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 주의보
김 경 엽
비는 약간 내리다 말고
뜯어먹다 남은 가자미튀김 말야
노란 드라이 플라워 같다고 우기지 좀 마
5월은 푸르잖아 식탁을 닦자
총성이 울리면 아이들은 진실하게 달리지
솜사탕 장수를 밀어내는 건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붙인 수위 아저씨야
운동장에 비가 한 번 더 후드득 떨어지네
넘어져 깨진 무릎과 종이꽃은 아주 다르잖아
엄마는 흙 묻은 운동복을 세탁기에 처박겠지만
진건 중학 하굣길 여학생들 우르르 몰려 가네
바람은 미열처럼 아주 잠깐 불어 오네
마당의 먼지들이 살짝 들렸다 내려앉고
숙제를 열심히 하자, 경로잔치는 언제 끝나는 거야
낮잠처럼 떠있는 진건 마을 도서관의 풍선들
취소된 시화전시회만 진부한 건 아니지
5월은 푸르구나 담배를 사러 가자
엷은 비린내 풍기는 행주가 마르다 말다하는 오후
신발주머니 빙빙 돌리며 한 아이가
슈퍼 앞을 무심히 지나가지
나는 뒤꿈치 갈라진 맨발에 슬리퍼를 꿰고
먹구름은 편두통처럼 자꾸 나타났다 사라지고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 밤이지만
탁상시계가 떨어진 것은
책상 모서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폭우 내리는 날, 그가 뛰어 내렸다고 했다
부음 같은 빗소리는 밤늦도록 그치지 않는다
얼굴 모르는 옆방 여자의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샤워하는 소리
여자가 흘려 보내는 물소리가
빗소리를 조금씩 지운다
나는 김밥 한 줄을 목구멍에 밀어 넣는다
목구멍이 즐거워 모서리의 비애를
잠시 잊을 수 있다
탁상시계는 1.5볼트 뱃속이 터졌고 그는
뱃속의 건전지를 제 손으로 빼버렸다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 밤,
얼굴 모르는 여자는 콧노래를 부르며
몸을 씻고 나는
검은 전선 한 가닥으로 둥근 생
몇 볼트를 꾸역꾸역 충전하고 있다
딩아돌하 2008. 여름호
카페 게시글
시사랑
건조 주의보외 / 김경업
늦은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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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6.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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