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20분.
예약시간에 맞춰 신경정신과에 도착했다.
진료실에 들어서니
내 또래의 남자 의사다.
'저 분은 어떻게 살았길래
자신의 삶을 넘어 타인의 삶까지
신경써 주고 있나'
근데 느껴지는 분위기가
영 마음문을 열고 싶지가 않다.
차라리 동성이던가
눈빛이라도 따뜻하던가
얘기들어줄 태도라도 보이던가.
이미 적혀있는 공식적인 설문지를 한 줄 한 줄 읽어가는 느낌이다.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왜 우울하신가요?"
내가 워낙 맓을 잘?하고
글을 좀 쓰니 망정이지
이런 분위기에서 마음을 표현하는 게 쉽지는 않겠다.
그래도 표류하던 바다에서 지푸라기라도 하나 잡을 심정으로
뭐가 어쩌구 저쩌구 두서없이
얘기를 늘여놨다.
내 얘기가 한 단락이 끝날 때 마다
"네"가 전부이고
그 어떤 추임새도 없다.
"그러셨군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사이사이 이런 응대라도 해주면
어디 덧나나?
우울증 검사좀 하고 나서 다시 부르겠단다.
종이도 질문도 아닌
스마트폰 카톡으로 설문지를 전송해준다.
마음병원이라는 곳조차
마음은 재쳐두고 기계를 드리대다니.
'자살하고픈 생각이 들 때가 있는가?
세상이 비관스러운가?
살아온 날들이 후회스러운가?등등'
느낌이 왔다.
'그렇다' 라고 답하면
약을 처방해 줄테고
'보통이다' 라고 하면
약은 물건너갈 것이다.
역시 예상대로다.
약간의 우울증은 있지만
약먹을 정도의 중증은 아니란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기대없이 물었더니 그제서야 살며시 웃으면서
"그걸 알면 다들 행복하겠지요"
볕은 여전히 뜨겁고
첫 신경정신과 방문의 추억만
안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카페 게시글
삶의 이야기
신경정신과 방문기
베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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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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