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뉴스 / 최영미
무언가 버틸 것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그게 아이든 집이든 서푼 같은 직장이든
어딘가 비빌 데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아프가니스탄의 총소리도 잊을 수 있고
사막의 먼지 위에 내리는 눈* 녹듯 잊을 수 있고
종군위안부의 생생한 묘사, 아나운서의 침착한 목소리
아이 떼놓고 울부짖는 엄마의 넋나간 얼굴도, 창 밖으로
훌훌 털어버릴 수 있지
버스만 내리면, 이거 또 지각인가
손목시계 내려다보며 혀 끌끌차며
정말 아무렇게나 잊을 수 있지
무언가 버틸 게
있다는 건 무조건 좋은 일이지
특히 오늘같이 세상 시끄러운 날은
* 오마르 카이얌(E. 피쓰제럴드 영역) [루바이야트]
(세계 시인선, 민음사 1975)에서
<서른,잔치는 끝났다> 창작과 비평사,1994
첫댓글 힏들 때 내게 일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건 고통을 버틸 수 있는 최고의 에너지이기 때문이지요