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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를 “너의 씨가 다른 땅에서 거류민이 되겠으며 그들이 그들을 섬기겠으며 그들이 그들을 400년을 괴롭히겠고. 내가 그들이 섬길 민족을 심판하고, 그들이 큰 재산을 가지고 나오겠고. 너는 너의 조상들에 평화에 돌아가겠으며 너는 좋은 노령에 매장되겠고. 넷째의 세대가 지나고 여기에 돌아올 것이니 그 이유는 그 아모리인의 죄악이 아직 완벽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5:13~16).
“평화(peace)”는 “샬롬”인데 “완성하다”(샬람)에서 나왔고 악(evil)과 대조되는 넓은 뜻의 “안녕”, “복지”(well-being)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건강을 뜻하기도 합니다(시 38:3, 창 15:15).
그는 성취감으로 인생을 마감하고 무덤에 평화로이 가게 될 것입니다. 야곱은 평화에 관심이 있어 외삼촌의 평화를 묻습니다(창 28:21, 29:6). “평화”는 야곱의 자손과 셈족의 인사말입니다(창 43:27~28, 출 4:18).
1. 순종하는 자는 평화의 복을 받습니다.
레위기 26장 6절에 “그리고 내가 평화를 그 땅 안에 주었으며, 너희가 드러눕고 떨게 하는 자가 없어지고, 내가 악한 생물(beast)을 그 땅으로부터 그치게 하였고(eliminate), 칼이 너희의 땅 안에 지나가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 26장 6~8절은 순종하는 자가 전투에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전투에서 승리하여야지 평화를 얻게 되며 전투에서 지면 노예가 됩니다.
전투에서 이겨야 하는데 우리는 더 전투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영적 전투하면서 영적으로 영적 전쟁하며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악마가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입니다.
악마가 맨 처음에 에덴의 정원 안에 여자에게 뱀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여자를 유혹했잖습니까?
악마가 여자에게 말하였기를, ‘이 열매 먹어 봐 이것 먹어도 죽지 않아 이것 먹으면 너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될 것이야.’라고 유혹했습니다.
악마의 유혹하는 말에 우리의 영혼은 유혹과 싸워 전투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전투에서 이겨야 하는데, 악마의 말을 듣는 것은 지는 것입니다.
악마가 유혹할 때 그 말을 듣는 것은 영적 전쟁에 지는 것을 뜻하므로 우리는 악마의 말에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악마가 우리에게 전쟁을 걸어올 때 칼 가지고 와서 ‘너 내 말 안 들어? 안 들으면 죽일 거야.’ 이렇게 우리에게 전쟁을 걸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악마가 전쟁을 걸어올 때는 유혹자의 모습으로 전쟁을 걸어옵니다,
악마의 최고 무기는 2가지가 있고 하나는 거짓말, 하나는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말이고 악마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야.’ 이것이 참말이라는 것입니다.
악마는 ‘먹어도 죽지 않아 하나님처럼 될 것이야’라고 거짓말하였는데 악마의 첫 번째 무기는 거짓말이고, 악마의 두 번째 무기는 교만입니다. ‘너 그것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야.’
‘너 왜 인생을 살아가며 하나님 말을 들으며 하나님의 종으로 사느냐? 너의 인생은 주인은 너야, 인생에 너는 왕이야.’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너의 인생을 살면 되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살려고 하느냐?’
‘너는 너의 인생의 왕이 되어서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면 되지 왜 하나님의 종으로 사느냐? 너 하나님처럼 살 수 있어!’라는 것입니다.
악마가 우리를 공격하는 무기는 칼처럼 날카롭게 찌르는 것이 아니라, 달콤한 사탕처럼 달콤하게 유혹하는 것입니다.
악마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는 때 영전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악마의 유혹을 들으면 영적 전쟁에서 지는 것입니다.
‘휴대전화 게임을 해봐 게임을 하면 정말로 즐거워 그것 하면 즐거워’, ‘너 술 한잔 마셔봐 술 한잔 마시면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알아? 마셔봐’ 그렇게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너 마약 하면 얼마나 황홀한지 알아 두 번도 필요 없어 한 번만 해봐’, 이렇게 달콤하게 유혹하는 것입니다.
악마가 우리의 마음속에 속삭이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나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나의 의지로 술을 마셨는데 나중에는 술이 자꾸만 시킵니다. ‘나 먹어줘’, 이제 중독되어 술을 안 마시면 안 되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술보다 나쁜 것이 마약이며 마약을 먹는 순간 황홀해진다는 것입니다. 호기심에 한 번 했는데 그 황홀한 느낌을 못 잊어 끊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재인’이라는 악인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악을 행하였는지 모릅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여러 가지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 5년 동안에 한국 사회에 마약이 엄청나게 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5년 동안 좌파들이 집정한 동안 마약 유통이 엄청나게 늘게 되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에 나랏빚도 엄청나게 늘게 되어 408조 원이 늘었습니다. 어쨌든 악마는 너 이것 한 번만 해봐 먹어 봐 이렇게 유혹하는 것입니다.
먼지 제거 스프레이가 마약만큼 환각 증상 강해 대체 마약으로 쓰이고 코카인보다 뇌 손상 피해가 2배에서 10배 이상 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 번 노출로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애초에 먼지 제거 스프레이로 팔리는 것 자체가 잘못이었습니다. 악마는 단돈 2천 원에 팔리는 이런 물질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유혹에 넘어가면 예전처럼 살 수 없는 몸 상태가 되고 맙니다.
악마는 유혹할 때에 이것 해봐 참 좋아 기분 좋아 이렇게 유혹합니다. 우리가 마음속에서 속삭이는 악마의 말을 들으면 영적 전투에서 집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평강(平康)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악마를 따라 타락한 천사의 무리, 즉 귀신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고, 그 타락 천사들이 각 사람 마음속에 유혹합니다.
‘이것 해봐, 이것 하면 즐거워. 왜 인생을 고통 가운데 살려고 하느냐? 그냥 즐기면서 살아’ 이런 유혹의 말을 들을 때 악마에게 지는 것입니다. 악마는 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달콤하게 미끼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아담의 죄의 성품도 유전되어서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죄가 있어서 우리에게 자기 말을 들으라고 명령합니다.
‘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거야 나 내 삶의 왕이야 내 삶의 주인이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삶을 살 거야’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것 같죠? 그러나 그렇지 아니합니다. 내 속에 죄가 있어서 ‘너 그것 해, 하면 기분 좋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 죄가 끊임없이 나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죄가 시키는 대로 산다면, 나는 죄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죄가 마음속에 ‘너 그것 해’ 그러면, ‘알았어, 그것 할게’, 그렇게 삽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죄의 종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삶이 곧 영적 전투에서 패배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죄에 져서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인생을 영적 전쟁의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는 세력이 달콤한 말로 유혹할 때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것이 영적으로 승리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어 삶을 살아갈 때 승리의 삶을 사는 것이고, 죄가 하라는 것, ‘게임 해 봐 즐거워’, ‘술 마셔봐 즐거워’라는 말을 듣고, 그것 따라가면 나는 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서 살면 순종의 종,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순종할 때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이 바로 “평화”의 복입니다. 이 “평화”의 복은 순종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적에게 패배하고 적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악마의 노예가 되고 죄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는 삶에는 평화가 없으며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마음에 평안함이 없습니다.
‘내 돈 누가 훔쳐 갈까!’, ‘사기 쳐서 가져갈까!’ 여러 가지 걱정 때문에 잠자리에 누워도 마음 편안히 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좁은 의미의 평화는 전쟁에서 싸워서 이기는 때에 획득되는 것이지만, 넓은 의미의 평화는 “안녕”, “복지”를 뜻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평화를 그 땅에 주십니다(레 26:6).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평화의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 살 때 그 땅에 평화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의 마음이 평안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시며 그들이 두려움 없이 드러누울 것입니다. 아무 걱정 없이 평화롭게 잠잘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이런 복은 돈이 많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가난하여도 밖에 나가 열심히 육체적인 노동하고 땀 흘려 일하고 집에 와 샤워한 후 침대에 누워 7시간, 8시간 잘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
제 아내는 침대에 한 번 누우면 6시간, 7시간 쉬지 않고 잘 수 있는데, 저는 침대에 누워 자다가도 3시간 만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야 합니다. 잠을 깊이 못 자면 삶의 질이 떨어집니다. 푹 잘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실 때 마음 깊은 곳에서 평안함이 생기고 되는데 이렇게 살아갈 때 그것이 복이고 행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나운 짐승을 없애버리셔서 그 땅에 평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부터 악한 생물을 그치게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악한 생물이 없어야 합니다.
뱀을 못 잡게 법을 만드니 뱀이 많아지고 아파트에도 뱀이 내려왔는데 정치가들은 왜 자꾸 악법들을 만드는 것입니까?
악법을 안 만들고 아무 일도 안 하는 쪽이 국민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정치가들이 ‘동물보호법’이라는 법을 만들었는데, 법 이름 좋아 보이죠? 이 법은 사람을 동물 때문에 벌하고 감옥 안에 가둘 수도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순종할 때에 악한 동물들을 없애 주실 것을 약속하셨는데, 사자나 곰과 같은 맹수들이 많아진다면 걸을 때도 위험하고 무섭습니다.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런 맹수들을 없애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생물에는 온갖 세균, 바이러스 이런 것들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옛날에 중세 때에는 페스트균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페스트균으로 인해서 생기는 병을 흑사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세균들도 통제하시고 없애 주시고 우리가 감기 바이러스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 우리가 “평화”의 복을 누립니다. 전쟁이 없을지라도 병원의 침상에 누워 있으면 그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평화”, 즉 “평강(平康)”은 “건강”과 “안녕”의 개념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평화”는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민수기 6장 24~26절에 “하나님께서 너를 복을 주시고 지키시겠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너에 빛나게 하시고 너에게 은혜로우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너에 들어 올리시고 평화를 놓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기 위해서 한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신 주 예수 크리스트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자신의 백성에게 복을 주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에게 이스라엘을 축복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의 축복을 들으시는 에 복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축복하는 내용,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평화”입니다. 대제사장에게는 축복(祝福)의 권한과 의무가 있습니다.
“축복(祝福)”이라는 한자어(漢字語)에서 “축(祝)”은 “빌 축(祝)” 자인데 “축복(祝福)”은 “복을 빔”을 뜻합니다.
대제사장은 축복(祝福), 즉 복을 빌 수 있으나 복을 줄 수는 없습니다. 대제사장은 복을 비는 사람이고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복을 빌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복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종들, 예수님의 사역자들에게는 축복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 마칠 때에 목사가 축도하잖습니까?
목사가 개인적으로 잘나서 성도들을 축복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목사라는 직분, 직분에 하나님께서 축복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엘리”라는 대제사장은 형편없는 자지만 “한나”라는 여자를 축복했고,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한나에게 아들을 낳게 하십니다.
대제사장이 선포하는 축복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축복이므로 이 축복은 확실한 축복입니다.
대제사장의 축복권은 우리에게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님의 예표인데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시며, “메시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사장, 왕, 예언자의 직분을 모두 가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실상(實像)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이신데 우리를 위해서 희생 제물을 바치신 분,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신 대제사장이십니다.
대제사장에게는 축복 권한 백성을 위해 기도할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희생 제물을 바치는 일을 다 마치신 후 하늘에 올라가셨고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서 하시고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대제사장직을 수행하시고 계시며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평화를 위해 축복하며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계속하여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조건 속에도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감옥에 있을지라도 나의 마음의 평안을 빼앗아갈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2.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평화 안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시편 29편 11절에 “야훼께서는 보호(strength)를 그 백성에게 주시며, 야훼께서는 그의 백성을 평화 안에 복을 주실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평화 안에(In) 다윗은 누웠으며 잠잤습니다(시 4:8).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평화 안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시 29:11).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아닌 그의 백성에게 평화를 주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방법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실 때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늘의 군대의 다수가 생겨서, “땅 위에 호의의 사람들에 평화라”라고 친양하였습니다(룩 2:13-14).
땅 위에 오직 하나님께서 좋게 생각하시는 사람들에 “평화”가 임하며, 오직 “평화”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누리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이 “평화”의 복을 받습니까?
시편 37편 11절에 “겸손한(meek) 자들은 땅을 상속할(inherit) 것이고 평화의 풍부에 매우 기뻐할 것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은 어떠한 땅입니까? 이 세상의 땅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땅은 곧 불에 타서 녹고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 땅을 우리가 상속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들, 불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거기 들어가지 못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그 땅을 상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의 상속은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에 있습니다.
이집트 사람은 아브라함의 씨를 400년 동안 괴롭힐 것인데(창 15:13), 주 하나님께서 겸손을 훈련하시기 위해 괴롭힘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로 괴롭힘을 받게 하시는 이유는 겸손하게 만드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기 위해 먼저 괴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겸손하게 하시려고 황야에 가게 하셨는데(신 8:2),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겸손하게 하시고 굶주리게 하신 것입니다(신 8:3). 그들을 겸손하게 하시기 위해 그들에 만나를 먹게 하셨습니다(신 8:1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땅을 상속할 수 있게 하시려고 먼저 낮추십니다. 괴롭힘을 받게 하셔서 겸손하게 만드신 후에 땅을 상속하게 만드십니다.
따라서 지금 괴롭힘을 받고 압박함을 받고 있다면 겸손하여져야 하며, 그 겸손으로 땅을 상속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기대한다면 땅을 상속할 것입니다. 땅을 상속할 자들은 괴롭히는 자들이 아니라 괴롭힘을 받는 자들입니다.
3. 메시아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군주십니다.
이사야 9장 6절에 “이는 젊은이가 우리에게 완전히 낳음을 받았고, 아들이 주어졌으며 지배가 그의 어깨에 있으며 ‘조언하는 자의 기적, 강력한 신(神), 영속의 아버지, 평화의 군주’시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평화(peace)”(샬롬)가 본문에 “평강(平康)”이라고 번역되었는데 이것은 “평평할 평(平)”과 “편안할 강(康)” 자를 연결해 만든 한자입니다. “편안할 강(康)” 자는 “건강(健康)”이라는 한자에도 사용됩니다(사 9:6).
개인적 차원에서 “평화”는 성취를 뜻합니다. “평화 안에 죽는다”라는 말은 모든 것을 이루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 살펴본 아브라함의 삶이 그러하였습니다. “평화”는 근심이나 걱정에서 벗어나서 잘사는 것입니다(삼상 1:17). 관계에 있어서 “평화”는 선의와 화목, 전쟁의 반대입니다(레 26:6). 하나님을 향해 “평화”는 그 은총의 온전한 실현을 말하며(민 6:26), 사람은 하나님과 “평화” 상태를 지녀야 합니다(민 25:12, 사 53:5). 이 모든 뜻은 “평화”의 기본 뜻인 “완전하다”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한 아이가 태어났고, 그는 “평화의 군주(Prince)”로 불립니다(사 9:6). 그 아이가 우리에게 낳음을 받음으로 평화가 우리에게 도래하게 됩니다.
그 아이는 “메시아”인데, 다른 말로는 “크리스트”(Christ)라고 합니다. 그의 탄생 기념의 날을 정하였는데 즉 “크리스마스”(Christmas)입니다.
전쟁의 원인인 인류의 죄가 없어질 때 참 평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그를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 간의 평화가 찾아올 것이고 그와 평화의 관계는 사람과 사람 간의 평화를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그 아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화를 줍니다. 그 아이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도록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인류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때에 서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의 지배에 복종하는 사람들만이 있는 곳에는 완전한 평화가 깃듭니다.
“평화”는 결핍과 필요에 반대된 것으로, 안녕, 복지, 번영을 내포하며, 하나님께서만이 이러한 평화를 주실 수 있으십니다.
메시아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참 “평화”를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완전한 평화가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1) John E. Hartley, 『레위기』, WBC 성경주석 4, 김경열 옮김 (서울: 솔로몬, 2006), 872.
2) Mark F. Rooker, 『레위기』, NAC 성경주석, 차주엽 옮김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8), 398.
3) Hartley, 『레위기』, WBC 성경주석, 881.
4) 김상복, 『거룩한 삶을 살라』 (서울: 도서출판 횃불, 1996), 247.
5) C. H. Spurgeon, 『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 스펄전 설교전집 02, 장충하 옮김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22), 489.
6) Spurgeon, 『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 스펄전 설교전집, 494.
7) Spurgeon, 『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 스펄전 설교전집, 489.
8) Spurgeon, 『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 스펄전 설교전집, 489.
9) Alec Motyer, 『이사야 주석』, 박문재 역 (서울: 솔로몬, 2018), 218.
10) Edward J. Young, 『이사야서 주석 Ⅰ』, 장도선․정일오 공역 (서울: CLC, 2007), 399.
11) John Oswalt, 『이사야 Ⅰ』, NICOT 성경주석, 이용중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5), 290.
12) Young, 『이사야서 주석 Ⅰ』, 402.
13)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이사야 Ⅰ』 (서울: 이엠, 2017),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