가지려 하는 건, 남자를 버리거나 죽이는 창기의 짓입니다. 마찬가지로 국민들이 의식주 문제 때문에 공직자를 선택하는 것은 국법을 존중해 지키려는 참된 국민이 아니라, 자신들의 도적 습성에 맞는 도적놈을 선출해 저들이 도적질한 것으로 자기 배를 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욥의 자녀들과 재물을 하나님이 모두 회수해 가져 가면 욥이 하나님을 욕하고 원망하게 될 것이라고 추정한 사단과, 아니다 그가 무슨 일을 만나든 간에 항상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존중해 찬양할 것이다 하는 하나님과의 대결입니다. 사단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욥의 열 자녀들과 집과 재산들을 순식간에 멸하였습니다. 그런데 욥은 흐트러짐 없이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라고 말하였습니다. 즉 사람은 하나님께 어떠한 대우를 받던 간에 감사하여야지, 육신의 손익이나 행불행을 기준 삼아 하나님의 호불호를 논하는 것은 잡혀 죽을 짐승들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시편 119:75) 하심 같이,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자녀 같이 생각하시기 때문에 무슨 일을 행하시든 종국적으로 저들을 유익케 하려 하심일 뿐, 결코 사람들을 무고히 괴롭히는 일로 기뻐하실 폭군이 아니라는 것이 욥의 지론(持論)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자녀들과 많은 재물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지만, 그것을 도로 가져 가시는 일도 하나님이 무슨 유익한 용도로 사용하시기 위해 그러하신 줄 믿고 감사하였습니다. 욥으로부터 이런 반응이 나오게 되자 사단은 굴하지 않고 또 다른 시험을 하나님께 제출하였습니다. 즉 욥의 몸을 쳐서 괴롭히면 그 때에는 하나님을 욕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 시험마저 허락하였습니다.
욥이 악창에 걸려 신음하게 되자 그의 아내가 보다 못해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기 2:9)고 격동시켰으나, 욥은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기 2:10) 하고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였습니다.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찾아와 욥의 고통 때문에 7일 동안 아무런 위로의 말도 하지 못하고 지내는데 욥이 고통에 겨워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날을 저주하였습니다.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나는 먹기 전에 탄식이 나며 나의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것 같구나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만 임하였구나"(욥기 3:23~26)
이러한 욥의 탄식을 보고 욥을 위로하려 온 욥의 친구들 중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혹시 욥이 자신들도 모르는 은밀한 죄를 하나님께 저질러 이 같은 가정적인 재난과 육신의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않았나 하여 욥에게 회개 자복하기를 촉구하였습니다. 즉 자신들이 지금껏 알고 있는 하나님은 이처럼 까닭 없이 착한 사람을 징계한 일이 없는데, 욥이 혹시 남모르는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이같은 재앙을 하나님께 받은 것이 아니냐는 뜻입니다. 그러나 욥은 육신이 지금 당하는 고통보다 친구들이 자신을 곡해해 단죄하는 말의 내용들이 너무도 황당하여 대꾸하는 도중에, 자신은 하나님 앞에 깨끗하여 죄와 불의가 없으나 하나님은 자신을 대적으로 여겨 두들겨 칠 틈을 찾고 계신다는 말을 부지중에 하고 말았습니다.
즉 "나는 깨끗하여 죄가 없고 허물이 없으며 불의도 없거늘 하나님이 나를 칠 틈을 찾으시며 나를 대적으로 여기사 내 발을 착고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욥기 33:9~11) 하는 푸념을 발하였습니다. 욥이 고난받게 된 이유는 오직 하나님과 사단과의 이념 투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과 그의 아내와 욥 자신은 이런 정황을 전혀 모르고 각기 제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욥의 고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점을 쳤습니다. 욥이 자신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모든 일들이 온전히 선하다고 믿느냐, 아니면 자기 육신의 잣대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에 대한 호불호를 임의로 판단하느냐 하는 시험대에 올려졌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결코 무모한 말로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욱 의롭게 여기자 하나님이 나서서 책망하셨습니다.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찌니라"(욥기 38:1~3) 하시며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부터 지금까지 행하신 일들에 대해 네가 그 뜻을 아느냐? 그리고 하나님보다 더 의로우면 그 의로운 일들을 한번 펼쳐 보이라 하셨습니다. 즉 말로만 의롭다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때에 욥이 하나님께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기 42:3) 하며 근본적인 회개를 하였습니다.
욥이 비록 우스 땅에서는 의롭고 정직한 유지 행세 하였으나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철부지 어린 아이 같은 존재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욥에게 사단과 자신이 이 같은 이유로 너를 시험하기로 작정하였다는 것을 일깨워 주지 않는 것은, 천하만민을 모두 공평하게 심판하기 위함입니다. 즉 시험 문제를 아르켜 주고 시험치르는 것은 무효일 뿐, 시험 문제를 모르고 시험을 치르어야만 그 사람의 정확한 실력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의 계급(등급)을 하나님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느냐 하는 인식의 척도에 두었을 뿐, 그가 어느 정도로 육적인 부강을 갖추고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져 있느냐 하는 인간적인 출세와 성공 따위에는 전혀 기준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하시는 것을 스스로 진술치 아니하시나니 네가 하나님과 변쟁함은 어찜이뇨"(욥기 33:13) 하심 같이, 사람들이 하나님이 행하셨다는 일들을 믿지 않고 도리어 의문을 품고 재판관(심문관)처럼 질문하여도 하나님은 그들 앞에 죄인처럼 꿇어 앉아 자신이 행하신 일들을 피의자처럼 스스로 진술치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왜 그러시느냐 하면, 천지만물과 인생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저들이 죄인 취급해 심문하듯 대하였으니 그 교만 죄부터 따지게 되면 저들은 폭풍 앞에 등불처럼 소멸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백성이 왕 앞에 나아와 심문조로 질문하면, 그 왕이 그 백성 앞에 죄인처럼 소소히 자백하듯 말하려 하겠습니까? 단번에 그 교만한 죄부터 물어 응징할 것입니다.
오늘날 뭇 인생들이 믿는 자들을 붙들고 심문하듯 하나님이 살아계신 확실한 증거를 대라고 호통을 칩니다. 마치 종북 반역 세력들이 광화문에 운집해 모여 박근혜 대통령을 심문하겠다는 짓보다 천만배나 더 무모한 하극상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저들이 하늘에 태양이 있으면 정정당당하게 자신들 앞에 나서 보라고 말하는 것처럼, 태양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감히 자신들 앞에 나와 서 보라고 합니다. "주의 날으는 살의 빛과 주의 번쩍이는 창의 광채로 인하여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하박국 3:11) 하심 같이, 해도 하나님의 빛 앞에 감히 나서지 못하는데, 해보다 더 밝고 뚜렷한 하나님을 자신들의 심문대 앞에 나와 서라? 이런 미친 놈들이 세상 천지에 어디에 있습니까?
빌라도가 예수님을 결박해 두고 진리가 무어냐고 죄인 심문하듯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의 배우고자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대답해 줄 수 있어도 교만한 자들이 상좌에 앉아 죄인 다루듯 심문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기가 차서 대답해 줄 리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에 관해 강권적으로 질문한다 해서 하나님이 대답해 줄 리 없고 또 저들이 머리 싸매고 책상 머리에 앉아 욥과 욥의 친구들처럼 격렬한 변론으로 찾고 연구한다 하여서 하나님이 대답해 진술해 주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관해 알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평소에 그를 스승 중의 스승으로 취급해 그의 말씀을 믿음으로 실행해 지키는 욥의 방법(언행)으로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려면, 먼저 그를 믿어야 할 분으로 존중하고 겸손히 그 말씀을 순종하여야지, 그러질 않고 하나님을 자신과 동등히 여겨 혈육의 지식으로 따지고 헤아려 파헤치려 들면 그들을 죽여버리든지 아니면 무지한 짐승들로 취급해 상관치 않고 방치해 버립니다.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말씀(뜻)을 믿음으로 순종해 지키는 일로 깨달으려 하지 않고, 수십여 년 간 신학을 힘써 배우는 것으로 깨달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익힌 신학은 대부분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짓, 즉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하나님)과 또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하나님의 행사)들을 각기 제 임의대로 추정해 말한 것들에 불과합니다.
어느 사람의 말과 행동이든 말하고 행동한 당사자만이 그 말하고 행동한 것에 대해 정확한 뜻을 밝힐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밤'이라는 글자를 써 두었는데 그 글자가 먹는 밤을 뜻한 것인지 어두운 밤을 뜻한 것인지는 오직 글 쓴 당사자만이 정확히 말할 수 있을 뿐, 유명한 국어 학자라 해서 그 뜻을 임의로 말하거나 또 유명 수사관이라 해서 그 뜻을 임의로 판단하면 모두다 그릇됩니다. 사람의 말과 행동도 이처럼 말하고 행동한 당사자만이 가장 그 뜻을 정확히 말할 수 있는데, 하물며 지극히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 행사 또한 하나님만이 정확히 밝힐 수 있을 뿐, 인간 혈육의 지식으로는 아무리 추정해 말하여도 그 모든 해석은 거짓됩니다. 그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오직 믿음으로 실행해 지킨 의인들에게만 참되게 해석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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