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16부작을 완주했어요.
원래 긴 호흡의 드라마에 쉽게 빠지지 않는 편인데 말이죠.
말도 안 되는 스토리로 사람 짜증내게 만드는 요즘 드라마들(아니 전에도 그랬었나?)
회장님을 비롯한 재벌들과 부자들의 행태와 말도 안 되게 얽히고 설키는 인간관계(또는 핏줄 관계)는 헛웃음 나오게 만들지요.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드라마가 시청률 30% 이상이라니!
그러던 차 만난 드라마 <인간실격>
본방송 때는 한 편도 챙겨보지 못했고 뒤늦게 보게 되었지요.
드라마가 이렇게 예술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
그러나 〈인간실격〉은 아쉽게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알 것 같았어요.
요즘 드라마들과 달리 진지하게 흔들림 없이 인간의 실존에 대한 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기 때문이지요. 다소 어둡고 우울하고 느리기 때문이기도 했지요.
그렇다고 해서 마냥 무겁기만 하지는 않더군요.
강재 역의 류준열은 강재 그대로였고, 쿨하면서 시크한 매력이 그대로 묻어났지요. 류준열이 이렇게 섹시했나, 깜짝 놀랐지요.
나오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겉모습과 달리 너무 따뜻하네요.
강재의 소울메이트라 하는 딱이, 그리고 그의 누나
딱딱거리는 모습만 봐도 짜증나는 부정의 시어머니 그리고 부정의 남편
강재의 엄마, 그리고 강재가 형이라 부르는 엄마의 동거인
모두 평범한 사람들, 하지만 따뜻한 사람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폐지 줍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숨겨진 성인 같은 풍모를 드러내는 창숙(박인환)은 〈인간실격〉을 봐야 할 단 한 가지 이유로 꼽아도 무리가 없는 인물.
딸 부정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시집”이라고 표현하는 그를 보며 과연 우리는 인간의 자격을 갖고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 일본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과는 관련이 없다고 함. 제목만 차용해 왔다고 하네요.
첫댓글 제목만 차용해 왔다고요? 아니 그럼 왜 그런 제목을? 저는 처음에 제목 보고 이거 일본스럽네. 했는데.
어쨌든. 저는 부정의 시어머니가 눈에 띄었어요.
종종종종 동동동동 굉장히 세속적이면서도 엄청 따뜻한 사람이잖아요.
폐지 줍는 부정 아버지를 외면했다가 다시 먹을 것을 싸들고 찾아다니던 모습이 바로 현실적인 사람들의 모습 아니겠어요?
암튼 하나하나 짚을 게 많지만 저는 특히 두 주인공의 번갈아 나오는 나래이션이 좋았어요.
깊이 나를 바닥까지 그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끌고가는 기분이었어요.
아무튼 좋은 작품이예요. 작가가 누군지 궁금했는데 건축학개론 쓴 작가.
나래이션도 좋았고 연출도 좋았고 음악도 잘 어울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